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91화
슈웅―!
치켜뜬 불상의 눈에서 푸른색 빔 같은 것이 쏘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나무나 다른 불상 머리 등, 저들의 환경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으나…….
“으악!”
우리는 저 빔에 스치기만 해도 닿은 부위부터 시작해, 전신이 돌이 되어 굳어 버리는 석화(石化) 저주에 걸렸다.
벌써 네 사람이나 석상으로 변한 뒤,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사망해 버린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땅이 꺼진 바람에 한층 아래로 내려온 상황인지라 위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기도 여의찮았다.
“한곳에 모여 있지 말고, 흩어져!”
다른 사람들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서로를 독려하며 각각 흩어지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땅 밑이니만큼 엄폐물이랄 게 없는 터라, 아무리 흩어진다 한들 공격을 피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슈웅, 슈웅―!
“안 돼!”
“꺄아악!”
사람들이 계속해서 석상이 된 채 부서져 버리자, 성훈 형과 정원 님은 다시금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아니야, 흩어지면 안 돼!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중심으로 오세요!”
물론, 바로 반응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두 그룹 외에 중반이나 후미 그룹은 이미 공포에 질려 지시를 따르지 않으려고 했다.
“모, 모이면 죽을 거 아니야…….”
“저는 혼자 숨어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성훈 형이 손으로 불상을 가리켰다.
“저놈들이 하는 말에 속지 마세요! 두 번은 속지 말아야지!”
속다니?
형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의아하던 찰나, 위에서 불상들이 각자 우리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흩어져!]
[흩어져라!]
[한곳에 모여 있지 마!]
나는 놈들이 짤막하게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을 보며 소름이 오싹 돋았다.
성훈 형은 그 모습을 충분히 보여 준 뒤에, 놀라서 몸이 굳은 사람들을 빠르게 붙잡아 한데 모았다.
“원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외곽으로!”
이어, 선두 그룹 사람들을 외곽에 서게 해서 불상들이 쏘아 내는 빔을 ‘원’으로 튕겨 내게 만들었다.
이에레 또한 마찬가지였다. 녀석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능숙하게 빔을 튕겨 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어려울걸.”
이에레는 왠지 모를 불길한 말과 함께 성훈 형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 몸 안에서 이에레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무언가 우리 쪽에 안 좋은 일이 시작될 것임을 느꼈다.
‘……무슨 소리야?’
“기다려 봐.”
이에레는 그렇게만 말한 뒤, 땅의 한 지점을 유심히 쳐다봤다. 모두가 불상의 공격을 맞지 않으려고 위를 쳐다보고 있는 것과는 반대였다.
불쑥!
그때였다. 땅 아래, 이에레가 보고 있던 곳에서 뭔가 시커먼 것이 튀어 올라온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까 해치웠던 뱀인가 싶어 이에레에게 말했다.
‘뱀이야? 베어 버려!’
“아니야. 주인, 잘 봐 봐. 볼 수 있을 거야.”
‘뭘 보라는 거야?’
나는 이에레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내, 튀어나온 무언가가 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저건…….’
뱀이 아니라, 녹색의 거대한…….
‘……줄기?’
“맞아. 정확히는 나무뿌리지.”
이에레는 그렇게 말하면서 폴짝 뛰었다.
그러나 찰나에 뛰지 못한 대다수는 기우뚱,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져 버린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무줄기들은 점점 늘어나서, 하나둘씩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곳곳에 벽을 세우기 시작했다.
[흩어져!]
[흩어져라!]
[한곳에 모여 있지 마!]
불상 머리들은 이제 비웃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 높여 외쳤다. 우리를 전부 흩어지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는 듯 말이다.
“한솔 군!”
“솔아!”
‘형!’
결국 나와 성훈 형, 그리고 정원 님도 나무줄기들의 농간 때문에 멀찍이 떨어지고 말았다.
툭.
“야, 한솔.”
“한솔 씨.”
그리고 마치 누군가의 꾀인 것처럼 나와 유세림 그리고 희도는 한데 모이게 되었다.
샤락, 샤라락.
나무뿌리들이 마치 줄기처럼 얽혀 있어서, 현재 이 지하 공간은 꼭 정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줄기들이 위로 솟구친 덕에 불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빔은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다는 점일까.
‘대체 무슨 의도인 거지?’
효과적이었던 석화 저주를 포기하면서까지 우리를 갈라놓았다면, 그보다 더 끔찍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긴장했고, 이에레 역시 내 생각에 동의하는 것처럼 유세림이 주었던 검의 손잡이를 꽉 쥐었다.
