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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60화 (60/146)

#60

카앙-

마치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히면 날 법한 날카로운 소리가 공동 안에 울려 퍼졌다.

“으, 으아. 어떻…”

규민은 제 목덜미를 잡아채고 끌어당긴 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너, 대체 뭐지…?”

그러나 그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규환은 분명 칼날이 닿아 있음에도 조금도 밀려 들어가지 않는 태운의 복부를 보며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태운이 아닌 뒤쪽에서 터져 나왔다.

한눈에 봐도 화가 잔뜩 나 있는 얼굴을 한 남자였다. 그는 천천히 걸어 나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재차 질문을 던져 왔다.

“세뇌를 당하지 않았던데 이 모든 짓을 진심으로 하고 있는 거냐? 대체 뭐 하는 새끼야, 너.”

시현은 고작 저딴 단검에 당할 태운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혹시 모를 상황이 터질지 몰라 식겁한 심장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감정은 고스란히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원흉, 이규한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크윽.”

무형의 살기가 의식을 뚫고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에 영향을 받은 건지 이규환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시현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래, 네가 정시현이군. 이제 생각났다. 우리 일에 훼방 놓은 놈.”

그리고 이내 시현을 기억해 냈는지 미간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입을 나불대기 시작했다.

“가진 것도 없는 고아 출신에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회사에 다니다가 3년간 실종됐다 돌아왔더군. 대체 정체가 뭐지? 뭘 어떻게 했길래 게이트 안에 있는 것들과 연락이 안 돼! 뭘 어떻게 한 거냐!”

시현은 말이 시작되자마자 치솟는 혈압에 울컥하는 마음을 내리눌러야만 했다.

그나마 게이트 내부에서 저 자신이 크게 날뛴 사실과 태운의 정체가 완전히 유출되진 않은 듯하여 안도했다.

무엇보다 상대가 자신보다 정보의 우위를 지니면 안 됐다. 시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였다.

“내가 말해 줘야 할 의무가 있나?”

멈칫.

“하하. 그래 의무는 없지만, 말을 하게 될 거다. 이 공간에서 나는 나의 신과 같으니까.”

시현은 본격적으로 신 어쩌고를 찾기 시작하는 이규환에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진짜 아주 단단히 저쪽에 빠진 것 같았다.

“그래! 네가 아까 말한 대로 나는 그런 조악한 세뇌 따위에 영향받은 게 아니다. 나는 그저 믿는 거다.”

“믿는다고?”

“그래 믿음. 우리가 언제 이런 세상이 올 거라고 예상이나 했겠어. 그런데 그거 아나? 게이트고 몬스터고 이 모든 건 저 위에 계신 분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어. 우리는 최후의 문이 열릴 때까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일 뿐이다.”

고작 얼마 되지 않는 문장 안에서도 앞뒤가 안 맞고 내용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현은 나불대는 이규환의 표정을 관찰하고 뿜어져 나오는 진심에 결국 속으로 욕설을 짓씹었다.

‘빌런 협회 어쩌고 하더니 그 정체가 고작 골수 사이비 신도들이었다니, 미친 새끼들.’

“그 준비가 일반인들을 데려다 죽이고 온 사방에 피해를 주는 거냐?”

“그건 어쩔 수 없지. 선택받지 못한 것들의 최후일 뿐이다. 쯧, 그래서 규민이와 주연이도 곧 세례를 받았어야 했건만.”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시현은 방심하지 않고 온몸 가득 긴장감을 끌어 올린 뒤 세밀하게 그를 살폈다.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진의로 봐선 진짜 무언가를 향한 지독한 맹신이 느껴졌다. 아마 그가 말하는 것이 다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게이트 안에서의 일 때문에 화가 나 쫓은 거라면… 알겠어. 쟤네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는 가. 그렇지만 그전에는 대체 왜 공격한 거지?’

바로 모든 일의 시작점인 집에 관한 문제였다.

하정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저들이 이 일에 대해 그냥 지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 사건에 대한 입을 막으려 든다니 말하지 않아도 관련자라고 알려 주는 꼴이었다.

그러나 이규환은 마치 시현을 그냥 게이트에서 자신들의 일을 방해했던 사람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수상해.’

시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이규환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밀과 관련된 건진 모르겠지만 수상한 행동을 잡아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규환은 입으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미세하지만, 은근히 옷자락에 가려 둔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아무래도 그동안 당해 온 게 있기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놈들이 쓰는 정체불명의 기술들은 가뜩이나 내공도 마력도 쓰지 않기에 전조 증상도 쉽게 알아채기가 힘들었다.

그때, 아주 찰나 찌릿한 살기가 느껴졌다.

“으악! 대장!”

김성빈이었다. 방금까지도 멀쩡했던 김성빈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흐릿해져 있었다.

그는 만신창이가 된 몸인데도 망설임이라고는 한 톨도 남기지 않은 채 제 바로 근처에 있던 이규민에게 단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혀, 형!!!”

규민 또한 제가 가진 스킬 덕인지 무언가 낌새를 느낀 듯해 보였지만 결국 신체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시현은 다급히 손을 들어 올리며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규민에게 장을 쏘아 낸 다음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태운아, 앞!”

열이 받았다. 차라리 수십 또는 수백을 상대하는 게 훨씬 쉬웠다.

