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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3화 (3/146)
  • #3

    “태운아!!!”

    시현이 쏟아지는 내부 마교인들을 제압한 뒤에 손을 잡은 이들에게 정리를 맡기고 대전으로 뒤늦게 뛰어 들어왔다.

    소음이 없는 것을 보면 분명 전투가 끝났을 텐데 아무리 고개를 돌려 봐도 연태운이 보이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짓씹으며 움직이던 시현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대전의 가장 안쪽, 지붕 한쪽이 베어 나간 듯 빛이 비쳐 들어오는 구석에 힘없이 앉아 있는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승님…. 저는 이제 천마가 된 거겠죠?”

    시현이 그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발을 옮기자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무언가 콱 막힌 듯 나지막한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제 아버지를 죽이는 일이었을 테니 충격이 컸을 테지.

    다른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들었었지만, 시스템은 굳이 굳이 이렇게 연태운의 정신을 갉아먹을 만한 방법만을 제시했다.

    안쓰러웠다.

    아무리 성인이 되고 커졌다지만 저렇게 공허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걸 보면 저 커다란 남자가 아직도 앙상하게 말랐던 10살짜리 아이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시현은 입술을 말아 물고는 힘없이 앉아 있던 연태운을 일으켜 안았다.

    “네가 이겼어. 그것만 생각해.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예. 이제는 우리 둘이서 유람도 하고 편안히 지내요. 스승님”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곧 나는 네 곁을 떠날 텐데. 촉촉하게 젖어 든 목소리를 듣자 머리가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러워졌다.

    결국 시현은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그래…. 그러자.”

    대답과 함께 시현의 몸을 두르고 있던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고 목덜미에 묻고 있던 얼굴이 더더욱 깊게 파고들어 왔다.

    그러나 위로의 시간은 대전으로 들어오는 무리로 인해 금방 끝이 났다.

    시현이 곧바로 몸을 떨어트리고 뒤돌아서자 연태운은 마치 떨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시현의 하얀 상의 끝을 작게 잡아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말랑한 모습을 쉽게 보여 줘선 안 되는 위치였다.

    “안 돼.”

    시현은 단호하게 단단한 손을 떼어 내며 그들의 앞에 연태운을 밀어 넣었다.

    이 계획은 애초에 처음 퀘스트가 내려졌을 때부터 차근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당연히 후처리는 무척이나 빠르게 진행됐고 마교의 특성상 자신들의 머리가 될 인물의 교체를 받아들이는 것도 빨라 분위기는 순식간에 잡혀 갔다.

    물론 연태운의 실력이 그 모든 걸 뒤로 제쳐도 될 정도로 출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젠 내가 빠져 줘야 할 타이밍이겠지.’

    시현은 주먹을 꾹 말아 쥐고는 곧 이루어질 논공행상에서 제 발로 물러섰다.

    물론 연태운은 안 된다고 말렸지만, 시현은 늘 그랬듯 이곳에 더 이상 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던 마교인들의 눈초리를 뒤로하고 대전을 걸어 나오던 시현은 평소 같았으면 득달같이 튀어나왔을 알림창이 보이지 않자 불안하게 퀘스트창을 들여다봤다.

    ‘근데 왜 퀘스트 완료 알람이 안 뜨는 거지?’

    그러나 그런 불안감을 뚫고 작게 기대감이 들었다. 혹시나 갈지 말지를 제가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렇게 작은 불안함을 품은 채 지내기를 며칠. 시현이 가지고 있던 기대감은 일말의 여지도 없이 산산이 조각나다 못해 가루처럼 바스러졌다.

    ***

    시현은 제 눈앞에 떠 있는 말도 안 되는 퀘스트에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system: 종장. 자결하십시오. 당신의 죽음으로서 ‘연태운’은 진정한 천마로 거듭날 것입니다.]

    “시스템도 미치나…? 아니면 바이러스?”

    [system: 당신은 이 퀘스트가 끝나면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글씨뿐이었지만 뭔가 미세하게 느껴지는 신난 것 같은 말투에 절로 화가 나서 눈이 홧홧하게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사이좋게 작별 인사 하고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딴 방식으로 우리 태운이 대가리 후려치고 혼자 가라고? 난 못 해.

    [system: 5분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연태운은 천마가 되지 못할 시 주화입마에 빠져 사망합니다.]

    “뭐??? 이미 천마 된 거 아니었냐고!!!”

    [system: 남은 시간 4분 43초. 연태운은 천마가 되지 못할 시 주화입마에 빠져 사망합니다.]

    “잠깐! 알았어, 알았으니까!”

    시현은 시스템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이를 악물고 허리에 매여 있던 검을 재빨리 뽑아 들었다. 그러나 더 움직이지 못하고 들었던 검을 아래로 힘없이 내려트리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말도 안 돼…. 이별이 이런 방식일 거란 건 말해 주지 않았었잖아.’

