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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48화 (48/146)

#48

시현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생각을 멈추고 제 옆에 얌전히 서 있는 태운에게 전음을 날렸다.

{좌측으로.}

그렇다면 직접 잡아서 불게 만드는 수밖에.

시현은 곧바로 오른쪽으로 쏘아져 나갔다가 허공을 밟고 단번에 방향을 꺾었다.

그러자 태운의 몸놀림도 마치 거울을 가져다 댄 것처럼 시현과 똑같이 움직이며 반대편에서 짓쳐들어오기 시작했다.

낯선 자들은 시현과 태운이 멍하니 서 있는 듯하다가 갑자기 사라져 옆에서 나타나자 기겁하곤 앞으로 튀어 나가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늦은 발버둥이었다.

단단한 몸통을 축으로 왼쪽 팔이 목표를 향해 빠르게 뻗어졌다. 그리고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다리가 다시 한번 내리그어졌다.

나름 내공의 부족함을 채우겠다고 익혔던 체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퍼억!

파각-

“크윽!!”

이들의 특기는 방어 쪽에 치중된 건지 공격을 피하는 건 아주 특출났다.

한 명은 공간을 일그러트리며 빠르게 움직여 공격을 피했고 한 명은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펼치며 공격을 막아섰다.

물론 단번에 죽이지 않겠다는 자비가 섞인 손속에 의한 마지막 발악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아래.}

그 순간 시현의 다리로 내기가 화르르 모여들더니 마치 불길처럼 정강이를 감쌌다.

시현은 그대로 몸을 비틀어 방어막을 직접 타격하지 않고 조금 떨어진 허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내기는 레이저처럼 뿜어져 나와 횡으로 늘어지며 두 명을 동시에 타격했다.

태운은 그에 맞춰 제 앞에서 이상하게 휙휙 움직여 대는 남자의 몸을 단번에 붙들어 바닥에 고정하고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퍼억!!

어느 때보다도 더욱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나란히 발목이 너덜거릴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둘이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 위로 엎어졌다.

상황 종료였다.

시현은 이번엔 실수하지 않도록 복면을 아예 벗겨 내지 않았다.

핏- 하는 소리와 함께 인상착의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복면 일부가 얇게 도려지듯 부분부분 잘려 나갔다.

“어? 당신은…. 아니 당신이 왜.”

그러나 잠시 후 자신만만하게 얼굴을 바라본 시현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죽여라.”

시현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친한 건 아니더라도 얼마 전까지 이자와 나름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대체, 당신이. 아니, 글로리 길드는 어떻게 하고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겁니까.”

얼마 전 신의 광산에서의 일은 처음 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든든한 유대감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물론 글로리 길드원 모두 순하고 착실했기에 시현의 맘에도 들기도 했고 말이다.

이 남자는 그때에도 조금 내성적이긴 했지만 틈틈이 물과 식량을 나눠 주며 간간이 대화도 했던 남자였다.

-진짜 시현 님과 태운 님이 도와주러 와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사실 몇 번이나 실종됐던 일도 있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무서웠거든요. 덕분에 이렇게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복귀하게 됐네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아직도 그때의 대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근데 날 모른다고?’

시현은 당황한 티를 애써 숨기며 눈썹을 꿈틀 들썩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묻지 않습니까. 왜 이딴 짓을 했냐고.”

절로 목소리가 잦아들고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제일 크게 관련되어 있던 이들을 떠올리며 차오르는 분노와 의심을 갈무리했다.

“죽여라. 거짓된 자들아.”

그때 무언가 번쩍였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분노에 차 말을 내뱉던 자의 손목 위로 붉은 선이 생겼다.

툭.

“끄으으으흑!”

“입을 잘 놀려야지.”

옆에 얌전히 서 있던 태운은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는 목소리로 당연하단 듯 경고를 날렸다.

시현 또한 단지 손을 반쯤 들어 올렸을 뿐 적극적으로 그를 말리지 않았다.

여태 저를 죽이러 온 살수들을 살려서 보낸 적도 없었기에 고작 손목이 날아간 정도는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는 범위였다.

물론 태운이가 이런 것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최대한 저지해야 하긴 해야 했지만 말이다.

시현은 날아간 한쪽 손목을 부여잡은 채 고통스러워하는 이의 혈을 쿡쿡 찍어 출혈을 멈추고 다시 심문하기 시작했다.

“지금 네가 나를 쫓는 이 일에 연관된 사람 중…. 이규민이 포함되어 있나?”

그리고 제일 먼저 튀어나온 질문은 역시나 이것이었다. 지금 연달아 터진 모든 일의 중심에 항상 이규민이 있었다.

저가 작은 친분 따위로 배신을 봐줄 만큼 무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을 조금이나마 준 사람이었기에 뒤통수를 맞기 전에 확실히 하고 싶었다.

“무슨 헛소리냐. 죽여라. 어차피 여기서 죽더라도 나의 이름은 이곳에 남아 평생을 살아가게 될 테니 크흐흐….”

시현은 뜬금없는 상대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나 속 시원하게 해답을 줄 수 있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당장 소혼심원술이라도 쓰고 싶었지만, 이 기술은 결국 이자를 죽여야 했기에 아무 정보도 빼내지 못한 현재 상태로는 아직 쓸 만한 기술은 아니었다.

