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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53화 (53/146)

#53

‘뭐지? 방금 태운이 기운이 이상하게 날뛴 것 같았는데?’

시현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예쁜 미소를 보며 떨떠름하게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이 애가 갑자기 어설프게 기운을 조절했을 리도 없었고 그렇다고 뭔가를 할 타이밍도 아니었는데 이러는 게 수상쩍었다.

‘흐음….’

시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기감을 넓혀 머물고 있는 건물이 아니라 더욱 먼 부위까지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손에 쥐어지는 성과는 따로 없었다.

딱히 위험해 보이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래된 빌라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는 동네는 아까와 똑같은 상태였다.

시현은 잠시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가 다시 태운을 유심히 살폈다.

‘어디 아픈가?’

태운이가 괜히 그랬을 리도 없었고 만약 아파서 조절하지 못했던 거라면 당장이라도 떼어 놓고 혼자 출발할 생각이었다.

“뭐야, 둘이?”

“어어?”

그때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서로 시선을 딱 붙인 채 싱긋대고 있는 둘을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보던 하정이 곧 씩 웃었다.

물론 정시현은 아주 이상한 얼굴이었지만 알 바가 아니었다. 하정은 곧 불만스럽다는 듯 말을 툭 내뱉었다.

“연애 놀음은 따로 좀 해라.”

“으아아악! 이 미친! 아니라고! 아니라고!”

그리고 시현은 딱 봐도 수상한 표정 변화에 한발 먼저 하정의 입 모양을 읽으며 기겁해서 꽥꽥 소리를 질러 댔다. 그리고 급히 손을 내저으며 쏟아져 버린 말들을 흩어 내려 애썼다.

대체 얘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안 그래도 요즘 분위기 이상한데!

당장이라도 하정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어 재끼고 싶었다.

시현은 뒷덜미가 시뻘게져서는 식식대는 소리를 숨기지도 않고 이번에야말로 담판을 내야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그러나 옆에서 노랫소리처럼 흘러나온 나긋한 목소리는 그런 시현의 의욕을 단번에 꺾어 버릴 만큼 여유롭고 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시현은 잔뜩 배신당한 얼굴로 태운을 돌아봤다. 그러나 눈까지 잔뜩 접어 가며 말갛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화내려던 마음이 쏙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어, 뭐…. 그러세요.”

방금까지 방방 뛰던 시현을 보며 신이 난 듯했던 하정의 표정이 순식간에 떨떠름해졌다.

그리고는 수줍은 얼굴을 한 태운이 아직도 멍청하게 서 있는 시현의 손을 부드럽게 쥐어 잡고 아까보다 은근히 더 가깝게 당겨 앉히는 모습을 보다 시선을 돌렸다.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먼저 장난을 건 것은 하정이였지만 결국 패배자가 된 것도 하정이었다.

“하여튼 그것만 말해 주려고 부른 건 아니야.”

사실 시현은 전음으로 급급하게 허접한 변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을 교차하며 미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둘의 모습에, 하정은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시현의 집을 박살 냈던 빌런 연합과 헌터 협회 내부에 무언가 커넥션이 있다면 국내에서 무언가를 찾아본다는 건 요원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불법적인 루트를 통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한국은 신의 광산이 위치한 만큼 협회의 힘이 컸고 그렇기에 범죄율도 최하위에 속해 있었다. 그러니 제대로 된 불법 루트조차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건 하정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그것도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하아, 이건 추천하고 싶지 않았는데.”

“뭔데.”

“너 ‘흑접’이라고 들어 본 적 있지?”

순간 시현의 눈이 삭 가늘어졌다. 흑접이란 이름은 처음 빌런 연합의 뒤를 캐야겠다고 마음을 먹자마자 찾아본 인터넷에서 가장 먼저 연관되어 나왔던 이름이었다.

“정보 길드….”

“맞아.”

시현이 정말 겉핥기식으로 대충 검색해도 튀어나오는 흑접이란 곳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정보 길드였다.

물론 그곳은 그냥 정보를 취급하는 것만으로 유명해진 곳은 아니었다.

그들은 헌터계에 맨 처음 출현했을 때 흔하지만 그만큼 효과가 좋은 마케팅 기법을 하나 들고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몇 가지의 정보를 인터넷 세상에 무료로 풀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그 정보란 것들이 허접한 것들이라면 이렇게 커질 수 없었을 것이다.

흑접은 작게는 각국 정치인들의 비리에서부터 크게는 게이트에서 나온 아이템들에 대한 비밀들과 특수 아이템이 위치한 장소까지. 말도 안 되게 희귀한 정보들을 아낌없이 풀어 댔다.

“이후에도 몇 번에 걸쳐 흔히 알 수 없는 정보들을 주기적으로 풀어 댔는데 어느 정도 목적을 이뤘다고 판단한 건지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졌어.”

그러나 이미 사람들 사이에선 흔히 말하는 온갖 음모론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 나돌아다닐 정도로 명성을 쌓은 후였다.

물론 그 명성에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또 있었다. 유명하긴 한데 대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접선하는지 대부분의 사람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것은 사람들의 도전 정신을 불태웠고 한층 더 흑접의 이름이 유명해지게 만드는 수단이 됐다.

“좋아 정보 길드가 있다는 것까진 알겠어. 근데 어떻게 찾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내가 이 얘길 꺼낸 거야.

하정은 잠시 심호흡하듯 호흡을 짧게 고르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새끼들이 라스베이거스에 나타나겠다고 공지했어.”

