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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5화 (15/146)

#15

“명훈이 너는 아버지 길드 들어가면 되지? 공부 안 해도 돼서 부럽다.”

“뭐 그렇긴 한데 내 능력이 워낙 좋아야지. 다른 길드들에서 달려들까 봐 겁난다니까.”

“와, 개멋있어.”

여기도 이런 놈들이 있구나.

시현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식당을 향해 걷다가 사방에 들리라는 듯 큰 소리로 허세를 부려 대는 몇몇 무리를 발견하곤 발끝을 옆으로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무리를 피한 시현은 듣고 싶지 않아도 고막에 때려 박히는 저 멱따는 소리에 조금씩 발을 늦춰 멀어지는 중이었다.

사람 많은 데서 저렇게 시끄럽게 피해 주는 것도 별로였지만 대화 내용도 너무 수준이 떨어지는 것들뿐이었다.

아버지 길드 어쩌고 하는 거 보니 끗발 좀 날리는 문파의 후기지수들과 비슷한 급의 놈들인가 본데 어떻게 저런 놈들은 언행마저도 다 빼다 박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근데 요번에 드림워크로 각성한 새끼 있다던데 걔한테 화제성 다 뺏기는 거 아니냐?”

쯧쯧, 여기도 눈치 없이 입을 나불대는 새끼는 꼭 한 명씩 있구나.

시현은 작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가며 계속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무리에게서 한 발짝 더 떨어졌다.

“…누가 그래? 드림워크도 최소 몇 달은 겪어야 센 거야. 요번에 들어온 새끼는 뭐 일주일 겪었다더니만. 그럼 좆밥이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본인은 애써 안 그런 척하는 것 같았지만 데시벨이 조금 올라간 목소리에선 숨길 수 없는 열등감이 비져 나오고 있었다.

“크학. 그렇긴 하지. 하여튼 드림워크 각성자 놈들 지들이 귀족인 줄 안다니까. 나대면 아주 죽빵을 날려 줘야지.”

“아니면 미리 손 좀 봐 줘야 하나. 듣기로는 개찐따라던데.”

아주 자신감에 가득 차다 못해 거만해 보일 정도로 선 넘는 말들이 오가자 시현은 결국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어쩌면 저렇게 말투 하나하나가 재수가 없는지. 예전에 객잔에서 태운에게 저런 식으로 망아지처럼 깝치며 주둥아리를 털다가 제 손에 먼지 나게 처맞은 놈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아마 남궁가와 점창파의 후기지수들이었던 것 같았는데 시현이 잠시 묵을 방까지 둘러보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이 허름한 모습의 태운을 거지 취급 하며 모욕을 줬던 일이 있었다.

아직 20대 중반이었던 시현은 울화를 참지 못했고 태운이가 말릴 때까지 놈들을 반죽해 버려 도망치듯 안휘에서 떠나야 했었다.

‘하, 이제 그럴 힘도 없고 이유도 없고. 밥이나 먹자.’

시현은 조금은 유쾌했던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나중에 또 비슷한 일을 하게 되리란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였다.

***

처음 일주일간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사람들도 아직은 서로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우르르 몰려다니지도 않았고 얼마 전 들었던 대로 이 교육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대부분은 열심히 임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 꼴뚜기 패밀리는 빼고, 말이지.”

시현은 그나마 있는 물건들을 차근차근 가방 안에 넣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꼴뚜기 패밀리. 시현이 혼자 정한 그 무리를 칭하는 단어였다. 장명훈을 중심으로 모인 저들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분위기를 흐리는, 흔히 말해 일진 짓을 하고 다니는 놈들이었다.

이제 갓 20살이 됐다고 해도 성인인데 왜 저럴까 싶지만 생각해 보면 회사에 다니면서도 저런 놈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항상 있었기에 저절로 납득이 되긴 했다.

게다가 아직 제게 피해가 직접적으로 오거나 하는 건 아니기도 했고.

그러나 제 아비의 명성을 이용해서 경력이 조금 적은 교수들을 은근히 꼽 줄 때면 가서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 주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해졌다.

그런데도 성적은 좋게 받고 싶은 건지 그중에서도 중요해 보이는 수업에는 고분고분 굴면서 열심히 하는 척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공부 잘하는 애들의 노트를 뺏거나 해서 나온 결과물들이었기에 시현의 마음속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불만이 조금씩 쌓여 가는 중이었다.

시현은 인파를 피해 인적 드문 복도를 걸어가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도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때, 운명은 마치 시현의 고생길을 바라는 듯 하나의 사건을 끌고 들어왔다.

“미, 미안해.”

“허.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너 잘못한 것도 없는데 킥킥.”

시현이 지나가던 넓은 복도 옆쪽으로 뚫린 작은 통로에서 여러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실 꽤 멀리서도 이미 몇 명이 그쪽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냥 학생들인가 싶어 신경을 끊은 상태였다.

그러나 조금 더 가까이 가자 들리는 말소리는 좋은 의도로 그곳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 왔다.

그러나 시현은 이제는 바로 한 발자국 앞에 보이는 통로를 모른 척 지나쳤다. 그래도 제 처음 목적은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기에 경비라도 불러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발을 옮겼다.

“고아 새끼가 운 좋게 드림워크 겪어 놓고 아무 스킬도 없다니. 이게 말이 돼? 나 같으면 쪽팔려서 헌터 되겠다고 깝치지도 않았을 텐데. 부모가 안 말리디? 아, 맞다. 부모 없지.”

“푸학. 진짜 무능력 역대급 아니냐?”

그러나 몇 발자국 옮겼을 때. 시현의 귓속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어 와 마음속 안에 있던 분노 스위치를 건드렸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 채 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꾹 말아 쥔 시현이 몸을 휙 돌려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갔다.

