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9)

  

  

아버지는 검사였다. 

지금은 검찰을 나와 잘나가는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있지만 은퇴하기 전에 아버지는 검사였다. 

나는 건장한 체격에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더 닮은 아들이었다. 

그 두 사람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유일한 아들이 자신보다는 아내를 닮았다는 것이 몹시도 서운한듯 아니...... 

하하하.... 

그래, 아버지는 내가 진정 자신의 친자가 맞는지를 평생도록 의심하셨다. 

어머니만을 닮은 나의 섬세하고 여성적인 외향은 언제나 아버지의 폭행에 주요 메뉴가 되었다. 

화냥년. 남의 씨를 베고 와서 평생 내 뼈골을 빼먹으려는 구미호 같은 년. 

기생충같은 너희 모자가 내 등골에 파고들어 내 인생을 망쳤다. 

빌어먹게도 못생긴 약골들. 내 집안에 그런 종자는 없다. 

하하하... 

나는 끊임없이 출생의 의심받으며 매맞는 어머니를 지켜봐야 했다. 

아니, 나는 가차없는 폭력아래 신음하는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무서운 주먹이 언제 내게 떨어질지 두려워하며 벌벌 떨 수 밖에 없었다. 

한밤중에 울려퍼진 비명소리에 나는 오줌을 지리며 내 방 문고리를 붙잡고 소리없이 흐느껴 우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번도 아버지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거지처럼 비참하게 눈물을 삼키며 부럽지 않은척, 슬프지 않은척 애를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커다란 남자가 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져 버렸다. 

열살이 되고 열 다섯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비리비리한 약골이었고 나는 평생 아버지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나는 게이였다. 

참담한 몸을 하고 있는 주제에 나는 게이이기까지 했다. 

내가 열일곱이 되던 겨울. 

집으로 돌아간 나는 현관문을 들어서자마자 영문도 모른채 구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아버지를 말리던 어머니도 나와 같이 무기력하게 아버지의 주먹과 발길질에 무너져갈 뿐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었고 어느곳에서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내가 아버지에게 매맞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숨도 몰아쉬지 못할만큼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맞아야 하는지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학비를 생활비를 대준다는 이유만으로 아버지는 언제나 제왕처럼 우리 모자앞에 군림하였고 가혹한 폭력으로 우리를 다스렸다. 

기력을 다해 쓰러진 어머니를 껴안으며 내가 내 생애 유일하게 모진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보았을때 나는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보는듯한 아버지의 눈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내가 어째서 이 남자의 폭행앞에 이토록 무기력해야 하는가.... 

[왜 때리시는 겁니까.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러시는 겁니까.] 

그게 아마 나와 아버지의 마지막 대화였을 것이다. 

야비한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아버지는 내방에서 한더미의 찢어진 잡지 나부랭이를 들고와 나와 이미 실신하여 늘어져버린 어머니에게 내팽겨치고는 뱀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내었을 뿐이었다. 

[더로운 호모 새끼. 애비도 모르는 불길한 종자. 내 집에서 나가. 이 더러운 기생충아!] 

나는 내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부정당했다. 

그때부터 내 위로 떨어진 무자비한 발길질과 주먹은 숨이 넘어갈만큼 가혹하게 나를 덮쳤다. 

고통에 못이겨 기절이라도 하면 바늘처럼 차가운 물벼락을 맞고 깨어나야 했고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모진 매질속에 신음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웅크려야 했다. 

그걸 말리는 어머니도 몇번이고 바닥을 나뒹굴며 내팽게쳐져야 했다. 

피를 토할듯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라고 소리지르는 어머니의 음성은 까물까물한 의식속에서 멀어져 갔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맞았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끔찍한 폭력속에 노출되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때는 병원 응급실이었고 그 차가운 엄동설한에 겨우 찌그러진 욕실용 슬리퍼를 맨발에 신고 있는 어머니는 시퍼렇게 멍이든 얼굴을 하고 내 손을 붙잡은채 울기만 하셨다. 

[집에 들어오지 마라.] 

