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93화
“아무래도 모드가 두 가지인 것 같은…….”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다행인 건지…….”
[불살의 반지]를 얻고 난 뒤, 우리는 보스 방을 벗어나 던전을 빠져나왔다. 그러고 나서 좀 지루한 회의가 이어졌다.
그대로 남아서 전투를 지속했어야 했을까? 하는 의견을 가진 쪽은 소수였다.
던전 중반부터 많은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에, 풍겨 오는 분위기가 남달랐던 보스 몬스터와 결전을 벌였다면 몇 명이나 살아남았을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던전의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다는 것은 여전히 불안 요소로 남아 있기는 했다.
성훈 형은 나중을 기약하자며 던전을 잠정 폐쇄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호승심 강한 각성자들까지 말릴 수는 없겠지만, 경각심을 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정보 공개 수위는 그렇게 정하도록 하지요.”
남은 사람들도 성훈 형의 말에 동의하면서 회의는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나는 회의하는 내내 구석에 앉아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주목 받지 않는 편이 편했다.
이에레가 그런 내 옆에 찰싹 붙어서는 작게 속살거렸다.
“주인의 파티가 운이 굉장히 좋았어. 살생의 마타라가 눈을 떴으면, 여기 절반은 죽었을 거야.”
‘알았으니까, 징그러운 소리 좀 그만해.’
나는 누가 마검 아니랄까 봐 사람 죽는 소릴 아무렇지 않게 떠드는 모습에 질려 속으로 말했고, 녀석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불살의 마타라에게서 얻은 반지입니다.”
그리고 성훈 형은 혼자 폭포로 헤엄쳐 가서 얻은 반지를 파티에게 공개했다.
누구든 아이템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오픈해 둔 상태였기 때문에, 나 역시 반지를 슬쩍 만져서 정보를 볼 수 있었다.
“……!”
그리고, 반지의 정보를 보자마자 표정이 굳고 말았다.
[불살의 반지 (미스터리)
―스킬1: 현재 조건을 만족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스킬2: 현재 조건을 만족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스킬3: 현재 조건을 만족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스킬4: 현재 조건을 만족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스킬5: ‘시간의 펜던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설마……!’
다른 스킬은 잠겨 있었지만, 마지막 스킬에선 표정 관리를 할 수 없었다.
시간의 펜던트라니.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형이 나에게 남겨 주었던…….
“주인, 진정해.”
이에레의 말에 정신이 들었고, 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키지 않는 손을 어쩔 수 없이 내리고 반지에서 떨어졌다. 그러곤 내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이 [불살의 반지]를 만져 보고 감탄하는 것을 쳐다봤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설마, 또다시 과거가 반복되는 걸까?
성훈 형은 이 반지로 [시간의 펜던트]를 찾고, 그걸 나에게 남기고, 나는 또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 와, 나도 모르게 휘청이며 근처에 있는 벽에 손을 짚었다. 이에레가 걱정스럽게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솔아.”
그때, 뒤에서 성훈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형은 멀리서 내 모습을 보고 뛰어왔는지, 미간을 찡그린 채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 거야?”
“…….”
이유를 말할 수 없는 터라, 나는 침묵했다. 하지만 곧 성훈 형에게 매달리듯 물었다.
“저 반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어떻게 할 생각이냐니?”
“그러니까……. 다섯 번째 스킬이 있잖아.”
성훈 형은 내 물음에 진지하게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선선히 대답했다.
“안 그래도 얻자마자 저 스킬을 발동해 봤어.”
“……!”
“그런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뜨더라.”
“뭐……?”
나는 그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이럴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나에겐 저주나 마찬가지였던 일이 이토록 허망하게 모습을 감출 줄이야…….
하지만 내 복잡한 심경을 알아차리지 못한 형은, 마치 본인이 낚시를 당한 것처럼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허울만 좋은 아이템 같아서, 그냥 비싸게 팔 생각이야.”
“……그, 그래도 돼?”
“당연히 되지. 그게 걱정됐던 거였어?”
“아, 아니…….”
나는 뭐라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아, 얼버무리듯 시선을 돌렸다. 성훈 형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뭔가 말할 것처럼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걱정하지 마. 비싸게 팔아서 좋은 값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그럼, 이제 괜찮아?”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엔 없었다.
그리고, 성훈 형은 정말로 그렇게 했다. 던전 내부의 정보를 아낌없이 공개했고, 몇몇 촬영된 장면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각성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던전에서 얻은 각종 아이템을 경매에 부쳤다.
