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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85/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84화

자신이 무능력하다는 것.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에게 동시에 지적당한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아마 대다수는 모를 것이다.

나는 그저 울지 않기 위해 눈가에 힘을 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주인, 참지 마. 나한테 맡겨. 내가 다 쓸어 버려 줄게.”

오직 내 편을 드는 것은 고사리손으로 내 허벅지를 움켜쥔 마검뿐이었다.

고작 이따위 말에 기대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녀석이나마 곁에 있어 주었기에 가까스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나는 마검이 처음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울해진 내 표정을 본 유세림은 뒤늦게 무어라 사과의 말을 건네려는 듯했다.

“제 말이 조금 과했…….”

“됐어. 나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니까.”

“…….”

희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현재 나는 표정을 덤덤히 하는 것에 전력을 쏟느라,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릴 아량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해한 것과 별개로 무언으로 동조한 희도에게도 내심 상처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둘에게 덤덤히 말한 뒤,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등줄기를 파고드는 싸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

우리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마자 나를 정확히 쳐다보고 있는 [눈의 여왕]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선 성훈이 형에게 싱글싱글 웃으며 속삭였다.

[이상하지? 감히 나를 눈앞에 두고…… 너의 온 신경은 저 소년에게 향해 있는 것 같은데.]

“닥쳐!”

[정곡을 찔렸나 보구나.]

“……!”

성훈이 형은 어떻게든 내게 공격의 여파가 밀려오지 않게 하고자, 무리해서 [눈의 여왕]을 공격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한 움직임마저 파악할 정도로 [눈의 여왕]의 지능이 높다는 게 문제였다. 저것은 이미 내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젠 형을 제치고 나를 향해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11월? 아니…… 재빠른 1월이 더 낫겠구나.]

가지런히 떠 있는 별자리를 고르는 섬세한 손길이 그토록 두렵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본능에 몸을 맡기며 뒤돌아 뛰었다.

[하하…… 느려 터져선. 벌레 같기는.]

[눈의 여왕]은 그런 내 행동을 냉혹하게 평가한 후, 빈 시위를 쏘아 보냈다.

성훈 형이 가로막고자 했으나, 화살은 마치 지정한 목표만을 타깃으로 하는 것처럼 형을 교묘히 스쳐 지나갔다.

“안 돼!”

형의 절규가 터져 나왔고, 나는 거기서부터 뭔가 큰 문제가 생겼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

“[우라누스].”

내 옆에서 바람처럼 튀어 나간 유세림이, 내 기억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된 스킬을 사용했다.

채찍이 나선형으로 휘어지기 시작하면서 [눈의 여왕]이 쏘아 보낸, 보이지 않는 화살이 그 중앙에 얽어 매였다. 

우직, 우지직―!

유세림이 채찍으로 화살을 얽매며 그 주변을 감싸던 결계를 부숴 버리고 나자, 그제야 여왕이 쏘아 보낸 화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건…….’

나는 이러한 종류의 화살을 딱 한 번 본 적 있다. 예전 0회차 때, 필드의 사냥꾼들과 지냈던 시절에 봤던 무기였다.

“덫이잖아…….”

화살촉이 가시처럼 불규칙하게 뾰족한 것이었는데, 노려지는 사냥감이 무기에 완전히 관통되지 못하게 만든 종류의 것이었다.

화살은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뭉텅 뜯겨 나가는 형태였는데, 오직 흠집을 내기 위한 디자인으로 사냥감이 멀리 도망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주목적이었다.

[나는 한때, 아르테미스에 비견되기도 했지.]

[눈의 여왕]은 아연해진 나를 보면서 비릿한 실소를 머금었다.

“……결계를 부쉈는데도 회전하는 힘이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화살을 붙든 유세림은 웅웅 떨리는 채찍을 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의 여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살에 스며 있는 마력이 날뛰고 있어, 그걸 차마 풀어 주지도 못하고 힘으로 무식하게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긴 소매 틈으로 언뜻 핏줄이 솟은 그의 팔뚝이 보였다.

우두둑―!

그러나 결계가 사라졌기 때문에 화살대가 완유세림의 힘을 전혀 이겨 내질 못했다. 결국, 화살대의 나무 부분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피해!”

그렇게 깃 부분을 붙잡고 있던 채찍의 힘에서 벗어난 화살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빠르게 쇄도해 왔다.

푹―!

“희도야!”

“……큭.”

그리고 내 눈을 향해 날아오던 화살촉을 무식하게 손바닥으로 막아 낸 사람은, 바로 희도였다. 

나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 희도를 쳐다봤지만, 희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악력만으로 화살촉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화살촉은 힘을 잃은 듯 완전히 바닥에 떨구어졌으며, 희도의 손바닥은 붉은 피로 가득 덮였다.

“피, 피가…….”

“시끄러워. 이 정도 다친 걸로 일일이 쫑알거리기는.”

희도는 허세를 잔뜩 부리면서 인벤토리에서 꺼낸 물약을 손바닥 위에 뿌렸다. 