[너는 이제 맞고 살지 마라.] 

[다 잊어버려라. 모진 에미도 잊고 아버지도 잊어버려라.] 

[넌 하늘에서 뚝 떨어진거야.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거야.] 

[영신아... 이제 집에 들어오지 마라...... 미안하다 영신아....] 

큰 사고가 있었는지 아수라장의 전쟁터처럼 시끄러운 병원 응급실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나는 어머니를 지웠다.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아버지의 손에 머리채를 붙잡혀 끌려가시는 어머니는 ‘잊어라. 잊어버려라.’라는 말만을 울음 섞인 목소리로 계속 외치면서 그렇게 내 인생에서 로그아웃 되셨다. 

내 아버지도, 내 어머니도 나는 그렇게 잃어버렸다. 

만신창이가 되어 세상에 없는 천애고아가 되어버린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늑골이 부러져 있었고 대퇴골의 복합 골절로 쇠심을 두개나 박아넣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통증이나 고통같은 것은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 구부러진 다리로 응급실의 혼잡한 난장판을 지나 병원 복도의 공중전화에서 규태에게 전화를 하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다닐때부터 아무리 싫은 기색을 보여도 말상대조차 해주지 않아도 강아지모양 나를 따라다니던 규태의 졸음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며 내 입을 통해 그에게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재림병원..... 도와줘.....] 

처음 내가 정신을 차렸을때 나는 무려 12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아는 그는 여간해서는 웃는 표정을 지우는 일이 없는 남자였다. 

그는 나와 달리 건장한 체격에 남자다운 마스크와 더불어 어린시절부터 검도로 단련된 굉장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남자의 무서운 얼굴은 그때 막 마취에서 깨어난 나를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누구야.] 

나는 석고붕대에 둘러싸여 미이라처럼 있으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려 했다고 했다. 

억지로 진정제를 투여 받고 잠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규태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그는 억지로 웃는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 얼굴로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주면서... 그런데 화가 난 것은 조금도 감춰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목소리를 억지로 감추는게 분명히 드러나는 그런 모양으로 말했었다. 

[너 누구에게 이렇게 맞은거야?] 

그리고 난 또 패닉상태로 발버둥을 쳤다. 

젠장.... 

그게 한 스무 번은 반복된 것 같았다. 

규태는 내가 굉장히 엄격한 집안의 자손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부모님이 아닌 자신에게 연락을 한 것이 집에 알려지면 큰일이 나는 일. 그야말로 문제아 적인 발상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디 몹쓸 양아치 놈들에게 형편없이 얻어맞은 거라는 지극히 민 규태적인 상상을 하였던 것이지만 보호자도 없는 나를 혼자 둘 수 없었는지 계속 내 옆을 지키고 있어 주었다. 

난동을 부리다 진정제를 투여 받은 뒤 잠들고 다시 깨어나 난동을 부리는 일을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한 뒤에 나도 규태도 더 이상은 화를 내거나 분노할 마음의 여유도 육체적인 체력도 남아있지 않게 되어서야 나는 쉬어버린 목소리로 짧은 몇 마디 설명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규태에게 다만 나는 게이인것 같고 그래서 아버지에게 쫓겨났다고 말했지만 그는 나름대로 좋지 않은 머리를 굴려 상황을 지 녀석이 좋도록 잘 해석한 것 같았다. 

나는 내 수술비를 겨우 고등학생이었던 규태가 어떻게 마련했는지 그때는 관심 가지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하였다. 

현실적인 어떤 문제를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거의 사 개월을 입원해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휴학해야 했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때 병원에서 쓴 글이 나의 데뷰작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유 재성 검사의 아들 유 영신이 아닌 작가 유 영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것이 폭력과 굴종에 가지는 나의 트라우마였다. 

