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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56화 (56/146)

#56

슈악-

순간 시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곧바로 골프채를 쓸 만한 상황이 덜컥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시현은 먼저 들고 있던 골프채를 다시 단단히 쥐어 잡고 나 나쁜 놈이에요 온몸으로 외치고 있는 검은 놈들에게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자신이 살생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건 맞았다. 그러나 그 가치관이 저를 공격하는 이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현은 저번과 같은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 손아귀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순간 골프채 위로 검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맺히는 듯하더니 빠르게 횡으로 휘둘러지는 검신에 맞춰 꼬리를 길게 늘어트렸다.

“크학!”

시현의 공격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문을 벌컥 열고 달려든 두 명은 자신들이 공격당하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채 단번에 피를 뿜어내며 한쪽 벽으로 처박혔다.

“스승님. 피가.”

“아, 응. 조심할게.”

그때 태운이 매끈한 미간을 좁히며 손가락을 들어 시현의 뺨을 훑어내렸다.

아마 저들이 나가떨어지며 피가 조금 튄 것 같았는데 제가 태운이에게 해 왔던 것을 이 애가 똑같이 답습하는 걸 보자 왠지 모르게 민망해졌다.

‘음, 뭔지 모르게 상황이 바뀐 것 같단 말이지.’

시현은 골프채를 허공에 휘둘러 흥건하게 맺혀 있는 피를 털어 내고 흐뭇하게 웃었다.

뭐, 몇 가지 일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스승님이라고 이렇게 지극히 위하는 게 새삼 제자 한번 참 잘 키운 것 같아 뿌듯해졌다.

“고마워.”

그동안 고민에 빠졌던 게 무색했다. 윤이 나도록 매끈한 태운의 머리를 쓱쓱 쓸어내린 시현은 이내 몸을 휙 돌려 앞으로 이어진 복도를 앞서 걸었다.

심각해야만 하는 상황인데도 괜히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그런 그의 손길이 닿은 곳을 습관처럼 다시 대어 보던 태운은 곧바로 속도를 맞춰 시현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

아, 제기랄 길이 대체 어디야? 이런 건 유준이가 제격인데.

시현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복도를 헤매다가 바닥을 뒤꿈치로 퍽 하고 내려친 뒤 이제는 15번째로 보고 있는 거실 가죽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결계 안은 마치 큐브처럼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다른 길이라고 생각해서 걷고 있으면 또 원래의 길이 나타나는 방식이었다. 저와 태운이 환각에 걸린 건 아니었다. 몇 번이나 확인했기에 확실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쓰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처럼 이것도 단번에 파훼법을 찾아내기 힘들다는 건데.’

안 그래도 느껴졌다 없어졌다 하는 인기척에 속은 게 두 번이나 됐다. 맘 같아선 온 힘을 다해 이 건물을 단번에 박살 내 버리고 싶었지만 드물게 그 힘을 이용해 먹는 더러운 진도 있었기에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됐다.

“아, 슬 열받네. 그치?”

악문 잇새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지만 슬슬 조급해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체감상 한 시간 정도가 지나간 것 같았는데 여태 이러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혹시나 하는 맘에 지형지물은 최대한 건들지 않고 방향을 잡아내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 패턴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일단 건물이 움직일 때 틈새를 한번 잘라 내 보자.”

시현이 답답하단 얼굴로 해결책 하나를 꺼내 놓자 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골프채를 들어 올려 맨 처음 발을 들였던 복도를 지긋이 바라봤다.

“풉, 아 미안 미안.”

그러나 곧 조금 심각하게 흘러가는 듯했던 분위기에 균열이 일었다.

귀여운 오리 캐릭터가 그려진 제 후드티를 입고 긴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채, 마치 검이라도 되는 양 골프채를 고요히 들어 올리는 연태운이라니.

시현은 누구도 이 장면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실상은 그의 앞에서 절대 웃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너무 귀엽, 큭…. 흠흠.”

그러나 시현도 곧 계속 피식대던 입을 꾹 부여잡고 태운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태운의 고개가 슬쩍 아래로 기울었다가 다시 돌아왔다. 매끈하게 펴져 있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아 들었다. 그리고 새하얀 피부 위로 옅은 붉은빛이 퍼졌다. 저건 진짜로 태운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본인도 지금 제 모습을 떠올리고 시현이 왜 웃었는지 깨달았다는 뜻이었다.

‘아 씨, 진짜 귀엽다. 어떡하지.’

비록 금세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시 몸을 돌렸지만, 시현은 저 커다란 덩치 위로 예전에 있었던 일을 겹쳐보며 결국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때도 옷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

아, 몇 년 전에 제가 헷갈려서 태운이의 속옷을 입어 버린 일이 있었다. 그냥 장에서 비슷한 걸 대량으로 사 놨으니 헷갈릴 수도 있을 법했는데 태운이는 그걸 유난히 불편해했었다.

그래, 그때도 이런 비슷한 표정을 했던 것 같았다.

콰앙!

“어이구 깜짝이야.”

그러나 시현이 제대로 회상에 빠지기 전 어디 건물 하나라도 박살 낸 것 같은 파쇄음이 귓구멍을 뚫어 버릴 듯 강렬하게 틀어박혔다.

