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9)

“오늘은 좀 느슨하게 묶었어. 어쩌면 그게 더 견디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철썩!

태경은 무례하게도 벗은 나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내리쳤고 따끔하면서 에로틱한 그 느낌으로 나는 제정신이 들었다.

나는 명백하게 놀림당하고 있었던 것이고 내가 상상하는 관능과 집착과 애욕에 가득찬 관계란 처음부터 태경과 나의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태경은 나를 마음대로 조정하고 유린하면서 즐거움을 탐닉할 뿐이었고 나는 그에게 그런 식으로 휘둘려지며 은밀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부합된 요구에 대한 만족뿐 아무것도 감정적이거나 친밀하지 않았다.

지독한 모멸감이 얻어맞은 엉덩이를 파고들어 뒷머리를 뻣뻣하게 만드는 동안 나는 제 삼자의 눈으로 나를 관찰하듯 냉정하게 지금 처한 상황과 나의 입장이란 것에 눈을 떴고 그리고 비참하게 무릎을 꿇었다.

어째서 내 부모는 나를 이런 몸으로 낳았을까.

완력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머리만 굴릴줄 아는 기형아로 성장하여 왜 나는 이런 음탕하고 난잡한 상상속에서 나를 옥좨는 부질없는 환상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섹스돌처럼 새하얀 비단끈으로 엉덩이만을 조이고 있는 나의 모습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나는 마치 구멍과 사출하는 성기밖에 가지지 않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번잡한 나의 사고는 하지만 태경이 내 몸을 일으켜 세웠을때 경련을 일으키듯 정지해 버렸다.

아랫도리를 벅차게 채우고 있던 딜도는 마치 그대로 빠져나가 버릴듯 부드럽고 유연하게 쑤욱~! 하고 밀려 내려가고 기가막히게 현실적인 그 느낌은 나를 펄떡 뛰어 오를 정도로 자극했다.

그것이 겨우 간뎅간뎅 끄트머리에 걸린듯 위태롭게 나를 찔러대는 동안 나는 똥마련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태경의 커다란 손에 붙들린 두 손을 바르작 거리며 양쪽 발로 동동거리며 미간을 찡그려야 했다.

“어때. 아주 색다른 느낌이지?”

“.....나쁜 새끼.”

이것은 태경의 의도함이 분명하였다.

마치 완전히 빠져나가버림과 진배없이 밀려나간 딜도의 끄트머리는 안타깝게도 내가 그쪽으로 힘을 줄때마다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예민한 입구의 근육을 무작위로 자극하고 있었다.

이를 갈며 내뱉는 내 욕설에 조금도 게의치 않는 표정으로 태경은 차가운 테이블의 유리 상판위에 앉게 했다.

아주 천천히....

내 엉덩이가 차가운 유리면의 섬뜻함에 닿기전에 나의 내부는 쓰윽하고 밀려들어오는 실리콘 딜도의 진입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것은 내가 한번도 현실적인 감각인채 느껴보지 못했던 과격한 삽입. 하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자극으로 나도 모르게 내몸의 중심으로 잔뜩 힘이 들어가게 만드는 조건이 되었고 나는 거기에 반사하는 의미없는 생물이 되는 것 같았다.

“쓰라려?”

“...죽어버려!”

미끄러운 연고로 가득찬 그곳으로 삽입되는 실리콘 딜도가 쓰라릴 이유는 없었다.

태경이 말했듯이 나는 경이로운 상처치유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벼운 찰과상 같은 것은 여덟시간 정도만 지나면 꾸덕꾸덕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예민한 부분. 예를 들어 입 안쪽의 상처라 해도 하룻밤이면 무딘 감각으로 아무는 그런 체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고통에 취약한 대신 그 고통이 오래가지 않는 행운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행운을 이만큼 저주해 본적이 없는 것처럼 나는 차라리 아랫쪽에서 치미는 달콤하고 거부할 수 없는 쾌락이 쓰라린 통증이었기를 바랬다.

적어도 나를 마음껏 희롱하는 태경의 앞에서 이렇게 무너지며 관능에 항복하는 나의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태경은 나의 뒷머리채를 움켜잡은채 단지 한개의 손으로 바지 지퍼를 내리고 내 얼굴 바로 앞에서 그의 거뭇거뭇한 성기를 꺼내었다.

부아질을 내는 것처럼 브리프 속에서 튀어나온 성기는 찰싹하고 나의 뺨을 때리며 끄덕일 정도로 잔뜩 발기해 있었지만 냉혹한 얼굴을 한채 나를 내려다보는 태경의 얼굴은 성적 흥분도, 내가 줄곧 가지고 있는 달콤한 기대감도 없는 고무가면과 같은 것이었다.

“이빨을 세우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충분히 알꺼야. 당신은 제 앞가림은 제법 잘 하는 사람이니까 응? 아픈건 싫겠지? 지금 당장 고 얌실거리는 구멍으로 이걸 삼키고 싶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하지 않겠지만 아직은 제대로 훈련되지 않는 그곳으로 무리해서 이걸 물기 싫다면 얌전히 내 욕정을 받아줘야겠지? 안그래 유 영신 선생?”

