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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29화 (29/146)

#29

“형! 벌써 세 번째야. 대체 왜 안 된다는 건데!”

“…규민아. 우리는 세계적인 기업이야. 한마디로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수도 없이 많다는 뜻이지. 근데 거의 사망일 거라고 확정된 그들을 구하러 그 안에 사람을 또 파견하자고? 그건 안 돼.”

“하지만 신호기는….”

“보고된 신호기 고장률 30%. 정말 장담할 수 있어?”

규민은 채도 낮고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가득한 사무실 정 가운데에 서서 이규환에게 간절히 읍소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규환의 단호한 거절도 일리가 있는 내용이라 규민은 더 말을 길게 이을 수 없었다.

최근 규민이 직접 챙겨 왔던 LK 산하 글로리 길드의 헌터들이 신의 광산에 들어가서 행방불명이 되고 있었다. 벌써 이번까지 더하면 총 세 번째였다.

제가 아무리 형에게 경영을 다 몰아주고 여유 있게 지내고 있다지만 이 길드는 헌터들도 직접 발로 뛰어 캐스팅 해 오던 애착을 두고 있는 곳이었다.

헌터들이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산다지만 이제는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형은 모든 파티원들을 데리고 무사히 돌아왔었잖아. 방법을 알려 줘.”

탁-

그때 두꺼운 서류를 연신 검토하며 펜을 빠르게 놀리던 규환이 탁 하는 소리가 나도록 펜을 내려놓고 시선을 올려 규민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들어가기라도 하려고?”

“안 될 건 뭔데. 나도 나름 B급 헌터야.”

“안 돼.”

“형!”

그러나 어김없이 단호하게 터져 나온 거절의 말에 규민은 이제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을 한 채 테이블에 몸을 기울이고 딱딱하게 굳어 있는 제 형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알잖아. 요번에 들어간 팀. 내가 다 하나하나 모은 거야.”

“…하아.”

규환은 이미 마음을 먹은 듯 굳은 의지를 내비치는 규민에게 작게 한숨을 쉬곤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좋아. 다른 사람 보내는 건 눈감아 줄게. 대신 네가 들어가는 건 아직 안 돼.”

“왜…! 아니, 알겠어.”

규민은 득달같이 반박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낯을 내비쳤다. 형이 한발 양보해 준 것이라면 여기서 멈춰야 했다.

규환은 최근 들어서 평소엔 온화한 듯하다가도 가끔 알 수 없는 부분에서 기계같이 차가운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규민은 그럴 때마다 제 형이 너무 낯설었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늘 바쁘던 부모님을 대신해 여동생과 자신을 돌봐 준 게 이규환이었다. 결국 형이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면 규민은 그대로 따라야만 했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형.”

규민은 다시 시선을 내려 일에 집중하고 있는 규환에게 인사를 남기고 조금은 어둑한 그 방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제 형이 자신도 처음 보는 알 수 없는 눈으로 뚫어지게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곧바로 떠오르는 인물에게 연락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자! 그래서 형님께 글로리 길드원들 구출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흐음…. 구출이라. 사람만 구출해서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요…. 게이트는요?”

시현은 카페에 앉아 마주 보고 있는 규민에게 더욱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다.

맨 처음엔 태운이에게 밥을 다 먹이기도 전에 걸려 온 전화가 달갑지 않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의뢰금에 시현은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아, 일단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선수금은 3억이구요. 완료했을 시에 추가로 10억, 총 13억입니다.”

제 인생에서 구경조차 못 하리라 생각했던 돈의 단위였다.

솔직히 습격자들을 잡아내 복구 비용을 뜯어내겠다 결심하긴 했지만 그게 진짜로 가능할지 확실하지 않았기에, 규민의 제안은 복잡해지던 시현의 머리를 확 맑아지게 했다.

“목표는 게이트 처리가 아닌 구출로 총 10인의 인물이 게이트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다들 죽었다고는 하지만 분명 그들이 남기고 간 신호기는 사망자 없이 다 살아 있다고 알리고 있어요. 분명 어딘가에 계류되어 있다든가 곤란한 상황에 부딪혀 있을 게 분명해요.”

“그건 확실한 겁니까? 그 신호기라는 거?”

그때 시현의 옆에 있던 무섭도록 잘생긴 남자가 나지막하게 깔린 목소리로 질문을 던져 왔다.

말 그대로 진짜 무서웠다. 순간 하늘을 향해 솟아 있던 규민의 입꼬리가 슬쩍 흔들렸다.

규민은 카페에 들어서며 시현의 손을 반갑게 맞잡고 흔들다가 그가 시현의 뒤에서 눈을 시퍼렇게 빛내고 ‘놔.’라고 하는 걸 분명히 봤다.

그리고 곧 알 수 없는 기운이 제 목을 서늘하게 만드는 걸 느꼈고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두려움에 거의 손을 뿌리치듯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예. 한두 개가 문제가 되는 거면 몰라도 이렇게 열 개가 다 멀쩡한 건 분명 살아 있다는 신호일 게 분명합니다.”

“흐음….”