시현은 순간 식겁한 심장을 쥐어 잡고는 다 터져 너덜거리고 있는 벽 앞에 서서 등을 보이고 있는 태운의 상태를 살폈다.

“…아무래도 이쪽인 것 같으니, 가시죠. 스승님.”

“어엉… 그럴까.”

분위기가 뭔가 모르게 서늘했다.

시현은 회상하던 옛날 일을 곱게 접어 넣은 뒤 군말 없이 앞장서서 아가리를 힘차게 벌리고 있는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계단은 까맣게 그림자가 져서 끝이 보이지 않던 것과는 다르게 길게 이어지지 않아 금방 끝을 내보이고 있었다.

물론 딱 봐도 두터워 보이는 돌문이 가리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런 지형지물이 빠르게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저 앞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방증이나 다름없었기에 조금 더 손길이 급해졌다.

스걱-

곧바로 커다란 돌덩이가 두 동강이 나며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문의 형태를 하고 있던 것은 이제 바위와 자잘한 돌멩이가 되어 불규칙하게 쌓였다.

“이거 무슨 지하 감옥 같은데?”

시현의 목소리가 아주 작은 메아리처럼 울리며 에코를 만들어 냈다. 게다가 지하 특유의 축축함과 눅진 느낌이 울려 대는 목소리에 음침함을 더하고 있었다.

대체 이런 놈들은 왜 죄다 지하에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거야.

잠시 확 열이 받았지만, 시현은 잘게 심호흡하며 애써 참아 내고 규민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태운아, 내가 좌측 볼 테니 너는 우측 확인 좀 해 줘.”

“예.”

대화는 짧았다. 적진 최심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태운과 시현의 기도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시현은 마치 현대의 감옥처럼 콘크리트로 꼼꼼하게 마감되어 있는 벽면을 손으로 훑으며 기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기운이 어딘가에 막힌 듯 깜빡깜빡하며 점멸해 댔지만, 시현은 더욱더 집중하며 사방을 훑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태운과 떨어져서 내부를 훑는데 머릿속으로 태운의 전음이 들려왔다.

시현은 그대로 태운이 또렷하게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두어 번 돌아가야 하는 곳이 있긴 했지만 태운이가 위치한 곳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시현은 벌써 규민을 찾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발에 조금 더 내공을 밀어 넣으며 빠르게 지면을 박찼다.

“이게 무슨….”

그러나 잠시 후 시현은 태운이 서 있는 문가에 가까이 서서 안으로 펼쳐진 광경에 얼굴을 구겨트릴 수밖에 없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밝았다.

아무래도 기둥마다 붙어 있는 전구들 때문인 것 같았는데 물론 그중에서도 몇 개는 당장이라도 꺼질 듯 깜빡이고 있어서 오히려 분위기를 더욱 음침하게 만들 뿐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인상을 구긴 것은 아니었다.

천천히 시야를 돌려 주변을 바라본 시현은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대체 여기서 뭘 한 거야?”

잘린 부위가 까맣게 변색된 몸뚱이들과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는 핏자국들. 시현은 이 참상이 최근에 일어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만나는 이마다 냉병기를 지니고 다니며 쉽게 사람이 죽어 가는 세상에서 10년을 살았다지만 그곳에서도 은밀하게 이런 대량 살상을 하고 시신들을 방치해 두는 일 같은 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금 이게 불과 3년 전만 해도 살인이 최고의 범죄였던 세상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인가 심히 혼란스러웠다.

‘이 새끼들 진짜 단단히 미친 집단이구나.’

시현은 잠시 아연한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서 있다가 급히 발을 옮겨 쌓여 있는 덩어리들을 들췄다.

아무리 시간 관계가 안 맞는다지만 결계 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괜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초조해지는 것만 같았다.

“스승님. 제가 하겠습니다. 잠시 쉬십시오.”

“아니야. 이런 걸 어떻게 너한테만 맡겨.”

“그렇지만!”

“씁.”

시현은 단 한마디로 태운의 입을 막고 그나마 온전한 상태를 유지 중인 몸뚱이가 있는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들고 있는 골프채를 역으로 쥐고 몇 겹씩 겹쳐서 쌓여 있는 시체를 밀어 냈다.

툭. 투둑.

바닥에 떨어진 몇 구의 몸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크게 뭉개졌지만, 시현은 속으로 작게 사과를 남기며 손을 급히 움직였다.

그렇게 몇 번을 움직였지만, 이규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태운에게서 온 신호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다시 그의 흔적을 찾기 위해 또 헤매야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행이란 생각이 절로 드는 시현이었다.

음…?

찾는 걸 마무리하고 허리를 펴려고 했던 시현의 시야 안으로 무언가가 보였다. 빽빽하게 모여 있던 시체들 사이, 그냥 흠집인가 싶었던 것들이 갑자기 한 번에 눈에 들어왔다.

시현은 잠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가 다시 한번 미안하다 되뇌며 골프채를 들어 몸뚱이들을 슬쩍 밀었다.

“미친 새끼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절로 구토가 일었다.

이들의 작태가 너무나 미개해서 눈앞에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대가리를 날려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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