“미친....”

“입 벌려.”

내가......

유 영신이 누군가의 성기를 입에 담는 날이 온다는 것.

어떤 이유에서건 내가 그런 짓을 하게 되는, 아니. 하도록 강요받게 되는 날이 올 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빳빳하게 고개를 쳐든채 고고한 학처럼 섹스를 거부하며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의 공포와 체념이 어우러지는 동안 그리고, 내 속에서 수긍과 반발이 맹렬히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태경은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내 코앞에 성기를 들이댄채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홀린듯 그의 성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내가 어째서 이런 짓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나는 어쩌면 마음 속으로 내가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들의 계획과 내가 현실적으로 당하고 있는 범죄의 괴리를 느끼지 못할만큼 마취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계획과 실행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나는 기묘한 자책감과 죄의식으로 껄끄러운 사포지처럼 마음이 괴로운채 나의 수치를 방치하고 있었고 그런 방치와 원망의 기묘한 틈바구니 사이로 몽롱한 현실감각의 사보타지는 내가 수년간 보태고 지켜왔던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기만하고 있었다.

이것은 제대로 설명하기에 너무도 복잡하고 미묘한 내부적인 문제였지만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었다.

홀린듯 얌전히 혀를 내밀어 나는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그렇지만 매끈하게 혀로 감기는 태경의 귀두를 아주 살짝 핥아 보았다.

그것은 싱싱한 해삼을 입안에 넣는 것처럼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운, 기괴한 융모선을 가지고 있지만 더할나위 없이 매끄러운 것이었다.

최상급의 해삼을 혀끝으로만 맛보는 듯한 느낌.

내가 가지는 자긍심과 오만. 억압되고 있다는 반발심이 손바닥 위에 떨어져 내리는 눈처럼 녹아드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최상급의 해삼을 능가해서 나를 유혹하지는 못했다.

단지 혀끝을 대었을 뿐인 시작은 할짝이며 부드럽게 혀로 쓰다듬는듯한 터치로 변해갔고 그런 터치는 내 사고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탐욕스러운 음미로 진화하고 있었다.

내 입술은 한개의 성기처럼 팽팽하게 벌어져 그의 귀두를 삼키고 나의 혀는 점차로 진짜 해삼의 맛과 느낌을 닮아 진득하면서 푸른 진액을 뱉어내는 태경의 성기를 아깝다는듯 핥고 빨아대면서 그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를 삼키고 있는 입술과 형광색의 초록색 실리콘 딜도를 삼키고 있는 항문이 마치 한개의 고리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동일한 리듬으로 수축하고 이완하기 시작하였다.

제멋대로 미끈거리며 움직이는 작고 가는 실리콘 딜도가 쑤욱하고 빠져 나가면 내 입속의 그것도 안타깝게 나를 빠져 나갔다.

내가 태경의 탄탄한 힙을 움켜쥐며 그를 잡아 당겨 숨이 턱!하고 막힐만큼 짓눌려진 기도로 까맣게 사위가 가실만큼 그를 삼키면 뒷쪽의 구멍도 한계까지 실리콘 딜도를 빨아당기는듯 삼켜들었다.

타는 듯한 갈증은 목에서 느껴졌고 안타까운 근질거림은 미추를 통해 전해졌다.

나는 수천마리의 개미들에게 온몸을 뜯기는 것처럼 괴상한 감촉으로 짐승처럼 신음하며 태경에게 몰두하였다. 아니, 나는 내 뒷쪽을 채우는 실리콘 딜도에 집중하였다.

아니 아니...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새파란 태양광선으로 가득차 있는 성애의 방안에 사로잡혀 있었다.

“병신...”

남국의 바다에 몸을 맡긴것 같은 감미로운 흐름에서 나를 잡아 뽑은 것은 쌀쌀맞은 태경의 목소리였다.

소리는 귀로 듣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번개처럼 머리위로 떨어져 내렸고 질척이는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성기를 매몰차게 내 입속에서 잡아채가 아쉽게도 원래 있었던 자리, 검은색 스프라이트 무늬가 있는 브리프 속으로 추렴해 넣은 태경의 크고 단정한 손은 쌀쌀맞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는 비아냥이었고 눈으로 느껴지는 서운함이었다.

길게 늘어진 타액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발정난 개처럼 그의 성기가 사라진 불룩한 자욱만을 응시하는 나에게 태경은 다시한번 매몰찬 빈정거림을 들려주었다.

그제서야 그의 목소리는 소리가 되어 나의 뇌로 전해졌고 그 의미와 수치와 모멸감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역시 어떻게 해도 당신은 난잡한 암컷에 불과해. 뒷구멍으로만 느낄 수 있는 병신. 펠라치오를 하면서 완전히 가버리는 변태!”

