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난 건 딱 3년 전, 자신이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였다.
그때부터 세계 각지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국소적인 기후 변화들이 관측됐고 동시에 연원이 분명치 않은 건물들과 자연환경들이 뜬금없이 나타났다.
위치도 워낙 가지각색이었는데 도시 한가운데인 곳도 있었고 사람이 다니기 힘든 오지 산간인 곳도 있었다.
새로 생긴 곳들은 무언가 막에 막힌 듯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지만, 인간들의 호기심이란 건 누가 억누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정체를 알 수 없음에도 각국은 엄청나게 자본을 투자하며 연이은 실패를 딛고 계속 그 안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했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 사이에서 몇몇 특이한 인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게임이나 소설 같은 것에 몇 년간 끌려갔다가 돌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대중들은 처음엔 그런 허황된 주장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마법부터 무공, 초능력, 게다가 알 수 없는 능력들까지. 각종 콘텐츠에서나 그려질 것 같은 능력들이 진짜로 그들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능력을 지닌 사람들만 그 이상 지역으로 출입할 수가 있었고 안에서 새로운 자원들을 가지고 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세상이 완전히 뒤집혔다. 그 이후엔 처음에 나타난 이상 지역들 이후로 인스턴트 게이트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고 처리하지 못해 터져 나온 몬스터들과 사고들.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갔다.
그때 또다시 그 능력자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런 혼란의 시대에서 그들은 순식간에 선망받는 우상이, 또는 악독한 범죄자가 되어 갔다. 사람들은 그들을 통틀어 헌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꿈 같은 이상 현상 없이 헌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대 헌터 시대가 펼쳐졌다…. 허 참나 만화도 아니고.”
정시현은 이 허황된 말들에 헛숨을 내뱉었지만 내심 자신이 겪은 일들이 아무래도 다 이것과 연관이 있는 듯해 보여 신경이 쓰였다.
빙의라든가 능력의 유무라든가.
“근데 사람들은 시간의 딜레이가 없이 꿈처럼 자고 일어나서 능력이 생겼다는데 왜 나만 3년이란 시간이 흘러 있던 거지?”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하나 있었다. 제게만 흐른 시간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보통 길어 봤자 1~2년 동안만 다른 세상을 겪었다는데 자신은 무려 10년이나 그곳에서 지내지 않았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래도 그만큼 제 실력이 상위권이라는 건 대충 알 것 같았다.
세상이 바뀌어도 돈과 힘으로 이루어진 서열질은 어디든 비슷했으니 뒤집힌 세상에서도 이리저리 치이다 죽는 일은 없을 거란 안심이 들었다.
물론 단전이 굳은 건 이상했지만 제겐 그동안의 경험이 있었다. 시현은 조금만 알아보면 금방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 여기도 상태창이 있긴 있구나. 그리고…. 상태창이 아니라 ‘스탯’이라고 불러야 하고….”
[새로운 사용자를 확인합니다.]
[에러! 에러!]
[예상치 못한 사용자가 추가되었습니다. 재탐색합니다.]
[설정 오류. 능력치를 재조정합니다.]
“컥! 이게, 무슨!”
그때 시현이 핸드폰 화면을 보며 무심코 뱉은 말에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푸른색의 반투명 시스템창이 우르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오한과 손과 발이 덜덜 떨릴 정도의 고통이 순식간에 밀려 들어왔다.
“흐윽! 단전이!”
시현이 고통 어린 신음을 내뱉으며 휙 몸을 굽히고 복부를 움켜쥐었다.
처음엔 전신을 조이는 것 같던 고통이 점점 아랫배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마교인 특유의 어둡고 파괴적인 내력으로 가득 차 있던 단전이 급격하게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그것은 마치 생살이 미친 듯이 난도질되는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이었다.
그 세계에 살면서 남의 단전만 많이 파괴해 봤지 제 것에 피해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순간 나름 자비를 베풀겠다고 제 손으로 단전을 파괴했던 놈들에게 절로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커헉! 아윽!”
시현이 사지를 벌벌 떨며 결국 바닥으로 엎어졌다. 고통과 억울함이 범벅으로 뒤섞이며 눈가로 작게 눈물을 만들어 냈다.
그 상태로 10분이 지났다.
잠시 후 정신을 잃을 듯 말 듯 하면서도 끝까지 고통을 버텨 냈던 시현이 축 처진 채 늘어져 있던 몸을 작게 꿈틀댔다.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졌으나 온몸에 탈력감이 들고 사지에 1톤 추를 매단 것처럼 무척이나 무거웠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 상황이 이해됐다. 결국 자신은 일반인과 마찬가지의 몸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 씨발!!!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서러웠다. 대체 되는 일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거기서 태운이랑 평생 먹고 놀고 띵까띵까 사는 거였는데.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떠나야 했던 것도 시스템의 강요와 협박으로 넘어온 것이 아닌가. 갑자기 혈압이 오르고 울화가 터졌다.
그때 작게 눈앞이 번쩍하더니 익숙한 스탯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정시현 [세상을 가르는 자(S)]
칭호 [멸망의 시작]
체력-10
근력-10
민첩-10
지력-10
내공-10
운-5
“…칭호는 뭐지. 이런 건 없었는데.”
바닥에 널브러진 채 시선만 움직여 상태창을 보던 시현이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저 무척 불길한 듯한 명칭은 대체 뭔지 괜히 입맛이 찝찝해졌다.
게다가 칭호라면 보통 추가 능력치가 붙어 있기 마련일 텐데 아무리 ‘칭호’나 ‘추가 능력치’ 같은 걸 외쳐 봐도 따로 안내되는 것도 없이 딱딱한 글씨만 떠 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곳의 상태창도 예전과 다를 것 없이 허접하고 불친절했다.
