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95화
“저, 저것 좀 봐…….”
“낫는 속도가 다른데?”
“정말 함유량을 속인 건가?”
웅성웅성.
사람들의 시선이 표유정에게 향했다. 그리고 상점 상인들은 그녀가 주목을 받으면 받을수록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기야, 자칫 잘못하면 장사를 접어야 할 수도 있으니만큼 속이 탈 것이다. 겉보기에는 청순하고 여리게 생긴 표유정이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테다.
‘표유정을 우습게 본 사람들 전부 당하고 나선 저런 표정을 지었었지…….’
어쩌면 표유정은 외모 때문에 항상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해 왔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성격이 된 걸까?’
나는 약간의 실례되는 추측을 하면서 표유정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나에게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응?’
표유정이 나에게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인 적은 있어도, 단 한 번도 밝게 웃어 준 적은 없었기 때문에 일순 당황하고 말았다.
그때, 내 곁에 딱 달라붙어 있던 이에레가 그런 표유정을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이젠 여자도 꼬드길 줄 알고……. 다 컸구나, 주인님.”
‘무슨 개소리야.’
세상 모든 여자를 꼬드길 수 있게 되더라도 표유정만은 아니라고.
왜냐면, 표유정은…….
“한솔 씨?”
유세림을 좋아하니까.
나는 때마침 등장한 유세림을 보면서 놈의 등장에 놀라기보다, 곧 표유정의 표정이 변할 거라고 생각했다. 전처럼 첫눈에 반한 표정으로 바뀔 거라고 말이다.
“흐음.”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표유정의 표정은 약간의 감탄이 어린 것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고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
나는 두 사람의 조우를 보곤 당황하고 말았다.
‘아니, 이게 아니잖아!’
표유정이 처음 유세림을 좋아하게 되는 건 이 시점이 아니었던 건가?
‘아, 하긴. 언젠가 듣기로는 던전에서 구해 줘서 그때 표유정이 유세림한테 반했다고 한 거 같기도 하고…….’
나는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지만, 둘 다 서로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이 나만 쳐다볼 뿐이었다.
“한솔 씨. 여기는 무슨 일이죠?”
심지어 유세림은 한술 더 떠서 표유정을 약간 경계하듯 쳐다보기까지 했다.
나는 반걸음 물러서며 변명하듯 답했다.
“그, 그냥…….”
“내가 곤란을 겪고 있어서 그쪽 일행분이 도와주신 것뿐이에요.”
나를 대신해, 표유정이 뾰족해진 말투로 대답했다.
나는 까칠까칠한 두 사람을 보고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이게…… 맞나?’
둘은 원래 사이가 좋아야 하는데?
‘설마, 내가 개입한 것 때문은 아니겠지?’
“푸하하!”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이에레가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녀석의 웃음소리에 좀 열이 받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이에레가 내 생각에 긍정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은 러브 라인은커녕, 서로를 적처럼 탐색하듯 대화를 이어 갔다.
유세림이 먼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이쪽 포션 상점에서 함유량을 속여서 팔았거든요. 그쪽 일행분 성함이 한솔…… 이랬나요? 아무튼, 한솔 씨가 제 편을 들어 줘서 일이 수월해졌고요.”
표유정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유세림도 뭔가 짚이는 바가 있는지 약간 표정이 굳어서는 품에서 포션 병을 꺼냈다. 아까 표유정이 구매했던 그 포션과 똑같은 포장이 되어 있었다.
“설마, 이겁니까?”
“맞아요. 당신도 이상한 걸 느낀 건가요?”
“회복 속도가 좀 느리더군요.”
둘 다 외모도 뛰어난 데다가 아까부터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번 소란은 더 크게 퍼져 나갔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진짜 속였던 거냐.”
“뭐야……. 여태 믿고 샀는데.”
“환불해야겠어.”
일이 이쯤 되자, 상인들이 뒤늦게 수습하려는 듯 우리에게 다가왔다.
“저, 저기……. 저희 측에서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 하하하하…….”
아까까지만 해도 고압적으로 굴던 상인들이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자, 구경꾼들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표유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착오라고요? 뭐 어쨌든, 저한테 사과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그건…… 죄, 죄송합니다.”
지켜보던 사람들 중 일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이! 나, 환불 받고 싶은데. 방금 산 거라 영수증도 있어!”
“나도.”
“그, 그건 곤란…….”
“나도 환불해 주세요.”
