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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7화 (17/146)

#17

“호오, 자신감이 출중하군? 그래! 그치만 지정하는 상대를 내가 확인하고 정해 줄 거야. 자, 말해 봐.”

“정시현이요.”

씨발.

시현은 정말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맞아 드는 예감에 작게 욕설을 내뱉고는 천천히 한 발자국 내디뎠다.

그리고는 쓰고 있는 캡모자를 천천히 정리해 더 깊이 쓰고는 비릿하게 웃고 있는 장명훈의 앞에 나란히 섰다.

‘정시현, 너 어른이다. 어린애들이랑 똑같이….’

“벌레 같은 새끼. 너 같은 것들은 그냥 내 아래 깔려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괜히 꿈틀댄다고 깝치지 말고.”

뚝.

공교롭게도 장명훈은 무척이나 유치하지만 시현에게만은 효과적인 도발을 지속해서 던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동안 참고 참느라 넝마처럼 헤져 있던 시현의 이성의 끈이 단번에 끊어져 내렸다.

시현은 입술 끝을 끌어 올리며 지급받은 목검을 옆으로 내던졌다.

“무기는 원하는 대로 들어도 되겠죠. 교수님.”

“어, 어 맞다.”

그러나 채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걸린 뭉툭한 몽둥이를 가져온 시현이 발끝을 바닥에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럴 때 쓸 만한 아주 유용한 무공을 알거든? 개방에 타구봉법이라고 너 같은 새끼들한테 아주 딱 맞는 거다.”

“무공? 지랄한다. 끝까지 허세는.”

시현은 벌써 기대된단 얼굴로 싱긋 미소를 지었다.

타구봉법.

개방의 거지들이 동냥할 때 덤비는 사나운 개들을 쫓아내기 위해 조사가 만들었다는 무공이었다. 허접한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초식이 신묘하다고 하지만 뭐 다른 이유는 필요 없었다.

오로지 지금 상황에 딱 맞는 무공이었기에 꺼내 든 것뿐이니까.

하나 장명훈은 고개를 숙이고 나긋하게 말하는 시현을 보며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그 웃음은 시현이 몽둥이를 들어 올리고 단 5초 만에 사라졌다.

시현의 발이 한 발짝 떨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손이 머리 위로 번쩍 들려졌다가 눈에 채 들어오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내려쳐졌다.

“쿠헥!”

장명훈이 멍하니 서 있다가 몽둥이에 등짝을 맞고 흙이 다져진 바닥에 털퍼덕 넘어졌다. 그러자 시현의 손속이 신이라도 난 듯 더욱 경쾌해졌다.

마친 난타 공연을 하기라도 하는 듯 몽둥이가 양손을 정신없이 오가며 옹송그려진 몸뚱이를 내려치고 있었다.

“컥! 악! 악!”

장명훈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연신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나 북 터지는 소리는 줄어들지도 않고 계속해서 일정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파! 흐어어엉 아프다고!! 억! 살려 주세요!!”

“안 죽어, 새끼야. 입 다물어. 혀 깨물면 진짜 죽는다?”

“케흑!”

그때 몽둥이의 궤적이 어느 순간 단순함을 넘어서 무척이나 기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무공을 깊이 모른다면 아무렇게나 보이는 대로 때리는 것 같겠지만 타구봉법은 꽤 깊은 묘리를 가지고 있는 무공이었다.

게다가 은근히 어느 한 곳 빼놓지 않고 골고루 때리게끔 되어 있었기 때문에 힘 조절만 한다면 훌륭한 구타 무공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시현은 그렇게 입술 끝을 슬슬 올리며 아까 두어 번 때린 장명훈의 팔뚝을 다시 한번 내려쳤다.

“잠깐! 잠깐!”

이게…. 무공이라고? 그냥 잡히는 대로 패는 거잖아!!

잠시 선뜻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멍하니 비명의 하모니를 듣고 있던 교수가 급하게 다가오며 시현을 말리기 시작했다.

정말 먼지 나게 패 준다는 말이 이거구나 할 정도로 처맞은 장명훈을 흘깃 본 교수는 아연한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현 학생이 이겼다. 거기 둘. 명훈 학생 의무실로 데려가라.

귀신같이 꼴뚜기 패밀리가 누군지 집어낸 교수가 걸레짝처럼 널브러져 있는 장명훈을 가리키며 말하자 얼굴이 시퍼래져서 덜덜 떨던 두 명이 머뭇머뭇 다가왔다.

흠칫.

그리고는 반쯤 희번덕대는 눈의 시현과 시선이 부딪히자 지레 놀라서 몸을 자지러지듯 튕기고는 빠르게 장명훈을 수습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아…. 명한 학생 말이 심한 건 인정한다. 나도 따로 시현 학생한테 벌점은 주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평가지엔 다 기록될 거다. 괜찮겠나?”

“상관없습니다.”

시현은 작게 혀를 차곤 씩 웃으며 교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정말 최근 들어 가장 상쾌한 상태였기에 여태 뭐 하러 참았나 조금은 후회가 될 정도였다. 물론 이것도 수업이라는 핑계가 있었고 지목도 먼저 했으니 손을 쓴 거지만 말이다.

‘그래도 조금 얌전한 줄 알았더니…. 하긴 헌터 중에 멀쩡한 놈이 있을 리가 없지….’

교수는 누구보다 깔끔한 차림새를 한 시현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연신 한숨을 쉬며 다른 학생들을 대충 엮어 주고 멍하니 서서 생각에 잠겼다.

타구봉법이라니 정말 충격적인 무공이었다.

***

며칠 뒤 원정 날.