다행히 그것만으로 상처는 금방 아물었으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오호?]

성훈이 형과 유세림, 그리고 희도가 보여 준 일련의 행동이 [눈의 여왕]의 흥미를 더욱 끌어 버린 것이다. 

이미 형의 과보호만으로도 그녀에게 있어 나는 최고의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였을 터.

나는 [눈의 여왕]이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며 뒤로 주춤 물러섰으나, 그녀는 흰자와 거의 구별 되지 않는 푸른 눈동자로 나를 주시한 채 검지 끝을 톡톡 두드렸다.

마치, 나를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지 고뇌하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짓이었다.

[……그래, 이게 좋겠구나.]

곧, 어떻게 들어도 불길하게 느껴지는 선언이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성훈 형 역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 유세림과 희도를 향해 고함을 쳤다.

“빨리 솔이 데리고 도망쳐!”

유세림은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앞을 막아섰고, 희도는 내 팔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눈의 여왕]은 이미 양손을 마치 눈을 뭉치듯 천천히 가슴팍에 모으는 중이었다.

[후우―.]

이어, 서늘한 입김을 그 안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동그란 눈덩이가 만들어졌는데, 이내 그것은 눈사람의 형태를 갖춰 나갔다.

어딘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눈의 여왕]으로부터 전력으로 멀어지고 있었으나, 그녀가 만들어 내는 것에서 차마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아, 어떠냐. 꽤 귀엽지?]

“……!”

곧 그녀가 손에서 내려놓은 것은 구겨진 솜뭉치 같은, 눈덩이 세 개였다. 

그것들은 꾸물꾸물하면서 하얀 바닥 위를 굴러다니기 시작했는데, 구르면 구를수록 점차 울룩불룩해지면서 제대로 된 형상을 갖추어 나갔다.

“무슨……!”

“어? 저건…….”

“성훈이 동생…… 닮지 않았어?”

그 눈덩이들이 약 세 번 정도 데굴데굴 굴렀을 때, 그것은 알몸의 사람 형상을 하게 되었다.

불쾌하게도 인간 모양을 한 그것은 내 얼굴을 본 딴 것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그걸 본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면서 동요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닮았다는 거야?”

“눈들이 삐었습니까?”

“…….”

최전방에 서 있는 성훈 형과 유세림, 그리고 나를 이끌고 후방으로 도망치던 희도의 얼굴은 그야말로 썩은 고무라도 씹은 것 같은 표정이었다.

특히, 성훈 형과 유세림은 닮지 않았다고 격렬히 반발했으나…….

‘내가 보기에도 닮았는데?’

“주인하고 빼닮았네?”

부정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슷했다.

[눈의 여왕]은 그런 우리의 반응을 보면서 짝, 하고 박수를 쳤다.

거대한 그녀의 손짓에 이리저리 구르고, 비틀대느라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던 ‘내’ 모습을 한 눈덩이들은 곧장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흉흉한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보이는 것에 꽤 현혹되고는 하던데……. 과연, 너희들은 어떨까? 감히, 나를 실망시키지는 않겠지?]

[눈의 여왕]은 우아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한 뒤, 너무 높은 음이라 거의 들리지도 않는 섬뜩한 휘파람 소리를 냈다.

파앗―!

그러자 세 개 중 가장 앞서 있던 ‘내’가 미끄러지듯이 눈발을 타고 달려가 성훈 형에게 뛰어들었다. 어느새 오른팔은 뭉개져선 날카로운 형태로 변환되어 있었다. 

성훈 형은 크게 당황한 채 가까스로 ‘나’의 공격을 막아 냈다. 나는 그런 형의 표정을 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왜 멈칫거리는 거야! 당장 머리통을 깨부쉈어야지!”

하지만 뒤이어, 또다른 ‘나’ 역시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번의 ‘나’는 높게 점프해 유세림을 노렸다. 역광을 이용해 시야의 사각을 파고들어, 유세림의 어깨를 공격하려 든 것이다.

유세림 따위야 솔직히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지만, 놈이 형의 백업인 이상 무너지면 안 되었기에 나는 유세림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정신 차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유세림은 덤덤하게 말하면서 채찍으로 단박에 ‘나’의 목을 후려쳤다. 

그런데 그때, ‘내’가 말했다.

[세림아, 아파…….]

“…….”

그 순간, 유세림의 등이 흠칫 굳는 게 보였다.

‘뭐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야! 자신만만하더니, 이 멍청이가!’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윽!”

그리고 아까, 유세림이 ‘나’를 후려친 자리가 부어오르면서 멍이 들기 시작한 것을 확인했다.

내 곁에 있던 희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잠깐…….”

희도는 당황했고, 주저앉은 나를 쳐다보던 유세림과 성훈 형, 두 사람도 곧장 상황을 파악한 듯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마검은 옷깃 사이로 부어오른 상처를 보고는 내 귓가에 속삭였다. 

“주인. 주인과 저 꼭두각시들은 연결되어 있어. 그리고, [눈의 여왕]이 주인과 꼭두각시들을 이어 놓는 매개체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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