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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자 10년 만에 돌아왔더니 헌터란다-2화 (2/146)

#2

1년 전, 태운은 자신도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의 경지에 들어서며 제 스승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말았다.

그는 원래도 남들에 비해 이질적인 면이 있는 사내였다. 말투도 생각도 이곳의 상식과는 조금씩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미묘하게 허공을 본다든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에도 딱히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주위를 맴도는 푸른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상하게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 빛이 나타나고 나면 꼭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곤 했기에 특히 요즘 들어서는 인내심이 한계에 다 달해 가는 상태였다.

‘저따위 실체도 흐릿한 빛이 아니라 제게만 시선을 주시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곧 이루어질 것이다. 그의 반응을 보면 이 일들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아 보였으니. 이제는 방해할 이 없이 둘이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터였다.

“전서응이 왔군. 곧 시작인가….”

그때 시현이 제 머리 위를 몇 번 돌다가 내려오는 독수리의 발목을 보며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마교의 입구는 십만대산에서도 꽤 깊고 험준한 곳에 있었고 더해서 완벽한 기문 진법으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쉬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방금 도착한 전서응에는 이각 뒤에 주변을 두르고 있는 진법의 생문이 잠시 열릴 거라는 말과 함께 어떻게 들어와야 하는지 방법을 간단히 써 놓은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그자를 믿어도 되겠습니까….”

“태운이 너는 아직도 염비광이 의심되는 거야?”

“의심된다기보단…. 스승님께서 너무 그자를 신뢰하시는 듯하여….”

넓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우물쭈물 말하는 태운의 모습에 시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양 뺨을 감싸 꾹꾹 누르고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왜 스승님이 다른 사람을 더 믿는 것 같아서 그래?”

“예?!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냥 장난 삼아 꺼낸 말이었는데 진짠가 보네.

당황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양손을 내젓는 태운에 당장 커다란 전투를 남겨 두고 있는데도 저절로 눈이 접히고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 전투가 끝났을 때의 일이 걱정돼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스승님?”

“어, 어?”

“요즘 조금 이상하십니다.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그럼! 나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긴장했나 보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움직이자.”

시현은 자연스럽게 가까이 붙어 있던 몸을 떼어 내면서 여전히 못 박힌 듯 서 있는 태운을 등지고 돌아섰다.

태운은 자연스럽게 내려가 있던 손을 들어 올려 방금까지 시현의 손이 닿아 있던 제 볼을 느리게 쓸어내리며 작게 미간을 좁혔다.

또 저 어색한 웃음이 제게 숨기고 있는 비밀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 속이 뒤틀리고 꼬이는 것만 같았다.

“가자.”

“…예.”

그러나 미니맵과 종이에 적혀 있던 경로를 다시 한번 확인한 시현이 지면을 박차며 동시에 신호를 주자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 유순한 얼굴을 한 태운이 경공을 펼치며 눈앞에 보이는 등 뒤로 빠르게 따라붙었다.

이제 정말 곧 최후의 전투가 이뤄질 것이다.

그동안 환영적자 염비광과 꾸준히 연락하며 마교의 내부 상황을 조절해 왔기도 했고 혹시라도 도움을 줄 만한 것들을 완전히 잘라 냈기에 결과는 안 봐도 훤했다.

그리고 태운이가 비록 사생아라고는 하나 힘을 숭배하는 마교의 특성상 전투가 끝나고 난 뒤면 무난히 천마의 자리를 잡아챌 게 분명했기에 퀘스트도 완벽하게 완료될 거라 생각했다.

시현은 곧 조금 굳은 듯한 관절을 풀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

태운과 시현이 등을 맞대고 수없이 검을 휘둘렀다. 사방이 비명과 붉은 핏방울, 비릿한 내음으로 가득 찼지만, 그것들을 하나하나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물론 이어진 전투는 별문제 없이 무난하게 이어졌다. 애초에 제일 걱정이었던 진법을 아무런 피해 없이 통과했기 때문인지 내부의 반응이 무척이나 느려 하다못해 제 무기조차 들지 못한 이들도 수두룩이었다. 시현은 오히려 힘을 조금 빼고 움직여야만 했다.

