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50화 (50/146)

#50

일단 저들이 무언가를 중얼거릴 수 없게 단번에 즉사시켜야 했고, 어떤 방어술을 쓸지 모르기에 방심하지 말아야 했다.

그들이 주기적으로 기억을 공유한단 걸 알았으니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알아낼 바에 깔끔하게 증거 인멸을 하는 편이 나아 보였다.

사실 조금 전에도 딱히 대단한 내용은 없었기에 선택은 쉬웠다.

“어딜 가든 말단들한테는 건질 게 너무 없단 말이지.”

시현은 서성대며 내부를 뒤엎는 그들의 위치를 확인한 뒤 슬그머니 베란다로 나가 망설임 없이 난간에 발을 걸쳤다.

사락.

미세하게 소금기가 섞인 바람이 시현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시현은 이상할 정도로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을 본 뒤 고개를 내려 잠시 아래를 훑어보다가 두 명의 인기척이 겹치는 순간, 단번에 허공으로 뛰어내렸다.

휘익-

귀가를 스쳐 가는 바람 소리가 상쾌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해방감에 기분 좋은 소름이 심장에서부터 양 사지로 가파르게 뻗어 나가 온몸을 휘감았다.

그러나 감상은 찰나였다. 시현은 순식간에 표정을 굳히고 곧바로 몸을 돌려 준비해 온 암기들에 온 내공을 담은 뒤 한 지점을 향해 내던졌다.

순간 저들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그 또한 찰나였다.

스테인리스들이 감당하지 못해 우그러질 정도로 내공을 눌러 담은 암기가 유리를 부드럽게 통과하고 우수수 그들의 머리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장면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시현은 그 모든 장면을 보며 조금이나마 예전의 무위를 펼치게 된 자신의 모습에 깊이 숨을 몰아쉬곤 성취의 순간을 음미했다.

타악.

“하아, 스승님.”

시현은 떨어지면서도 시원하게 웃었다.

그리고 두 층 정도 떨어져 내렸을 때쯤, 제 손을 단단히 잡아챈 뒤 허공을 밟으며 이규민의 객실로 들어서는 수려한 얼굴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어, 왔어?”

“….”

고운 미간을 조금 좁히고 있던 태운은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은 없었다.

시현은 기특하게도 숙소까지 혼자 잘 찾아온 태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고 천장에 들어가 아직도 벌벌 떨고 있을 규민에게로 향했다.

***

“흐어어어… 형니임…. 저 죽, 죽는 줄 알고!!”

시현은 제게 바짝 달라붙어 눈물 콧물을 문대고 있는 이규민이 머리통을 연신 밀어 냈다.

그리고 팔뚝으로 느껴지는 축축함에 절로 찌그러지는 얼굴을 힘겹게 펴야만 했다.

“안 죽었잖습니까. 좀 뚝 그쳐 봐요.”

“형님!!! 너무 냉정해요오오오!!”

그러나 규민이 칭얼대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이제는 시현의 태도가 냉정하다며 더욱 달라붙어 왔다.

등치는 산만 한 게 자꾸 앵겨 들어와 시현이 이제 힘을 좀 써서 떨어뜨려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 규민의 뒷덜미가 하얀 손안에 틀어잡혔다.

그리고 아주 손쉽게 쩍 떨어져 나온 이규민은 덜렁 소파 위로 내던져져서 뒹굴 한 바퀴를 구른 뒤 푹신한 카펫 위로 안착했다.

“어, 엥?”

어리둥절하게 바닥에 앉아 있던 이규민은 저를 내던진 게 누군지 뒤늦게 인식하고는 여전히 훌쩍이긴 했지만, 얌전히 소파 위에 앉은 뒤 천천히 겪은 일을 대서사시처럼 풀어내기 시작했다.

시현은 또 시작인가 싶었지만 제가 막아 봤자 어차피 계속 이어질 걸 알았기에 말리지 않았다.

뭐,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를 듣기도 해야 했었고.

“사실 처음엔 잘 몰랐거든요… 근데 이 층에 올라와서 알았어요. 분명히 이 층 전체를 제가 체크인 해 둔 데라 저희 외엔 들어올 수 없는데 낯선 사람이 있잖아요. 으, 소름.”

“이 층을 다요?”

“네? 어… 당연하죠?”

처음 듣는 정보였다. 시현은 여전히 통이 큰 규민의 씀씀이에 작게 입을 벌렸다가 제 추태를 깨닫고 금세 다물었다.

그 뒤로는 원래 몰래 숨어든 기자인 줄 알고 내쫓으려고 했단다. 그러나 제가 가진 스킬 중 하나인 [생존본능]이 강하게 경고를 날리기 시작했고 눈치는 빨랐던 규민은 냅다 방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들어와 숨었다고 했다.

“판단력이… 참 대단하네요.”

“앗, 정말요? 헤헤. 형님이 칭찬을 해 주시니 또 몸 둘 바를 모르겠… 흠흠.”

시현은 참 숨는 재주 하나는 자신보다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일은 일. 시현은 손끝에 내기를 천천히 모으며 가감 없이 본론부터 꺼내 놨다.

“그리고, 우리도 습격받았어요.”

“예, 예? 형님도요? 아니 다치신 데는! 아, 없으시겠구나.”

“근데 습격자 중 한 사람이 제가 아는 사람이더라고요.”

규민은 이어지는 시현의 말에 평소의 태도를 거두고 조금 진지한 낯빛을 한 채 대화에 집중했다.