태경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태경이 나의 성기를 물거나 핥아주었을때 그것이 너무도 달콤하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태경은 내가 그에게 그렇게 했을때 아주 기분이 나빠지는 것처럼 미간을 찡그린채 퉁명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싸늘한 분노는 내가 제대로 현실을 인정할 수 없게 내 의식의 발목을 붙들어 자꾸만 깊은 망각의 진창으로 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나는 점점 나 스스로를 판단할 수 없는 망아(忘我)의 혼돈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다시 침대에 묶어두고 외출할때까지 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나는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에서 박리된 둔감한 의식으로 허우적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가 어째서 화를 내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기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한채 내방 침대에 나를 묶었고 공포에 질린 어린 새처럼 떨면서 나는 그가 어쩌면 내게 가혹한 폭행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굳어진 그의 안색을 조심스레 살펴야 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심이란 것이 얼마나 우습게도 무너지는지 나는 똑똑히 관조하면서. 그러면서도 그렇게 떨고 있는 나를 열심히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화가 난 태경은 그렇게 나를 묶어둔채 방을 나갔고 뭔가 굉장히 두려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나의 우려는 그가 외출하는듯 커다란 소리를 내며 닫기는 현관의 문소리에 빠직하고 깨어져 내렸다.

바스라진 유리파편처럼 아프게 자만심의 예민한 곳을 찌르는 헛된 공포에 대한 쑥쓰러움은 한참동안 마치 튕겨져 올라가는 공처럼 반발하는 분노를 불러 일으켰지만 나는 웃기게도 혼자 묶인채 화를 내고 있는 내 모습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는 정도까지 진정할 수 있었다.

태경이 화를 내는 것이 내게는 두려운 일이라는 것.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

나는 무력한 인질이었고 태경은 내게 그 어떤 폭력도 행사할 수 있는 잔인한 인질범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강간당했고 무기력하게 그에게 붙들린채 인간으로써 일어서야할 어떤 땅에서도 배척받는 노예처럼 네발로 땅을 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입장에 처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오만하고 건방진 나의 사고는 잠들어 있는 것이 유리했다.

자리합리화는 성공하였지만 어째서 태경이 그토록 화를 내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가슴 언저리가 묵직하게 답답해져 오는 것처럼

나는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인질범의 섬세한 심리상태에 안달을 내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학대받는 노예에 불과하였지만 또한 한 태경이라는 사람의 껍질을 뒤집어쓴 야수에게 매혹당한 이상심리에서 갈등하는 것 같았다.

야수는 날카로운 상아를 들이대며 나를 쉴새없이 쑤시고 짓눌렀으며 그가 주는 잔인한 핏빛 관능의 쾌락에 잠식당한 무기력한 나의 몸은 온전히 혼자의 이상으로 일어서 있던 나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천천히 붕괴시키고 있는 것과 같았다.

서늘한 공기가 가라앉아있는 침실에 혼자 누워서 나는 굉장히 많은 사고와 생각들로 머리를 굴렸지만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성난 태경의 얼굴뿐이었다.

태경은 화를 내고 있었고, 나는 태경의 분노에 동조하며 수면에 떠 흔들리는 갈잎처럼 위태롭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건 참...... 한심한 일이었다.

태경의 분노는 도미찜이라는 결과물이었다.

나는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동에 어이없어 하였고 차가 막히지 않을때도 한시간은 족히 운전해 가야하는 단골 식당에서 공수해 온 도미찜이 아직 따끈한 김을 올리고 있는 것에 몇번이고 도미찜과 태경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그는 화를 내며 집을 나갔고 그리고 도미찜과 함께 돌아왔다.

십자 무늬의 칼집이 난 도미의 껍질은 파삭파삭하게 익어 툭툭 터져나가서는 뽀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달걀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지단으로 만들어 붙인 고명은 홍고추의 실같이 얇은 채와 바삭바삭한 김가루까지 뿌려져 먹음직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태경의 두 손바닥을 합친 것보다 큰 도미 한 마리를 비린내나지 않게 레몬즙과 함께 쪄낸 다음 커다란 후라이팬에 껍질만 살짝 튀겨낸 그것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였지만 그것을 먹기 위해 들여야 하는 번거로움에 지쳐 그리 자주 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화가 난 태경은 그 도미찜과 함께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무슨....”

“계속 먹는게 변변찮았잖아. 나는 음식 같은건 제대로 할 줄 모르니까 찬이라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어찌되었건 당신은 조금 더 체력을 길러야 할 것 같거든?”

“........”

그는 대체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나 하는 것일까?

내 머리 속을 녹슨 대문처럼 삐걱이며 굴러가는 이상한 사고들은 냉큼 식탁의자에 앉은 그의 무릎으로 앉혀지며 정지했다.

태경은 어린 아이처럼 나를 안아 무릎에 앉히고는 김이 오르는 밥공기와 도미찜을 앞에 둔 얄궂은 저녁식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시중 드는 것에 이력이 난 노예처럼 밥과 달콤하고 짭쪼름한 도미찜을 내 입에 넣어주었지만 내게 당혹스러운 것은 머리속에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도미찜과 달달한 밥의 맛이 아닌 내 허리를 둘러 든든하게 나를 받치고 있는 그의 손이 더듬는 나의 비부였다.

