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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13화 (13/146)

#13

“와…. 헌터 협회 돈 많구나.”

쉼 없이 경공을 하며 달려와서 그런지 다행히도 제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한 시현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눈앞에 보이는 화려한 건물들을 훑어봤다.

중앙에 보이는 하얀빛의 10층 빌딩과 그걸 감싸듯 있는 체육관, 용도를 자세히 알 수 없는 여러 건물과 창고들까지.

무슨 작게 축소해 놓은 대학교 캠퍼스를 보는 것 같았다.

“야, 야! 장명훈 왔대! 빨리 뛰어!”

“곧 테스트 시작하잖아!! 왜 이리 굼떠!”

그때 시현의 뒤쪽에서 웅성거리며 따라 걷던 카메라를 든 몇몇 사람들이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우르르 움직이는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몇 번이나 시현을 지나쳐 갔다.

대체 왜 저러나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귀찮음이 더 컸기에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시작 시각에 딱 맞춰 건물 앞에 멈춰 선 시현은 작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니까 자의로 멈추어 선 게 아니라 들어가지 못하고 막혔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이번 테스트에 임하는 각오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장명훈 씨! 실력에 아버님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등급은 어떻게 나올 거라 예상하십니까!”

시현은 질릴 정도로 건물 앞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고막을 때리는 시끄러운 말소리들이 수없이 얽혀 들어 시현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뭐야. 진짜.”

시간이 조금 아슬아슬했다. 테스트 시작까진 겨우 5분을 남기고 있던지라 시현은 결국 천둔형으로 기척까지 없애고 경공을 쓰면서까지 저 시끄러운 인간 장벽을 뛰어넘었다.

“으…. 아직도 귀가 먹먹하네.”

작게 웅얼거리며 간지러운 귓가를 문지르던 시현은 겨우 들어온 조용한 내부에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일반인들 목소리에 내공까지 써서 귀를 보호한다는 게 제가 생각해도 웃긴 일이라 하지 않았지만 사실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맞췄네.’

공지된 시간인 12시 반까지는 대략 3분을 남겨 둔 상태였다.

시현은 문 하나로 순식간에 조용해진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무척이나 심플하고 모던하게 꾸며진 공간 한가운데 위치한 접수대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헌터 협회입니다. 뭘 도와 드릴까요?”

“음. 테스트 때문에 왔는데요.”

“그러시군요. 저 앞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가서 서류 작성부터 해 주시면 됩니다. 실기 테스트는 1시에 시작하니 빠르게 제출해 주세요.”

시현은 물 흐르듯 능숙하게 이어지는 안내를 듣고 조금 빠르게 걸음을 옮겨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류는 꿈을 꾸고 각성한 건지, 어느 계열인지, 등등의 질문이 적혀 있었지만,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 채워 넣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했다. 너무 잘해도 너무 못해도 관심을 끈다는 걸 시현은 충분히 잘 알았기에 웬만하면 그 모든 걸 피하고 싶었다.

물론 애초에 능력을 인정받겠다는 의지도 없었고 귀찮은 게 제일 큰 이유긴 했다.

당연하게도 서류 작성은 순식간에 끝났고 시현은 이상한 기계 같은 것의 안내를 받아 건물 안에 있는 작은 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와.”

공간은 무척이나 컸고 이미 아주 많은 사람이 빼곡하게 좌석에 앉아 있었다.

한 달에 한 번만 진행한다더니 그래서 더욱 붐비는 것 같았다.

시현은 괜히 후드를 조금 더 눌러쓰고는 시장통같이 시끌벅적한 내부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겨우 하나 남아 있는 가장 끝 쪽 좌석에 자리를 잡고 냅다 눈을 감았다. 테스트가 시작하기 전까지 죽은 듯 조용히 있을 계획이었다.

‘제발 아무도 말 걸지 말아라.’

“저기요….”

그러나 그럴수록 일은 반대로 일어나는 게 인생의 순리였다.

시현은 옆에서 들려오는 주눅 든 목소리에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한숨을 겨우 삼켜 내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네?”

“저…. 바, 발을….”

목소리부터 앳돼 보인다고 생각했더니 무슨 초등학생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어려 보이는 소년이 우물쭈물하면서 제 발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현은 자동으로 그 손끝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내렸고 제가 그 소년의 하얗디하얀 가방끈을 밟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미친.

“아. 미안합니다.”

“헤…. 아, 아니에요….”

소년은 하얗게 새어 버린 머리를 눈이 다 가려지도록 덥수룩하게 늘어뜨린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작게 손을 내저으며 가방끈을 들어 올려 돌돌 말아 무릎 위로 올려놨는데 하얀 끈에 적나라하게 박힌 신발 자국이 자꾸만 시현의 양심을 콱 콱 찔러 댔다.

“아니에요. 진짜 미안해요. 제가 세탁비라도.”

“진짜 괜찮은데….”