“저두요.”
하지만 이미 환불 러시는 진행되어 버렸고, 결국 우리 일행 것까지 전부 환불 받을 수 있었다.
표유정은 낭패 어린 상점 상인들을 보면서 통쾌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고마워요.”
“……네?”
“도와줘서 고맙다고요. 이름이…… 한솔, 맞죠?”
“네? 네…….”
“그냥 한솔? 나는 표유정이라고 해요.”
얼결에 통성명하게 된 나는 표유정이 내민 손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그녀가 쑥스럽게 웃으면서 가만히 있는 내 손을 잡아끌었을 때에야 그녀의 얇은 손을 붙잡았다.
즉, 악수를 하게 된 것이다.
‘뭐, 뭐냐고 대체…….’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첫 만남과 첫인상에 당황하면서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뭔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녀의 눈웃음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를 설레게 했다. 이건 호감이라기보다는…….
‘이번엔 진짜 내 힘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이러한, 희망.
“이제야 웃네.”
나는 표유정의 지적을 받고 나서야 내가 웃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얼어붙었다.
표유정은 내 표정을 보면서 풉, 하고 또다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필요하면 연락해요. 이래 봬도 저, 꽤 실력 있는 힐러거든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아요.”
“안다고요?”
‘……아차. 말실수했다.’
나는 잠시 굳었지만, 이에레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말했다.
“방금 스킬로 상처 치료했잖아. 바보 주인님.”
“……방금 치료했잖아요. 힐로.”
“아, 맞아. 눈치가 빠르시네요. 호호.”
표유정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제 명함을 건넸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받자, 표유정은 자연스럽게 내 번호를 물어봤다. 그러자 유세림과 희도의 표정이 굳었다.
“010―××××―××××입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녀가 묻는 말에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표유정은 태연히 내 번호를 따 가고, 내 곁에 선 두 사람의 굳은 안색을 보더니 재밌다는 듯이 후후 웃었다.
“파티 조합이 좀 신선하네요. 남자 셋이라…….”
그 말이 뭐가 그렇게 거슬린 건지 두 사람은 표유정을 쳐다봤다. 표유정은 그런 둘에게 밀리지 않고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근데, 저는 A등급이 아니에요. 그보다 한참 낮은 C등급입니다.”
그녀의 기대를 재빨리 저버리고자 말을 덧붙였다.
나중에 가서 그녀가 내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막말을 하거나 실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의외로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반문했다.
“딱히 등급이 궁금하진 않았는데요. 혹시, 그게 신경 쓰여서 움츠러들었던 거였어요?”
“……그게, 뭐…… 아무래도.”
이 마켓 자체도 A등급 이상이 게이트를 열어 줘야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만큼 착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말한 건데……. ‘이번’ 회차의 표유정은 착하게도 말했다.
“별로 신경 안 써요……. 뭐야. 귀엽네요, 한솔 씨.”
“네?”
“그거 때문에 그런 거였구나?”
표유정은 무슨 착각을 한 건지 볼을 붉히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등급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절 위해서 용기 있게 나서 준 거네요. 더 감동이에요.”
“…….”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거였어?
나는 이전 회차에서 매일 무능하다고 구박했던 표유정과 이번 회차에서의 표유정이 정말 같은 사람이 맞는 건가 싶어 놀랐으나,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가 좋게 평가해 주는 게 싫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 이제 용건은 끝난 건가.”
“고마움을 표시하는 건 금전적인 게 가장 좋지 않을까요? 그냥 말보다는요.”
희도와 유세림, 두 사람이 싸늘하게 말하면서 나와 표유정 사이에 섰다.
명백하게 가로막는 행동이라 아무리 둔한 나라도 둘이 지금 누구를 경계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표유정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녀는 헛웃음을 지으며 두 남자를 쳐다보더니 나를 향해 윙크했다.
“참 웃기는 사람들이네. 어쨌든, 연락해요. 기다릴게요.”
“……네.”
면전에 대고 연락 안 할 거라고 말할 순 없어서 그렇게 대답한 것뿐이었는데……. 내가 표유정에게 연락하겠다고 하자마자 유세림과 희도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표유정은 득의양양한 얼굴이 되어 게이트를 열고 사라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나에게 득달같이 물었다.
“저 여자가 마음에 듭니까?”
“그렇게 좋냐?”
“……아니,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바보들이냐.”
이번만큼은 이에레의 핀잔에 동감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