오른손으로 유연하게 밥을 떠 먹이면서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내 엉덩이를 점령한채 어정쩡한 나의 자세로 자꾸만 몸 밖으로 미끌어져 나오는 딜도와 그것의 완전한 방출을 막는 비단끈의 경계로 걸쳐진 아슬아슬한 성적 극치감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두개의 얼굴을 가진 악마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운 눈과 웃음으로 내 식사를 도왔지만 내 등뒤로 돌려진 잔인한 욕정의 도구로 끝도 없이 나를 달구어 식욕은 커녕 나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실낱같이 남아있는 다소나마의 자긍심까지 몽땅 뒤흔들어 버리는 짓을 하는 것이었다.

겨우 이틀이었다.

나는 그 증오스러운 딜도를 몸 안에 넣고 겨우 이틀을 지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처음부터 그것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던 노예처럼 밀려나가고 다시 밀려들어오는 말캉거리는 실리콘 딜도의 느낌에 어쩔 수 없이 진홍의 쾌감에 몸을 떠는 내 스스로를 나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웃는 얼굴로 밥을 떠먹여주면서 많이 먹어야 한다며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태경보다 더 살떨리게 증오스러운 것은 그의 이면 잔인한 쾌감으로 나를 조롱하는 인질범 태경에게 길들어져가는 나 스스로인지도 몰랐다.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오가며 다가오는 극감의 공포는 차츰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 바로 여기 태경의 무릎 위에서는 자아를 가지지 않은 인형과 같은 존재인지도 몰랐다.

나는 철저하게 유린되고 무너지면서 내 몸과 내 정신의 괴리 속에 내동댕치쳐진 알량한 룸펜의 꼬장꼬장한 고집 따위를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한채 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예의 역할극을 하는 동안 혀끝이 짜릿할 정도로 익숙하고 자극적으로 나를 휘두르는 도미찜 한접시와 익숙하지 않은, 하지만 거절하기 힘든 달콤한 관능에 나는 홀라당 내 의식과 자존심과 인간으로써 당당하게 홀로 서야하는 긍지를 까먹어버렸다.

빌어먹을......

제대로 맛있는 도미찜을 맛보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의지와 함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달콤한 느낌이 나를 직격으로 관통하는 동안 나는 후둘후둘 몸을 떨며 계집아이처럼 태경의 목에 팔을 걸며 신음했다.

그 낮고 흐린 신음소리가 참으로 재수없다는 생각.

사육되는 강아지처럼 애교나 부리며 바둥대는 내 육신의 비굴함이 조각나듯 비참하다는 생각.

온갖 부정적인 생각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관능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상처 치료를 목적으로 그 안의 내부까지 잔뜩 들어찬 연고는 언제까지고 그 유연함을 발휘하는 것처럼 아무리 애를 써서 내 안을 차지하는 그것을 밀어내보아도 여지없이 태경의 손가락 힘에 의해 쑤욱하고 밀려들어왔다.

끊임없이 계속되어 나중에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나는 처음 가졌던 분노와 공포 그리고 수치스러운 인간의 단단함까지 관능과 치욕으로 얼버무려져 이제는 무엇이 내가 가지는 진실한 감정이고 어떤 것이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주의 욕정인지마저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흐읏....”

“제대로 먹지 않으면 내일부터 들어갈 본격적인 수업에 참여할 수가 없을꺼야. 난 기운 없이 비리적거리는 상대는 싫어.”

의사들도 감탄하는 나의 위장은 겨우 몇일 정도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다고 기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기이한 일이지만 나는 불규칙한 작업의 특성인지 몰라도 마음껏 먹고 나흘 혹은 닷새정도는 겨우 물만 섭취하는 것으로도 쌩쌩하게 내 일을 할 수 있는 괴상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나에게 있어 보통의 범주에 위배되는 괴상함이란 것이 비단 그 위장의 경이로운 능력 뿐이겠는가마는 어찌되었건 황태죽도 마음껏 먹었고 또한 오늘 아침에도 우유와 씨리얼이 잔뜩 들어간 달콤한 허니 씨리얼 죽을 제대로 섭취한 위장은 허기보다는 관능에 열중하는 것처럼 잔뜩 움츠러들며 내 속으로 들어차는 실리콘 딜도의 감촉에 몰두하고 있었다.

“도미찜보다는 더 급한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내 중심으로 스멀거리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발기되는 듯한 성기의 느낌을 안타깝게 갈구하면서 태경의 목을 두르고 있던 손을 내려 그것을 잡으려 하였다.

침실에서 나오며 무방비하게 풀어져 있던 나의 손으로 내 성기의 애타는 욕망을 어떻게든 해소하지 않으면 이대로 온 몸이 불길 속에 타버리는 종이인형처럼 바스라질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력한 나의 노력은 태경의 비웃음으로 저지되었다.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가버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

“....무슨!!!”