결국 몇 번의 시도 끝에 알아보는 걸 빠르게 포기한 시현은 시선을 내려 원래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무척 비루해진 능력치를 슬픈 눈으로 빤히 바라봤다.
S가 붙어 있으면 뭐 하냐고. 스탯이 바닥인데.
“하아…. 운 5는 또 뭐야….”
게다가 시선을 쭉 내리다가 다른 것들보다 미묘하게 낮은 운 수치는 불편한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조절할 거면 그냥 다 10에 맞춰 주든지 마치 놀리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 와중에 내공 수치가 남아 있다는 건 무척 다행이었다.
이곳도 만약 게임 속과 같은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저놈의 스탯 항목 자체를 만들기 위해서도 죽어라 굴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게임 속으로 끌려갔을 땐 뭐 아무것도 모르고 쏟아지는 퀘스트를 따라가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
“으, 생각했더니 또 토할 것 같아….”
시현은 잠시 그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정신적인 타격을 받을 것 같아 급하게 머리를 두드려 대며 회상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힘 빠진 몸을 그대로 늘어트린 채 바닥을 구르던 시현은 곧 몸을 일으켜 가부좌를 틀기 시작했다.
그래도 1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연공 한 덕인지 자세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물 흐르듯 잡혀 갔다.
시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내리감으며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아까 전의 문제로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단전은 부서지거나 망가진 것 없이 무척이나 튼튼한 상태였다.
‘다시 쌓는다. 오히려 잘됐어. 처음에 겪었던 실수를 보완해서 무공을 완성해야겠어.’
처음엔 뭣도 모르는 상태로 퀘스트를 따라 허접한 심법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정파 마교 할 것 없이 머릿속에 수많은 절세 무공들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시스템의 보조가 있었긴 했지만 나름 현경의 초입까지 들어섰던 무인이었다. 그러니 머릿속에 있는 걸 다시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뭔데. 왜 이렇게 어려운 건데.”
30분이 지났다. 분명 몰입하면 며칠이고 무아지경에 빠져 운기가 가능했던 몸이었는데 집중력이 고작 30분에서 끝이 났다.
물론 짐작되는 원인은 많았다.
능력치가 초기화된 것? 아니면 그곳에서 지낸 10년? 아, 원래 세상에서 지나가 버린 3년이라는 시간과의 괴리감 때문일 수도.
순식간에 머리꼭지까지 차올랐던 자신감이 빠른 속도로 꾸물꾸물 떨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현실로 돌아오면서 목표도 잃고 의지도 뚝 떨어진 상태였다. 사실 10년간의 수련으로 인한 습관일 뿐 예전처럼 무공이 강해야만 하는 시대도 아니었고, 당연하게도 포기는 무척이나 빨랐다.
“에이 씨. 모르겠다.”
정시현은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러자 하얀 먼지가 화락 피어올랐다.
“콜록콜록! 아!”
3년이나 방치해 둔 집 안은 생각보다 더럽진 않았지만 먼지가 꽤 쌓여 있는 상태였다.
입과 코 안으로 침범한 먼지들에 연신 재채기해 댄 시현은 누가 하독이라도 하면 단번에 사망하겠다는 너무나 전형적인 무림인 같은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청소부터 해야 할 듯싶었다.
“…항상 태운이가 챙겨 줘서 그런지 막상 뭐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 이거.”
사실 시현은 원래도 집안일에 매우 매우 소질이 없었고, 최대한 청소 빈도를 줄이기 위해 애초에 잡다한 물건도 잘 들이지 않았다.
물론 그곳에 있을 때는 나름 태운에게 맛있는 걸 해 주고 싶어 비싼 재료로 요리를 했던 적도 있긴 했었다.
그러나 그대로 정체 모를 비싼 쓰레기가 연성됐고, 새로 거처를 구했을 땐 방을 꾸며 주겠다고 나섰다가 벽에 구멍을 뚫어 버린 적도 있었다.
나름 노력했으나 그 뒤로 태운이는 자신에게 그 무엇도 맡긴 적이 없었고 당연하게 시현의 상태도 그대로란 뜻이었다.
“흠흠! 뭐 다 집안일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 하아, 태운이 보고 싶다.”
우리 귀염둥이 잘 살았겠지?
중원도 통일했겠다 이제 좀 맛있는 것도 먹고! 여자랑 연애도 하고! 그러면 좋을 텐데.
그 쪼그만 꼬맹이가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라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스승님이라 하며 어른스러운 척을 하던 순간이 문득 떠올랐다.
시현은 그나마 먼지가 덜한 바닥에 드러누워서는 혼자 중얼대다가 간헐적으로 피식피식 웃어 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미소는 사라져 갔다.
“외롭다.”
원래는 혼자서도 잘 살았던 것 같았는데 그 10년이 뭐라고 무섭도록 적막한 집 안이 낯설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강아지 같은 제자가 배가 고프시냐고 물어보며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피곤하시냐고 어깨를 주물러 드리겠다 진지하게 물어 올 것 같기도 했다.
“배고프고 피곤해.”
화경에 들어서고 몇 년간은 에너지 고갈이란 걸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의 상태를 더 버티기 힘들었다.
시현은 어지러운 상황은 뒤로 미뤄 두고 몰려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순식간에 호흡이 낮게 가라앉고 규칙적으로 내쉬어졌다.
띵-
[혼돈의 기운과 미세하게 연결됩니다.]
그때 시현의 얼굴 앞으로 창이 하나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물론 순식간에 깊게 잠들어 버린 시현은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