그때, 다시 한번 숲 초입에서 맡았던 인위적인 향냄새가 깔리기 시작했다. 또한,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마저 코앞까지 좁아졌다.
“병장기 소리가 들려.”
희도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옵니다.”
유세림도 채찍 끝을 휙 펼치며 말했다.
휘리릭―!
그리고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것은…….
‘유세림!?’
바로, 거울을 비춘 듯 똑 닮은 유세림이었다.
“대체…….”
우리는 당연히 당황했다.
하지만, 저쪽의 유세림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이런 경험이 많이 있어 본 것처럼 녀석의 옷자락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질척하게 묻어 있는 상태였다.
“…….”
아무 말 없이 스산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던 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채찍을 휘둘러 유세림의 목을 공격해 왔다.
진짜 유세림이 놀라, 반사적으로 채찍에 맞선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건드리지 않고 지나가는 게 좋겠어.”
‘뭐라고?’
이에레가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
녀석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희도였다.
“유세림이랑 똑같은 몬스터를 보고, 그냥 지나가자고?”
“어쨌든 저건 진짜 유세림이 아니니까.”
우둑, 우두둑―!
그러는 동안에도 가짜 유세림과 진짜 유세림 간의 힘겨루기는 계속되었다.
가짜 유세림은 진짜 유세림이 당혹스러워할 정도로 진짜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보여 주었다.
채찍을 사용하는 능숙함과 파워, 그리고 적을 상대할 때의 가차 없는 손속 부분에서는 저 가짜가 진짜보다 훨씬 나을 정도였다.
“……윽.”
결국, 유세림은 가짜의 공격에 버티다가 아랫입술을 깨물곤 두어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어 채찍 손잡이를 고쳐 잡던 찰나.
“스킬을 쓸 생각이면 그만둬. 가짜가 바로 베껴서 반격해 올 거거든.”
이에레가 유세림에게 점잖게 충고했다.
나는 유세림이 과연 ‘내’ 몸을 하고 있는 이에레의 충고를 받아들일까 생각했지만, 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곤 채찍을 거두었다.
놀랍게도 진짜 유세림이 적의를 거두자, 가짜 유세림은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더 달려들지도 않았다.
물론, 진짜 유세림을 향한 살의는 여전했다.
“어떻게 해야 저걸 없앨 수 있죠?”
유세림이 가짜에게서 아주 천천히 시선을 떼곤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이에레는 눈알을 굴리다가 툭, 무심하게 대답했다.
“무리야.”
“……무리라고요?”
“사람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곧장 코끼리를 생각해 버리지. 마찬가지로 저걸 생각하지 말아야 사라지는데, 이미 한 번 보기까지 한 상황에서 그럴 수 있겠어?”
“…….”
“지금으로선 공격하지만 않아도 충분해.”
이에레는 유세림이 마치 제 부하라도 되는 양 멋대로 말했고, 유세림은 진짜 부하라도 되는 양 별다른 말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이에레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상황인 거야?’
“주인을 제외한 모두의 환상이 등장할 거야.”
이에레는 그렇게 말하면서 뒤를 쳐다봤다.
그곳엔 어느새 가짜 유세림에 이어, 가짜 희도까지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검을 쥔 채 등장해 있었다.
“……뭐야?”
진짜 희도 역시 크게 당황하여 검을 세우곤 가짜의 달려드는 기세에 맞춰 힘을 실었다.
챙―! 챙―!
심지어 희도는 유세림과 달리, 가짜 희도의 뺨에 작은 흉터를 내기도 했다.
문제는 그러자마자 희도의 뺨에 똑같은 상처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건…… 눈의 여왕 때와 같잖아?’
나는 그제야 이 장소의 함정을 깨달았다.
희도 역시 이를 느낀 듯 단숨에 검에 힘을 실어 가짜를 멀리 떼어 버린 뒤, 투지를 억지로 잠재웠다.
“……눈의 여왕 때로군.”
“맞아.”
이에레가 대답했다.
녀석은 이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까지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둘 다 눈을 감은 채로 내 손에 의지해서 따라와 줘.”
“……뭐라고?”
희도가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
유세림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에레는 여전히 태연하면서도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나는 눈의 여왕을 상대할 때 꼭두각시가 돼 봐서인지 내성이 생겨서 환상에 걸리지 않았거든. 그 증거로 저 환각들은 날 공격하고 있지 않아.”
‘저, 정말이야?’
“응. 정말이야.”
어쩐지 뉘앙스만 보면 [눈의 여왕] 때문 같지는 않았지만, 이에레는 자신을 믿으라는 듯이 가슴 위로 주먹을 두 번이나 팡팡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