평소에도 낮은 톤의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그것과는 달랐다. 조금 더 진중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는 사태가 제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미리 알리고 있었다.

“그게…. 누군데요?”

“글로리 길드원이었어요. 이에 아는 게 있습니까?”

순간 넓은 방 안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시현은 그 잠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생각보다 인간은 몸으로 보내는 신호가 다양했고 그것은 대체로 무의식이 반영되어 진실한 경우가 많았다.

규민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고 앞으로 기울어져 있던 자세가 미묘하게 바로 세워졌다. 그리고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동공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난 규민 씨 의심하고 싶지 않아요. 무언가를 알고 있죠?”

평소와 달리 입을 어물대며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던 규민은 마치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듯 눈을 꾹 감고 입을 열었다.

“엊그제 소식을 들었어요. 글로리 길드원 절반이 실종됐다고요.”

“네?”

시현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소식에 미간을 좁혔다. 규민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지만, 마음을 먹은 건지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아무래도 저희 형 때문인 것 같아요….”

그제야 왜 규민이 먼저 이야길 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왜 계속 말하길 주저했는지 깨달았다.

몇 번 대화해 본 바로는 이규민은 형과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아… 어쨌든 입 밖으로 내뱉으니까 좀 살 것 같네요.”

규민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소파에 몸을 푹 묻으며 고개를 숙였다.

소식을 들은 건 정확히 이틀 전 밤이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뒤에도 꽤 오랫동안 강원도에 머물고 있었기에 슬슬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규민은 글로리 길드의 길드장인 김성빈 대장이 전하는 소식에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뒤 잠시 휴가 기간을 가진 동안 길드원의 절반이 연락 두절 됐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신이 길드를 관리하고 맹세코 처음 겪는 사태였다.

무언가 길드에 불만이 있어 그랬다면 한 명쯤이라도 무언가 거래하거나 조율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법도 한데 그것도 아니고 그들은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규민은 그때부터 잠도 자지 못하고 길드원들의 소식을 찾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때마침 제 형에게서 온 연락에 규민은 그들을 찾는 걸 늦춰야만 했다.

-게이트 들어갔다가 복귀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당장 서울로 올라오거라.

머리가 복잡했다.

사실 온갖 편법을 사용해서 입장했지만, 형이 모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아무 말 없다가 이제야 연락이 온 게 참 시기가 미묘했다.

아직 게이트 내에서 있었던 의문에 대해선 풀리지 않았고 하필 길드원들이 사라지고 있는 때에 호출이라니.

그때부터 그동안 모른 척 수면 아래로 묻어 두었던 형의 이상한 점들이 우후죽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늘 다정했던 형이 조금씩 냉정해진 건 이 큰 대기업을 이끌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관계가 소원해져도 저와 주연 대신 모든 일을 이끄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좋게 생각하려고 애썼던 규민이었다.

그러나 이걸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형은 무리하게 모든 일을 제 손안에서 굴리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저와 주연이를 배려한 걸 수도 있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저와 동생에게 주어진 일까지 빼앗아 간 것이었다.

‘그렇지만 겨우 기업을 차지하겠다고 이런 짓을? 어차피 말만 하면 우리는 다 넘겨줬을 텐데?’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그 수많은 추측도 형의 행동을 뒷받침하기엔 빈약했다.

그렇게 홀로 고민의 고민을 잇는 동안 결국 이번 일이 터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혹시 그 길드원은 어떻게.”

“아, 음… 그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순간 다시 한번 내부가 고요해졌다.

“그자는 진심으로 우리를 죽이기 위해 공격했다. 그런 자에게 자비는 사치다.”

그리고 이어지는 태운의 말에 규민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마음은 아팠지만, 자신도 그런 그를 왜 해쳤냐고 따질 바보는 아니었다.

과거 게이트 사태 이전의 세상이면 몰라도 지금은 스킬이나 손짓 하나에 사람이 쉽게 죽어 나는 세상이었다.

뭐가 됐든 죽일 기세로 먼저 공격했다면 그 행위의 책임은 오로지 본인에게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아, 그래도 속이 말이 아닐 텐데 일단 좀 쉬어요. 그리고 당장 서울로 가야겠네요.”

“예….”

“우린 일단 갈 준비 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유준이한테는 당분간 말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시현은 잠시 고민했지만, 아직 어린아이에겐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낯가림 심하고 수줍어하던 유준이 길드원들과는 꽤 가깝게 지내던 게 떠올랐다.

머지않아 이 상황에 대해 알게는 되겠지만 조금이나마 덜 충격받을 수 있게 천천히 알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도 주의는 줘야겠지.’

시현은 객실에 혼자 있을 유준에게로 가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실 자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을 아는 것 같다는 집을 박살 낸 놈들, 그리고 게이트에서 조우한 놈들, 이제는 대놓고 저와 태운이를 노리는 놈들과 그들이 격하게 반응했던 제 수중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돌멩이까지.

‘빌런 연합, 대체 너네 뭐 하는 놈들이냐.’

시현은 거칠게 머리를 한번 쓸어 올리고는 얼기설기 엮인 사건에 다시 한번 살을 붙여 줄 수 있을 만한 인물을 떠올렸다.

이규환이라고 그랬나. 당신은 제발 답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뒤를 얌전히 따라오는 태운의 손을 덥석 잡은 시현은 성큼성큼 제가 지내던 객실로 이동하며 착 가라앉은 눈으로 앞을 똑바로 응시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