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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4화 (14/146)

#14

이곳에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시현은 방금까지 백발의 소년을 찾던 것도 잊은 채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그러나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슬금슬금 일어나서 밖으로 향하는 문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시현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멍하니 있던 시선을 급하게 돌려 앞에 서 있던 책임자에게 득달같이 다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숙소는 대체 뭡니까?”

“예…? 어…. 앞으로 한 달간 지내실 숙소요.”

그러나 시현의 질문에 돌아온 건 왜 이렇게 당연한 걸 묻냐는 의아함이 담긴 대답이었다.

어쩐지 다들 이상하게 큰 가방을 가지고 있더니 그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아무래도 더 물어봤자 괜히 이상한 눈초리만 받을 게 뻔했기에 시현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른 이들의 행동을 느긋하게 따라 하며 숙소라는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그 건물이 숙소였구나.’

시현은 제 눈앞에 펼쳐진 작은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득달같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그제야 테스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의심이고 나발이고 제 앞길이 제일 걱정이었다.

“제길…. 진작 알아볼걸.”

결과적으론 테스트는 아까 했던 그걸로 끝이었고 테스트받은 자들은 의무적으로 한 달간의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흔히 말하는 드림워크를 겪고 각성한 자들은 길게는 몇 년간의 이 세계 생활을 꿈처럼 겪은 뒤 깨어났다.

그렇기에 각성 처음부터 기술이나 능력을 쓰는 데에 익숙했고 그 덕에 세상이 뒤집힌 직후 게이트로 인해 벌어지는 혼란을 빠르게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최초의 게이트 사건 1년 후부터는 드림워크로 인한 각성은 희귀할 정도로 줄어들었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냥 예고 없이 능력을 각성하게 됐다.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모른 채 각성하게 된 사람들은 돈과 힘에 취해 객기를 부리다가 수없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유족들과 남은 각성자들의 가족들, 시민 단체 등 나라가 온통 시끄러워졌고 그때부터 최소한의 조치인 한 달간의 교육이 생겨 버린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하는 건데…. 그냥 세금 떼고 받을걸…. 그래도 1억은 됐을 텐데….”

규민에게 테스트 이야기를 들을 땐 정말 쉽게만 생각했었다. 그리고 제 통장에 꽂힐 3억에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저 수백 명의 사람과 부대껴서 한 달을 지내라니.

시현은 나라 잃은 듯한 허망한 얼굴을 하다가 급하게 핸드폰을 다시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접니다.”

-오! 형님! 테스트는 잘 끝나셨어요??

“왜 교육이 있다는 얘길 안 해 주셨습니까….”

-예? 어…. 아까 하려고 했는데….

‘아…. 내가 늦었다고 끊었지.’

사실 이제 말도 안 되는 화풀이라는 걸 알았지만 시현은 요즘 들어 미묘하게 꼬이기만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쌓여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곱게 말이 튀어 나가지 않았고 동시에 제 일 때문에 남한테 화풀이해 버린 자신에게도 옅게 혐오감이 들어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닌 척했지만 지쳐 가는 마음이 새어 나와 주변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쫓겨나듯 현실로 돌아오게 된 것부터였다.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능력은 초기화됐고 시시각각 조여 오는 집과 돈 문제까지.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최소한 퀘스트를 할 땐 힘들긴 했어도 보상도 확실했고 차근히 태운이와 일을 헤쳐 나가는 게 재미도 있었는데.

“하아…. 정말 미안합니다.”

-에이 아니에요! 교육 끝나면 꼭 말씀해 주십쇼! 저 이규민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 잊지 않고 있습니다!

“아하하. 그렇죠….”

그래도 그나마 제가 제일 고대하던 발언을 하는 규민에 조금 마음이 놓인 시현이 어색하게 웃음 소릴 흘렸다.

-아 참, 그건 그렇고 아까 하려다가 못 한 말인데 이번 교육 끝나면 저희 길드 들어오실래요?

“…그건 또 뭡니까.”

그러나 시현은 또 튀어나온 맥락 없는 말에 한숨을 푹 내쉬며 침대 위로 벌러덩 누워 버렸다.

길드라는 말이 아예 낯선 건 아니었다. 한창 온라인 게임을 할 땐 작은 길드였지만 길마도 해 본 적이 있던 시현이기에 잘 알았으면 알았지 아예 모를 순 없었다.

게다가 제집이 이렇게 된 데에 두 군데의 길드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렇게 현실에서 제의까지 받자 조금 민망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 제가 자세히 말씀을 안 드렸군요! 뭐냐면….

“잠시만요. 그런데…”

-아 참, 피곤하실 텐데 제가 너무 마음이 급했네요. 이건 당장 얘기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오늘은 푹 쉬세요. 형님!

“어어, 예.”

달칵. 평소와 달리 대화가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리고 시현은 얼떨떨하게 전화를 끊고는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무래도 제가 거절할 거라 예상한 것 같았는데 이럴 때는 또 눈치가 빨라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어차피 길드 같은 거에 들어가 일할 생각은 없었다. 인간을 상대하는 게 아니더라도 전투는 이제 신물이 났으니까.