사실 하정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말이 정보 길드지 어쨌든, 범죄 조직이었다.

남의 정보를 빼돌리고 돈을 받고 판다. 당연히 의뢰자의 선과 악은 판단하지 않았고 조건만 되면 정보의 유통이 이루어졌다.

소문엔 직접 손을 쓰기도 한다는 말도 있었기에 애초부터 탐탁지 않은 단체였다.

그러나 제가 정의롭다 믿었던 단체의 일면이 어떠했나.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던 하정은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정의에 대한 판단을 다시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어. 다음 달 라스베이거스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경매가 열리거든. 그때 무언가를 직접 찾으러 나선다고 하는 소문이 파다해.

물론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만 도는 거긴 하지만 이제 점점 퍼지겠지. 근데 그 소문도 아마 그쪽에서 흘린 걸 거야. 그 대단하신 정보 길드 수장의 행보가 이렇게 쉽게 드러날 리가 없으니까.”

“그건 그럼 그렇다 치고….”

시현은 길게 이어진 하정의 말게 수긍하며 검지로 단단한 턱 끝을 문질렀다.

뭐 그들이 라스베이거스까지 온다는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면대면으로 조우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만날 수 있다 하더라도 제가 원하는 정보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치르느냐 하는 것도 문제였다.

보통 정보 거래는 무조건 돈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비슷한 수준의 정보 제공을 대가로 했다. 그러나 시현에게는 두 가지 다 없었다.

‘잡아서 협박을 해 봐?’

답답해지기만 하는 상황에 잠시 정신 나간 생각을 했던 시현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어차피 고문하고 죽여도 그 방대한 정보는 아마 따로 관리가 될 테니 오히려 황금알의 배를 가르는 꼴이 될 게 분명했다.

그 대단하다는 길드에서 후처리를 단단히 안 해 놨을 리도 없고.

“너무 걱정하지 마. 방법이 있어.”

그때 하정이 조금 어두워진 시현의 기색에 씩 웃으면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이게 뭐야?”

“명함.”

시현은 겨우 이름 하나 적혀 있는 검은색 종잇조각을 들어 올렸다.

“예전에 홍콩에 A급 게이트 열렸을 때 급히 도움을 주러 간 적이 있었어. 그리고 그곳에서 감사의 선물로 받은 거야.”

“에계? 겨우?”

“인마, 한국말 끝까지 들어. 그 명함을 준 건 ‘량차오샤’ 홍콩 쪽 협회 간부야. 그리고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무조건 하나를 도와주겠다고 했거든. 그때 그 사람이 늘어놨던 것 중에 흑접에 대한 말도 있었어. 아마 주선이 가능할 것 같아.”

시현은 줄줄 이어지는 하정에 말에 입을 작게 벌리고 몇 번 명함과 하정을 번갈아 봤다. 분명 게임 세상으로 끌려가기 전까지만 해도 맨날 술 처마시느라 바쁜 대학생이었던 하정이었다.

그러나 제가 모르는 사이에 그 성격 더럽고 괄괄하던 친구가 훌쩍 달라진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 시현의 심정을 눈치챈 건지 순간 하정의 얼굴에 다시 한번 장난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왜, 이제 이 누님이 좀 달라 보이냐? 자, 이제 잘 보여야겠지?”

“윽. 알겠다고.”

참 뭘 하든 타격감이 좋은 친구였다. 하정은 크게 한번 웃어 젖히고는 작게 꿍얼거리는 시현의 머리칼을 시원하게 헝클어뜨렸다.

물론 저를 빤히 바라보는 붉은 눈깔에 금세 손을 거둬들였지만 말이다.

‘으휴, 진짜 조금 괜찮은가 싶더니 또 저러네.’

하정은 순간적으로 오소소 솟아오른 소름에 오돌토돌해진 팔뚝을 벅벅 쓰다듬어 내렸다.

“어쨌든 그전까지 출국할 준비해 놓으라고 미리 말하는 거야.”

“엉, 고맙다.”

어찌 된 게 처음부터 계속 도움만 받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운 것도 고마운 거지만 미안함이 조금 더 컸다.

시현은 뒤통수를 긁적이다 뭐 도와줄 건 없나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열었다. 뭐라도 해 주지 않으면 자꾸 신경이 쓰일 것 같았다.

지이이잉-

그러나 그 흐름을 깨고 시현의 핸드폰이 정신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신류하와 엮이고 난 뒤로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에 전화번호를 바꾼 게 얼마 전이었다. 그러니 제 번호를 제대로 알고 전화할 만한 사람이 얼마 없다는 뜻이었다.

시현은 급히 핸드폰을 들어 올려 화면을 확인했다.

‘어?’

그러나 분명히 규민이라고 생각했던 발신자는 핸드폰에 등록도 되어 있지 않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번호도 핸드폰 번호가 아니라 지역 번호를 달고 있었고.

“여보세요?”

-허억, 헉.

“…시발, 뭐야?”

잠시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시현은 한참 시간이 흘러도 끊어지지 않는 진동에 핸드폰을 귀에다 가져다 댔다.

그리고 통화가 이어진 수화기에서 가느다란 헐떡임이 들려오자 얼굴을 와그작 구겨트렸다.

-잠, 잠시만요. 허억. 시현 님!

그러나 곧 이어진 말에 당장 통화를 끊어 버리려던 시현의 몸이 멈칫하고 멈추어 섰다. 자세히 들어 보니 이건 분명 시현의 기억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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