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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8화 (18/146)

#18

잠시 후. 게이트 안으로의 이동이 시작됐다.

사청린의 안내를 들으며 거울 같은 표면을 뚫고 들어간 공간은 핏빛을 머금은 어둑한 하늘과 높게 솟은 나무가 빽빽이 꽂힌 숲이었다.

조금 앞 차례에 들어온 시현은 그 뒤로 일행들이 다 들어올 때까지 튀지 않도록 조용히 서 있었다.

분위기야 음산하긴 했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에 괜히 기분이 풀어졌다.

그리고 조장 뽕에 취한 건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던 장명훈에게서 날아오는 시비도 없었고.

“흐음…. 꽤 멀리 있네.”

그때 마지막 학생과 같이 진입한 건지 게이트 근처에 서 있던 사청린이 스마트폰처럼 생긴 기기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던 것은 일명 ‘기운 탐지기’라고 해서 파장을 퍼트려 생명체의 위치, 그리고 보유 마력 양에 따라 달라지는 색을 표시해 주는 마도구였다.

사실 엄청나게 정확한 건 아니라서 대부분의 헌터들도 대략의 위치와 보스의 색을 확인하는 데만 쓰고 마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꽤 값진 정보라 게이트 탐험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이기도 했다.

“자, 다들 앞, 뒤, 옆 인원들 얼굴 확인하시고 제 뒤를 따르세요!”

마침 방향을 잡은 건지 사청린이 밝게 웃으며 학생들을 인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을 조잘대며 걷던 무리들이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점점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숲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감을 자아내는 데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에 학생들도 슬슬 현실감이 밀려오며 공포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말이 헌터고 각성이지 이런 곳에 와서 전투를 경험해 본 자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물론 자기 자랑하듯 입을 떠벌리는 장명훈만 빼고 말이다.

“하, F급이면 진짜 빨리 끝났을 텐데. 하필 보스가 멀어서 걷는 데만 시간 다 쓰겠네. 내가 예전에 아버지랑 E급 게이트를 갔는데 말이야.”

헌터가 아닌 자가 게이트를 들어가면 불법이었다. 그럼에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는 장명훈은 맞장구를 치는 제 무리에게 계속해서 잘난 척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계속 떠드는 이가 있어서 그런지 처음보다는 분위기가 조금씩 풀어지는 중이었다.

그러나 시현은 이 와중에도 이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현재 일행은 세 시간째 오솔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F급 게이트라고 하나 주변에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쉽게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하루는 별다른 습격 없이 지나갔다.

한참을 걷다 쉬다 하던 일행은 가뜩이나 어두웠던 숲이 더욱더 어두워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깜깜해지자 야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현은 일행들을 도와 이런저런 잡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기감을 넓히면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다.

저 기계가 생명체의 기운을 확인해 표시하는 거라면 생명력이나 마력을 감추고 활동하는 몬스터들은 표시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물론 F급 게이트에 들어와 이런 생각을 하는 시현이 너무 과한 걸 수도 있었겠지만, 그 10년간 사선을 넘으며 버텨 왔던 경험은 그를 쉽게 풀어지도록 만들지 않았다.

“오늘은 저녁 식사 후에 바로 취침하고 아침이 되자마자 이동할 겁니다! 그러니까 딴짓하지 말고 꼭 자면서 체력을 보충하세요.”

시현은 중간중간 이어진 사청린의 지시에 자꾸만 불안해지는 마음을 내리누르며 짜인 일정을 소화했다.

그러나 이런 쪽으로 제 예감은 비껴간 적이 없었기에 시현은 티 안 나게 불침번을 서며 사방을 경계하고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날이 밝고 정말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시작되자 스스로도 진짜 지나치게 걱정하는 건가 싶어 슬슬 제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 뭐지? 진짜 내가 너무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건가?’

그 후로도 며칠간 아무런 일도, 아무런 습격도 없는 날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동안 일행들은 풀어질 대로 풀어져서 마치 소풍이라도 온 듯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는 지경까지 와 있는 상태였다.

몇 년간 이런 곳에서 구르던 사람일수록 지금 이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경계를 올리겠지만 지금은 초짜들 모임이었다.

통솔자인 사청린도 은근슬쩍 잡다한 얘기를 하며 편안히 걷고 있었으니 시현은 아직도 무림 물이 빠지지 않은 듯한 제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흠칫.

“어?”

“왜??”

그러나 평화는 끝났다는 듯 지금 걷고 있는 풍경에서 익숙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현은 걸으면 걸을수록 더욱더 강렬해지는 기시감에 결국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무리의 중간에 있던 시현이 멈춰 서자 뒤로 이어져 있던 일행들 또한 우르르 발을 멈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맨 앞에 서서 대장 놀이를 하던 장명훈이 고개를 팩 돌려 시현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누가 말도 없이 대형 흐트러트리래! 내가 멈추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분위기 다 깨졌잖아.”