-데엥. 데엥

그때 제대로 된 방비 없이 달려든 수백 명이 태운과 시현의 손에 스러지고 나서야 외부 위협을 알리는 종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기운이 이곳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내부의 조력자들이었다.

“태운아, 너는 대전으로 바로 가.”

“아닙니다. 스승님과 같이 가겠습니다.”

“여기서 갈라지는 게 맞아. 힘 빼지 말고 최대한 온전하게 가서 연무성을 처리해.”

그 순간 시현의 목소리가 더는 반박을 듣지 않겠다는 듯 무척이나 단호하게 터져 나왔다.

이럴 땐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웬만하면 결과는 바뀌지 않았기에 연태운은 입술을 말아 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서야 했다. 자신은 계속 착한 제자여야 했으니까.

“…다치지 마. 알았지?”

그때 등 뒤로 걱정 어린 뜨끈한 목소리가 닿아 왔다. 연태운은 그제야 도톰한 입술을 양쪽으로 길게 늘여 웃고는 앞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연태운의 발끝이 대리석과 화강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소리 없이 디디며 내려섰다.

목적지가 바로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발을 한 번만 굴러도 닿을 듯 가까운 거리였다. 물론 그 주변에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 마교인들을 해결한다면 말이다.

까만색 일색인 인간들은 나름의 방진을 짜서 다가오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쏟아지는 살기는 실체화라도 한 듯 주변 공기를 어지럽게 뒤흔들고 있었다.

하나 급급하게 달려드는 마교인들을 베어 내는 건 하품이 날 정도로 쉬운 일이었다. 연태운은 검은 옷을 입고 우르르 몰려드는 마교인들을 개미 떼 밟듯 손쉽게 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 냈다.

촤악-

순간 검붉은색의 끈적한 피가 흰색의 석재들을 뒤덮으며 사방으로 뿌려졌고 몇 방울이 연태운의 신발 위에 튀어 흔적을 남겼다.

“씨발, 옷에도 피 묻겠네.”

스승님이 사 주신 건데….

기계처럼 검을 휘두르던 연태운이 조금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휘두르던 검을 공중으로 던져 올리며 곳곳에 피 웅덩이가 진 돌바닥에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마치 더러운 것을 피하는 듯 옅은 혐오감이 담긴 태도였다.

그때 위로 띄워졌던 검이 의지라도 가진 것처럼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 마교인 수십을 한 번에 관통했다.

“어검술!!”

아직 두 발을 지면에 붙이고 있던 멀쩡한 놈들이 경악성을 내뱉고는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우, 우리가 이길 수가 없어…. 죽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그중 몇몇은 무릎을 꿇은 채 경이롭다는 얼굴로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철컥.

그 와중에도 우윳빛 검은 가차 없이 앞길을 막고 있던 인간들을 빠르게 처리한 뒤 연태운에게로 돌아왔고, 날아오는 동안 핏물을 허공에 털어 내더니 자연스럽게 검집으로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들어갔다.

연태운은 경공도 쓰지 않은 채 느긋하게 바로 앞에 보이는 대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직 공격할 수 있는 무인들은 꽤 남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여유로운 발걸음을 막는 이가 없었다.

뚜벅뚜벅.

텅 비어 있는 내부에 연태운의 발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중년인이 안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네 어미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냐.”

지위에 걸맞게 굉장히 낮고 중후한 목소리였다. 연태운은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서 의아한 듯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복수? 날 노예상에 팔아먹은 게 그 여잔데.”

“…그러면 대체 왜 이런 식으로 내 천마신교에 해를 끼치는 게냐!”

