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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4화 (4/146)

#4

“스승님…?”

똑똑

“스승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사위가 무섭도록 고요했다. 이곳은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 스승님을 위해 반대하는 장로들을 쥐어패 가면서 넘긴 천마의 안가였다.

물론 제 개인적인 의도도 곁들여 있었지만, 표면적인 이유는 그랬다.

그러나 어찌나 아무나 들일 수 없다고 꽥꽥대던지 장로고 뭐고 다 죽여 버릴까 하다가 일 시킬 놈이 너무 없어 참고 참았던 사연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고요한 것이 당연하지 않나.

연태운은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해 보려 했으나 자신의 감이 공간을 휘몰아치는 어두운 불행을 감지하고 비명을 질러 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평소와 달리 너무 조용하고 기척이 없었다. 점점 손이 가늘게 떨리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가기 시작했다.

“저 들어가겠습니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연태운은 급하게 잠겨 있는 두꺼운 문을 한 손으로 두부 자르듯 잘라 냈다.

그러자 나무와 만년 한철 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넓은 방의 내부를 드러냈다.

바닥은 시뻘겠고 방 안엔 기분 나쁜 금속성의 비릿한 냄새가 차 있었다. 그동안 스승과 함께 사선을 헤쳐 오며 지겹게도 느꼈던 색과 냄새였다.

그 위에는 하얀, 아니 이제는 붉어진 장삼을 입고 있는 스승이 끈이 떨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누워 있었다.

“…스승님? 또 장난치지 마십시오.”

정시현은 원래 장난치는 걸 좋아했다. 자신을 놀래 주고 나선 대놓고 반응을 관찰하기도 했고 반응이 없으면 조금 시무룩해졌다.

머리가 크고 나선 딱히 그런 장난들이 놀랍진 않았지만 서운해하는 스승님을 위해 늘 놀란 척을 해 왔었다.

그러니 지금도 분명 그런 장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번 장난은 좀 심하셨습니다. 저 많이 놀랐으니 이제 일어나십시오.”

사실 연태운의 경지에선 사람의 생체 신호 정도는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경의 초입에 있던 고수인 스승님이니 기척을 없애는 것 정도야 쉬울 것이다. 그래야 했다.

“…씨발.”

아니, 사실 제 감각을 속일 수 있는 이는 최소한 이 중원에는 없었다.

연태운은 잠시 손끝을 움찔대다가 단 한 발의 디딤으로 순식간에 튀어 나가 시현을 끌어안았다. 품 안에 몸은 아직 따뜻했다. 그러나 심장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순간 핏빛 같은 붉은 눈동자가 어둑하게 내려앉았다.

“…멋대로 날 살게 만들어 놓고 이젠 이런 식으로 버린다고?”

일어나. 일어나요 제발.

연태운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시현의 몸을 작게 흔들었다. 그러자 툭 소리를 내며 아슬하게 몸 위에 걸쳐 있던 손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동시에 연태운의 세상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

“하아. 하아…. 돌아왔나?”

정시현이 당장 수백 명의 고수와 전투라도 한 듯 힘겹게 숨을 헐떡이며 방금까지도 피를 철철 뿜어 대던 목 언저리를 천천히 매만졌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손끝에 느껴지는 건 피부의 매끈한 질감뿐이었다.

‘몸은 조금 무겁지만 내공도 그대로고….’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시현은 잠시 숨을 크게 몰아쉬며 호흡을 고르고 곧 천천히 굽혀져 있던 몸을 세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제가 서 있는 공간은 조금 낡은 듯해 보였지만 있을 건 다 있는 15평 정도의 낡은 아파트였다.

그제야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는 평생 죽어라 모은 돈과 대출로 겨우 마련한 전셋집이었다.

“와…. 핸드폰…. 거기 있을 때 제일 그리웠던 게 이거였는데.”

태운이를 돌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애들에 대해 아는 게 없는지 처절하게 깨닫던 삶이었다.

‘태운이 키울 때 쓸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현은 순간 제 생각의 모든 시작점이 태운이라는 것에 조금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컴퓨터 책상 옆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

그러나 잠시 충전한 뒤 핸드폰을 켠 시현은 바보같이 의문 어린 음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잠금을 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톡과 문자가 미친 듯이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분명 이렇게까지 연락이 올 일이 딱히 없었는데 이상했다.

먼저 메신저 어플을 켠 정시현은 천천히 맨 위에 톡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내용들에 점점 표정이 굳어 갔다.

“뭐…. 야? 다짜고짜 살아 있냐니 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내용의 메시지들은 얼마간 더 오는 것 같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다 끊겨 있는 상태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메시지들의 발신 날짜들과 핸드폰에 떠 있는 날짜는 대략 3년간의 차이를 알리고 있었다.

“설마, 3년이 지났다고…?”

정시현은 순간 핑 하고 아파져 오는 머리를 부여잡고 옆에 밀려나 있던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10년의 세월은 무척이나 길었기에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자신이 그쪽으로 넘어갔을 때의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시스템창은 제가 없어졌던 시기로 되돌려 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와… 끝까지 나한테 엿을 먹이네.”