상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나를 구원해 준 것이나 진배없는 규태에게 비교적 의존적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규태가 원하는 것도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규태는 -나는 그때까지 규태가 바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 나를 향해 몇번이고 추파를 던진 적이 있지만 규태의 친절은 규태의 자의였고 나는 규태에게 나를 구원해 달라고 종용한 적이 없다는 이기적인 발상으로 규태의 유혹을 번번이 거절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기묘한 연관관계를 가진, 그러나 결코 서로의 영역을 간섭하지 않는 타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내가 규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은 그가 내 숨기고 싶은 치부의 전부를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친부에게서 버림받은 아니, 부정당한 그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람들의 섬에서 떨어져 나와 나만의 무인도에 둥지를 틀고 아무도 내 마음 안쪽으로 들여보내지 않는 것은. 그것은.... 

그것은 사랑 받고 싶어하는 나의 절실한 욕구만큼이나 강하게 버림받은 기억의 퇴락한 철퇴가 내 사고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사랑을 부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관계가 아닌 혼자만의 이기적인 감정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세뇌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일곱번째 하루 

아픈 것을 제외하고 모든 현상에 대해 나는 참을성이 많은 인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고통에도 상당히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하하하..... 

 그래. 

나는 고통에 익숙한 인간이었다. 

고통이 주는 육체적인 데미지에는 익숙한 인간이다 나는. 하지만 고통이 주는 공포는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고 나는 그래서 고통을, 아픔을 못견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나는 지금 막 무언가를 종이 위에 써재끼고 싶은 욕구를 가만히 내버려둔 채 태경이 내 손안에 건네준 뜨거운 머그컵의 느낌을 고스란히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정리하였다. 

오래 묵은 장처럼 그것이 내 속에서 숙성되어 천천히 흘러나올 때까지. 

그것을 채우는 나의 그릇이 점점 커져 가는 여러가지 감정들과 그리고 뽀닥거리는 행복에 주처하지 못하고 터져버릴 때까지 나는 그것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마음먹었다. 

태경은 나를 욕구에 민감하고 참을성이라고는 없는 어린아이쯤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런 나의 일부는 나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나는 적어도 내 일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욕구에 대해서만큼은 가끔 이런 식으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어 뚝이 터지듯 넘쳐흐를 때를 기다릴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맛있어?” 

“응.” 

“매일 같이 먹는데도 그렇게 묘한 표정을 지을만큼 맛있는 거야?” 

“응.” 

“.......” 

태경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끓인 우유의 얇은 막을 오물오물 씹고 있던 나는 어린 강아지가 갸우뚱 고개를 숙이는 듯한 그의 얼굴을 보고는 조금더 인심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맛은 내 기분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 내가 지금 이상한 표정을 짓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꽤나 재미있기 때문.” 

“재미있는 생각을 한다고?” 

“응.” 

“또 음란한 생각같은 걸 하는 거겠지....” 

하!!!!! 

나는 비록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 뜨거운 커피를 태경의 면상으로 집어던질까 말까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질색을 할 만큼 고약한 입 냄새를 가진 주둥이로 여기저기 잔뜩 침을 뭍이면서 별별 야한 짓을 다한 주제에 가만히 있는 날 왜 걸고 넘어가느냔 말이다. 

그 덕에 개운하고 가뿐한 아침은커녕 나른해 지금이라도 당장 베개 속에 머리를 박고 다시 잠들고 싶어지게 만들어 놓은 놈의 입에서 그게 정녕 나올 소리란 말인가!!!!! 

내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태경은 훌쩍 방을 나가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 뜨거운 아침 커피를 사수할 수 있었다. 

고마워해야 하는 문제일까?.....음....... 

뭐 어찌되었건 나는 내게 허락된 유일한 옷가지를 한개 달랑 걸치고는 퉁퉁 발자국 소리를 울리면서 거실로 나갔는데 커다랗고 단단한 것에 정통으로 코를 얻어맞고는 아까운 커피를 몽땅 내 머리위로 던져야 했다. 

나는 놀라면 우악! 하면서 두 손을 번쩍 머리위로 드는 버릇이 있다. 