부드러운 물결처럼 끊임없이 내 안의 딜도를 움직여주던 태경의 손이 매정하게 내 손목을 붙들고 내가 나를 달래는 일조차 하지 못하게 하자 나는 앙칼을 부리는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항의를 하였지만 모든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태경은 낄낄대고 웃으며 그렇게 나를 안아들고는 다시 침실로 데려갔고 나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관능과 다시 떨어지는 비참함으로 한참동안. 아주 한참동안 온갖 신경질과 히스테리를 부리며 입술을 깨물고 몸을 뒤채어야 했다.

나는 아이처럼 낄낄대는 태경이 화난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런 인질범의 심리상태를 유심히 관찰할 만큼 너그러운 사람도 되지 못했다.

이제 어째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나의 사고 밖에 아카시아나무처럼 헛된 바람에 몸을 뒤챌 뿐이었다.

얼마나 웃긴 일인가.

나는 길거리 창녀처럼 다리를 벌린채 바둥거리며 태경의 손길을 애타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하든 내 손으로 절정에 이르는 방법을 알고 있는 성인 남자였다.

지금껏 수태 많은 밤을 그런 식의 사정을 통해 달콤한 수면으로 들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마리오네뜨처럼 태경의 손길만 애타게 갈구하면서 흐릿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보았고 뭔가 요구하는 듯한 신음소리를 내며 고양이처럼 앙앙거렸다.

다소 이질적인.

그러니까 마치 나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 그런 한심한 몰골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으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태경은 겨우 사흘전 짐승의 눈을 하고 나를 겁간한 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다정하고 부드러운 눈으로 웃으며 나를 쓸어주고 있었다.

그는 마치 내가 예민하게 느끼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망설이지 않고 내 겨드랑이의 촉촉하고 민감한 피부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고, 가련하게 몸을 떨고 있는 작은 유두를 입속에 넣고 부드러운 혀로 몇번이고 굴리며 찌릿하게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격통과 같은 쾌감에 내가 몸을 활처럼 휠때까지 나를 마음껏 어루만져 주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의 하반신을 미이라처럼 두르고 있던 비단끈은 길고 아름다운 백사처럼 침대와 바닥에 걸쳐 하늘거리며 떨어져 있었고 젖어 있는 작은 소리를 내며 내 속에서 빠져나간 딜도의 느낌은 선명한만큼 잔인하기도 했다.

태어날때부터 한번도 그런 방향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내 몸의 어느 부위가 단 사흘동안의 훈련(?)에 가슴이 저릿할만큼 공허한 상실감을 느낀다는 것에 나는 당황했지만 나의 심리적인 상실감은 젖은 장작을 태우는 것처럼 저릿하게 달아오른 머리로 하여금 이성적인 사고를 하게 만들만큼 충격적이지는 못했다.

“하응.... 무슨!”

나는 분명히 딜도가 빠져나간 비워진 공간.

처음부터 빡빡하게 커다란 것으로 채워져야 했던 그 공간의 공허를 미치도록 안타까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응?”

“....흐읏.....”

그나마 나는 아주 실오라기만큼 작은 분량의 이성은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발칙하고 음탕한 입으로 내 구멍을 채워달라는 망발은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다행에 가슴을 쓸어내릴만큼의 이성은 가지지 못했다.

애타게 젖어있는 눈. 그리고 음란한 욕구로 번들거리는 눈시울을 거쳐 떨어져 내리는 눈물방울.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정확하게 상상할 수는 있었다.

나는 거울을 보며 자위하는 것을 즐기는 나르시즘 환자였고 절정에 이르른 내 모습이 얼마나 관능적인지는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섹스를 혐오한다고 해서 내가 어른들의 즐거운 놀이마저 등안시 하는 바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뭔가 굉장한 즐거움이 눈앞에 있을거 같은데 중단된 것이 안타까운 거야?”

“....흐읏...”

냉정한 말을 하면서도 태경은 연신 흥분해 몸을 떨고 있는 나의 유두와 엷은 피부의 배와 옆구리에 끊임없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의 눈을 응시하면서 그가 감추고 있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는 없었지만 나는 이렇게 조롱당하는 내 스스로에 대한 수치로 따닥 따닥 소리를 내며 장작불처럼 불타올랐던 성욕에서는 해방될 수 있었다.

“유 영신. 그런거야? 당신의 음란함을 가득 채워주면서 당신이 예감하는 절정의 순간으로 무리없이 도달하고 싶은거야?”

“..... 흣!”

하지만 상대는 생각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태경은 내 몸의 열기가 사그라들 조금의 시간적 편차의 틈바구니를 기묘하게 찔러들어오며 부드럽고 따뜻한 혓바닥으로 나의 발기한 성기를 낼름 핥아 올렸다.

“흐읏!!!!”

