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저기는 뭐가 있는 거죠?”
“아! 그쪽은 아직 감정이 되지 않았거나 쓸모가 알려지지 않은 잡다한 것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
순간 시현의 갈색빛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이상한 느낌 때문에 본 거였는데 벌써 대박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감정이 안돼 쓸모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라고는 했지만 시현에게는 성안이 있었기에 그런 건 조금의 허들도 되지 못했다.
물론 스킬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시현은 이제 노다지로 보이는 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씩 웃었다.
물론 제일 먼저 본 장비의 아래 붙은 10억이라는 가격표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로.
“만지지는 않을 테니 저쪽으로 가서 잠시 구경하고 와도 될까요?”
“아, 그럼요! 편히 둘러보세요!!”
시현은 빙긋 웃으며 규민에게 허락을 구하고는 아까 뾰족하게 느낌이 쏘아져 왔던 곳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균일가 1억>
아주 작게 쓰여 있는 이름표였지만 시현은 그것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성안을 써서 제게 기운을 쏘아 보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오크의 가죽(F) - 질겨서 망토로 쓰면 적절할 것 같다. 주의, 지독한 냄새가 남.]
[□□□의 번개 복제품(C) - 정력에 좋다.]
[붉은 밧줄(F) - 내구도가 약하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지도를 밝히는 등불(D) - 아이템을 사용한 지역의 지리를 □□□으로 알려준다.]
그러나 몇 번을 둘러봐도 아까의 느낌은 다시 오지 않았고 온통 쓰레기 같은 것들만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대체 어딨는 거야….”
“스승님. 아마 이것 같습니다.”
그때 시현의 머리 위에 있는 장식장 안쪽으로 태운의 고운 손가락이 무언가를 가리켰다.
“어? 목걸이…?”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 얇은 가죽으로 만들어져 기하학적인 문양이 빼곡하게 새겨진 초커의 형태를 한 목걸이였다.
[봉인된 □□□□의 청갑(S)- □□□]
“이거다.”
비록 모양은 그랬지만 보호구의 성질을 띠고 있는 이름이었다. 게다가 S급이라니. 시현은 조금 희열에 찬 눈으로 그 개 목걸이 같은 걸 바라보다가 급하게 발을 놀려 규민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저쪽에 있는 거 하나 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 저기요…?”
“네!”
규민은 저런 쓸데없는 걸 왜 사나 하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에 달린 무언가를 조작해 판매자를 불러냈다.
그 후 결제는 순식간이었다.
규민의 말대로 헌터증 하나만으로도 1억의 지출은 쉽게 이루어졌고 조금 피 토하는 기분이긴 했지만, 만족스럽게 목걸이를 받아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1억은 제가 생각하는 예전의 가치와는 다르리라 최면을 걸면서 손에 들린 영수증을 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태운아. 자.”
“…저요?”
“응. 네 거야.”
그리고 조금 가슴을 펴고 턱 끝을 슬쩍 높이며 태운에게 그대로 목걸이를 넘겼다. 무척 뿌듯했다.
제가 생각해도 이 상황은 조금 멋있는 것 같았다. 시현이 고개를 돌리고 대충 손을 뻗어 건네주다가 슬금슬금 시선을 움직여 태운의 표정을 관찰했다.
‘하, 너무 예뻐. 내 새끼.’
태운은 하얀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서는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받아 들며 눈썹을 팔자로 살며시 밀어 올리고 미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시현은 그간 덜떨어지는 모습만 보이다가 이제야 스승다운 일을 한 것 같아 조금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스승님이 걸어 주세요.”
“음? 그럴까?”
시현은 생각지 못한 부탁에 조금 멈칫했다가 묘하게 근질한 손끝을 옷 위에 슥슥 문지르고는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태운의 뒤로 돌아가 목걸이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얇은 가죽이 피부 위에 닿고 체인이 걸리는 순간, 태운은 티 나지 않게 미간을 좁혔다 순식간에 풀어냈다.
‘하.’
그리고 가죽 안으로 맴돌고 있는 묘한 기운에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모른 척 다시 말간 얼굴을 하고 몸을 돌려 제 스승을 바라보았다.
“예뻐요?”
“어엉….”
시현은 손을 올린 채로 멍하니 미소 짓고 있는 얼굴을 보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우리 애는 뭘 걸어도 예뻤다. 얇은 가죽이 하얀 목 위로 착 달라붙어 있는 게 제가 준 목걸이가 뭔가 엄한 상상을 일으킬 만한 광경을 만드는 것 같아 조금 미안했지만 말이다.
‘아니, 하필 왜 모양이 저따위야.’
“일단 보호구 같아 보이니까 활용하는 방법은 천천히 알아보자.”
“너무 좋아요. 스승님.”
그러자 태운이 감격이라도 했는지 다짜고짜 시현은 꼭 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푹 묻었다.
시현은 맨살을 간질이는 호흡에 조금 당황하다가 작게 픽 웃고 덩치만 커다랗고 순해 빠진 제 제자의 등을 살살 토닥였다.
“그렇게 좋아?”
“예, 무척이요.”
“나, 나도 좋네. 흠흠.”
시현은 아직도 들떠 있는 듯한 태운의 목소리에 괜히 시선을 굴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다 규민과 유준, 그 외에 모든 이들이 저와 태운을 바라보고 있는 걸 깨닫고 뭔가 조금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오바스러웠나…?
열심히 태운의 등짝을 두들기던 손이 덜컥 멈췄다. 시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태운이를 놓아주고 뚜벅뚜벅 걸어서 이규민에게 향했다.
그러자 모여 있던 시선이 마치 짠 것처럼 우르르 떨어졌다.
