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89화
[눈의 여왕의 천년설 반지(저주)]
처음 봤을 때부터 다른 아이템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이템명 뒤에 붙은 저주 옵션이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하여 나는 다른 아이템은 건드리지도 않고, 천년설 반지를 쥐곤 옵션을 확인했다.
[눈의 여왕의 천년설 반지(저주)
―스킬1: 동상 (MP 소모)
―스킬2: 미끄러지기 (MP 소모)
―스킬3: 차가운 피 (시전자의 혈액 필요)]
‘이건…… 미쳤어. 나를 위한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야.’
심지어 스킬 2개가 고작 MP 소모라니.
보통 시전자에게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거나 또는 성가신 것을 요구하는 저주성 아이템들과는 다르게 얌전히 마나를 소모하는 아이템이었다.
맨 마지막, [차가운 피]라는 스킬은 시전자의 혈액을 필요로 하지만, 저 저주는 딱 봐도 목숨을 빼앗은 용도임이 분명했다.
이런 고위급 저주 스킬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스킬이 무려 3개라니.
나는 다른 건 볼 필요도 없다고 판단했다.
“반지로 하겠습니다.”
“……반지로 하겠다고?”
성훈 형이 뜻밖이라는 듯 되물었다.
“네. 제게 필요한 건 반지라서요.”
“…….”
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보기에는 내가 잘못 선택했다는 듯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성훈 형은 나에게 다른 아이템도 한번 둘러보라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래도, 다른 아이템도 한번 구경이나 해 보지?”
그 권유에 대한 대답은 뒤에 있던 윤주승에게서 튀어나왔다.
“본인이 반지를 가지겠다잖아!”
놈의 눈이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꼴을 보니, 이러다가 또 형과 한판 뜰 것 같은 낌새였다.
나는 윤주승이 한 번 더 난리를 치는 것도 원치 않았고, 무엇보다 내 직업에 가장 잘 맞는 아이템은 반지뿐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형의 권유를 물리쳤다.
“괜찮습니다. 반지면 충분해요.”
“……네가 정 그렇다면야.”
성훈 형은 아쉬운지 작게 한숨을 내쉬곤 나에게 반지를 정식으로 건네주었다. 나는 스스로 반지를 끼려고 했지만, 형이 얼결에 내게 반지를 끼워 주었다.
검지에 끼자마자 반지가 영롱하게 빛났다. 내 헤벌쭉 벌어진 표정을 본 이에레가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고드름 단검이 낫지 않겠어?”
나는 주위를 둘러보곤 이에레에게 목소리를 낮춰 대꾸했다.
“있어 봤자, 내가 그걸 얻다 써? 너나 쓰겠지.”
“쳇.”
역시나. 이에레는 제가 쓰려고 했는지 혀를 차며 아쉬워했다.
솔직히 무기의 범용성이나 나중에 판매할 것까지 생각하면 단검이 백배는 나았지만, 내가 사용할 만한 저주 아이템은 잘 뜨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얻은 아이템들을 판매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눈의 여왕의 고드름 단검]은 희도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의 여왕의 눈보라 목걸이]는 성훈 형이 가지게 되었다.
“저들끼리 나눠먹는 와중에 우리는 들러리구만.”
윤주승이 대놓고 불만을 터뜨렸지만, 놈의 말에 동조하는 무리는 없었다.
어쨌든 이번 [눈의 여왕]은 성훈 형과 희도, 그리고 내가 가장 높은 기여도를 달성한 게 맞았기 때문이다.
나는 윤주승의 시선이 희도가 가진 단검에 진득하게 붙어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저런 시선을 가진 놈들이 꼭 사고를 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도야, 조심해.”
“윤주승?”
“응.”
그래서 나는 윤주승이 제 천막으로 돌아가자마자 희도에게 다가가 경고를 건넸다.
희도는 내 말을 듣더니 불쑥 고개를 숙여서 내 귓가에 입술을 댔다. 나는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나 싶어 얌전히 있었다.
“그럼, 네가 저주 내리면 되잖아.”
“……뭐?”
“뭐야. 나를 위해 그 정도도 못 해 줘?”
“…….”
나는 그 말을 듣고 진지하게 동상 저주를 한번 써 볼까 골몰했는데, 그런 나를 보며 이에레가 혀를 찼다. 뒤이어 녀석의 맑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놀림당했다구, 주인.”
“……윽.”
나는 멀어져 가는 희도를 쳐다보며 볼을 붉혔다.