“어, 미안.”

그리고 용기 내서 화를 냈지만, 시현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연신 주변을 둘러보는 데에만 정신 팔려 있자 민망해져 더욱 목소리가 커졌다.

“이익….”

그럼에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자 장명훈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씩씩댔지만, 시현은 곧 일행들에게 크게 죄송하다고 말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옆에 있던 사람도 의아하단 듯 잠시간 제 얼굴을 바라봤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앞서가는 일행과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뭐지. 단순히 데자뷰 같은 건가?’

시현은 작게 고개를 흔들며 지나쳐 가는 주변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숲이 다 거기서 거기지 라고 반박하면 할 말이 없었지만, 이 익숙한 느낌은 정말 거짓이 아니었다.

때마침 얼마 지나지 않아 사청린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멈춰 섰고 시끄럽게 떠들던 수다 소리가 단번에 사그라들었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사청린은 몇백 년은 먹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두꺼운 나무 앞에 서서 마치 이 앞이 길이라는 듯 미소를 씩 지어 보였다.

그때 시현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기억이 벼락같이 꽂혀 들었다.

‘미친. 여기 십만대산이잖아.’

그랬다. 분명 이곳은 마지막에 태운과 마교를 치러갈 때 거쳐 갔던 입구였다. 강력한 기문진법으로 무장되어 있던 그곳 말이다.

시현은 급하게 성안을 발동시키며 아무리 봐도 그냥 나무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봤다.

[굉겁사황마라광진(-)]

‘진짜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게이트와 마교? 이럴 수가 있는 건가?

그때 사청린이 경쾌하게 웃으며 차근차근 지금 상황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앞은 일종에 결계로 가려져 있는 듯합니다. 제가 앞장설 테니 2열 종대 말고 한 줄로 서서 앞사람의 어깨를 잡은 채 따라오세요!”

순간 멍하니 있던 시현이 통솔자의 말에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만약 이 진이 진짜 그 진법이 맞다면 절대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F급이잖아. 진짜 그 진법일 리가 없는데.’

시현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머리를 쥐어 잡았다. 그러나 사청린은 시현이 무언가 결론 내릴 새도 없이 단번에 나무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시현은 저도 모르게 일행의 뒤로 급하게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국 나무로 보였던 공간은 얕게 출렁이며 모든 사람을 삼켰고 숲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그때 이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H조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게이트의 밖. 하얀빛을 뿌리던 게이트가 점점 어둡게 물들어 가더니 짙은 보라색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현재로선 누구도 본 적 없는 색이었다.

***

진법의 내부는 아주 짙은 안개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겨우 앞에 두 사람 정도만 보일 정도로 시야를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시현조차도 이 진법 안을 이렇게 들어와 보는 것은 처음이라 이게 원래 맞는 현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현은 일단 사청린의 말을 따라 앞서가고 있는 여학생의 어깨를 잡고 사방을 경계하며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제게도 뾰족한 방책은 없었고 그래도 경험자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거란 판단이었다.

그러나 몇 걸음도 채 옮기지 않은 순간.

사방에서 찌르는 듯한 뾰족한 살기가 혼렬혈쇄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큿!”

시현은 저도 모르게 펄쩍 뒤로 물러서며 검병을 잡고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동시에 등 뒤로 식은땀이 조금씩 배어 나와 입고 있는 티를 축축하게 만들고 있었다.

“왜,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닙니다. 앞에 놓치지 마세요.”

그러나 부지불식간에 쏟아졌던 살기와는 다르게 주변은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시현은 급하게 앞사람의 어깨를 잡으며 속으로 욕설을 연신 내뱉고 있었다.

‘미친. 아니 이게 F급이라고? 이건 아니야. 말이 안 돼.’

방금 느낀 살기는 이 학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절대 아니었다.

물론 능력치가 와르르 깎여 버린 시현도 마찬가지였다.

C급이라던 그 폭발 게이트도 이렇게 제 기감을 찌르지는 못했었다. 아무래도 무슨 착오가 생긴 것 같았다.

게다가 여기가 정말 그 진법의 안이 맞다면 더는 이쪽으로 움직여서는 안 됐다.

판단은 빨랐다. 시현은 빠르게 행렬 앞으로 튀어 나가 통솔자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러자 앞을 향해 걷던 남자가 우뚝 멈추어 섰다.

“지금 이 앞은 가면 안 됩니다. 사실 제가 길을 찾는 스킬이 있는…데….”

그러나 시현은 하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런 씨발.”

우드드득.

사청린이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머리가 마치 굳은 점토를 구겨트리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180도 돌아가 시현을 향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 줄줄이 서 있던 학생들의 머리도 시현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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