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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37화 (37/146)

#37

“유준아 방향 좀 잡아 줄래.”

“네! 저기 저쪽이에요!”

그리고 시현은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문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고 유준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향해 발을 옮겼다.

시현은 평범한 철검을 검집에서 뽑아내며 유준이 말한 벽 앞에 멈춰 섰다.

“물러서.”

순간 검신을 타고 검붉은 기운이 타고 오르는 것 같더니 곧 뚜렷한 모양을 한 채 고요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한 자나 길어진 듯한 형상의 검은 망설임 없이 돌벽을 그으며 떨어져 내렸다.

사악-

큰 소리는 없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이 몇 번 움직이고 벽은 커다란 돌조각으로 바뀌어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태운이 손을 조금 움직이자 조각들은 조용히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와.”

유준과 규민은 입을 떡 벌리고 마법 같은 상황을 보며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규민은 시현이 강하다는 건 알긴 했지만 직접적인 전투 현장을 본 것은 아니었고, 유준 또한 시현의 실력을 본 적이 없었다. 어찌 보면 둘 다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 얘기였다.

“가자.”

“어어. 가, 같이 가요!”

그러나 무언가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시현이 빠르게 발을 옮기자 규민과 유준은 번쩍 정신을 차리고는 시현에게 최대한 가까이 붙기 위해 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괜히 아까보다 더 마음이 놓이고 안정이 되는 것만 같았다.

***

벽을 뚫는 작업은 두어 번 정도 더 반복됐다. 생각보다 유준과 나침반의 상성이 좋은지 꽤나 자세하게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었는데 그 말대로라면 이제 이 벽 뒤에 길드원들이 있을 게 분명했다.

“이 앞이 최종 목적지라면 뭐가 있을지 몰라요. 바로 전투가 시작될 수도 있으니까 긴장하시고 태운이 뒤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세요.”

시현은 다시 한번 검을 들어 올리며 긴장감을 끌어 올렸다.

스각-

곧 돌이 잘리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리한 절삭음이 들려오더니 이전과 다름없이 부드럽게 돌덩이가 조각나 떨어져 내렸다.

그 앞으로 넓게 뚫린 통로가 보였다. 내부는 조용했지만 넓디넓은 공간의 끝에서 몇 개의 기척이 느껴졌다.

시현은 안으로 진입하기 전에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그 안을 빤히 바라봤다.

‘으음….’

그곳엔 마치 실에 걸린 인형이라도 되는 듯 몸을 흔들흔들 움직이며 사람들이 멍하니 서 있었다.

서 있는 이들의 눈은 흐릿했고 표정도 없어 작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괴해 보이는 광경이었다.

시현은 생각지 못한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가 그 옆, 기절한 채 아직 널브러져 있는 무리를 눈에 담았다.

그때 시현의 옆에 있던 태운이 먼저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어어! 태운 님!”

태운의 움직임은 소리 없이 조용히 이루어졌다. 규민과 유준은 매우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지만, 시현은 그의 행방을 세세하게 체크하는 중이었다.

곧 매끈하게 뻗은 손가락이 가볍게 모이더니 멍하니 서서 움직이고 있던 인간들 중 한 남자의 가슴과 목, 그리고 머리를 몇 번 연타했다.

“쿠헥!!”

남자는 힘없이 이리저리 치이더니 발끝이 땅에서 살짝 떨어질 정도로 공중에 떠올랐다가 검은 액체와 기체를 입과 코로 동시에 쏟아 내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그리고 남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연신 무언가를 토해 내는 동안 시현과 일행의 발걸음이 태운과 남자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도달했다.

규민은 이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멈칫하다가 바닥에 앉아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앞으로 급하게 뛰어 들어갔다.

“김성빈 대장!!”

“크흑… 규, 민 씨?”

김성빈 대장이라고 불리던 남자는 이제야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눈을 찡그리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괜찮습니까?”

“예….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시현은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그의 뇌로 향하는 혈맥이 이상한 검은 것으로 막혀 있는 걸 발견했다.

당연히 자신도 발견한 걸 태운이 모를 리가 없었고 기를 불어 넣으며 억지로 토해 내게 만든 것이었다.

물론 마냥 친절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한시가 급했기에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신들이 실종된 지 꽤 시간이 지났고 저희는 길드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다른 일행들은 어디 있습니까?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납니까?”

규민이 혼비백산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시현이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바닥에 여전히 주저앉아 아직도 눈앞이 흐릿한지 연신 눈을 비비고 있던 김성빈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윽…. 기억이…. 잠시만요. 그러니까 저희가. 큼! 사실 다른 미션이 더 있었는데….”

“…예? 저는 들은 게 없습니다. 분명 보고서에는 게이트 공략과 피치 못할 시 그냥 돌아오는 것, 그뿐이었습니다!”

“그 정화의 지팡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가져다 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순간 말소리가 멎어 들며 침묵이 깔렸다. 규민의 미간이 점점 찡그려졌다.