“애새끼들이 입이 아주 더럽네. 시궁창도 아니고.”

“뭐, 뭐야!”

기척도 없이 나타난 커다란 인영에 5명의 남자가 화들짝 놀라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현은 놀란 걸 숨기듯 과장된 몸짓을 눈에 담으며 비릿하게 미소를 짓고 뚜벅뚜벅 통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얘들아. 벌점 갈겨 달라고 하기 전에.”

시현은 카메라가 켜진 스마트워치 화면을 한번 보여 주고는 일부러 비웃는 얼굴을 보이며 어깨를 으쓱이고 빈정댔다.

당연하게도 이곳에는 벌점이라는 제도도 있었다. 한 달 뒤에 평가지가 작성되는 만큼 여러 가지 항목들이 합쳐져 최종 점수가 도출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는 인성 부분에서 크게 점수가 깎였고 당연히 평가에 꽤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성적이나 길드가 중요하지 않은 놈들은 막 나갔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억지력이 되어 주는 규칙이기도 했다.

물론 시현 또한 성질대로 몇 대 패 줄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제가 상위 권력자라고 믿는 놈들을 애매하게 패 봤자 지겹게 달라붙어서 복수하겠다 어쨌다 할 게 뻔했다.

차라리 조용히 머리를 날려 버리는 게 편했지만 여기선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자신도 문제없이 교육을 수료하고 싶었기에 이게 가장 좋은 수단이 될 거라 여겼다.

“뭐야 저 미친놈은.”

“치잇… 야야, 가자.”

“왜! 놔 봐 씨발!”

“미친 새끼야, 명훈이 벌점 맞으면 좆 돼. 얘네 아빠가 말한 거 까먹었냐.”

저들끼리 작게 속삭이는 듯했으나 귀로 내공을 보내 청력을 돋우고 있던 시현에게는 저 대화 내용이 정확하게 박혀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저렇게 뻗대는 놈들도 점수가 중요한 어린 학생일 뿐이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 하다못해 게임 속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어디를 가도 약자는 무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시현은 양손을 허리에 턱 올리며 이 한심한 상황에 지긋지긋한 얼굴을 한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바닥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다가갔다.

“괜찮아요?”

“네, 네….”

“어? 너는….”

그러나 작게 고개를 들어 올린 소년의 생각지도 못한 정체에 시현이 순간 멈추어 섰다.

“엇…. 안녕하세요….”

“흰머리 꼬마?”

“희, 흰머리….”

시현은 분명 얼굴은 같았으나 밝은 갈색 머리를 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봤다. 그동안 그렇게 찾아다닐 땐 안 보이더니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괜히 반가운 마음에 시현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아직도 바닥에 앉아 있는 소년의 허리를 잡고 번쩍 일으켜 세웠다.

소년은 놀랐는지 몸을 딱딱하게 굳히고는 작게 으어어 하며 작게 허우적댔는데 그게 조금 귀여워 시현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니 왜 그동안 안 보인 거예요?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저, 저를요…? 왜….”

“왜긴요. 내가 세탁비 주기로 했었잖아요. 아, 맞다. 근데 나 지금 지갑 없는데….”

시현이 조금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굴리자 여태 굳어 있던 소년이 신경 써서 듣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작게 웃음소릴 냈다.

“그건 진짜 괜찮아요….”

“흠. 일단 세탁비는 나중에 주는 걸로 하고. 근데 저 새끼들은 대체 왜 저러는 거예요?”

“아…아마 제가 드림워커라서… 그런 걸 거예요.”

“드림워커?”

순간 잘 이해가 안 돼서 시현은 짧게 반문했다. 그리고 이어진 유준의 말에는 안타깝다는 듯 작게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늘 그렇듯 일부 사람들은 저들 사이에서도 등급을 나누고 싶어 했고 특히 그런 이들은 본인만은 하층이 아닐 거라는 믿음을 가진 채 살아간다.

거기서 파생된 것들이 헌터계에도 영향을 끼쳤고 그것은 드림워커의 신격화로 나타났다.

지금은 비록 덜하다곤 하지만 일반 각성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노력은 조금씩 저평가가 됐고 드림워커의 행동들은 고평가가 되곤 했다.

장명훈은 그런 특징 때문에 드림워커를 유난히 싫어하는 편인 것 같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작은 어린애를 해코지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고 싶지 않았다.

“아마 저러다 말겠죠… 괜찮아요.”

앙상하게 마른 초등학생 아이가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자 괜히 신경이 쓰이고 찝찝해졌다. 어차피 너도 반항을 해 봐라, 조용히 있지만 말고 한마디 해라. 하는 이런 조언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시현이었다.

어차피 이 짧은 기간 동안 성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나대는 것보단 당장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게 나을 것같았다.

시현은 소년의 손을 덥석 잡아 와서 손목에 걸린 스마트워치에 제 번호를 등록하고 살짝 내려놨다.

“또 괴롭히면 연락해요. 도와줄 테니까.”

“어, 저…. 감사합니다.”

“정시현이에요. 형이라고 불러요. 지금은 빨리 들어가고.”

“아, 넵….”

시현은 저 꼬마가 아저씨라고 부르기 전에 형이라는 호칭을 못 박아 두고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소년을 두고 뒤돌아 숙소가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물어봤네…. 뭐 알아서 말하든가 하겠지.”

터덜터덜 발을 옮기던 시현이 그제야 깨달았단 듯 작게 외쳤지만 이내 빙긋 웃으며 경쾌하게 발을 옮겼다.

뭐가 됐든 제 의도대로 일이 풀린 것 같아 조금은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상쾌함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분노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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