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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25화 (25/146)

#25

“시현 님!!!”

하아.

그러나 시현은 제게 모이는 몇 개의 시선에 멈칫하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사청린을 바라봤다.

그러자 사청린 말고도 두 명의 인원이 마치 무림인이라도 되는 듯 그 시대의 복장을 하고 다가와 포권을 하며 인사를 해 왔다.

“예에…. 안녕하세요.”

“하하하!!! 전 또 대협께서 모른 척하고 가시려고 하는 줄 알고 걱정했잖습니까!!”

사청린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시현의 어깨를 퍽퍽 내리쳤다. 고작 이 정도 힘에 휘청댈 시현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힘에 밀리는 척을 하며 용건부터 말하라는 눈빛을 쏘아 댔다.

“아참! 대협! 혹시 정해진 길드가 없다면 저희 길드로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예?”

씨발, 무슨 소리세요. 지금 조용히 도망가려고 했던 거 안 보이십니까.

시현은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내리누르며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근데 제가 왜 대협입니까. 편하게 부르시죠.”

“허어!! 제 은인 아니십니까? 은인!! 사형,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저희 길드에서 얼마나 은인께 극진히 대하는지 말입니다!”

시현은 분명 몇십 년을 평범하게 살다가 겨우 능력자가 된 지 3년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과몰입하는지 마치 진짜 정파인들이라도 된 양 구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맞습니다! 저희 백화길드는 협과 의를 중시하고 은원을 잊지 않으며….”

{스승님. 불편하시면 제가 손을 쓸까요? 사혈을 짚으면 조용히….}

“잠시만요!”

“예?”

시현은 갑자기 들려온 태운의 전음에 급하게 사형이라는 사람의 말을 잘라 내고 갈 생각도 없었지만, 규민이 한 달 전에 얘기했던 걸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 이미 제의받은 곳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은인은 은인!! 언제 한번 저희 길드에 들러 주십시오!”

사청린은 시현의 거절에도 굴하지 않고 활달하게 대답하더니 작게 볼을 붉히고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제 후드 티의 끝이 살짝 잡아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시현은 재빨리 인사를 하곤 몸을 휙 돌려 강당 밖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제자는 조금 힘든 일을 겪고 나서 그런가 관심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았다.

시현은 어제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잠이 든 태운이 몰래 정주행했던 미튜브의 아이 행동 교정 전문가의 설명 영상을 떠올렸다.

-보통 이런 걸 불안정 애착이라고 부릅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생긴 PTSD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입맛이 무척 씁쓸해져 왔다. 모든 건 다 태운이를 위해 한 것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이렇게….

아무래도 빨리 집에 가서 보던 영상의 다음 화를 확인하고 솔루션까지 정독해야 할 것 같았다.

{태운아, 내가 앞장설 테니까 빨리 집으로 가자}

{좋아요, 빨리 가요. 우리 집.}

시현은 곧바로 머릿속에 들려오는 순한 목소리에 흐뭇하게 웃고는 다리로 진기를 흘려 단단한 아스팔트를 짓밟고 튀어 올랐다.

그러나 잠시 후.

“이, 씨발…. 이게 대체.”

집에 도착한 시현은 방금까지 세웠던 계획을 깡그리 잊고 반파된 채 탄내를 뿌리고 있는 집 상태를 보며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태운의 앞에서 절대 욕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겠지만, 시현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상태였다.

건물 주변에는 부분부분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언제 일이 일어났는진 모르겠지만 아직도 몇몇 사람들이 건물을 둘러싸고 수군대는 중이었다.

시현은 콘크리트의 잔해들을 헤치고 머뭇머뭇 현장 가까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부산스러운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멍하니 베란다가 통째로 뜯겨 나간 가장 심각한 상태의 자신의 7층 집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 704호 학생!!! 아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그때 쨍한 집주인의 목소리가 귓가로 틀어박혔다. 시현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맞췄다.

그러자 마치 야차라도 된 듯 콧김을 뿜으며 분노하는 모습에 시현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방 안에 있는 서랍 하나가 떠올랐다. 너무 당황해서 순간 잊어버린 것이었다.

시현은 옆에서 호통을 치고 있는 집주인을 무시하고 남들이 보든 말든 경공을 쓰며 외벽을 단번에 타고 올라가 거멓게 타 버린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쾅.

그리고 박살 나 버린 집기들을 사정없이 옆으로 던지며 침실이 있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사고는 거실에서 일어난 건지 침실의 벽은 비교적 멀쩡해 보였으나 삼분지 일만 남아 덜렁거리고 있는 문짝을 보자 점점 불길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시현은 점점 떨려 가는 손을 들어 올려 잔해를 밀어 내고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방 안은 반쯤 타 버린 침구들과 금이 간 벽, 그리고 마치 녹아내린 것처럼 망가져 있는 서랍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안 돼.”

그리고 그 아래. 분명 서랍 맨 위 칸에 고이 모셔져 있어야 했던 사진이 바닥에 잿가루들과 엉겨 떨어져 있었다.

시현은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가 반쯤 남은 종이 쪼가리를 들어 올렸다.

목구멍에 불덩이라도 틀어막힌 듯 홧홧하고 눈앞이 뜨거워졌다.

시현이 7살이 됐을 무렵, 부모님과 타고 가던 차를 음주운전 차가 들이박았고 앞자리에 있던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게다가 두 분 다 친인척도 없었기에 시현은 그때부터 혼자 쫓기듯 살아와야 했다.

