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제 거의 다 마무리가 되어 가는 상황에서 터진 갑작스러운 변고에 길드원들과 규민, 유준은 딱딱하게 얼어붙어 못 박힌 듯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은 동시에 일어났다.
어느 순간 사람의 살인가 싶은 살색 덩어리들이 점점 모여들며 검은색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운이 갑자기 검을 놓치며 얼굴을 잔뜩 찡그렸고, 몬스터가 대충 휘두른 주먹에 둔하게 바닥을 굴렀다.
태운은 그때부터 몬스터가 공격을 해 오는데도 멍하니 서서 제 손아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유준의 비명 같은 부름이 튀어나왔고 그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어, 어떡해…. 혀, 시현이 형. 어떡해!!!”
유준의 입가로 울음 섞인 절규가 튀어나왔다. 길드원들은 급하게 무기를 들어 올리며 다시 깨어난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짐 덩어리였다.
‘나, 나는…. 내가!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그들이 하라는 대로 사람을 죽였어야 했는데!’
왜 늘 무언가를 잃고 나서야 후회하는지 부모님을 사고로 잃었을 때도 꿈에서 깨어났을 때도 지금도 늘 후회뿐이었다. 유준은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너무 한심해.’
그때 그 주위로 푸른색 스파크가 틱틱 튀어 올랐다. 그리고 처음은 정전기처럼 작은 전류가 계속 이어지더니 순간 불꽃처럼 확 피어 나가 벼락같이 솟아올랐다가 낙뢰처럼 유준에게로 쏘아져 내려왔다.
[경고! 멈춰 있던 각성이 다시 시작됩니다.]
[…80%]
[…92%]
[…100% 히든슈터 개방]
여전히 유준의 주변을 맴돌며 강하게 튕기던 전류가 소용돌이치듯 모여들더니 유준의 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까맣게 반질거리던 눈동자가 점점 푸른빛으로 변하더니 눈 안으로 도트사이트의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완료]
유준은 제 눈앞을 어지럽히는 알림창을 다 밀어 버리고 옅은 푸른색으로 감싸진 양손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수십 마리의 검은 몬스터들을 보며 씩 웃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다음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하하….”
그 순간 앞으로 내밀어진 양손 안으로 일종의 머신건처럼 생긴 총기가 구현화되더니 전류 펄스를 받아들이며 푸른색 총탄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앳된 목소리의 광소가 공간을 채우며 흩어졌다.
그리고 푸른 궤적을 남기고 쏘아져 나간 총탄은 길드원들과 몬스터들이 섞여 있음에도 정확히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며 틀어박히고 있었다.
푸부부북-
순식간에 열댓 마리의 몬스터가 온몸이 벌집이 된 채 바닥에 엎어져 괴롭게 꿈틀거렸다.
“끄에에에엑!!”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길드원들과 하다못해 몬스터들까지 주춤거리며 멈춰 서자 유준은 괴롭게 숨을 헐떡이며 다시 까맣게 돌아온 고통스러운 눈을 부여잡았다.
“허억, 허억.”
눈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아주 잠시였지만 눈 안으로 들어오는 정보 또한 너무 과도해 머리마저도 어지럽게 쿵쿵 울리고 있었다.
‘더, 더 죽여야…. 하는데.’
이제야 무언가 공격할 수단이 생겼는데 자꾸만 흐려지는 정신이 도무지 붙잡히지 않았다.
결국 끝까지 버티려고 했던 손아귀의 총마저 흐릿하게 사라지자 유준은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동공 안이 잠시간 침묵으로 가득 찼다.
하나 아직은 전투 중임을 잊지 않은 김성빈은 제 옆에 있던 규민에게 신호를 주고 다시금 공격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정신 차려! 공격해!”
그러자 멈춰 있던 전황이 다시 한번 급박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유준의 활약 덕에 시작은 길드원들이 우세하게 끌어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10명과 팔다리가 잘려도 입으로라도 공격하려고 하는 수십 마리 괴물들의 싸움은 점점 반대로 기울어져 가는 듯했다.
스스슥.
그때 자세히 듣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은 날벌레의 날갯짓 같은, 아니면 얕게 고인 물이 찰랑이는 것 같기도 한 소음이었다.
그 소리는 미약했으나 순식간에 사방이 새까만 점으로 가득 차더니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렬한 소음을 내기 시작했다.
김성빈은 공격을 하다 말고 제 몸에서 아주, 아주 가까이 있는 검은 점들을 바라보며 딱딱하게 멈추어 섰다.
말이 점이라고 했지만 아주 작은 그것은 살아 있는 것처럼 뭉글뭉글 움직이며 생리적인 혐오감이 들게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 있는 어떤 무엇도 저 작은 점들에서 느껴지는 어둡고 위험한, 그리고 압도적인 기운을 상쇄시킬 수 없을 거란 강렬한 확신을 주고 있었다.
저절로 입이 마르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려 왔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모두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힘겹게 침을 삼키고 있었다.
“자연 검. 흑해.”
그때, 단 두 마디였지만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듯 거칠고 어두운 목소리가 연기처럼 낮게 깔렸다.
촤악.
팔 위로 솜털이 오소소 서고 닭살이 돋았다. 분명 제 눈앞에서 방금까지도 달려들려고 하고 있던 것들이 한 줌 핏물이 되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정말 너무나 현실감이 없는 광경에 검은 점들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췄음에도 누구도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찰랑.
