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일반인이 보면 당장이라도 기절할 만한 기괴한 광경에 시현은 빠르게 한 발짝 멀어지며 주변을 빠르게 탐지하기 시작했다.
‘언제지? 언제 환술에 걸린 거지? 원래 학생들은 어디 있지?’
기감이 널리 퍼져 나가자 급격하게 위기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현은 점점 발을 떼는 일행의 탈을 쓴 무언가들을 바라보며 경공을 써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방향을 잡고 자시고 일단 저것들과 떨어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처음의 느꼈던 살기를 생각한다면 저 많은 이들을 한 번에 감당할 수 없을 게 분명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허억 허억….”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작은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고 흙먼지가 작게 일 정도로 급하게 달리던 시현은 주변에 기척이 사라지자 천천히 지면에 발을 붙였다.
그리고 목덜미를 적시는 식은땀을 닦아 내며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안개라도 풀어야 해.”
일행들은 진작 다 흩어진 것 같았고 저 또한 이미 환술에 걸린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다행히도 이 진법이 원래와 같다면 자신은 생문으로 향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 특정 물건만 찾는다면 제대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시현은 학생들의 수준으로 이곳을 탈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은 게이트 안이었으니 먼저 가서 제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게 이 일을 정리하는 가장 빠른 길일 것 같았다.
즈즈즈즉.
그때 고장이 난 라디오 주파수 같은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시현의 귀로도 작게 들릴 정도면 꽤나 거리가 있는 곳에서 들려오는 것일 게 분명했다.
시현은 곧바로 귀에 내력을 집중했고 점점 커지는 소리에 얼굴을 잔뜩 찌그러트렸다.
-그륵… 그르르륵
“좆같네 진짜….”
시현은 쉴 새 없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등지고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진법은 들어온 자의 기억을 토대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러니 저 그륵거리는 소리가 제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저것이 이 자리를 찾아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시현은 주변으로 미친 듯이 내공을 쏘아 대며 잠시나마 안개를 거둬 냈다. 일단 팔각형의 큰 돌을 하나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생문으로 가는 방향을 잡아 줄 중요한 기물이었다.
‘내공이….’
그사이에 내공은 삼 분의 일쯤 줄어들어 있었다. 아무리 가성비가 좋은 내공이더라도 일단 움직이려면 자꾸만 내공을 쏘아 내 안개를 가르며 지형을 확인해야 했기에 별수 없는 현상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일행들은 어디 있는지 무엇도 알 수가 없었다. 시현은 치밀어오르는 초조함을 애써 숨기며 미친 듯이 사방을 누볐다.
그때 저 멀리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끄악!!”
촤촤촤착-!!
익숙한 목소리였다. 시현은 미친 듯이 달리던 몸을 공중제비를 돌아 허공을 찍으며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 비명이 나던 곳으로 달려 나갔다.
점점 소음이 가까워졌다. 칼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곧 전투를 하면서 나오는 소음이란 걸 깨달았다. 시현은 다시 한번 기파를 날려 안개를 흩어 냈다.
촤악!
그러자 시현의 눈 안으로 내력인지 염동력인 건지 누군가의 조작으로 주변의 돌들이 촥촥 미끄러지며 쏘아지고 있는 게 단번에 들어왔다.
시현은 순식간에 가까워져 가는 전투 현장을 빠르게 분석했다. 총 5명. 3명은 환각 상태. 1명은 전투 불능. 1명은 쓰러지기 직전.
“으휴, 저 등신들.”
절로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시현은 곧 이를 악물고 손끝으로 내기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피잉, 피잉, 피잉-
“컥!”
붉은빛 내공이 앞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그러자 미친 듯 움직이던 세 명이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땅으로 쓰러졌다.
외부에서 기만 날려 하는 점혈은 아주 고난도의 능숙함을 요했지만 10년 내내 했던 거라 그런지 시현의 손에선 무척이나 쉽게 이루어졌다.
“하아, 하아.”
시현은 점혈 당해 기절한 세 명을 쏘아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벌써 내공이 절반으로 뚝 떨어져 있었다.
이제야 겨우 진법 안이었고 입구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정말 이들까지 챙길 방법이 전혀 없었다. 시현은 공격받은 학생 두 명의 수혈도 짚어 잠이 들게 만들고선 천천히 허리를 펴며 헝클어진 머리를 쓱쓱 쓸어내렸다.
“잠시 자고 있어라. 어차피 이대로 돌아다녀 봤자 금방 죽을 테니….”
시현은 기절한, 또는 잠든 5명을 나란히 모아서 눕혀 놓고 다시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이 온통 어둑하고 흐렸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이곳에서는 겨우 제가 사용한 내공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지표가 되고 있었다.
“내가 진짜 나가면 무조건 정신적 피해 보상 받아 내고 만다.”
이제는 절반 남아 있던 시현의 내공도 더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조금씩 지쳐 가고 있었다.
그때. 아주 작게 이질적 기운이 느껴졌다. 찌릿한 예감이 때려 박히듯 머릿속에 틀어박혔다. 시현은 간절한 바람을 담아 그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와 씨. 찾았다.”