시현은 말도 안 되게 흘러 버린 시간을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현실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카드드득!!

“끄아아악!!”

“죽어!!!”

쾅! 쾅!!

“아! 깜짝이야! 뭐야?”

그때 시현이 혼란스러움을 추스를 새도 없이 건물이 아주 약하게 흔들리면서 몇 사람의 처절한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아까와 비슷한 무언가 긁히는 소리, 터지는 소리가 귓가에 어지럽게 틀어박혔다.

시현은 벌떡 일어나서 소음이 들려온 주방 끝에 자리한 베란다로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몸을 휘감아 오기 시작했다.

“씨발, 대출도 한참 남았는데 이게 무…슨 어?”

밖은 멀쩡했으나 멀쩡하지 않았다. 분명 이곳은 낮은 빌라와 아파트들만 모여 있는 조금 낙후된 동네였어야 했다.

그러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낮은 건물들 사이로 근근이 고급 주택들과 수십 층은 될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빌딩이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건물의 뒤에는 방금까지도 보던 저도 잘 아는 동양적인 형태의 건물이 여러 개 모여 하나의 운집을 이루고 있었다.

“지독하게 이질적인 이 광경은 대체 뭐냐….”

그때 다시 한번 요란하게 파열음이 들려왔다. 시현은 앞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려 다시 아래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명의 사람이 이상한 무언가와 전투를 하고 있었다. 아니, 피부색이 파래서 순간 알아보지 못했으나 아무래도 저건 인간인 것 같았다.

“…미친 뭐야?”

아무래도 저들이 방금 터진 소음의 진원지 같아 보였는데 역시나 뒤엉켜 있는 사람들이 번갈아서 악 소리와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를 동시에 내고 있었다.

시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평소 늘 하듯 자연스럽게 내공을 돌려 안력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단전을 가득 채운 내공은 딱딱하게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10년을 자유자재로 쓰던 내공이 움직이지 않자 무척 당황스러워졌다. 이제 내공은 제게 거의 손과 발 같은 신체 일부나 마찬가지였었기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자 갑자기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또 왜 이러는 거야.”

그 후로도 시현은 몇 번을 더 내공을 움직이려 노력해 봤으나 딱딱하게 굳은 단전은 여전했다.

그제야 몸이 좀 무겁고 힘겨운 게 단지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한 여파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러나 내공 문제에 대해 절망하던 것도 잠시. 육탄전을 벌이던 인물들의 변화를 알아차린 시현은 저도 모르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체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잠깐…. 저 사람 지금 손에서 불 같은 걸 쏘고 있는 거야? 어?! 저거 설마 검기야?”

한 남자가 손안에서 불을 피워 채찍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여자의 검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곧 어설프나마 울퉁불퉁한 모양을 갖춰 타올랐다.

손이 조금 떨렸다. 불은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저 검을 둘러싼 뭉툭한 기운은 어설프나마 검기가 맞았다.

하하. 이게 무슨 개 같은 일이야.

내가 10년 동안 게임 속에서 그 좆같은 고생을 하고 태운이조차 그렇게 두고 돌아왔는데 세상이 왜 이래?

시현은 허망해진 얼굴로 조금, 아니 크게 변해 버린 세상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그리고 한참을 창밖으로 세 명의 공방을 지켜보다가 두 명의 합공에 피부색이 이상한 사람의 목이 떨어지고 나서야 그나마 주춤주춤 물러설 수가 있었다.

물론 10년을 허투루 지낸 것이 아니기에 살생이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의 살인은 불법이지 않았나. 이렇게 훤한 대낮에 저렇게 대놓고?

시현은 아직도 자신이 게임 속에 있는 건가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말이 돼? 야, 시스템 나와 봐.”

시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을 지겹게 부려 먹던 시스템창을 불러 봤으나 아무 반응 없는 주변에 작게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현실이 맞다는 건데. 알아볼 방법이….

“아!”

정시현은 순간 여기가 현실이라면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정보를 습득을 할 수 있다는, 예전이라면 당연했던 행동들을 겨우 떠올려 냈다.

벌떡 일어나 충전기를 꽂아 둔 핸드폰이 있는 소파로 걸어갔다. 컴퓨터를 사용하기엔 또 혹시 몰라 껄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미친….”

자주 쓰던 포탈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보는 내용들로 도배가 된 메인이 보였다. 급하게 뉴스들과 로그들을 터치해서 내용을 읽어 보기 시작했다.

-헌터 협회 산하 AFEC팀. 오늘 서울에 나타난 B급 게이트 입성! 과연 결과는?

-A급 헌터 김슬기의 강인함과 아름다움. 화보 촬영 비하인드

-‘프리랜서 헌터들 연합 만든다.’ 전 세계 이목 집중!

-청화 길드. 강원도 신의 광산 3층 공략 완료. 전원 무사 귀환.

“헌터…? 신의 광산?”

아무리 읽어도 대체 한 번에 이해가 되는 기사 제목이 없었다. 시현은 조금 더 인터넷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결론은, 여기는 분명 내가 살던 세상이 맞았지만, 또 아니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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