그때 실성한 듯 입가를 길게 늘이며 웃어 대던 남자는 벌겋게 충혈된 눈을 올려 시현을 빤히 바라보고는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시현이 그것을 인지하고 그자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잘려 나가지 않은 반대쪽 손이 빠르게 시현에게로 뻗어 왔다.

물론 그래 봤자 시현이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범주의 몸놀림이었다. 찰나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게 무슨!’

순간 귓가로 맥박의 진동이 쇄도하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장기의 움직임까지 미세하게 느려지기 시작하자 등 쪽으로 축축하게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그러자 시현의 이상을 눈치챈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얌전히 서 있던 태운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섬섬옥수처럼 모난 데 없이 곧게 뻗은 하얀 손이 나타나 시현을 공격한 자의 목줄기를 단숨에 쥐어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손끝이 두부를 파고들듯 손쉽게 살점을 쑥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다.

“크학! 크르르륵.”

촤악-

태운의 손이 더러운 것을 내던지듯, 기도가 손상돼 피가 끓는 숨을 꼴깍대고 있는 몸뚱이를 땅에 내던졌다.

검고 붉은 구멍 다섯 개가 자리한 목에서 핏물이 줄줄 쏟아져 내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이 쓰레기가.”

섬세하게 연마해야만 만들어질 것 같은 아름다운 신검의 자태를 한 태운의 얼굴 위로 그린 듯한 위화감만을 풍기는 미소가 걸렸다.

저딴 허접한 놈이 팔다리가 죄다 뭉개져 죽기 직전까지도 스승님을 위협할 정도의 수를 숨겨 뒀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역시 예전처럼 뒷배고 뭐고 일단 다 죽여 놓고 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허억!”

정확히 시간으로 따지자면 30초가 채 안 되는 아주 짧은 찰나였다. 그러나 몸이 멈추다 못해 장기까지 움직임이 멎어 가는 듯한 현상은, 시현이 주박에서 풀려나자마자 깊게 숨을 토해 내도록 만들었다.

“스승님!”

“괜찮아. 후우, 조금 놀라서 그런 거니 걱정 마.”

“하지만….”

그리고 그 숨소리가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던 태운의 몸을 단숨에 붙잡았다.

시현은 득달같이 달려온 태운의 어깨를 살살 두드려 주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얼굴을 보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어째 스승으로서의 면이 서지 않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해지려고 했다.

‘쪽팔리게 우리 애 앞에서 날 망신 줘?’

처음엔 얼떨떨하던 심정이 점점 바뀌었다. 머리에 열이 오르고 심장이 요동쳤다.

시현은 팔뚝의 힘줄이 불거지도록 꽉 주먹을 말아 쥐었다가 이제 막 눈을 감으려고 하는 자의 멱살을 틀어쥐고 단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차피 죽을 목숨 가죽은 남겨야지. 이 새끼야.”

내공을 연마해 단전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몸에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천 지기가 있었다.

무림인들은 최후의 순간에 그 선천지기를 폭사시켜 최후의 항전을 한다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곧 시현의 손으로 내기가 모여들더니 곧바로 남자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크헉! 으으으윽!!”

그러자 거의 감겨 가던 눈이 번쩍 뜨이고 창백하게 죽어 가던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온몸의 핏줄이 툭툭 불거지며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하나, 이규민이 이 일에 관련이 되어 있는가. 둘, 그렇다면 원래부터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것인가. 셋, 너네 그 빌런 연합인가 그거냐? 아아, 대답하지 마. 죽는다.”

시현은 이 상황에서 느껴지는 기시감과 얼마 지나지 않아 떠오른 기억에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무언가를 중얼거리고선 제 몸을 희생해 알 수 없는 공격을 한다? 얼마 전에도 아주 비슷한 광경을 본 경험이 있었기에 물어볼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그륵…. 컥, 우리는 허억, 멈추지, 않는다.”

“말하지 말라니까. 그래도 뭐 목숨줄 하난 질기네.”

그때 태운이 한 발자국 내디뎌 시현 앞에 떨어져 있는 낯익은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커윽! 내, 내!”

그러자 선천 지기를 폭사시킨 대가로 혈맥이 터져 나가는 와중에도 질기게 버티던 남자가 마치 약점이라도 잡힌 듯 발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생의 마지막 화광 반조였는지 그는 결국 칠 공에서 피를 쏟아 내며 금세 절명하고 말았다.

“뭐야?”

“아, 아까 스승님에게서 이것을 빼앗으려 하더군요.”

태운은 어이없다는 듯 허탈한 목소리를 내뱉는 시현의 말에 얌전히 대답하고는 남자가 마지막까지도 사수하려고 했던 물건을 손가락 위로 몇 번 굴리다가 한층 더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도 이규민이 준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이규민은 주려고 하고 이자들은 뺏으려 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시현은 태운에게 건네받은 탁한 호박색을 띠는 보석을 눈앞까지 들어 올렸다.

[응집석(-) - 기운을 한계까지 빨아들였다가 단번에 뱉어내는 씨앗]

‘씨앗?’

전혀 씨앗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가늠해 보려 했지만 역시나 별다른 것 없는 내용물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곧 꼬리는 잡을 수 있겠지.”

시현은 뻐근한 어깨를 풀며 다시 한번 아직 따듯한 몸뚱이 앞에 자리를 잡고 머리에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는 ‘사술’을 펼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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