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음?? 뭐지 뭔가 어제보단 연공이 좀 잘되는 것 같은데…?”
시현은 여느 때와 같이 심법을 연공 하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가부좌를 틀어 앉았다.
그리고 한 줌 남은 내력으로 몇 번의 일주천을 한 뒤 어제와 다른 속도에 의아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분명 어제는 일주천 한 번을 하기도 굉장히 힘들었는데 그사이에 미묘하게 수월해진 게 이상했다.
‘내가 비록 능력치가 줄었대도 10년 동안 무공을 연마했는데 틀릴 리가 없어.’
시현은 곧바로 상태창을 불러들였다.
“스탯.”
그러자 순식간에 반짝하며 반투명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공 12…? 뭐야. 이렇게 빨리…?”
아무리 천마신공이 괜히 신공이 아니라지만 이 정도로 효과가 좋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자신이 사용한 건 백 프로 천마신공은 아니었다.
마교 쪽 심법은 워낙 축기는 빠르나 그만큼 파괴적인 기운이 강해 일정 경지가 되면 다루기가 쉽지 않았다. 절세의 신공이라는 천마신공조차 그 공식을 피해 가는 건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자신도 그곳에서 고생을 얼마나 했던가.
그래서 그 당시 태운이와 시스템의 보조를 받아 조화로움에 특출난 무당의 심법을 조금 섞어 이상한 신공을 만들어 냈었다.
물론 결과는 훌륭했고 저는 이미 늦었지만 태운이에게는 경지가 깊어지기 전에 이 업그레이드 버전 천마신공을 넘겨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초기화된 김에 저도 이걸 사용해 본 거였는데….
“이거 진짜 좋잖아?”
나름 무림인이었다고 내공이 빠르게 느는 걸 보자 순간 손끝이 찌릿하면서 급속도로 기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원래 이뤘던 현경까진 아니더라도 순식간에 화경까지는 다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일단 밥부터 먹자….”
시현은 그제야 먼지 앉은 바닥에서 일어나며 몸을 툭툭 털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머리를 작게 긁적이다 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아니다. 청소부터 해야겠네.”
지금 상태에서 밥을 먹었다간 밥 반 먼지 반으로 살뜰하게 먹어 치울 것 같았기에 시현은 터덜터덜 발을 옮겨 청소기가 있던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음, 생각보단 쉬운데.”
안 해 버릇해서 지레 걱정한 건지 청소기를 돌리자 예전처럼 뭔가를 쳐서 떨어트린다거나 바닥을 찢는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반쯤 일반인으로 돌아간 몸 때문에 조금 지치는 느낌이 들 뿐이었다.
시현은 애초에 귀찮은 일을 싫어했고 밖에서 돌아다니는 걸 질색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냥 내가 그쪽으로 관심도 주지 않고 잘 피해 다니면 될 거라는 생각에 딱히 혼란스럽거나 하지도 않았다.
변화된 삶에 혼란을 느끼고 방황한 건 게임 속에 들어가서 충분하고도 넘치게 겪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였다. 그러니 이대로만 한다면 큰 굴곡 없이 편히 지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미친…. 라면이 이 맛이었지. 와, 너무 맛있어.”
그러나 나름대로 청소를 완벽하게 끝내고 난 시현은 라면을 흡입하며 알 수 없는 얼굴로 핸드폰 화면에 뜬 낯익은 번호를 들여다봤다.
그렇지만, 일단 은혜를 받았다면 몇 배로 돌려주는 게 그 무엇보다 먼저였다.
애초에 제가 집을 비운 게 3년이었다. 분명히 전세 계약도 끝났어야 했고 식자재도 이렇게 멀쩡하게 유지될 수 없는 기간이었다.
그러나 수도도 전기도 끊기지 않았고 라면 같은 비상식량이 채워져 있는 건 특히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누군가 집을 관리한 거겠지… 그리고 내 좁은 인간관계에 이런 오지랖을 부릴 사람은 딱 하나고….’
손끝이 핸드폰 화면을 잠시 맴돌다가 통화 버튼을 꾹 누르고 떨어졌다. 이쪽 시간으론 3년이라지만 제게는 10년 만에 하는 연락이었다.
괜히 손에 땀이 났다. 시현은 급하게 손바닥을 티셔츠에 쓱쓱 닦아 내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신호음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달칵.
-여, 여보세요?! 야 정시현 미친 새끼야!! 진짜 정시현 맞아?!
그러나 신호음이 끊기자마자 튀어나온 걸쭉한 욕설에 시현은 결국 푸스스 웃으며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하정 입 더러운 거 여전하네.”
-하 씨발, 이 또라이가 진짜!!! 여태 뭐 하다가 이제 나타난 건데?! 아니다. 너 어디야,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또 튀면 내가 진짜 꼭 찾아내서 내 손으로 죽인다.
“집이야.”
-…너 딱 기다려….
뚝.
시현은 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급하게 끊긴 전화를 보며 다시 한번 피식 웃고는 식탁 위로 힘없이 엎드렸다.