    그러나 원래부터 이런 조건을 달고 시작된 일이었다. 이곳에 떨어졌을 때 눈앞에 떠오른 안내창은 마지막 퀘스트까지 완료하면 분명 현실로 되돌려 준다고 했으니까.

    “그렇지만 애를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고…. 하.”

    저 정체 모를 시스템의 안내를 뭘 믿고 마음 놓고 지냈는지 저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래, 그냥 연태운에게 정을 준 제 잘못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이곳에서 지낸 10년 동안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둘이서 자식처럼 동생처럼, 어떨 땐 친구처럼 그렇게 서로만을 의지하며 지냈다. 어떻게 정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솔직히 태운이가 연무성을 처리하고 나서도 한동안 시스템은 별다른 말이 없었기에 돌려보내 준다는 약속을 반쯤 믿지 않았었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애초에 10년을 이곳에서 보냈기도 했고 세계 자체에 정이 들 대로 들어 현실로 가지 못한다는 게 크게 안타깝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나 가면 태운이는 여기서 계속 잘 사는 거 맞지?”

    잠시 머뭇대다 허공에 질문을 외쳤지만 반투명한 창은 나타나지 않았고 무심하게 줄어드는 시간만이 눈앞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오히려 차가운 현실감이 그득그득 밀려왔다. 결국 시현은 다시 한번 입 안에서 욕설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 시스템은 늘 이런 식이었다. 마치 연태운이 끝의 끝까지 몰려 미쳤으면 좋겠다는 듯 굴었다.

    그동안 페널티를 감수하면서도 배신을 하라는 둥 애를 어떻게 하라는 둥 억지스러운 최악의 상황은 피해 다녔지만 이렇게까지 다짜고짜 죽으라는 식의 퀘스트는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우리 애가 너무 바르고 착하게 자란 게 문제인 걸까…?

    “제기랄…. 나 죽으면, 흔적은 빨리 치우든가 해라.”

    그러나 시스템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고요함은 마치 자신에게 볼일 다 봤으니 빨리 죽으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시현은 잠시 눈을 꾹 감고 여러 번 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원래 세상을 돌아간다 해도 이곳에서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떠나기 싫다….”

    잠시 망설이던 시현은 그제야 진짜 속마음을 작게 내뱉었다. 누구도 듣고 있지 않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렇게 넓은 방에 멍하니 서 있던 시현은 퍼뜩 고개를 들고 급하게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무언가 마지막 말을 남길 만한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냥 갈 순 없어,’

    현실로 가면 이 게임 세계가 어떻게 될진 이제 모른다. 그러나 제게 태운이는 이제 단순한 게임 캐릭터 같은 게 아니었고 이렇게 떠나갈 순 없었다.

    스윽-

    시현은 벽 쪽에 붙어 있던 책상에서 작은 종이를 찾았고 같이 있던 작은 붓을 들어 짧은 글을 휘갈겨 썼다. 그리고 다시 방의 정 가운데로 돌아와 서슬 퍼렇게 날카로운 검날을 목에 드리웠다.

    맘 같아선 어디 멀리라도 가서 몸을 숨긴 뒤에 퀘스트를 하고 싶었지만 이제 시간이 정말로 많지 않았다.

    그렇게 평소 같았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온몸을 두르고 있었을 호신강기를 내공을 끊어 내 없앤 시현은 그 외에도 자진을 방해할 만한 어떠한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은 채 긴장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작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접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뭐?! 안 돼! 들어오지 마!”

    “예?”

    개 같은 타이밍에 시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자신은 죽어도 결국 원래 살던 데로 돌아가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겠지만 태운이는 죽으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결심은 힘들었지만, 행동은 빨랐다. 눈을 감고 있던 시현은 결국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자기 목을 베어 냈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붉은색 피가 뿜어지는 장면이 느릿하게 펼쳐졌다. 얼마 전까지도 지겹게도 보던 것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참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달그랑.

    ‘많이도 쏟아지네….’

    결국엔 퀘스트였기에 그런 건지 신기하게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진짜로 죽는 걸 경험하듯 눈앞으로 주마등이라는 게 흘러갔다.

    태운이를 노예 시장에서 빼내 왔을 때. 한참 경계를 하는 듯하다가 처음 자신을 형이라고 불렀을 때. 시스템을 믿고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까불댔다가 제대로 된 초식을 몰라서 망신스러웠을 때. 태운이가 처음 스승님이라고 부르며 구배지례를 했을 때. 아이가 성인이 됐다고 몰래 선물로 줄 영약을 구하러 다니다가 들켰을 때….

    “스승님께서 제 곁에 계신다는 게 참 행복합니다. 평생 함께해 주실 거죠. 제가 뭐든지 하겠습니다.”

    순간 귓가로 들려오는 것 같은 앳된 목소리에 이 와중에도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나왔다. 참 좆같이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래. 조금…. 조금만 슬퍼하다가 행복하게 지내야 해.’

    그렇게 정시현은 멍해지는 정신과 함께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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