내가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해도 그것은 내 세포 하나하나에 까지 각인된 본능처럼 나는 언제나 가혹한 폭력 앞에 생명을 지키려는 짐승처럼 머리를 싸안으려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내 행동의 비겁한 리플레이가 너무도 싫었지만 내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한 뒤로는 과격한 행동으로 소실된 컵이라든지 순서가 뒤섞인 서류들을 아까워하는 정도로 마음을 접었던 것이었다. 

컵안에 든 커피는 꽤 뜨거운 것이었고 연한 갈색의 예쁜 물방울을 만들면서 비처럼 쏟아지는 그것들을 나는 멍청히 보고 있었다. 

‘대체 이놈은 여기 왜 서있는거지?’ 

그야말로 현실감각 없이 나는 한참도 전에 나간 태경의 커다란 등이 왜 그때까지 방문앞에 서있는지를 궁금해 하였지만 뜨거운 커피 세례를 받고 난 뒤로는 뭐.... 그야말로 페이드 아웃. 패닉과 히스테리의 증상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아아악!!!!!!!!!!!!” 

얼굴과 오른쪽 어깨. 그리고 두껍고 무거운 컵이 퉁! 하고 부딪힌 허벅지는 화끈한 열감을 주는 처음느낌 그대로 머무르지 않고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고 무딘 고통으로 나를 긴장시켰다. 

워낙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나는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등에 부대껴 오는 나에게 몸을 돌리는 태경의 얼굴과 그것은 순간 심각하게 굳어지는 것을 몽롱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눈물이 찔끔 날만큼 화끈대는, 어디가 더 많이 아픈지를 종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마치 쓰러지듯 비틀대는 나를 태경은 번쩍 안아 들었다. 

그는 사고가 느린 나에 비해 굉장히 성능이 좋은 인공지능 로봇처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안아다 욕조안에 옥빛으로 일렁대는 물속에 그대로 처박아 버렸다. 

사실은 이게 더 화끈한 공포이기는 했다. 

아무리 날이 따땃해 졌어도 사월말? 혹은 오월 초로 짐작되는 계절. 밤새 욕실의 차가운 공기에 얼어붙게 식었을 욕조에 빠지는 것은 심장마비라도 일으키게 충격적인 것임이 분명했다. 

“우앗! 푸!!!! 뭐...뭐 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 이 바보룸펜!!!! 대체 어쩌자고 걸핏하면 뭐든 하늘 위로 번쩍 번쩍 집어던지는 거야! 투포환이라도 던지던 경력이 있는 거야!!!!!” 

나는 나를 욕조에 집어 던지면서 튀어오른 물방울들이 타일 바닥으로 번들번들 반짝거리는 모양을 보며 천천히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냉기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태경은 그런 나의 가엾은 모습은 안중에도 없는듯 어차피 겨우 단추 하나를 채웠을 뿐인 셔츠를 홀라당 벗겨버리고 발갛게 자국을 내고 있는 뜨거운 커피의 잔영위로 물을 끼얹었다. 

커다란 손으로 물을 퍼서 나의 어깨며 목덜미의 작은 붉은 점과 뺨으로 열기를 식히던 그는 내가 듣기에도 진짜로 불쌍하게 들리는 다닥다닥하는 소리에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천천히 미간을 찡그렸고 그리고 찡그린 얼굴로 한참동안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더니 급기야 엄청나게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아씨!!!! 

잠에서 막 깨어난 인간을 차가운 물속에 던져두면 저도 모르게 다닥다닥 이가 부딪히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말이다. 

그게 무슨 세기의 구경거리기라도 하듯 푸하하하하 굉장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팍! 꺽어 몸둘바를 모르는 그를 보면서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분에 겨워 주먹을 꽉 움켜쥐어야 했다. 

“크흐흐흐흐흐흐.... 진짜... 진짜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해보긴 뭘 해봐. 해보려면 밖에 나가. 날도 좋은데 실컷 볼 수 있을꺼다.” 

근엄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몸이 떨리면 목소리도 근사한 바이브레이션이 들어가면서 덜덜 떨리는 음성이 나오게 마련인 법이다. 