적은 하나뿐인데도 바로 죽일 수 없었고, 그 와중에 아군도 지켜야 하며 건물도 함부로 부숴선 안 된다니.

‘젠장, 양손 양발에 족쇄를 끼운 채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님 뭐냐고 이게!’

시현은 곧바로 이규환에게 튀어 나가는 태운을 확인하며 장에 맞아 저 멀리 굴러간 규민에게로 몸을 돌리고 있는 김성빈의 목덜미를 잡아 쥐었다.

쿠웅!

그리고 냅다 바닥에 내다 꽂은 뒤 내공을 확 풀어 온갖 혈을 점혈했다. 통나무 상태가 된 김성빈은 아까 전에 봤던 김정현처럼 이를 악물고 움직이려고 하는 중이었다. 시현은 그런 그를 확인하고서야 바닥에 내려놨다.

“과하게 내공을 써 막아 놔서 풀 때 무척이나 고통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타닥.

시현은 작게 사과의 말을 남긴 뒤 곧바로 몸을 돌려 튀어 나갔다. 쉴 새는 없었다. 아직 이규환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러나 시현은 제 눈앞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사람들 수십과 태운의 손에 목이 꺾여 있는 이규환을, 그러니까 그의 시체를 혼란스럽게 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아무래도 본체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시현이 작게 속삭였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태운은 손에 들린 것을 바닥에 내버리고 그대로 바닥을 밟고 도약해 시현의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설마, 도망친 거야…? 하.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생명 반응과 내기도 진짜였는데…?”

“…이 장소에 해답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

그 순간 이규환이 이 공간 안에서는 신과 같이 움직일 수 있다 어쨌다 얘기를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결계는 아직 남아 있었다. 시현은 아랫입술을 콱 깨물며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는 이들을 확인했다.

가진 내공도, 마력도 없거나 비루하고 몸의 밸런스도 영 꽝이었다. 그러니까, 진짜로 그저 평범한 일반인이라는 뜻이었다.

“하, 이 새끼. 진짜 선 넘네.”

시현은 특기인 지강을 뿌려 일반인들 수십을 단번에 기절시키고 허공을 노려봤다.

슈우우욱-

챙강!

그때 사방에서 암기와 단검들이 허공을 빼곡하게 채우고 쏟아져 내렸다. 곧바로 태운의 손이 움직였다.

그의 손을 따라 마치 물결 같은 장막이 펼쳐지더니 공격이 들어온 방향으로 뿌려졌다.

채재재쟁! 챙강! 찰그랑! 콰앙!

그러자 여러 개의 무기는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우르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고 끝까지 뻗어 간 강기는 벽을 박살을 내며 사라졌다.

‘그런데도 결계는 꼼짝을 안 한다 이거지.’

시현은 태운이 운용하는 기의 흐름을 보며 감탄할 새도 없이 곧바로 움직였다.

마지막 하나 남은 골프채였다.

시현은 바닥을 구르고 있던 아이언 하나를 집어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후우우웅-

그러자 내공이 미친 듯이 모여들며 골프채를 감싸기 시작했다. 내기가 집중되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이제는 골프채가 가진 금속의 은빛도 보이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 버린 시현의 얼굴 위로 강한 결의가 느껴졌다. 시현은 저와 태운이 날리는 강기에도 버티고 있는 이 공간을 한번 둘러봤다.

‘위다….’

이규환이 튄 지 벌써 몇 분이 흘렀다. 언제까지고 이규환의 의도에 놀아 주며 방어적으로만 굴 수는 없었다.

신의 힘이라고?

순간 이곳에 들어와서 본 것들과 얼마 전 신의 광산에서 겪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온통 피와 광기뿐이었다.

‘그걸 모두 뛰어넘는 힘으로 단번에 그 모든 걸 무효화한 뒤 보여 줄게. 네가 받들며 하는 짓거리는 신이란 작자가 시킬 만한 게 아니란걸.’

검붉은 강기가 마치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시현은 이곳에서 느껴지는 호흡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 호흡에 저 자신을 맞추기 시작했다.

“스승님! 위험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야 어렵지 않게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제 시현은 제 감을 의심하지 않았다.

콰가가강!

“크윽.”

강기의 기세로 인해 이미 벽부터 부스러지고 있던 내부가 박살 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길게 파인 자국들이 생기고 있었고 이제는 그것들이 계속 겹쳐 흔적을 확인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것들에서 내기의 폭풍의 강력함이 여실히 보이고 있었다.

촤악!

쨍강. 그럼에도 내부는 그에 반응하는 건지 계속해서 공격할 만한 무기들을 쏟아 내거나 이제는 꽤 실력이 있는 자들을 안으로 소환하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건 태운의 손에서 힘없이 스러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스승님….”

시현은 힘겹게 들어 올렸던, 이제는 다 우그러져 형체마저 모호한 골프채를 다시 한번 그러쥐었다. 그리고 곧 시현의 내공 대부분이 꽉꽉 들어찬 강기가 천천히 천장을 향해 그어졌다.

[천마대멸겁]

콰아아아아!!

순식간에 시멘트와 지반으로 가려진 천장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로 지어져 있던 집마저 반쯤 터져 나갔다.

수많은 잔해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만, 그것들 사이로 이제는 새파란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

“씨발, 깼다.”

힘이 빠진 시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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