“흐음. 내가 천마가 되어야 해. 그러길 원하는 사람이 있어서…. 왜 이제라도 양보해 줄래? 그럼 봐줄게.”

연태운이 눈꼬리를 가느스름하게 접은 채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려 요사스럽게 웃어 보였다.

연무성은 세상 어디서도 들어 본 적 없는 경박한 낯선 말투와 허황된 내용에 마치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긴 듯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리고는 바닥을 향해 내려트리고 있던 검을 망설임 없이 들어 올렸다.

6년 전부터 정파 무림 쪽이 뒤집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자신들이 할 일을 대신 해 준다고 고소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최근 3년 전부터는 마교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기 시작했기에 정파가 무너지기 전 빨리 쳐 내지 않은 걸 후회했던 연무성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고작 그거라고?

“후회하지 말거라.”

“뭐 딱히….”

순간 방금까지도 여유로운 듯 훈훈하게 흘러 다니던 공기가 당장이라도 찢어발겨질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핏-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진공 상태인 양 작은 먼지마저 고요하게 내려앉아 멈춰 있던 분위기가 연무성의 작은 움직임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채앵-!! 콰과과광!!

두 개의 검이 부딪히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지면과 기둥을 잔인하게 할퀴고 난도질하며 흩어졌다. 그리고 일반인의 눈으론 따라갈 수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수십 합의 공방이 이루어졌다.

연태운의 검이 빠른 속도로 정면을 향해 내질러지자 몸을 회전시키며 피해 낸 연무성이 물 흐르듯 검을 휘저어 하반신을 노렸다.

‘괜히 천마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게 아닌가.’

단번에 죽여 버리려고 했던 공격을 아슬하게 피해 낸 연무성이 조금 새롭게 보였다.

그러나 연태운의 눈에는 여전히 모든 장면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천천히 튀기는 돌가루들. 하반신을 공격할 거라 알려 주듯 미세하게 움직이는 눈동자와 근육의 떨림. 그 모든 게 어두운 핏빛 망막에 또렷하게 맺혔다.

당연하게도 연무성의 검은 티끌만큼의 피해도 주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쳐 지나갔고, 바닥을 차서 뛰어오른 연태운은 일부러 굴욕감을 주듯 연무성의 칼날을 발끝으로 튕겨 몸을 띄웠다.

채앵! 콰가가강!!

그리고 대전의 가운데에서 뭉쳐 있던 두 개의 인영이 격돌했다. 다시 한번 검붉은 빛을 띤 내기가 튀어나와 서로를 잡아먹을 듯 이리저리 얽히다가 기둥 하나를 부숴 먹고 흩어졌다.

동시에 자욱한 먼지구름이 쏟아졌고 각자의 뒤쪽으로 튕겨 나와 부서진 잔해들 위에 내려선 둘은 잠시간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나 잠시 후 연무성의 입에서 검붉은 핏물이 쏟아지자 곧바로 침묵이 깨졌다.

“…쿨럭. 어찌, 어찌 네 따위가 천마신공을… 게다가 그 나이에 벌써 10성이라니….”

“아, 이거.”

먼저 입을 연 것은 연무성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강한 불신이 담겨 있었지만, 연태운은 그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옅게 볼을 붉히며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쳤다.

“당연히 우리 스승님이 알려 주셨지.”

“크윽, 거짓을 고하지 말거라! 쿨럭! 그건 역대 천마에게만 내려오는, 숨겨진 비급이란 말이다!”

여태까지 큰 변화 없던 연무성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뭐 그럼 아니었나 보지.”

“크윽, 어디서 그런 사기꾼을!”

순간 연태운의 얼굴 위로 떠올랐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말하던 루비같이 반짝이는 눈동자가 무저갱처럼 한없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입부터 잘라 내야겠군.”

무언가를 긁어내리는 것만 같은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지며 넓은 대전 안을 채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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