시현이 말을 더 이으라는 듯 작게 고개를 까딱이며 규민을 바라봤다. 그러자 규민은 잠시 들던 잡생각을 빨리 흩어 내고 집중하며 현재 상태에 대한 리포팅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형님이 잘 모른다는 전제하에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저희가 진입할 곳은 신의 광산. 강원도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의 광산 4구역. 헌터들이 진입할 경우 퀘스트가 주어지는 스토리형 던전이었다.

신의 광산들은 각각의 스타일이 무척 달랐는데 마석의 토출량이 많은 곳이 있는가 하면 강원도 던전처럼 아이템 위주로 발견이 되는 곳도 있었다.

여기서 시현은 던전이 주는 퀘스트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헌터들을 데리고 입구로 되돌아오는 역할이었다.

“상황이 어렵다면 전투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생사가 확인된다면 저희 내부에서 지원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제가 특이 사항이 생길 때를 대비한 행동 수칙을 정리해 둘 테니 광산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피드백하겠습니다!”

시현은 약간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규민을 바라봤다.

세계적인 기업의 아들이고, 뭐 나름 맡고 있는 길드도 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지금까지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진지하게 상황 설명을 하는 모습을 보자 이제야 좀 그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는 시현 님이 C급이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제가 본 게 있는데요. 분명 기계가 망가졌거나 오류가 난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신의 광산에 들어가려면 B급 이상의 헌터가 하나 이상 필요하거든요. 그건 제가 자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자신까지 챙겨서 데리고 다녀 달란 얘기군.’

시현은 짧게 이어진 규민의 설명을 듣다가 시선을 돌려 태운을 흘긋댔다. 그러자 시선을 내리고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얌전히 앉아 있던 태운이 고개를 돌려 마주 보며 미소를 지어 왔다.

“좋아요. 혹시 규민 씨 말고 데려가야 할 사람이 더 있습니까?”

“아니요. 아직….”

“그럼 제가 몇 명 더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그, 그럼요!! 형님 지인이시라면 저야 완전 환영입니다!”

시현은 점점 밝아지는 규민의 얼굴을 보며 바로 핸드폰을 들어 올려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간 신호음이 지나가고 달칵 소리와 함께 아주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유준아. 형이야.”

-어!!! 형, 무슨 일이세요?

“뭐 좀 말할 게 있어서. 혹시 지금 나올 수 있니?”

-그럼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응 장소는 내가 톡으로 보내 줄게.”

시현은 씁쓸한 표정을 하며 어떻게 일을 해 나가야 할까, 게이트는 들어가 볼 수나 있을까 고민하던 유준을 떠올리고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자존심이 상해서 힘들다는 걸 티 내지 않고 그 시기를 버텼었지만, 사실은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렇기에 시현은 예전의 제 처지와 자꾸 겹쳐 보이던 그 아이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뭐 크게 전투하는 것도 아니었고 태운이도 있겠다 어린아이 한 명 정도야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겠지.’

곧 통화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시현은 군더더기 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규민에게 말을 꺼냈다.

“추가할 인원은 총 두 명. 내 옆에 이 애랑 이따가 올 아이 하나입니다. 괜찮을까요?”

“아, 음…. 혹시 헌터증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아, 이쪽 친구는 아직 없습니다. 이후에 올 친구는 있고요.”

잠시 이규민은 고민하는 듯싶더니 시현의 실력을 믿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해 왔다. 그리고 추가 인원에 대한 주의 사항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현 헌터법상 헌터증이 없으면 게이트에 들어갈 수 없어요. 옆에 분을 데리고 가시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할 거고요. 추가로 오신다는 분도 D급 이하라면 출입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따로 있다는 말에 조금 긴장했던 시현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태운이야 기척과 기운까지 숨기는 데에 중원에서도 따라올 사람이 없었고, 유준이도 저와 같은 C급이었다. 둘 다 커버할 수 있는 범위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없겠네요! 그리고 나머지 분들에게도 많지는 않지만, 최저 수당은 맞춰서 드리겠습니다. 고용하려면 당연한 부분이니까요.”

시현은 이제 규민에 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착하긴 하지만 시끄러워서 부담스러운 사람에서, 조금 시끄럽지만 무척 믿을 만한 사람으로.

그렇게 어느 정도 게이트에 출입할 인원이 정해지자 가만히 있는 게 고문이라는 듯 꿈틀대던 규민이 슬슬 눈치를 보다가 태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그, 성함이….”

“아, 이쪽은 연태운이에요.”

“예 태운 님도 제 일을 도와주신다니 먼저 감사합니다.”

그러나 태운은 빤히 그 손을 바라보다가 고개만 작게 까딱이고는 다른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규민은 불만스러울 만도 했지만, 불만이 생기기도 전에 저를 누르는 위압감이 느껴져, 어색하게 손을 내려 버렸다. 괜히 등 뒤로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그때 웃으며 그 모습을 보던 시현이 작게 미간을 찌푸리고 태운에게 전음을 하기 시작했다.

{태운아. 그럴 땐 손을 마주 잡고 인사를 해야지.}

{… 다음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잦아든 음성이 되돌아왔다. 시현은 태운의 대답을 들으며 다시 한번 제가 볼 영상들을 떠올렸다.

<금쪽같은 우리 아이 바르게 교육하기>라는 이름이 붙은 재생목록이었다.

최근 시현이 가장 많이 보고 배우고 있는 콘텐츠였는데 무척이나 감명 깊은 그런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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