“그나마 1인실인 거에 감사해야 하나.”

나름 방음 시설이 잘 갖춰진 건지 고요한 내부에 시현은 이리저리 튀어 나가는 생각을 놔 버리고 그저 멍하니 있었다.

그러나 그 고요함도 잠시 후에 작게 울리는 시계의 진동으로 인해 금방 깨져 버리고 말았다.

아까 강당을 나오면서 지급받은 워치였는데 시현은 곧 이걸로 교육 스케줄을 공유받는 거라고 설명을 들은 걸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시계의 액정에는 내일 있을 교육에 대해 안내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오전(302호실) : 게이트의 이해]

[오후(305호실) : 전투의 실재와 활용]

“와…. 이름만 봐도 진짜 재미없겠다….”

시현은 천장을 보고 누워 있던 몸을 꾸물꾸물 돌려서 베개 안에 얼굴을 묻었다. 그래도 한 달만 공부하면 3억이었다.

돈을 생각하자 그나마 의욕이라는 게 솟는 듯했다. 시현은 주먹을 꾹 말아쥐며 그걸 어떻게 유용하게 쓸지 생각하다가 금세 푸시시 식는 의욕에 결국 한탄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으어… 소홍주랑 고기볶음 먹고 싶다. 딱 한 입만.”

고기볶음은 태운이가 만든 음식 중에서도 정말 수위를 다투는 음식이었는데 돼지고기를 땅콩, 야채들과 함께 달달하고 매콤하게 볶아 내는 요리였다.

‘처음엔 무슨 삼매진화로 불을 피워 그 위에서 웍을 돌려 대길래 놀라서 기함했었지. 큭큭.’

물론 내기로 만든 화력인 만큼 나무 같은 걸로 만든 불과는 비교가 안 되게 강력했고, 당연히 미친 듯이 살아 있는 채즙과 육즙이 아주 기가 막혔다.

원래는 제육볶음이 먹고 싶어 말을 꺼낸 거였고 당연히 제대로 된 레시피를 알지 못하는 탓에 설명도 엉성할 수밖에 없어 맛은 달랐지만, 시현의 향수병을 단번에 고칠 만큼 태운의 손재주가 대단했다.

시현은 태운이가 보고 싶은 건지 음식이 그리운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시 과거를 회상하며 기억을 더듬었다.

자꾸만 옛날 일만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게 꼰대가 된 것 같아 우울했지만, 그때의 기억이 계속 떠오르는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청소년기 동안은 보육원에서 지내며 몰래 일만 했고 성인이 된 뒤에는 말하기 쪽팔리지만 뒤늦게 온 중2병에 삶을 그저 냉소적으로 대하며 흘려보냈다.

정말 기억에 남을 정도로 스펙터클하고 다양하게 살았던 건 게임 속에서의 10년뿐이었기에 더 이러는지도 몰랐다.

“조금만 참자….”

그렇게 시현은 식사도 거른 채 방 안에서 두문불출하며 첫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다음 날. 본격적으로 교육이 시작됐다. 수백 명의 인원이 세 그룹 정도로 나뉜 건지 강당에서 봤던 것보다는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들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강의실은 헌터인 교수들의 눈에 학생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보일 정도로 여유 있게 밀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마치 대학교 수업이 이렇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었다. 첫날은 오리엔테이션을 하듯 간단한 소개와 앞으로 진행될 강의 내용에 대해 안내받을 예정이었다.

“야. 이 수업 중요하다는데. 펜 가져왔어?”

“당연하지.”

그때 그새 친해진 건지 원래 알던 이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근하게 수다를 떠는 이들의 대화가 작게 들려왔다.

그리고 이 교육의 목적이 어제 알아본 내용 말고 다른 것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이 한 달간의 교육 시스템은 처음엔 진짜로 일반 각성자들의 안위를 위해 만들어진 건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교육도 평가라는 게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각 길드가 신인을 캐 가는 장소 중의 하나로 그 의미가 조금 퇴색이 된 상태였다.

심지어 마지막 교육이 끝나면 전체적인 교육 평가지가 암암리에 각 길드로 공유가 됐고 퇴소하는 날 차례차례 컨택이 오기 때문에 이 교육에 목숨을 걸고 있는 이들이 많을 거라는 내용은 시현이 저절로 한숨을 내뱉게 할 정도였다.

“자! 자! 조용! 간략히 설명하자면 처음 2주간은 이론과 간단한 실기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남은 2주간은 차례대로 실제 게이트를 처리하는 수행을 하게 될 거예요. 물론 현직 헌터들께서 함께하실 거고 팀별로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간의 교육만 잘 받으면 절대 문제없을 거예요.”

‘하…. 귀찮네.’

객관적으로 보자면 한 달의 커리큘럼치고 꽤 신경 써서 만든 수업들이겠지만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고 싶었던 시현의 입장에는 괜히 빡빡하기만 한 스케줄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그 백발 꼬맹이는 어디 간 걸까….’

시현은 곧 끝내겠다며 인사말을 남기는 ‘게이트의 이해’ 교수님을 흘끗 바라봤다. 그리고 오늘도 푹 눌러쓴 모자를 더 내려 쓰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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