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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104/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103화

“응……. 나, 나도 이제 다 컸으니까…….”

나는 대답하며 희도를 빤히 쳐다봤다.

의도가 담긴 시선이었다. 최대한 유혹해 보고 싶어서 눈도 깜빡이지 않았는데, 희도한테 먹혔는지는 모르겠다.

희도는 표정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다만,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기는 했다.

그러나 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희도가 곧 눈을 내리깔곤 제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지금의 난 너무 나약해. 네 형을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면…… 자격이 생길 것 같아.”

진짜 미치겠네. 너, 충분히 강하다고!

“내 생각엔 충분히…….”

“글쎄.”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

아니. 내가 무슨 전설의 성검도 아니고, 가장 센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아이템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에 집착하는 거야!

심지어 희도가 정말 나약한 인간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유세림과 호각을 다투는 인간은 흔치 않으니까.

그리고 형은 이에레조차 괴물이라고 칭할 만큼 논외로 치는 등급의 각성자였다. 희도는 아직 열아홉 살이니까, 성인이 되려면 몇 달 남기도 했고.

그의 성취에 비해 너무나도 어린 것이다. 특히 나랑 비교하자면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진 거지?’

그동안 계속 또래의 유세림을 의식해 왔기 때문일까? 물론, 유세림은 희도에 비해 좀 침착하게 전투하는 스타일이긴 하다.

‘그치만…… 그렇다고 희도가 밀리는 건 아닌데.’

희도는 자기 페이스대로 강하게 밀고 나가면 초반부터 승기를 내주지 않는 뛰어난 스타일의 검사다. 기세를 잘 타면 유세림에게도 충분히 승산을 볼 수 있을 만큼.

나는 희도가 이렇게 된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어서,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열심히 말했다.

“유세림, 별거 아니야! 거리 유지만 주의하면 네게 손도 못 써 보고 당할걸? 아까도 초반 기세로 잘 몰아붙였으면 분명 여유롭게 이겼을 거야.”

“…….”

“그리고 형은…… 형은 나이가 너보다 많잖아! 네가 형 나이가 되면 분명히 형을 뛰어넘을 거라고 생각해. 초조해하지 않아도 네 재능은 이미 입증되었잖아.”

희도의 남자 친구가 되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희도 역시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희도는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계속 쳐다보며 말하는 나를, 결국 손을 써서 말렸다.

“그리고, 열아홉이…… 읍!”

“그만해도 돼.”

희도는 큰 손으로 내 입을 막곤, 나를 제가 쓰는 침대에 앉혔다.

나는 지금 희도가 갈등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완강히 거절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약간 침울해졌다. 

그러다가 이쪽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던 이에레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개똥도 쓸모가 있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그래! 이에레한테 물어봐야겠다.’

이 녀석은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의지를 담아, 이에레를 불렀다.

‘이에레!’

“……큭큭. 왜, 주인?”

‘희도, 지금 무슨 생각 중이야?’

“나도 모르지.”

‘뭐? 너, 유세림 생각은 읽었잖아!’

“유세림의 음습한 기세를 읽은 거지, 생각을 읽은 건 아냐. 백희도는 글쎄……. 어쨌든 이대로 가다간 주인, 분명히 차일 거 같은데?”

나도 알아. 아니까, 안 차이려고 너한테 물어본 거잖아!

나는 이에레의 말에 불길한 기분에 휩싸인 채로 희도의 입술을 바라봤다. 이에레의 말대로 정말 허락할 것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R등급 각성자가 자기가 약해서 고백을 거절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냐고. 저 논리대로라면 세상에 커플은 손에 꼽아야 한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희도를 끌어당겼다. 희도는 앉아 있는 내게 순순히 끌어당겨 와 주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에 그만 너무 세게 그를 당긴 탓에 딱―! 하고 이가 부딪혀서 첫 시도는 불발에 그쳤다.

“뭐 하는…….”

희도는 얼떨떨하게 물었고, 나는 살짝 피 맛이 나는 입술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함께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현타를 느끼기 전, 나는 양손으로 희도의 예쁜 얼굴을 붙잡았다.

“잠깐― 읏……!”

그러곤 희도를 덮쳤다. 