[입금: 100,000,000원]
그리고 나는 얼마 뒤, 입금된 금액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이,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네 몫의 레이드 비용이지.”
“마, 말도 안 돼!”
평생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했던 엄청난 돈이 들어온 것을 보고는 넋이 나간 것이다.
성훈 형은 [불살의 반지]가 어떤 갑부에게 20억 넘게 팔렸다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
“수집가에게 좋은 값에 팔렸어. 다섯 번째 스킬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워낙 부자라서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더라.”
“미쳤다고…….”
나로서는 경매에 올라갈 정도의 물건들이 이렇게 고가에 거래되는 줄 처음 알았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난 우리 집이, 특히 형이 이렇게 돈을 잘 버는 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형은……. 왜 그간 이렇게 돈을 잘 번다고 한 번도 티를 안 냈던 거야!”
전생에서의 고생이 떠오르자 갑자기 울컥해서, 나는 형에게 삿대질을 했다.
성훈 형은 그제야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는지, 내 손목을 잡고 쩔쩔매면서 사과했다.
“미, 미안해. 내가 너무 무심했지?”
“잘한다, 주인! 이대로 무릎까지 꿇려 버려!”
“……됐어.”
이에레가 너무 좋아해서 더 따지고 싶은 마음이 확 식어 버렸지만 말이다.
하여튼, 나는 이 큰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성훈 형에게 다 맡기기로 했다.
“이걸 다 나한테 맡기겠다고?”
“난 어차피 어디에 쓸 곳도 없고……. 좀 무서운걸.”
성훈 형은 그런 나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내게 내 통장을 돌려주었다.
“너도 이제 네 돈은 스스로 관리해야지.”
“뭐어?”
나는 성훈 형이 이토록 단호하게 돌려줄 줄은 예상치 못해서 좀 버벅거렸다. 나에게 형은 부모님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은 차마 통장을 다시 가져갈 생각도 못 한 채 버벅거리는 내게 상냥하게 말했다.
“돈도 써 보기도 하고, 모아 보기도 해야 잘 다룰 수 있는 거야.”
“그건…….”
“형한테 다 맡길 정도로 신뢰해 주는 건 물론 기쁘지만.”
“…….”
성훈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억지로 내 손에 다시 통장을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지나가듯 나에게 권유했다.
“그래도 명색이 첫 수입인데, 마켓이라도 가 보는 건 어때?”
“흥청망청 써 버리고 싶진 않은데…….”
“마켓에서 사 봤자 얼마나 사겠어.”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씩 웃더니, 나에게 덧붙여 말했다.
“사실, 다 쓰고 와도 돼. 형 선물도 사 올 거지?”
“뭐? 그, 그렇게 말하면 치사하지.”
“기대할게.”
결국, 나는 사치를 좀 부리라(?)는 형의 엄포 때문에 지갑을 들고 각성자들끼리만 특수한 아이템 거래를 하는 마켓에 가게 되었다.
* * *
“주인니임. 이에레는 주인 손목에 이걸 달았으면 좋겠어.”
“뭐야, 그건. 싫어. 내가 무슨 인형도 아니고.”
이에레는 마켓에 넘어오자마자 나에게 이것저것 권하기 시작했다.
주로 나를 치장하는 쪽이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내 몸을 마치 검처럼 다루고 있다 보니 나를 화려하고 꾸미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이에레의 음험한 심리를 단박에 꿰뚫어 보고는 녀석이 권하는 것들을 전부 거절하는 중이었다.
“쳇. 주인은 너무 수수해. 얼굴에 비해서 너무 수수하게 입고 다닌다구. 조금만 꾸미면 희도도 주인한테 반해서 해롱해롱할 텐데.”
“희도 핑계 대면서 꼬드기지 마라!”
나는 이에레가 희도를 이용해 먹으려는 것을 파악하고는 엄중히 경고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 한솔?”
“……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거기엔 정말로 희도가 있었다. 게다가 희도는 그와 정말 어울리지 않게도 아기자기한 액세서리 전문점에 서 있었다.
또한 그는 막 무언가를 포장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쪽으로 시선을 주자 드물게 귀 끝을 빨갛게 물들였다.
“쳇. 몰래 주려고 했는데.”
“어…… 어?”
희도는 영문 모를 말을 한 후, 포장이 끝난 그 물건을 들고 나에게 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