‘정화의 지팡이라면 형이 게이트 공략에 나섰다가 잃어버렸다고 했던 아이템이 아닌가?’

“형이 부탁한 겁니까…?”

“그…. 예 맞습니다. 게이트 공략에 들어서기 전날, 아이템 탐색기에 이번에 버프를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고 그걸 사용해서 아이템을 찾아 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아직 테스트제품이라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 달라는 말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당연히 규민 씨도 알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규민은 순간 혼란에 빠졌다. 따로 부탁이야 할 수는 있겠지만 이건 의도적으로 제게 숨긴 것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어떻게 됐는지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때 시현이 조금 얼굴을 굳히고 다시 한번 이야기를 이어 가길 부탁했다.

“아, 그래서 퀘스트를 따라가면서 아이템 탐색기를 돌렸는데요. 가는 길이길래 잠시 루트에서 빠져나와서 아이템을 찾으러 갔었습니다. 그런데 분명 아이템이 눈앞에 있었거든요? 근데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그리고 뒤에서 공격받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지금이고요…. 그래서 길드원들의 행방도 알 수 없습니다….”

작게 침음성이 흘렀다.

정리하자면 규민의 형이라는 사람의 부탁으로 그 위치에 갔다가 잡혀 왔단 뜻이 아닌가.

지나친 비약일 수 있었지만, 시현은 자라나기 시작한 의심의 싹을 잘라 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설마….”

“하하…. 그럴 리 없어요. 저희 형이 그럴 리가요. 게이트 내부를 쥐고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시현이 입을 열자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규민의 말이 치고 들어왔다.

목소리가 볼품없이 흔들리는 게, 굉장히 초조해 보였다. 시현은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가 한 건 아이템을 찾아다 달라고 한 것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그의 말대로 게이트를 맘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퀘스트가 뭐가 나올지, 지팡이가 정확히 어디 있을지 알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조금 있으면 전 세계계로 명성을 떨치며 돈을 쓸어 모으는 기업의 사장이 될 사람이었다.

글로리 길드가 나름 명성을 얻어 가고 있다지만 그건 국내 한정, 그것도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시기인 길드였다. 그건 그가 세세하게 신경 쓸 만한 길드가 아니란 뜻이었다.

그럼에도 시현은 완전히 의심을 거둘 순 없었다. 이 또한 시현이 오래도록 쌓아 온 습관이었기에.

그렇게 며칠간 만의 만남에서도 온전히 반가운 마음을 나눌 수 없었던 일행은 머뭇머뭇 이야기를 이어 가다 유준이 이 안에 일행들이 있다고 말을 해 오자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지하감옥처럼 군데군데 철창이 쳐져 있는 내부는 무척이나 넓어서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방해물이 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준의 컨트롤이 출중해서 방향을 찾는 건 무척이나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시현과 태운이 앞장서서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10명의 길드원을 다 모아서 흐느적거리는 인간들 옆 공터에 나란히 눕혀 놓을 수가 있었다.

“이들도 다 비슷한 상태인 것 같네. 하나하나 다 토해 내게 만들어야겠어.”

시현은 한숨을 푹 쉬고는 손목을 돌리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저벅.

그러나 발을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저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제 막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발걸음이었다.

시현은 그림자 속으로 급하게 몸을 숨기며 규민과 유준, 그리고 성빈에게 전음을 날렸다.

{옆에 있는 사람들처럼 기절한 척하세요.}

“cvdsalo. eeppaiw!!”

처음 들어 보는 이상한 언어였다. 어찌 들으면 동물의 울부짖음 같은 그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오더니 내공으로 안력을 높이지 않아도 보일 정도로 가시권에 들어서고 있었다.

‘뭐 하는 놈들이야 대체. [성안]’

[특정 아이템을 쓰고 있습니다. 등급이 부족해 정보를 읽어 낼 수 없습니다.]

[정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시현은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결국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비록 정보가 허술하게 나올지언정 아예 불발되는 때는 없었는데 처음 보는 알림에 시현은 더욱 경계심을 끌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회색의 로브를 입은 남자는 후드로 얼굴을 깊게 가리고 있어 알아볼 수 없었지만, 행동은 거침없었다. 아까는 무언가 화를 내는 것 같더니 이제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엎어져 있는 이들을 가리키며 지시하는 듯한 의미를 내비치고 있었다.

쿠웅. 쿠웅.

그리고 그의 뒤에 마치 살을 얼기설기 기워 놓은 듯한 역겹게 생긴 인간이 커다란 망치를 질질 끌면서 회색 로브의 남자 앞으로 걸어 나왔다.

“dkeejjlfl!!!”

그리고 시현이 알림창을 내린 순간.

누워 있던 사람의 몸 절반이 괴물 같은 남자의 거대한 망치 아래서 다진 고기처럼 짓뭉개졌다.

‘씨발.’

쿠웅! 쿠웅!

몇 번이나 망치가 단단한 지면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된 사람의 아래로 진득한 핏물과 살점이 강을 이루듯 어딘가로 줄줄 이어져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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