결국 나는 근엄하게 어린 태경을 혼쭐내는 것보다는 욕조 안에서 잔뜩 어깨를 껴안은채 진짜로 불쌍하게 들리는 말만 혼잣말처럼 중얼중얼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화상을 입지는 않겠지?” 

“화상은... 몰라도... 동상은... 확실하게...” 

“그래도 모르니까 조금 더 열기를 빼는게 좋을것 같군...” 

“야!!!!!!!!!” 

온몸이 아릿아릿 하면서 저며오는데 내뱉은 불만의 비명소리는 태경의 입속으로 삼켜졌다. 

그러니까 그게..... 

차갑게 식어버린 내 몸에 비해 태경의 입술은 따뜻했고 삼켜버릴듯 덮쳐오는 달콤한 입술을 몇번이고 질리지 않는다는듯 입맞춤은 그리 깊게 하지 않는 태경의 평소 습관과 다르게 질척하고 관능적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뭉글거리고 미끄덩한 혀가 서슴없이 입속으로 들어와서는 나의 혀끝으로 살짝 닿았다가 그것을 휘감기라도 할듯 동그랗게 말아당기고 그러다 또 혀 밑과 예민한 입천정을 간질간질 긁어대는데 나는 홀딱 빠져 마치 매달리듯 그의 입맞춤에 집중해서는 차가운 물의 감촉이든 아릿아릿한 체온 저하의 고통이든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태경에게는 비밀로 그냥 나 혼자만 하는 생각으로 나는 진짜 대책없이 곤란하게도 유혹에 약한 생물임이 분명했다. 

“이제 춥지 않겠지?” 

조 놈에 주둥이!!!!! 

녹아버릴듯 퇴폐적인 입맞춤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눈을 감은채 멀어지는 그의 입술을 아쉬워하는 내 귀를 파고드는 얌살맞은 말이 아니었으면 그는 최고로 멋진 남자임이 분명했다. 

천부경에는 연인이 되는 조건이 55%의 좋은 점과 45%의 미운점. 그러니까 나쁜것을 상회하는 10%의 장점만 있으면 아주 훌륭한 연인이 된다고 했다. 

연인과 원수의 차이점은 단지 그 10%에 불과한 것이라고, 100% 미운 것은 없고 100% 좋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나와있다. 

단군이 전해준 최고의 경전이라는 천부경을 맹렬하게 반발하면서 나는 한 태경 저놈은 99% 미운놈이라고 이를 박박 갈며 그가 내미는 커다란 수건으로 싸늘하게 식은 피부를 닦고는 내내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삐졌어?” 

“......” 

미운 놈하고 말 섞기 싫다. 10%의 혼돈으로 미운지 고운지 구분 못하는 놈 아니고 99% 미운놈하고는 절대로 말 섞기가 싫다. 

그런데 99% 미운놈이라고 생각했던 그 천하에 잡놈에 나쁜 놈에 강간범에 인질범 그리고 숭한 놈이 버럭버럭 옷을 벗기 시작했을때 나는 아연실색 욕실의 타일벽에 등을 딱 붙이고 이게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나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아침, 점심, 저녁으로 꼭꼭 챙겨 먹어야 하는 일용할 양식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해도 벌써 아침 도장을 꾸욱 눌러 찍었으면서 또 왜!!!! 하는 절규에 가깝도록 애통한 절규가 목구멍을 거쳐 막 튀어나오려던 찰라 나는 놈의 어깨와 가슴을 걸쳐 발갛게 달아오른 자국을 볼 수 있었다. 

뜨거운 커피에 데인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명백하게 나의 실수였는데도 놈은 제놈 데어 쓰린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 데어 흉이라도 질까 냅따 욕조 물속에 나를 처박아 넣은 것이 분명했다. 

호감도 상승이라고나 할까? 

99% 미운놈이었던 태경에 대한 마음이 아리까리한 그 10%의 혼돈으로 갸우뚱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제서야 내가 죽어라 철썩 등을 붙이고 있는 타일벽이 모질게도 차갑다는 것을 느끼고는 어깨를 떨며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데었냐?” 

