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96화
그런데, 유세림이 돌연 내 몸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아까 팔찌를 채운 손목 쪽이었다.
녀석은 팔찌가 본래 내가 하고 다니던 게 아니라, 처음 보는 것임을 곧장 눈치챈 것 같았다.
“……백희도 씨에게 받은 겁니까?”
그러고는 곧장 물어 왔다.
나는 곁에 선 희도의 눈치를 힐끔 봤는데, 희도는 별달리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하여, 순순히 대답했다.
“응.”
“그럼, 제 선물도 받아 주시겠네요.”
“……뭐?”
그런데, 설마하니 이런 전개로 갈 줄이야.
유세림은 내 말을 듣자마자 품에서 둥그런 솜뭉치를 꺼냈다. 희도 역시 유세림이 꺼내 든 것에 주목했다.
“……뭐야, 그건?”
“강력한 저주를 1회 막아 주는 부적 인형입니다.”
“부적 인형?”
“네. 한솔 씨는 저주 계열 각성자이니, 이런 아이템에 관심이 많을 것 같아서요.”
유세림은 그렇게 말하면서 당당히 나에게 솜인형을 건네주었다.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은 인형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받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왜냐면…….
“이, 이거 너무 너 닮지 않았어?”
“글쎄요.”
인형의 생김새가…… 유세림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짧은 은발에 자안, 이것만 해도 유세림을 본뜬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입은 옷도 완전 너랑 똑같잖아.”
“실례입니다. 전 이렇게 얼빵하게 생기지 않았거든요.”
“그건 인형이라서 그런 거고!”
자그마한 인형치고 옷에 달린 단추까지 전부 재현해 낸 것이 아주 고퀄리티의 제품이었다.
솔직히 저주를 막아 주는 아이템이라니까 솔깃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유세림을 똑 닮은 걸 가지고 다니자니 좀…….
철컥.
“역시, 무리…… 야! 너 갑자기……!”
하지만 내가 방심한 사이, 유세림은 인형에 달린 고리를 내가 멘 가방 끝에 멋대로 연결해 버렸다.
“저주를 사용하다 보면 저주에 노출될 일도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유세림은 내 노골적인 거부 반응에도 침착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건…….”
“그러니 받는 게 이득입니다. 설령, 아무리 받고 싶지 않은 상대가 준 거라 해도 말이죠.”
“……뭐?”
“제가 아니라 백희도 씨가 줬다면 받았을 거 아닙니까.”
“……!”
나는 유세림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 조금 놀랐다. 희도 역시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채 유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유세림은 약간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는데…….
“주인, 심장이 빨리 뛰는걸.”
‘웃기지 마……!’
그 모습에 왠지 모를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 놈이 멋대로 연결한 인형을 잡아 뜯는 대신 그냥 한번 만지작거렸다.
푹신한 인형 솜 사이로 뭔가가 들어 있는지 서걱서걱한 게 잡히는데, 그렇게 싫은 감촉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삼키며 유세림에게 말했다.
“……고마워, 유세림.”
그러자 유세림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인상을 썼다.
“뭐야, 그 얼굴은.”
“고맙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습니다.”
“…….”
유세림은 솔직하게 말한 후,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약간 뺨을 붉혔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면서 이상하게 뛰기 시작하는 가슴을 꾹 눌렀다.
* * *
“젠장…….”
“어쩌죠? 이미 커뮤니티에도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벌써부터 이쪽 마켓은 믿고 거른다는 여론이…….”
“이대로 가다간 폭삭 망해 버릴지도 모르겠는데요…….”
한솔과 일행들이 사라진 마켓의 구석에서는 조금 전, 포션 함유량을 속여서 판매하던 상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순히 포션 함유량을 속여서 팔아 부당 이익을 취한 걸 들켰기 때문을 넘어서는, 어떠한 공포가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딸랑, 딸랑―.
그때, 문을 닫아 한산해진 마켓 거리 너머에서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여 있던 상인들의 얼굴에 아까보다 더 선연한 공포가 드리워졌다.
그들은 모두 흩어져선 가게의 문을 완전히 닫고,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들어오기 편하도록 입구는 활짝 열었다.
곧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 시작했다.
딸랑―. 딸랑―.
스윽, 스윽…….
심연을 자극하는 방울 소리와 함께 길고 거대한 무언가가 안개 속에서부터 기어 오기 시작했다.
그 기괴한 생물체 위에는 죽립을 푹 눌러쓴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오, 오셨습니까…….”
포션 상인의 대표 격이자 표유정을 가장 몰아세우던 남자는 아까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아주 비굴한 자세로 길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납작 엎드린 그의 손등 위에는 검은색 불꽃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착.
이어 그 남자의 등을 밟고 내린 두 남자의 머리 색은 무척 붉었다. 바로 이홍과 이혜. 화교의 교주와 그의 동생이었다.
