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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58화 (58/146)

#58

시현은 금방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어느새 비뚤비뚤 늘어져 있는 몸뚱이들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별말 없이 발끝으로 척척 글로리 길드원들을 나란히 눕힌 시현은 저 끝에 보이는 통로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물론 그 뒤를 따르는 태운이 발끝에 차이는 이들을 퍽퍽 쳐서 밀쳤기에 다시 엉망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얼마간 걸음을 옮기자 여태까지와는 다른 올라가는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쩐지, 결국 지하에 아무것도 없었네. 젠장.”

시현은 확 짜증이 나서 거칠게 읊조렸다가 곧바로 흠칫 입을 가리고 제 옆에 있는 이의 낯을 슬쩍 살폈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그러나 그 기척을 느꼈는지 앞을 바라보던 태운의 시선이 곧바로 시현에게로 돌아왔다.

시현은 맑게 방긋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며 또 조심성 없이 비속어를 남발해 댄 제 입을 때리고 싶어졌다.

“아니야, 그냥 상황이 답답해서.”

“심려치 마십시오. 금방 해결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가득 찬 눈이 다시 한번 모양 좋게 휘어진 눈꺼풀에 가려졌다. 시현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다가 마주 웃어 보이고 발을 옮겼다.

별거 아닌 말인데도 이상하게 위로되는 마음이 이상했다.

사실 어딜 봐도 좋게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저 때문에 회사에서의 입장이 조금 곤란해진 하정이나 그사이에 공격당하고 납치된 규민과 주연, 작게는 제가 구해 준 글로리 길드원들까지.

제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 주변이 보는 피해를 하나하나 다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태운의 말을 듣자 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마워.”

시현은 괜히 쑥스러워지는 마음에 발에 속도를 더해 성큼성큼 앞질러 가며 작게 읊조렸다.

“고마우면 소원 하나 들어주세요.”

그러나 태운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달음에 따라붙어 시현의 손을 붙잡았다.

“어떤 건데?”

“그건 나중에 나가서.”

헤헤 웃는 얼굴에서 강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시현은 얼른 닦달해 소원이 뭐냐고 되물어보려 입을 열었다가 앞쪽에서 들려오는 아주 미세한 소음에 고개를 휙 돌렸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전투음이 들린 적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들이 있었던 곳 말고는 없었단 뜻이었다.

태운 역시 시선을 돌린 걸 보면 제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시현은 순간 자기가 무엇을 하려 했었는지도 까먹고 곧바로 경공을 발휘해 앞으로 튀어 나갔다.

***

채앵!

시퍼렇게 벼려져 있는 도와 어느 누구도 주워 갈 것 같지 않은 조악하게 생긴 단검 하나가 격렬하게 부딪혔다.

“규민 씨! 빨리!”

그때 단검을 쥔 까만 복면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가 내뱉은 말과 함께 도를 들고 있는 상대방의 뒤에서 갑자기 사람 형태가 나타났다.

푸욱.

“크학!”

그는 날카롭게 생긴 단검 두 개를 앞에 보이는 이의 등 뒤로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곧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몸뚱이에서 힘겹게 떨어져 나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와, 이번엔 죽는 줄 알았네…. 괜찮아요?”

“하아, 하아. 네, 저야 뭐… 대장은요?”

“아…. 음, 아직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규민은 조금 곤란한 얼굴로 대답하는 대장을 올려다보다 작게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늘 환해 보이던 그의 얼굴에선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자꾸만 어두운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시현과 헤어지고 난 뒤 규민은 곧바로 김성빈 대장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 글로리 길드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적절한 조처를 하기 위한 의논을 나눌 참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금방 사라졌다. 그 대화의 대상인 김성빈이 만나자마자 갑작스럽게 공격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A급 딜러인 김성빈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결국 온 힘을 다해 반항을 하던 규민은 가진 마력을 다 쓰고 나서야 피투성이가 되어 본집으로 끌려온 것이다.

물론 그 후 만난 주연이 문을 박살 내 준 덕분에 저도 충분히 나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들어올 때의 집 상태로 보아 지금 상태론 쉽게 빠져나가긴 글렀다는 생각에 몸을 늘어뜨렸다.

“아, 나도 진작 탈출용 마법 몇 개 새겨 놓을걸.”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또 다른 방법이 다가왔다. 김성빈이 혼비백산하며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규, 규민 씨! 미안합니다. 아니, 이게 대체 어찌 된 건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분명 침입자들과 전투 중이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뿌예지더니. 아, 그때 게이트에서의 느낌과 비슷했어요.”

규민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어진 김성빈의 말에 이 상황을 직접 주도한 자가 형이라는 걸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어떤 일에 가담하고 있는 거라면 그만두라고 말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의 주동자가 형이라면?

절로 무력감이 들고 분노가 차올랐다.

‘대체 뭐가 모자라서!’

형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제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규민은 뻘쭘하게 서 있는 김성빈 대장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고 다시 길을 찾기 위해 상처투성이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규민과 김성빈은 아직 입구를 찾지 못한 채 계속 복도를 헤매고 다니는 중이었다.