“크흠. 그 저기 이제 물건도 샀겠다. 이만 가 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에?! 그, 그럼요! 변경 사항 있거나 중요한 사항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규민은 시현에게 꽤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는 태운에게 더욱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볼 때마다 무서워서, 뭘 어떻게 할 생각 따윈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
뻥 뚫린 고속 도로를 7인용 SUV가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강원도를 가는 길이 이렇게 한적할 리가 없었겠지만, 강원도에 신의 광산이 생기고는 확연하게 통행량이 줄었기에 일행들은 막힘없이 빠르게 목표 장소로 향할 수가 있었다.
“자, 일단 아까 설명해 드렸던 대로 최소 파티 인원을 채워야 해서 옆에 있는 이 친구가 태운 님 대신 통행할 거고요! 형님과 유준이는 가져오신 헌터증을 인증하면 됩니다!”
조수석에 앉은 이규민이 운전을 하고 있는 이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주의 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그리고 진짜 잘 숨어서 들어오실 수 있는 거 맞으시죠?”
그리고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태운에게는 눈도 못 돌리고 시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시현은 규민의 걱정을 이해했다. 그가 태운의 실력을 본 것도 아니었고 그저 시현의 말만 믿고 데리고 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곧 강원도 신의 광산 지역권으로 들어섭니다. 그때부터 차 번호와 차종, 그걸 타고 있는 출입자들의 정보를 전방위로 수집해요. 저희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사방에 ‘감시자의 눈’ 수십 개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고 들었어요.”
“괜찮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시현은 모자와 마스크로 꽁꽁 싸맨 채 유난히 심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규민에게 평온하게 답하곤 안력을 돋워서 앞 유리 너머로 보이는 눈알 모양의 기계들을 흘낏 쳐다봤다.
[□□□의 눈(A)- 눈알이 수집하는 정보가□□ 로 실시간 전송된다.]
그리고 성안을 쓰자 이규민이 말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내용이 반투명한 창 위에 적혀 나왔다.
현재 A급 이상의 헌터는 없었고, A급이라 해도 은신에 특화된 이가 아니라면 저 수십 개의 눈을 피해 가긴 힘들어 보였다.
‘물론 태운이는 걱정 없겠지만….’
시현은 자기 눈에도 조금은 흐릿하게 보이는 눈알들을 바라보다가 얼마 전에 봤던 연태운의 능력을 떠올리며 고개를 잘게 내저었다.
그 거래소에서 목걸이를 사 온 날, 시현은 드디어 갱신된 태운의 정보창을 확인하며 말도 안 되는 결과물에 몇 번이고 스킬을 사용하며 제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연태운 [□□□□(SS)]
칭호 [어둠에서 태어난□□, □□□인 □□]
체력-□□
근력-□□
민첩-□□
지력-□□
내공-□□
운-□□
=□□□(-)
‘SS라니…. 그게 가능한 건가?’
애초에 이 상태창이라는 건 무척이나 불친절했고 그저 능력을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역할뿐이었기에 저 수치들이 강함의 기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저 정도의 압도적인 등급이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시현은 태운이가 원래도 겨룰 이 없이 강하다는 건 알았지만 무림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는 어찌 될지 몰랐기에 사실은 조금 걱정이 되곤 했었다.
그러나 그 조금의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제 진입합니다!”
그때 이규민이 내비게이션을 보고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는 바로 고개를 돌리고 뒷좌석을 보더니 연신 고개를 휘휘 돌리다가 입을 헤 벌렸다.
“와…. 지금 태운 님 여기 계신 거 맞죠…?”
시현은 조금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는 손가락으로 차 안쪽 어두운 부분을 가리켰다.
“저기 있어요.”
“…저 나름 어쌔신인데 두 분 앞에 있으면 너무 작아지는 기분이에요….”
그리고 조금 푸념하는 듯한 목소리가 돌아왔지만, 눈빛은 점점 밝아지는 게 태운의 실력을 얼핏 확인하고는 조금의 불안감도 다 날려 버린 것 같았다.
그 이후의 출입 절차는 설명을 들었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무척 순조롭게 흘러갔다.
입구를 통과했음에도 크게 긴장을 하고 있는 규민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시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일행들의 뒤에 서서 천천히 발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4구역의 출발 지점에 있을 거예요. 당황하지 마시고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그리고 만약 한 시간을 기다려도 모이지 못한다면 그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유준이가 먼저 움직여서 우리를 찾을 겁니다.”
세 개의 구역이 클리어됐고 마정석을 습득하기 위해 몇 번이나 들락날락하던 장소였지만 그래도 최초의 게이트 중 하나인 곳이니 방심할 순 없었다.
이규민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고 열심히 주의 사항에 대해 다시 한번 체크를 하는 중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가능하면 안에 있는 것들에게 외부인인 사실을 들키지 마세요. 혹시 모를 불안한 요소들은 최대한 배제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클리어가 아닌 구출과 귀환이라는 거 잊지 마시고요.”
유준 또한 그를 만나자마자 건네받았던 이상하게 생긴 나침반을 손에 꾹 쥐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중이었다.
‘시현이 형이 일부러 기회를 준 건데 실망시키면 안 돼. 제발….’
그리고 시현을 한번 봤다가 지금 눈에는 안 보이지만 근처에 있을 무서운 남자를 떠올리며 조금 울상을 지었다.
‘스승님이 하는 것을 방해하지 마라.’
아까 전 머릿속으로 들렸던 음성이었다. 아무런 감정 없이 기계처럼 울리는 게 조금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유준이 벌써 목덜미를 촉촉하게 만드는 식은땀을 쓱 훔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초조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이따가 뵙죠!”
그리고 규민의 신호와 함께 5명의 발이 동시에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