동그랗게 튀어오르는 나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어 주며 태경은 몇번이고 내가 절정의 순간 직전까지 서슴없이 뛰어가도록 내버려두고 또 냉정하게 돌아서 나의 눈을 보며 키득거리고 웃었던 것이었다.

계속, 어쩌면 처음부터 그는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이렇게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만큼 간절히 원하는 것를 나 자신보다 더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쉽게 내게 안겨줄 생각이 없는 것이었다.

태경은 처음부터 내가 너무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적 유린을 그저 장난으로만 생각하는 지도 몰랐다.

“...불러봐.”

“....???”

나는 짜증스러운 느낌으로 잔뜩 미간을 쓰며 도리질 치느라 지나치게 낮아 한숨처럼 들리는 태경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아주 작게 실눈을 뜨고 그를 보았을때 어두어지기 시작한 방안의 흐린 회색아래서 태경의 잘생긴 얼굴과 그 태연한 눈과 섹시한 입술이 눈물에 젖어 일렁이고 있었다.

“뭐?”

“태경이라고 불러봐. 지금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봐. 누가 당신이 원하는 달콤하고 격렬한 쾌감으로 인도할 수 있는지. 당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음탕한 창녀의 기질을 일깨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당신 입으로 말해봐.”

“..... 무슨 소릴....”

태경의 손가락이 젖어 발씬거리는 내 아누스 속으로 부드럽게 밀려들어오는 느낌에 나는 으윽! 하는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질끈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저항없이 밀려들어와 감질맛나는 성감으로 나를 괴롭혔을뿐 아무런 저항없이 빠져나가버리고 말았다.

“내 이름을 불러줘.”

“.....”

뭔가를 부정하듯 굳게 닫혀있는 내 눈안에서 짧은 스팟 라잇이 반짝였다.

그것은 붉은 색인듯 하기도 했고 새파랗게 번들거리는 불길함 같기도 하였다.

섬세하고 민감한 아누스의 입구를 통해 몇번이고 느껴본 태경의 손가락이 마치 제집처럼 함부로 드나드는 동안 그가 나의 내부 어느 한 점과 같은 스위치를 슬쩍슬쩍 건들이는 것처럼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짧은 불꽃은 감은 눈안에서 연신 제대로 빛을 내지 못한채 반짝였다가 사그라 들었다.

“태경아... 라고 불러봐.”

“....흐흣!”

애를 태우는 것처럼....

그 스위치를 건들이면 뭔가 굉장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나는 두렵기도 했고 굉장히 설레기도 하였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알 수 없었던 어떤 공간의 커다란 입구 앞에 서서 한발자국 내딛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여행자처럼 나는 작고 민감한 핵폭탄의 디지털 센서 앞에 서 있었다.

키워드는 태경.

나는 단지 그의 이름을 불러주면 되는 것이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나의 괴롭고 안타까운 결정은 미처 내가 사고하고 판단하기 전에 내 쉬어버린 목소리를 통해 세상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웃! 태경..... 태경아. 제발!”

“...... 응?”

그그그긍... 하는 소리를 내며 몰려오는 예측할 수 없는 종말처럼.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태경의 목소리는 발칙하게도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나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것을 정복하고 온 몸으로 깨우치는 것에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앙큼한 모험자인지도 몰랐다.

“태경아! 제발.... 날 좀 어떻게... 태경아. 한태경!!!!!”

그의 낮은 웃음소리는 쓰고 맵게 들렸지만 그가 부드럽게 눌러준 스위치는 예상하고 있던.

내가 삼십오년을 살아오며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뜨거운 열사의 사막위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극지의 설원위로, 그리고 삼킬듯 불어닥친 높의 해일의 바닷가로 나를 데려가 주었다.

한 태경이라는 스위치의 패스워드가 내 입을 통해 튀어나갔을때 내가 경험한 것을 나는 반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막 내 앞에 펼쳐진 굉장히 정열적인 세상의 첫발자국에 지나지 않았다.

******** 네번째 하루

나는 본질적으로는 이기적인 룸펜에 불과한 인간 말종(이 말은 규태가 내 이기심에 진절머리가 났을때 지껄이던 낮은 욕설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주는 어감을 생강정과의 미묘한 맛처럼 곱씹으며 즐거워했었다.)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내가 새로운 미지의 세상으로 첫 발을 내딛고, 그 세상이 주는 엄청난 충격과 폭풍같은 격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기절해 버린후 새로 밝아오는 아침으로 눈을 떴을때 내 앞에 있던 피곤한 얼굴과 무심을 가장한 세심한 배려에 나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음이 분명했다.

나는 내게 닥친 변화와 본질적 흐름의 역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나라는 것. 단지, 나라는 사물에 대한 기대치만으로 번뜩이고 있는 어린아이의 집요함처럼 긴 더듬이를 세우고 있었을뿐 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일 여유나 이유를 찾지 않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지?”

“.......”

감금되어 있다는 강박관념이나 묶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는 이미 내 의식의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만큼 단순하고 개운하게 내게 처한 곤란한 상황들보다는 내 앞에 놓여진 먹음직스러운 관능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만큼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오늘부터는 당신을 묶지 않기로 했어. 어차피 도망칠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는 게 분명하니까 말이야.”