그렇게 시현과 소년이 서로 괜찮다고 말하며 실랑이하려는 도중. 체육관 가득 에코가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 곧 테스트를 시작할 테니 맨 뒤에서부터 차례차례 움직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순간 실내의 모든 시선이 시현에게로 집중됐다. 재수 없게도 책임자가 말한 맨 뒤가 시현이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숫자 ‘5’가 떠올랐다.

‘제기랄.’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대면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다 전투 상황이었기 때문에 칼질하느라 정신없었던 게 문제긴 했지만 말이다.

시현은 작게 혀를 차며 벌떡 일어났다.

“이따가 얘기해요.”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백발의 소년에게 작게 한마디를 남긴 채 바로 옆으로 위치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었다.

시현의 보폭으로 네다섯 걸음만 걸어도 맞은편 벽에 손이 닿을 정도였는데 그 중심엔 안이 투명하게 보이는 원통형 챔버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누가 봐도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상황에 시현은 망설임 없이 내부로 들어섰고 기계 위에 얹힌 심플한 형태의 원형 구슬을 빤히 바라봤다.

‘뭐 어쩌라는 거야.’

그러나 따로 일러지는 안내도 없었고 자꾸만 흘러가기만 하는 시간에 시현이 후드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뚱하게 서 있었다. 그러자 순간 빨리 진행하라는 듯 낭랑한 목소리의 안내 음성이 어디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구슬 위에 손을 올리시고 끝났다는 안내가 나올 때까지 절대 떼지 마세요.

시현은 자연스럽게 안내 목소리가 신기하단 듯 고개를 두리번대는 척을 하다가 왼쪽에 있는 흰색 벽을 티 나지 않게 빠르게 훑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총 5명.

제가 투시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기의 흐름을 가진 자들이 이쪽을 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뭐 하러 저렇게 몰래 지켜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괜히 누군가가 저를 주목하고 있다는 생각에 행동이 한층 조심스러워졌다.

우우웅.

그때 시현의 손이 표면에 닿자마자 낮게 진동하는 소리가 나며 검은색 구슬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시작으로 아주 희미한 기운 하나가 스며들어 왔다. 상승의 경지에 오른 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을 정도의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기운이었다.

시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그 기운이 돌아다니는 경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혈도들을 지나다니는 것 같긴 했지만, 딱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데….’

시스템은 의외로 단순해 보였는데 일일이 몸을 돌아다니며 기운을 확인하고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 같았다. 이런 방식이라면 속여 넘기는 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그 기운이 팔다리를 거처 단전에 가까이 다가갈 때쯤. 시현은 그제서야 급하게 혈맥을 막아 가며 제 몸을 헤집고 있는 기운의 행로를 비틀었다.

처음 느끼는 신기한 현상에 잠시 정신을 놓느라 적당히 하자는 다짐이 흐릿해져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다.

‘그런데 따지면 다른 외부의 기운인데 어떻게 이렇게 거부감 없이 타인의 몸을 탐지할 수 있는 거지?’

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무척이나 배타적이고 예민했다. 타인이 외부에서 기를 불어넣으면 대부분은 반발하며 튕겨 내거나 몸을 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영약을 쓰거나 정말 조심해서 천천히 행해야 하는 행위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단순히 기계만으로 이게 가능하다니 무척이나 의심스러웠다.

이제는 수상한 기운이 심장을 거쳐 머리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그럴수록 더욱더 이 현상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게이트가 발생한 건 겨우 3년째.

자세한 건 모르지만 대충 지금 아는 시스템만 하더라도 어떤 건 융통성 없이 허접했고 어떤 건 너무 제재가 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아직 완벽하게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 와중에 이것만 이렇게 완성이 돼 있다고?’

그때 시현의 생각이 더는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듯 기계가 날카롭게 삐익 소리를 내며 테스트의 종료를 알려 왔다.

‘반응은?’

시현은 소리를 듣자마자 모른 척 어깨를 돌리며 챔버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벽 뒤쪽에 있는 이들의 기척을 탐지했다.

결과는 다행히도 시현의 의도대로 됐는지 딱히 특이한 반응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흐음…. 생각보다 더 허술하네.’

입가에 작게 미소가 걸렸다. 시현은 더욱 태연한 척하며 다시 한번 기계가 안내하는 다른 공간으로 발을 옮겼다.

테스트 시간은 겨우 5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전체적인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중이었다.

그냥 다 끝났으면 먼저 보내 주지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현은 이 모든 방식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나 다음엔 그 꼬맹이 아니었나? 왜 아직도 안 들어와?”

시현은 이제 강당을 거의 다 채워 가는 인파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백발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숫기가 없어 보여 억지로라도 세탁비든 뭐든 쥐여 주려고 했더니 계속 나타나지 않아 꽤 곤란한 상태였다.

그때 아까 체육관에서 안내하던 책임자가 다시 한번 맨 앞에 나타나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테스트가 모두 완료됐습니다! 이제는 차례대로 임시 숙소를 배정할 테니 나가실 때 워치를 하나씩 받아 가세요.”

“아니 지금 한 사람이 안 왔는…. 어? 숙소?”

이게 무슨 개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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