키스는…… 뭐랄까, 기억나는 대로 했다. 과거에 희도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대로 말이다. 희도는 잠시 버둥거렸지만, 밀어내지는 않았다. 어깨를 꽉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자, 잘하고 있는 건가…….’

나는 긴장해서 그런 생각만 하고는 계속 희도에게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 천천히 몸을 뒤로 눕혔는데, 그러자 희도가 자연스럽게 내 위에 올라타게 됐다.

돌처럼 단단한 희도의 허벅지가 닿자, 살짝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읏…….”

그 후 살짝 입술을 뗐는데…… 희도는 약간 멍한 표정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텅 빈 듯한 얼굴이라고 할까.

그게 귀여워서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그 얼굴은 금방 사라져 버렸다. 

희도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수치심인지 흥분인지 모를 감정이 뒤죽박죽 떠오르더니, 종내엔 기가 막힌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나는 혀끝에서 느껴지던 반응을 떠올리며 물었다.

“기, 기분 나빴어?”

당연히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 물은 것이다. 만약 기분 나빴다면 곧장 날 떼어 냈을 테니까. 나는 음흉한 마음 반, 혹시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 반으로 희도를 올려다봤다.

“하…….”

희도는 대답 대신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색하지만 깊은 키스를 다시 돌려주었다. 손끝까지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하아…….”

“좋, 좋아해…….”

살짝 틈이 벌어진 찰나를 놓치지 않고 고백했으나 희도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키스했다는 건 좋은 의미지 않을까?

그렇게 키스가 끝나고, 나는 희도를 꽉 끌어안았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희도는 아까보다 자세가 엉거주춤해졌는데, 나에게 허리를 조금 떨어트리면서 난감하다는 듯이 물었다.

“하……. 조금만 떨어져 주면 안 되냐?”

“안 돼! 대, 대답하면 떨어져 줄게…….”

“…….”

희도는 입을 꾹 닫고 고집스런 표정을 짓다가 결국 내 머리를 꾹 눌렀다. 하지만, 힘을 쓰진 않았다.

“주인, 진짜 필사적이구나…….”

어느새 턱을 괸 채 책상 위에 앉아, 상황을 관망하던 이에레가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그깟 조롱쯤이야 지금 중요한 건 아니었다.

결국, 희도가 내게 항복했으니까.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 뭔데?”

“날 왜 좋아하는 거야? 딱히 내가 너한테 잘해 준 것도 없잖아.”

“…….”

“그래서 더 불안했어. 갑자기 반했다고 하니까…… 네가 내 어떤 모습을 좋아하고, 또 어떤 모습에 실망하는지 몰라서.”

고뇌가 담긴 표정. 그 솔직한 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나에게 희도는 과거와 현재로 분리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희도는 지금 겪는 내가 처음이니까……. 나의 태도가 그에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는 게 새삼 충격으로 와닿았다.

‘너, 나한테 정말 잘해 줬어. 갑자기 반한 게 아니라…… 내가 힘들 때마다 네가 항상 날 웃게 해 주고 위로해 주고…….’

“주인, 울어?”

“…….”

나는 눈시울을 붉혔고, 희도는 그 모습을 보면서 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제 소매로 내 눈 밑을 지그시 눌러 주었다.

나는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나한테 잘해 줄 필요 없어, 희도야.”

“…….”

“내가 잘해 줄게…….”

이번엔 내가 지켜 줄 것이다. 이게 대답이 될 수 있을까?

희도는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넌지시 물었다.

“거절하면 울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 수련에 방해될 정도로 크게 울 거야…….”

“…….”

희도는 그런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 * *

“흐흥, 흐흐흥…….”

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실실 미소를 지었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흠. 크흠.”

그리고 형은 연신 헛기침하면서 먼지떨이를 털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이쪽’ 세상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동안 오지 않아, 먼지가 쌓인 집을 대청소하는 중이었다.

형도 형 방을 전부 청소하고는 거실로 넘어왔다. 나는 바닥이 뽀득뽀득해질 때까지 밀대로 미는 중이었고 말이다.

그때, 형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솔아.”

“응?”

“너, 뭐…… 좋은 일이라도 있냐?”

“아…….”

나는 형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정색하면서 말했다.

“아니? 없는데.”

왜냐면 희도와…… 당분간 비밀로 사귀기로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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