하정은 초등학생 때부터 같이 지냈던 보육원 동기이자 친구였다. 그녀 외에도 2명의 친구가 더 있었지만, 그들과는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13년 전, 그러니까 제가 갓 성인이 됐을 때는 생각보다 더 차가운 현실에 엄청나게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기였다.
그저 나만의 집을 가지겠다는 꿈 하나에만 매달려 저 자신을 고립시키듯 살았고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천천히 떠나갔다.
그런데도 끝까지 연락을 이어 가 준 게 이하정이었다. 물론 제가 사라진 기간까지 이렇게 챙겨 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하아…. 그때 나 좀 심하긴 했네.”
어차피 저 따위 찾을 사람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자 이상한 안도감과 함께 미안함이 솟아올랐다.
시현은 비어 버린 냄비를 치우며 핸드폰을 슬슬 둘러봤다. 그러자 온갖 광고와 해고하겠다는 화난 연락들 한참 아래로 제가 사라졌단 소식을 들었는지 또다시 연락을 준 다른 친구 두 명의 이름이 보였다.
시현의 얼굴 위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이따가 얘네들한테도 연락해 봐야겠네.”
그때 그렇게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던 시현의 귓가로 키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지는 띠로롱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야! 정시현!”
아주 선명한 빨간색 생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자가 어두운 슈트를 입고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천을 양팔에 두른 채 득달같이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머리 뭐냐….”
“뭐…. 뭐? 아니, 이건 능력 때문에….”
당장 멱살이라도 잡고 짤짤 흔들려는 기세였던 하정이 시현의 웃음기 담긴 말에 순간 멈칫하더니 얼굴을 붉히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아 씨발! 나도 이러고 다니는 거 쪽팔리거든?! 근데 내 능력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각성했나 보구나.’
딱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헌터들이 생겨난다고 했고 능력이란 말이 나왔으니 이하정도 헌터가 됐겠거니 싶었다.
“미안하다. 걱정시켜서.”
“…미친놈. 그게 다냐? 하, 그래. 네가 언제 뭐 구구절절 얘기나 해 준 적이 있긴 했냐. 뭐 범죄라도 지어서 도망 다닌 줄 알았더니….”
이하정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새빨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시현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
“어디 하나 병신 된 건 아닌 것 같고…. 대체 3년 동안 뭘 한 거야?”
“아…. 그냥 어디 좀 가 있었어.”
“넌, 그게 변명이 된다고…. 아니 됐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지 쯧.”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성의 없는 변명이었기에 잠시 어설프게 웃어 보이던 시현은 이어지는 하정의 말에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정우랑 현성이 죽었어…. 그래서 나만 남은 줄 알고…. 후우.”
“뭐…?”
보육원 동기 4명 중 남은 두 명이었다. 비록 나중엔 제 이기심으로 연락이 끊겼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나마 과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친구들이었다. 방금까지도 그 생각을 하며 연락해야겠다 마음을 먹은 상태가 아니었던가.
“폭발 게이트 사고…. 알잖아. 일반인들한텐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인 거. 씨발. 하필 내가 부산에 내려가 있을 때….”
시현은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게이트 사고가 뭔지도 자세히 알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 얘길 하는 하정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했기에 수많은 말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어쨌든 너는 멀쩡한 것 같으니 다행이네. 어차피 말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 그동안 뭘 하고 다녔는지 묻진 않을게. 그러니까 이제 좀 잠수 좀 그만 타고 연락 좀 자주 하고 살아.”
“…이제 옛날처럼 안 그래. 오늘도 먼저 연락했잖아….”
“뭐, 그래 일단 믿어는 볼게. 그리고 나 일하다 뛰어나온 거라 가 봐야 하니까 이따가 전화하는 거 꼭 받아라, 어?”
“그래. 빨리 가라.”
시현이 손을 휘휘 내젓자 주먹을 내보이며 험악한 얼굴을 하던 하정이 이내 피식 웃어 보이곤 다시 몸을 돌렸다.
시현은 터벅터벅 걸어 나가는 하정의 뒷모습을 보다 작게 말을 던졌다.
“그리고…. 고맙다. 나 없는 동안 집 챙겨 줘서.”
“어휴. 네가 그렇게 말없이 나가 죽을 놈이냐. 그리고. 이 희망이라도 없으면 내가 정말 힘들 것 같아서, 그래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라. 나 간다.”
하정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빠르게 읊조린 뒤 금방 문밖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잠시 시끌벅적했던 집 안이 다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시현은 작게 숨을 몰아쉬며 이마를 지긋이 문질렀다.
정우와 현성이의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10년간의 간격은 비록 격한 감정을 빼앗아 갔지만 어쨌든 아직도 나랑은 관련 없다는 핑계로 지금 세상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상대방 상태창 보는 건 나만 가능한 건가.”
시현은 조금 오래된 컴퓨터의 전원을 누르며 푹신한 의자 위로 기운 없는 몸을 쭉 늘어트리고 잠시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