“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상인은 땅바닥에 엎드렸던 몸을 일으키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의 비굴한 태도를 보면서도 교주, 이홍은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은 채 우아하게 말했다.
“그러세요.”
하지만 그의 동생, 이혜는 달랐다. 그는 거대한 괴물 손을 까닥거리면서 금방이라도 상인의 머리통을 쥐어 터트릴 것 같은 기세로 난폭하게 대꾸했다.
“체엣, 별일도 아닌데 오라 가라 부른 건 아니겠지?”
“저, 절대 아닙니다…….”
상인은 오들오들 떨면서도 잽싸게 그들을 안으로 모시라는 눈빛을 던졌고, 다른 상인들은 신호를 받자마자 그 둘을 밀실로 안내했다.
푹―.
온통 붉은 비단으로 치장된 고급스러운 밀실의 중앙. 이홍은 그 상석에 앉아 등을 기댔고, 이혜는 그 곁에 호위하듯 섰다.
이홍은 나른하게 눈을 깔고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도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부복해 있는 모습을 내려다보던 그는, 가까이 다가온 시종이 건네는 물담배를 물고 잠시 담배를 피웠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먼저 그에게 나서서 입을 열지 못했다. 이혜 역시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지나칠 만큼 정적이 흐른 뒤, 이혜는 작지만 모두의 귀에 충분히 들릴 만한 목소리로 서두를 열었다.
“흠……. 교의 현금 수급에 약간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보고했다던데.”
“제…… 제 불찰입니다.”
그때, 아까 형제를 맞이했던 상인 대표가 구르듯 앞으로 나섰다.
상인은 붉은 비단이 깔린 바닥에 이마를 쿵 찧으며 벌벌 떨었다. 이번 일에 나서고 싶진 않았으나, 이미 틀어져 버린 터라 당연히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홍은 ‘책임을 지려는 사람’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는 성격이었다. 상인은 그 사실을 기억하면서, 부디 자신에게도 그의 자비가 내려지기를 바라며 눈을 질끈 감은 채 보고를 이어 나갔다.
“평소처럼 70대 30 비율로…… 포션 함유량을 낮춰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표유정이라는 힐러가 찾아와서 함유량이 턱없이 낮다며 사람들을 선동하더군요.”
상인은 억울하다는 듯이 눈썹으로 팔자를 그렸다. 이홍은 대충 알겠다는 듯 담배 끝을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표유정이라……. 들어 본 적 있어요. A등급 아닌가요?”
“예에…….”
이홍은 피식 웃으며 상인에게 고갯짓했다.
“좋습니다. 자, 그래서 그녀가 날뛰는 동안 뭘 했나요?”
상인은 이홍의 물음에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랐다.
“조, 조용히 수습하려고 했습니다만…….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자들이 끼어들어서…….”
“듣도 보도 못했다? A등급 이상부터는 리스트가 있을 텐데요.”
“네네! 그런데, 정말 모르는 자였습니다. 하, 한솔! 맞아…… 그자의 이름이 한솔이었습니다.”
이홍은 상인의 보고를 들으며 한솔이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분명 자신 역시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인데, 왜인지 묘하게 거슬렸다.
“그래서, 일이 커졌다?”
“네……. 간판을…… 바꿔야 할 정도입니다.”
커뮤니티를 통해 이 일이 확산된 바람에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 당분간은 포션 장사로 이익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 화교에 내는 상납금도 줄어들게 된다. 상인이 간청하는 어조로 이홍에게 말했다.
“다, 다른 루트를 찾아보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달부터는 말씀하신 상납금을 꼭 채우겠습니다, 이홍 님.”
“적당히 해 먹으랬지, 적당히. 응?”
이혜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으나, 이홍은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것과 아직 상인 연합이 쓸모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뭐, 다음에는 이번처럼 또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분은 없겠죠.”
“…….”
사실 포션 함유량을 정말 조금만 낮추고 정상적으로 상납금만 냈다면, 표유정이라 한들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었다.
중간에 해 먹으려는 자들이 몇 명 더 붙으면서 자신이 지시한 것보다 훨씬 함유량을 낮추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니 말이다.
지금 이홍은 거기까지 간파하여 상인들에게 경고한 셈이고, 상인들은 그 경고를 알아듣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홍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인들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이 모든 것은 다 어리석은 우민들에게 화교를 널리 포교하기 위함입니다. 교도들은 이를 잊지 말도록 하세요.”
“네, 넵!”
“오늘 일은 실수로 생각하겠습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가자, 이혜야.”
“형은 너무 무르다니까.”
“……자,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상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홍은 그런 그들은 차디찬 눈으로 훑어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대의를 위함이다. 약간의 잡음쯤은 오래전부터 각오한 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