* * *
“불상(佛像)이군요.”
정원 님이 낮게 신음하며 말했다.
우리는 [눈의 여왕]이 있던 중간 계곡을 떠나 걸어갔다. 한참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건너자, 돌이 가득한 좁은 길이 나왔다.
그곳마저 지나고 나자 점차 평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또, 그 평야 너머에는 광활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대체 이 던전의 끝은 어디일까요…….”
탐색을 맡은 트레져 헌터 각성자가 경탄한 듯이 말했다.
형은 그에게서 넘겨받은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챙겨 온 망원경으로 숲 너머를 살펴봤다.
“갑시다.”
그리고, 다시 탐색을 지시했다.
그렇게 이틀을 더 걸었을까. 멀게만 느껴졌던 숲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이 숲의 괴이가 느껴졌다.
숲에는 수많은 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무들은 전부 뿌리가 땅 아래가 아닌 땅 위로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시선을 끄는 건 나무뿌리 사이에 껴 있는 잘린 불상 머리였다.
불상은 전부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인위적인 향냄새가 나는 데다 숲은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향냄새 때문에 어지러워요.”
“머리 아파…….”
“한 치 앞도 안 보입니다.”
“점점 고립되는 기분인데…….”
우리는 어느샌가 숲 한복판에 들어와 있었다.
성훈 형은 이미 이 숲에 초입에서부터 우리에게 수신호를 보내 조를 짜게 만들었다. 나는 원하진 않았지만, 유세림과 등을 맞대고 한 조가 되어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탁탁탁탁…….]
[달그락달그락달그락달그락달그락달그락.]
그때부터 어디선가 목탁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방향에서가 아니라 사방에서 들려왔기 때문에 소리의 진원이 어디인지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에레가 말했다.
“전부 다 몰려오기 전에 내가 주인을 조종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 정도야?’
나는 경악해서 속으로 물었고, 이에레는 내 마음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잃은 중들이 전부 몰려오고 있거든.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들이라고 할까?”
[쉐애애액―!]
이무기라는 말을 들으니 뱀들이 내는 특유의 쇳소리도 강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선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문득 뒤에 선 유세림을 쳐다봤다.
유세림은 대체 언제부터인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저를 바라볼 때까지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뭐, 야……?”
“조심하세요. 땅 밑에서 올 겁니다.”
유세림은 그렇게 말하곤 허리끈을 푸르는 것처럼 채찍을 천천히 끌렀다. 그리고 채찍으로 저만 감싸는 게 아니라, 등을 맞대고 선 나까지 보호하듯 감싸고 들었다.
그 태도가 영 거슬렸지만, 대놓고 ‘보호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뭐라 말을 하기도 애매했다.
그런 내 복잡한 심정을 읽은 듯 이에레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다.
“주인은 유세림한텐 지치지도 않고 엄청 날을 세우고 있네.”
“…….”
“그걸, 이 남자도 알고 있어.”
안다고?
나는 유세림의 변치 않는 표정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이에레가 내 허리춤을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잘 알기 때문에 더 이러는 걸걸? 주인은 남자를 불타오르게 만드니까.”
“무슨 개소리를…….”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서 타박해 버렸는데, 그 때문인지 유세림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입술을 깨물며 모르는 체했다. 그리고 구박하듯 이에레의 머리를 꽁 때렸다. 이에레는 아파하긴커녕 키득키득 웃으면서 내 배에 대고 말했다.
“그럼, 주인 몸은 내가 움직일게?”
‘지금은 싫…….’
“찬밥 더운밥 따질 정도로 여유롭지 않아.”
그러고는 내가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놈이 멋대로 내 팔다리를 움직여 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여기서 일차적으로 충격을 받고 말았다.
‘내가 거절하면 내 몸을 못 움직이는 거 아니었어!?’
아니었던 거다. 일단 계약한 시점에서부터 내 몸의 자유가 이에레의 판단 여부에 따라 나뉘는 것이었다니…….
여기서부터 이미 멘붕이었는데…….
휘익―!
나는 땅에서 튀어나온, 내 눈엔 보이지도 않는 것을 아주 가볍게 피해 내고 내 ‘스스로’의 의지로 유세림의 품에 안겼다.
유세림 역시 내가 돌연 제게 안긴 것에 놀란 듯 몸을 굳혔다.
그런 유세림에게 나. 아니, ‘이에레’가 말했다.
“뭐 해? 빨리 채찍 쓰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