“......”

여느 아침과는 달리 매우 개운하고 산뜻한 기분이 드는 몸의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런 말없이 태경의 얼굴을 응시하면서 몇번인가 눈을 깜빡이기만 하였다.

그만큼으로도 나의 의사표현은 충분하였다.

나는 이제 더이상 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지 않았고 이렇게 감금되어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지도 몰랐다.

“아침 먹겠어?”

“싫어.”

“...... 커피 줄까?”

“응.”

내게 허락된 옷가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어차피 잠잘 때 옷 따위를 걸치는 유형의 예의바른 인간은 아니었다 나라는 인간 자체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일상. 그런 익숙함 속에서 도드라진 태형의 반말은 내게 짜릿할 만큼 즐거운 파격이었다.

이렇게 속 편하게 누워 있기에는 내가 처한 상황이란게 만만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나는 한정치산자(몇 번을 말하지만 이것도 내 수많은 별명 중에 한가지이다.)의 안일하고 몽롱한 사고방식인채 무기력한 나 자신을 방치해 버렸다.

뭔가 골똘히 생각해서 벗어날 수 있는, 혹은 그런 노력을 통해서라도 벗어나야 할 만큼 절박한 것도 없었고 오히려 내게 매력적이기까지 한 감금 생활에 이미 적응한 것처럼 나는 나른하고 퇴폐적인 무기력에 흠뻑 매료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뜨겁게 끓인 우유. 질 낮은 인스턴트 커피 두 스푼과 지독하게 단 맛이 있는 아이들용 코코아 가루 두세 스푼.

내 아침 커피의 레시피는 물위에 뜬 기름처럼 생경한 이 시간의 풍경의 위에 두둥 떠있는 익숙함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런 것으로 아침을 대신했고 그걸 들고 오는 태경의 커다란 손에 발정했던 것이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손톱과 긴 손가락 뜨거운 머그잔의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있는 팽팽한 힘줄의 알 수 없는 섹시함까지.

그리고 나는 바로 지난밤 그 손가락이 내게 선사한 원폭같은 굉장함이 무심결에 떠올라서는 으윽! 하고 몸을 떨어야 했다.

익숙하게 가지던 정욕이 뜨끈하게 열이 오른 발화제였다면 그 발화제 위로 떨어져 내린 짧고 단절적인 기억이라는 스파크는 내 이성을 단번에 날려버릴만큼 확실하게 성욕을 일깨웠다고나 할까.

나는 내가 언제 어느 시절에 섹스 회피론자에 금욕주의자였냐고 조소할만큼 확실하게 부풀어오른 성기를 의식하면서 씨니컬한 미소를 입가에 걸어야 했다.

이런 망할.... 

나는 진짜로 단순한 놈인 것이 분명했다.

모욕, 강간, 트라우마, 수치, 섹스, 조건 반응 학습...

수없이 머릿속을 헤집는 단어에도 불구하고 내게 태경에 대한 증오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불가능했다.

손바닥이 기분 좋게 따끔거릴 만큼 뜨거운 커피잔을 손에 쥐고 있는 내게는 특히나.

나는 익숙한 맛을 익숙하지 않은 형편으로 음미하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응?”

규태가 언제나 하던 말이 있는데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나란 놈의 모습이란건 굉장히 무방비 해 보여서 보는 사람의 얼굴이 붉어질 만큼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데 그게 이태리어라서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잘난척하는 녀석의 면상으로 손에 잡히는 물건이라면 뭐든지 잡아 던지기는 했지만 내 머리 위에서 한숨처럼 떨어져 내리는 태경의 음성은 규태와 똑같이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라도 발끈해서 물건을 잡아 던지게 만들지는 않는 기분 좋은 것이었다.

스톡홀름 신드롬일지도 몰라. 나는 폭력 앞에 굴복하는 무기력한 인질범의 이상심리에 동화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잠깐 이성적 사고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것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 외에 다른 어떤 작용도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식사를 끝내서는 안되.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야 할테니까.”

“응?”

혀 끝에 와 감기는 우유 껍데기를 오물거리며 나는 눈만 위로 치켜뜨고 태경을 보았다.

뭐... 솔직히 서른 다섯이나 먹어 이런 모양이란게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기는 한 꼬락서니였다.

하지만 텁텁하고 비어있는 속으로 마시는 뜨거운 우유커피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달콤한 맛이니까.....

“대체 그 머리 속에는 뭐가 있는 거지? 당신은 사흘 전에 내게 겁탈 당했고 또 지금까지 줄곧 묶여있는채 모욕당했는데도 그 팔자 편한 어린애 같은 얼굴은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하는 거야. 설마 벌써 이렇게 함부로 취급되어지는 것에 적응해 버린 건 아니겠지?”