잊을 만하면 습격자들이 나타났고, 피가 멎으려고 하면 전투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아까 있었던 전투에서 생겼던 상처가 겨우 내뱉던 피를 멈추고 있던 시점이었다.

푸확!

“크흑.”

아니나 다를까 규민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주홍빛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간발의 차이로 옆으로 굴렀던 규민은 힘겹게 헐떡이며 천천히 땅을 딛고 일어섰다.

“제자리로 돌아가라.”

상대방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게다가 그만큼 위치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후우…. 너희야말로, 날 좀 놔주면 안 되겠냐?”

물론 저들이 제 말을 들어줄 거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규민은 계속 입을 털어 가며 공격할 틈을 노렸다.

김성빈과 규민 둘 다 근거리 딜러이자 여태껏 도망치던 입장으로서 이런 좁은 공간과 마법사와는 상성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재수가 이렇게 없냐.’

남은 마력도 간당간당해서 스킬을 두어 번 정도 쓰면 바닥이 날 것 같았다. 김성빈은 그나마 멀쩡해 보였지만 한쪽 팔이 처음 맞닥뜨린 놈에게 난도질당해 제대로 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규민의 머릿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규민 씨! 고개 숙여요!}

규민은 반갑지만 단호한 말투에 마치 명령어가 입력된 캐릭터처럼 휙 고개를 숙여 내렸다. 그러자 뒤통수로 화끈하면서도 서늘한 기운이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끄악!”

그리고 저 앞에 있던 남자가 복부에서 피를 뿜으며 저 멀리 날아가 처박히자 고개를 휙 들어 올려 뒤쪽을 바라봤다.

“형님…!”

시현이었다. 그는 여전히 연태운을 뒤에 두고 골프 백을 한쪽 어깨에 둘러멘 채 손을 흔들며 슬렁슬렁 걸어오는 중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어, 어떻게 오신 거예요? 주연이는요?”

규민은 절뚝대는 다리를 애써 움직이며 시현에게로 발을 옮겼다. 물론 그건 시현이 들어 올린 손에 의해 막혔지만 말이다.

“일단 다 멀쩡하니까 제발 좀 앉아서 쉬어요.”

“하아…. 다행입니다.”

“그리고 바보 아닙니까? 뭘 저한테 말을 하지 말라고 해요?”

“아…. 하하.”

규민은 티 나게 안도한 얼굴로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가 이어지는 시현의 잔소리에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웃어 보였다.

비록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진심으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이 안에서 얼굴을 보자 안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스승님, 이자 뇌에 고독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온해지던 분위기가 태운의 말에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순간 시현의 들고 있던 골프채의 끝이 자연스럽게 옆에 서 있던 김성빈의 목으로 겨누어졌다.

태운이 고독이라 칭한 것, 그건 아까 글로리 길드원들처럼 세뇌의 흔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설명. 당신은 왜 멀쩡한 척 여기에 있는 거지?”

김성빈은 등 뒤로 배어 나온 식은땀을 느끼며 천천히 자초지종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자세한 연유는 모르겠고….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방 같은 데에 갇혔는데 그때 제정신이 돌아왔다?”

“네 맞습니다.”

“그걸, 지금 믿으란 뜻입니까?”

시현이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반문하자 김성빈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물론 제가 들어도 앞뒤가 맞지 않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시현과 태운처럼 말도 안 되게 강한 자들에게 계속 의심을 당하고 있는 건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진짭니다! 그전까진 뭔가 머릿속이 뿌옇게 가려진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제대로 사고가 됐어요. 그리고 제가 했던 일들도 다 기억하고 있고요….”

김성빈의 시선이 규민에게 흘끗 돌아갔다. 그의 눈 안은 규민에게 미안해하는 감정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형님. 일단 저랑 계속 전투하며 길을 찾고는 있었습니다.”

“하아….”

물론 여태 봐 왔던 이들과 처음부터 양상이 다르긴 했다. 그러나 그게 괜찮은 건지 아닌 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시현은 초조한지 양손을 꾹 쥐어 잡는 김성빈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규민 씨, 미안. 김성빈 씨, 이규환 개새끼 해 보세요.”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예? 아니 그건….”

“못 하겠다?”

김성빈은 이제 반쯤 울상을 한 채 이규민의 눈치를 흘끗 봤다. 규민 또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쨌든, 사장님이시고….”

스윽.

그 순간 골프채가 위로 들어 올려졌다.

“이규환은 개새끼입니다!”

결국 김성빈이 앞장서는 걸로 결론이 나고 대화는 일단락되었다.

“좋아요. 그럼 일단 내가 당신 옆에. 그리고 뒤에는 태운이. 이렇게 움직이죠.”

어차피 넓지 않은 복도였기에 나란히 걸어갈 수는 없었다. 시현은 간단히 자리 배치를 끝내고선 손을 휘저어 일행들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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