그걸 유일하게 버티게 해 준 게, 이 사진 한 장과 어렸을 때 살던 이층집에 대한 추억뿐이었다.

그러나 제게 유일하게 남은 부모님과의 사진은 크게 망가져 제대로 사람을 확인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햇빛에 바래 버리면 어떡하나 생각은 했지만 결단코 이딴 유형의 사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허억, 헉!! 아니, 학생 헌터였어요?!”

그때 금속이라도 부닥트리는 것처럼 쨍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시현의 귓가로 들이닥쳐 왔다.

시현은 손에 쥔 쪼가리를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은 뒤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원래도 조금 낮았던 목소리가 저 아래까지 뚝 떨어져 음울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계단을 뛰어 올라와 힘겹게 숨을 몰아쉬던 집주인이 미심쩍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이 터진 건 공교롭게도 시현이 게이트를 나왔던 어제였다.

자정이 가까워져 가던 시간, 쾅 하는 큰 소리와 함께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맨 위층에 살던 집주인은 자다가 튀어나와서 시현의 집에서 일어난 전투를 목격했다.

도시에서의 전투가 흔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기에 집주인은 한숨을 쉬며 헌터 협회 민원과에 신고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이 뉴스나 인터넷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전투가 심하게 격화됐고 잠시 후엔 시현의 집을 넘어서 아파트 전체에 금이 가고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전투와 피해가 시현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뜻이었다.

집주인은 설명을 마치고 보상과 보험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으며 시현을 닦달하고 있었지만 지금 시현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

그리고 웬만하면 외부의 일에 관심 끄자, 조용히 살자 했던 시현의 신경 줄에 작은 불씨가 달라붙었다.

그동안 문득 치솟는 상실감과 소외감, 그리고 흔들리는 멘탈을 다잡기 위해 주변을 철저히 외면하며 아슬아슬하게 버텨 왔다. 그러나 이제 책임질 아이도 생겼고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당하며 지낼 순 없었다.

“이제 보니까 학생도 헌터님이신 것 같은데!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이거 다 어떡할 거에요!”

“…도망 안 갑니다. 일단 먼저 들어가 계세요….”

시현이 쏟아질 것 같은 분노를 꾹꾹 눌러 담으며 힘겹게 말하자 집주인이 잠시 눈치를 보더니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머릿속으로 분노와 황당함, 슬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뒤섞여 휘몰아쳤다. 가스 폭발 사고 따위도 아니고 전투에 의한 거라니.

‘씨발…. 그래 잘됐어.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가 너네들 다 찾아내서 찢어 죽여 줄게.’

어쨌든 시현도 무림에서 10년을 지낸, 그리고 별호까지 꽤 유명했던 마인이었다. 참는 것도 선이 있었고 이건 시현의 선을 단번에 넘어 버리는 사건이었다.

사방으로 기운이 폭사하며 검은 재들이 휘날리고 뿜어져 나온 살기가 주변 공기를 짓눌렀다.

“스승님….”

그때 기를 갈무리하지 못해 일반인이었다면 손만 닿아도 살이 찢겼을 정도로 기운이 휘몰아치는 공간으로 태운이 파고들어 와 옆에서 시현을 틈 없이 감싸 왔다.

그제야 시현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몇 번이고 심호흡하며 한참을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애썼다.

괜찮아야 했다. 그래야 빨리 이 새끼들을 잡아내서 죽이든지 할 수 있을 것이고 흥분해 봤자 일만 느려질 게 분명했다.

곧 시현은 제가 책임져야 할 아이의 팔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차갑게 내려앉은 눈빛이 따듯한 갈색 눈동자 안으로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하아…. 어떡하냐. 집이 이래서.”

“저는 스승님만 계시면 어디든 좋습니다. 오랜만에 노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시현은 나긋하게 들려오는 태운의 목소리에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픽 웃음을 내뱉었다.

제 머리통에 닿는 태운의 이마가 조금 부빗거리는 게 느껴졌다. 사실 태운이도 지금 아주 혼란스러울 상황일 텐데 자세히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위로부터 해 오는 게 참 고맙고 기특했다.

“노숙이라니. 여기는 조금만 가도 숙박 시설이 많아. 잠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거야.”

“예. 어디든지요. 스승님,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들을 찾아내서 편히 죽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그건, 아니, 그래 그러자.”

시현은 태운의 조금 격한 말에 잠시 머뭇댔지만, 이 애가 손속을 잔인하게 휘두르려고 하면 그때 적당히 막아야겠다, 생각하며 태운의 눈치를 슬쩍 보고 머리통을 슬슬 쓰다듬었다.

제가 손을 썼으면 썼지 아무리 그래도 이 애한테 손을 쓰게 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사진도 사진이지만 처음 보여 주는 집 안 꼴이 이 모양이라니 스승으로서의 자존심에도 금이 가는 것 같았다.

그러자 태운은 집 안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오로지 시현만을 바라보며 루비 같은 눈동자가 안 보일 정도로 활짝 미소를 지었다.

‘윽…’

시현은 그동안 꼴뚜기처럼 생긴 놈들만 보느라 썩은 눈이 다시 한번 정화되는 걸 느끼며 하얗게 빛나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나 곧 제 추태를 인식하곤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집 밖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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