근데 부질없이 떠오른 내 머리 속의 상념과 녀석의 목소리를 통해 정확히 전달되는 현실에 대한 묘사라는 것은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확 미간을 구기면서 부드러운 갈색의 우유 커피 위에 떠있는 작은 거품들을 노려보았다.

맞다. 나는 분명히 모욕당하고 있었고 생각하기도 싫을만큼 고통스럽게 강간당했고 그래서 녀석을 미워하지 않으면 안되는 기묘한 구도 속에 억지로 방치된 희생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그렇다고 싫은 감정이란게 마음먹은 대로 두뇌의 감성적 부분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었다.

감정이란 것은 그야말로 이성이라는 녀석과는 따로 노는 제멋대로인 개구리와 같아서 내가 계산하고 판단하는 논리적 사고와 같은 길을 가주는 녹녹한 흐름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이 섹시하고 시건방진 인질범의 설교를 듣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래서.”

“하! 진짜 기가 막히는 구만. 싫어 싫어 하면서 죽이겠다고 이를 갈던게 겨우 어제 아침이었던거 같은데 벌써 녹아버린 버터처럼 흐물흐물해져서 달콤한 냄새 따위나 풍기는 금욕주의자라니......”

“내 사고와 사생활까지 너한테 설교들을 생각은 없어. 니가 묶고 네 마음대로 해버릴 수 있는 것은 내 몸뿐이야. 내 마음까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오산이야. 나는 내 마음 내 감정을 내 뜻대로 내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어. 너를 미워하는 것도 너를 죽이고 싶어하는 것도 내 의지이지 너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아. 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화내는 어린애 같은 짓은 그만하지 그래?”

오케이!

나는 아주 쌀쌀맞게 나오는 내 음성과 의도적인 도발의 단어들에 매우 만족했다.

하지만 아주 재빨리 태경의 눈치를 살피는 비굴한 모습까지는 제어할 수 없었는가 보다.

태경은 한쪽 눈썹을 위로 치켜뜨며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몸만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

“그럼 당신 몸은 내게 넘겨주는 건가? 그러니까 당신 몸은 내가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허락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거야?”

태경의 목소리는 마치 흥분과 같은 감정으로 들떠 있었다.

그런 것 정도는 의식할 수 있지만 내 머리 속에 든 생각이란게 겨우 왜? 하는 의문 정도라는게 태경과 나의 차이일까?

“허락 따위 해줄 까닭이 없잖아. 넌 인질범에 강간범이고 또한 나를 마구 학대하고 있어. 네가 날 놔주면 난 바로 경찰에 달려갈껄?”

그렇게 말을 해놓고 나는 후회했다.

여지껏 그의 심사를 건들이지 않고 잘 있다 왜 나는 저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해서는 내 신세를 볶으려고 하는걸까? 바보.....

“흐음.... 그 정도는 해야 그나마 10살 지능이라도 되는 거겠지. 나는 여태까지 정말 당신이 한정 치산자의 정신 장애자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니까?”

“뭣!”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하는 따위로 나는 침대 옆의 협탁에 머그잔을 쾅! 하고 내려놓았다.

확 튀어 오른 따끈한 커피가 백색의 침대 시트에 불길한 얼룩을 남겼지만 발끈 달아오른 내가 그런 것을 신경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하하하... 꼬락서니 하고는.... 그렇게 잔뜩 발기한 앞을 하고 있으면서 힐끔힐끔 탐나는 것을 훔쳐보는 눈을 하기에 나는 당신이 내게 당한 분한 일 정도는 가볍게 무시해 버리고 본능에 충실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안그래? 이 창녀 같은 인간?”

“!!!!”

태경은 웃는 듯한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암울한 회색으로 가라앉아 마치 모든 것을 태워버린 허무한 잿더미처럼 작은 바람에 흐린 회빛의 먼지를 날리는 것 같았다.

그는 어둡게 가라앉은 침묵 속의 우울함처럼 느린 눈을 한채 나를 비웃고 있었다.

“넌 창녀야. 어쩔 수 없는거야. 니 본능이 그렇게 너를 자극하고 있을껄? 여태껏 제대로 된 섹스의 맛을 보지 못하고 있으면서 되는대로 나는 육체 관계가 싫어. 나는 사랑따위 믿지 않아 하는 말을 지껄였지만 진짜 그걸 맛보고는 도저히 놓아주고 싶지 않은거야. 넌 뼈속까지 음탕한 창녀야.”

선언과 같은 말을 남기고 그는 방을 나가 버렸다.

커다란 등과 단정하게 위로 뻣은 목덜미의 화사한 금빛 잔영을 남긴채 아침속에 내버려진 나는 계속 큰 소리를 내며 닫긴 침실 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강간범과 강간 피해자.

인질범과 인질.

고용인과 고용주.

그는 대체 왜 이런 이상한 관계 속에 우리 두 사람을 대입하려는 것일까.

나의 중심을 달구던 성욕은 그제서야 복잡하게 뒤엉킨 만피스 퍼즐처럼 방바닥으로 어지럽게 흩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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