드디어 눈앞에 팔각형의 돌이 들어왔다. 시현은 희열에 찬 얼굴로 빠르게 돌로 다가가 제 내공을 조금 밀어 넣어 파장을 흩트렸다.
그러자 아주 미세하게 우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 시야를 방해하던 안개가 빠르게 흐려졌다.
“하아…. 그래, 아직도 남아 있지.”
당연하게도 그 대단한 진법은 돌 하나 발견했다고 해체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시현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나무들 사이로 수십 개의 작은 문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이 진법에 대해 모르는 보통 인물이라면 당연히 저 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거나 당황했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시현은 다시 입술을 말아 물고는 저 멀리 보이는 문들이 아니라 두 발짝 정도 거리에 있는 반쯤 병들어 시든 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생문으로 향하는 입구는 이곳이었다.
즈즈즈즉
시현은 망설임 없이 병든 나무에 몸을 던졌고 곧이어 젤리처럼 몸을 훑고 지나가는 기운을 참아 내며 기억하고 있던 방법대로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자마자 급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채채채챙!!
차마 눈을 뜨기도 전에 피부를 저릿하게 훑어 오는 살기에 본능적으로 움직인 시현은 맞닿은 곳에서 느껴지는 중검의 기세에 이를 악물었다.
“치잇!”
적은 한 명이 아니었다. 시현이 눈을 번쩍 뜬 뒤 몸을 띄워 등 뒤에서 찔러 오는 검을 피하곤 그 무리에게서 크게 거리를 벌리고 땅에 내려섰다.
“너흰 흑살대!!”
시현의 눈앞에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감싼 5명이 유일하게 드러나 있는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앞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들은 천마신교 내에서도 천마 바로 아래에 있는 몇 안 되는 직속 부대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만큼 대단한 실력을 갖춘 이들이기도 했다.
머리끝까지 긴장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오랜만에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를 앞두자 이상하게도 조금씩 희열이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나도 참 미친놈이네.’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시현은 속으로 자조하며 평범한 철검을 순식간에 위로 쳐올렸다. 그리고 방진을 짜고 있는 5명을 향해 망설임 없이 직선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쩌엉! 콰아앙!
제일 앞에 서 있던 사내의 검이 지체 없이 앞을 향해 찌르고 들어왔다.
하나 직선으로 달리던 발걸음은 허초였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튀어 올라 뒤를 선점한 시현은 망설임 없이 검을 목뼈의 틈새를 찔러 관통시키고 아래로 그어 내리며 몸뚱이를 갈라 냈다. 이 정도면 단번에 절명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는 일말의 움직임도 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슈슈슉-
한 놈을 손쉽게 처치했지만 방심하진 않았다. 시현은 옆에서 달려드는 주먹을 검으로 막아 냈고 허리를 기괴하게 접으며 뒤에서 달려드는 도를 피했다.
그리고 시현의 검이 구름을 가르듯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횡으로 휘둘러졌다.
푸확.
두 명의 팔이 동시에 떨어져 나와 허공을 수놓았다. 시현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그동안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천마광염무]
시현의 몸이 마치 검무를 추는 듯 유려하게, 그러나 파괴적인 힘을 담고 움직였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검이 팔이 잘려 꿈틀대는 둘을 난도질했다.
화악.
그리고 그들이 어찌하기도 전에 내공으로 만들어진 겁화가 타올라 몸을 한 번에 삼키고 태워 버렸다.
이제 남은 이는 한 명이었다.
사실 저것이 진짜 사람인지 몬스터인지 알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진짜 흑살대 놈들보단 실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시현은 실제와 달리 재 한 톨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들에 눈을 가늘게 접으며 하나 남은 흑의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이제야 저것들에게서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진짜 흑살대 놈들도 인간성 없는 놈들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저렇게 플라스틱 덩어리처럼 무기질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후우….”
그렇다면 오히려 쉽지.
시현은 다시 사내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한 번 더 검병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무겁게 내려앉은 긴장감을 뒤로하고 손끝과 발끝, 동공을 확인했다.
저것은 제가 중간중간 확인했을 때마다 누군가의 습관을 그대로 베껴 온 듯 움직이기 직전 아주 미세하게 동공을 좁히는 버릇을 내비쳤다.
그래, 지금처럼.
쩌엉! 촤아악!!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감이 산산이 깨져 나가고 두 개의 검이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커다란 소음을 냈다.
물론 시현의 검술은 힘이 아닌 내공과 속도가 기반인 검술이었기에 순간적인 힘에서 밀리는 듯했다. 하나 애초에 신력으로 이겨 보겠다고 덤빈 게 아니었다.
곧 시현의 검이 마치 뱀이 기어가듯 순식간에 맞닿은 검을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것이 반격하기도 전에 검 끝이 단번에 턱 아래를 꿰뚫으며 정수리 쪽으로 튀어나와 잔혹하게 빛났다.
이 모든 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고 끝이 났다.
“하아, 하아…. 뭐 쉽네.”
시현은 가빠 오는 숨을 몰아쉬곤 씩 웃으며 대가리에 박힌 검을 단번에 뽑아냈다.
그리고 스르륵 쓰러지는 사내의 몸을 타 넘으며 눈앞에 보이는 중간 문으로 걸어가 커다란 문짝을 양손으로 밀어젖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