시현은 치료받았는지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장명훈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뭐가 그리 억울한지 그렇게 맞아 놓고도 아직도 불만 어린 눈을 부라리는 게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알아 처먹을 때까지 패야 하나. 시현은 그때의 손맛을 떠올리며 입술을 한번 핥고 작게 손을 꿈틀거렸다.

멈칫.

‘아…. 나 이런 성격 아니었는데. 짜증 나네 저 꼴뚜기 새끼 진짜.’

그러나 순간 치밀어오르는 자괴감에 시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따지고 보면 이제 제 나이는 33살이었는데 이 나이를 먹고도 20대 초반의 애새끼한테 박박 화를 내는 제가 너무 한심했다.

“자!! 각자 워치로 팀원이 전달됐을 겁니다! 확인해서 정해진 버스로 올라타세요!”

그때 확성 마법을 쓴 건지 저 멀리 서 있던 관리자의 목소리가 귀 가까이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시현은 자연스럽게 손목을 들어 올려 시계를 확인했고 다시 한번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H조 : 정시현, 이민성, 유명철, 김창우, 이설, 장명훈….

이제 앞으로 꼴뚜기 놈과 같은 팀으로 움직여야 했다. 안 봐도 눈앞에 훤한 앞으로의 일정에 버스로 향하는 발걸음이 느리고 축축 처졌다.

“아, 젠장….”

하필 H조가 타야 할 버스는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꽤나 걸어가야 하는 곳에 정차해 있었다.

그렇게 조금 느리게 버스를 올라탄 시현은 무거운 정적으로 가득 차 있는 내부가 반갑게 맞이하는 걸 느끼며 아무 말 없이 눈앞에 보이는 맨 앞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야.”

‘저 미친 새끼는 진짜 목숨이 아깝지 않나.’

그때 기다렸다는 듯 꼴뚜기의 울음소리가 시현의 귓가로 박혀 들었다.

시현은 그 목소리를 간단하게 무시하고 지급받은 가방과 검을 탁탁 정리하며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그러자 저 뒤쪽에서 뭔가 중얼대며 씩씩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조금 겁은 먹었는지 예전처럼 냅다 들이대지 않고 중얼거리기만 하는 게 참 같잖아서 웃음이 나왔다.

“자!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통솔을 맡은 사청린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와아!! 백화 길드에 월하청운!!”

그때 오늘의 통솔을 맡은 처음 보는 헌터가 버스로 올라타며 포권을 하더니 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꽤 명성이 있긴 한 모양인지 저 사람의 이름을 아는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말을 꺼내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던 시현은 모자로 얼굴을 가리며 눈을 감았고 모든 말들을 한 귀로 흘려 버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후 버스는 넓게 빠진 도로를 쉼 없이 달리며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지금 H조가 향하는 곳은 경기도 파주. 어제 생긴 F급 게이트가 위치한 곳이었다.

사실 폭발 게이트 말고 일반 게이트들 같은 경우에는 각 길드의 경매와 거래로 순식간에 선점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예외였다.

F급의 경우 클리어는 쉬웠지만, 돈이 될 만한 거라곤 전혀 토출되지 않았기에 헌터법상 모든 게이트를 클리어해야만 하는 헌터들에게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그때 그걸 처리하겠다고 나선 게 헌터 협회였고 그 후에는 헌터들의 신뢰도 높이면서 교육의 일환으로도 알차게 써먹는 중이었다.

“곧 있으면 게이트를 마주하게 될 텐데요. 위험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서로에게서 절대 떨어지면 안 됩니다. 게이트는 아직 미지의 공간이기 때문에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현은 점점 느려지는 버스의 진동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일단 게이트를 공식으로 해결하는 건 시현에게도 처음인 일이었기에 통솔자의 말을 머릿속에 새겨 놔야만 할 것 같았다.

버스는 얼마간을 느리게 이동하더니 창으로도 게이트가 선명히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서야 멈추어 섰다.

“우와아! 대박이다.”

“우리 진짜 들어가는 거야?”

그동안 조용했던 버스 안이 잔잔한 소음으로 가득 찼다.

하얗게 빛을 뿌리며 지면에서 조금 떠서 선명하게 존재감을 뿌리고 있는 게이트는 고작 F급이라지만 무척 남달라 보였다.

시현은 사청린의 통솔에 따라 천천히 버스에서 내려서며 다시 한번 게이트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이것도야. 여기도 그 자연지기가 있어.’

C급 폭발 게이트를 처음 봤을 땐 절대 엮이지 않겠다 다짐한 터라 신경을 끄고 기억에서 지워 냈지만 결국 헌터가 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게 된 시현은 이제야 게이트를 자세히 분석해 보는 중이었다.

솔직히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정확했다.

F급은 C급에 비하면 자연지기의 양이 아주 아주 적게 들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등급에 따라 저것의 양도 달라지는 것만 같았다.

“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정할 게 있습니다! 조장을 뽑을게요. 먼저 하고 싶은 분?!”

그때 시현의 사색을 깨트리듯 쨍쨍한 사청린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정적이 이어졌다. 하나 잠시 후 귀에 익은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와 시현의 귀로 흘러들어 왔다.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

장명훈이었다.

그는 우다다 달려 나와 통솔자 앞에 서더니 슬쩍 시선을 돌려 시현을 바라보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만화라면 요란한 의성어가 붙었을 정도로 홱 고개를 돌려 통솔자를 바라봤다.

‘그래 너나 많이 해라. 새끼야…. 같은 나이인 우리 태운이는 애가 그렇게 점잖고 진중하고 순하고 그랬는데 이건 뭐. 어휴.’

시현은 뭐 하나 할 때마다 저를 견제하는 장명훈을 피곤한 눈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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