아주 작은 물소리였다. 아마 사방으로 터져 번진 피가 어딘가에 고여 있다가 떨어진 것일 테다.
그때 괜히 통솔자의 자리에 있는 게 아니란 듯 작은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김성빈이 윽박지르듯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아! 정현아! 빨리 시현 님 힐!”
“네네!”
그러자 무리의 가장 뒤쪽에 있던 유일한 힐러인 김정현이 득달같이 시현과 태운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어느 일정 거리 안으로 발을 내밀려고 하자 아까 그 점들이 허공에서 스며 나오듯 나타나 태운과 시현의 주변을 감싸고 꿈틀대기 시작했다.
“저, 저!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 이것 좀! 어떻게 해 주세요!”
그러자 기절한 시현을 아득바득 끌어안고 있던 태운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텅 비어 있던 눈동자 안에 작게 빛이 들어오더니 주변에 깔린 기운이 마치 착각이란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김정현은 피눈물을 흘리더니 창백하게 질려서 붉은 눈동자를 번들대고 있는 연태운에게 벌벌 떨며 천천히 다가갔다.
연태운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당장이라도 제 목에 칼이라도 대고 있는 듯한 환상이 보이는 것 같았다.
‘후우, 후, 저 사람은 우리 편이다. 우리 편이다.’
김정현은 계속해서 자기 최면을 걸며 시현의 환부에 손을 가까이 대고 스킬을 쓰기 시작했다.
손에서 영롱한 초록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뼈와 붉은 속을 내보이고 있던 심각한 상처가 되감기라도 하듯 천천히 아물어 가기 시작했다.
태운은 그제야 제대로 숨을 내쉬었다. 시현의 새하얗게 질렸던 얼굴 위로 작게나마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대체 아까 그건 뭐였지?’
[에-에러. 간섭이--심-합니다-]
‘씨발, 쓸데없는 것.’
태운은 아까 제게 나타났던 변화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치솟아 오르려는 살기를 힘겹게 내리눌렀다.
제게 무력감이라는 말은 어렸을 때도 겪어 본 적 없어 알지도 못하는 감정이었다.
아무리 주변에서 지랄하고 손찌검해도, 필요 없다며 내버려도 딱히 살 의지가 없었을 뿐이었지 무력함을 느끼긴 않았다.
그러나 순식간에 제힘과 능력이 흔적 없이 사라졌을 때, 태운은 심연 같은 무력감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검 한 자루 들 수 없을 정도로 남은 힘은 미약했다. 그리고 하필 그 잠시간의 문제로 스승님을 다치게 했다. 태운은 이제 저 자신에게 살심마저 들고 있었다.
“태운…. 아. 괜찮아?”
그때 시현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태운은 무저갱으로 떨어져 내리는 정신을 단번에 건져 내 준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힘겹게 눈을 뜨고 있는 시현을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도르륵 흘려 냈다.
“스승님!! 왜, 왜!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하하. 명색이 내가 스승님인데 당연한 일을 한걸. 나 이제 괜찮아. 별로 아프지도 않았어.”
시현은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허옇게 뜬 입술을 길게 늘여 웃고는 이리저리 엉망이 된 태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니! 시현 님. 방금 진짜 과다 출혈로 큰일 날 뻔했다고요!’
정현은 자신이 치료를 시작하기 직전, 확 벌어져 당장이라도 내장을 쏟아 낼 것 같았던 환부를 기억했다. 근데 안 아팠다고?
진짜 큰일 날 뻔했으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도 엄청나게 불안정해 보이는 연태운을 보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너무 큰 상처라 치료를 하는 데에 탈진이 일 만큼 힘이 들었지만 당장 이 장소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다.
“흐으…. 스승님. 제발 그러지 마세요….”
태운이 계속해서 서럽게 흐느끼며 물기로 엉망이 된 얼굴을 시현의 목덜미에 묻었다. 시현은 어설프게 미소 지으며 작은 머리통을 끌어안고 슬금슬금 눈알을 굴렸다.
‘큰일 났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또 태운이에게 안 좋은 기억을 남기고 말았다. 여전히 손을 덜덜 떨면서 제 옷자락을 꾹 잡고 있는 걸로 보아하니 진짜 심각한 상태 같았다.
‘하아…. 나 다음에도 이럴 것 같은데 진짜 어떡하냐.’
사실 어떠한 생각을 거친 후에 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냥 태운이가 위험해 보였고 몸이 저절로 튀어 나갔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걸 어떻게 두고 보냐고….’
그때 곤란해하는 시현의 품에서 중얼거리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승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처음엔 그저 스승님과 평생을 함께하기 위해 욕심은 접어 두고 착한 아이로 남는 걸 택했다. 비록 힘들었지만 참을 만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제 결정이 잘못됐다는 듯 순식간에 곁을 떠났다.
그래서 다시 찾아냈을 땐 그러지 못하도록 죄책감을 심어 주면 될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스승님은 나약한 자신을 절대 혼자 두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나 그마저도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생각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그를 완전히 내 곁에 둘 수 있지?’
벼랑 끝으로 치닫기 시작한 생각은 멈출 줄 모르고 선을 넘어 번져 가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치명적인 무력감과 또 그가 다시 제 곁을 떠날 것 같다는 까만 불안감이 이리저리 뒤섞여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마치 심장이 뇌에라도 틀어박힌 듯 두개골 안이 뜨겁게 끓어오르고 쿵쿵대는 소음으로 어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