“.....” 

찰박찰박 큰 손으로 차가운 물을 떠서는 제 상처를 적시는 태경의 등을 보면서 나는 꼭 빈정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텅텅 울리는 욕실의 빈 공기 속으로 내 말은 쌍뚱맞게 볼품 없는 투정처럼 그렇게 내 귀에 들려왔다. 

“많이 데었냐?” 

나는 놈이 언제나 가득 물을 받아놓는 욕조 한귀퉁이에 있는 빨간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짙은 음영을 남기며 흉하게 번져 있는 데인 자국이 좀 속 상하기도 하고 해서 나는 여차하면 그 바가지를 들고 놈의 데인 상처에 찬물을 부어 주려고 했었다. 

10%의 혼돈... 제길!!! 

“나가 있어. 또 사고 치지 말고. 대체 당신은 움직이기만 하고 사건 사고야. 제발 가만히 좀 있어줘!!!” 

“!!!!!!!” 

나도 안다. 

나를 향해 등을 보인채로 제 상처 식히기에 여념이 없는 태경의 건장한 뒷모습에다 대고 혀를 댓자는 내밀어 보이면서 심술궂게 인상을 쓰는 것이 서른 다섯이나 처먹어 할짓은 절대 아니라는것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말하는 꼬락서니가 엄청 얄밉지 않은가 말이다.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 일년동안 꼬박 참 성실하고 요즘 청년답지 않게 신중하구나 싶기만 했는데 하루아침에 그냥 흉흉한 야수로 돌변해서는 엄청 무식한 육방망이로 쑤셔대질 않나 아침, 점심, 저녁 그거 못하면 아주 끙끙 앓는 사람처럼 대단히도 성실한 자세로 도장(?)을 찍어대질 않나.... 

남은 기껏 걱정해준다고 하는 말에 저딴 식으로 밖에 댓구를 못하느냔 말이다!!!!!!!! 

나는 굉장히 심술이 났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무게점에 놓여있는 천칭 저울처럼 언제나 작은 바람에도 갸우뚱갸우뚱 몸을 흔드는 감정과 망각이라는 놈에게 온통 휩쓸려 버리고 말았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아니, 단 한순간에도 수백번씩 놈에 대한 미움과 두려움과 미련을 떨치지 못한 동경과 관능이 이리저리 순서를 뒤바꾸며 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아프냐? 꼬오시다! 나쁜놈 프랑켄슈타인처럼 우악스럽게 흉이나 저버려... 우액!!!!!!!!!!” 

제.기.랄....... 

나는 그 순간만큼 나를 한정치산자에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글 쓰는거 밖에 없는 바보 룸펜이라고 폄하하는 규태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분명히 나는 번질번질 젖어있는 욕실 바닥을 보았고 맨발에 그 바닥을 쿵쿵 찧으며 걷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충분히 알 수 있을만큼 세상을 오래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질게 뒷꿈치로 타일 바닥을 쿵쿵 찧으며 화풀이를 하다 쭐딱 미끄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뒷통수에도 눈이 달려 있는 것인지 번개처럼 몸을 돌려 내 어깨를 붙드는 태경이 아니었다면 단단한 타일 바닥에 머리를 찧고는 뇌진탕이라도 일으켰을지 모른다. 

“하아......” 

태경은 식은땀이 주악! 흐르는 내 이마로 머리카락이 찰싹 달라붙을 만큼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잘생긴 미간을 사정없이 구겨버렸다. 

“대체 정말!!!!” 

“......” 

“한시라도 사고 좀 안치고 지나갈 수 없는거야!!!!!!” 

꽥!!! 

내가 잘못한걸 뭐...... 

그런데 머리 깨질뻔 한 것도 나고 죽을 뻔(이건 과장이 좀 심한가?) 한 것도 나인데 지 놈이 왜 바락바락 성질을 부리는 거야 진짜....... 

그런데 나는 날 더러 약간 모자라게 아방한 구석이 있다는 규태의 말은 그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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