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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84/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83화

콰과과광―!

폭탄이 투하된 듯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그나마 흙먼지가 걷힌 것도 십여 분이 지나고 나서였다.

나는 내 등허리를 완전히 끌어안은 정원 님 때문에 성훈이 형을 향해 달려갈 수도 없어, 그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진정해요. 성훈이는 괜찮아요.”

“…….”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씨근덕거리며 뚫어져라 정면만 바라봤다. 그리고, 쓰러지지 않은 그림자를 본 뒤에야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여전히 절망스러웠다.

“이…… 이게…….”

“미, 미쳤어.”

“여긴 절대로 깰 수 없어. 무리라고…….”

“도망쳐야 해…….”

이내 드러난 참상에 대다수 각성자는 할 말을 잃었다. 이곳에 온 각성자들이라면 최소 A등급 이상일 텐데도 그랬다. 

여왕의 발아래엔 멀쩡히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성훈이 형이 디디고 선 바닥마저 뾰족이 튀어나와 갈라진 절벽 끝이 되었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어디 보자……. 그래, 12월이 좋겠구나.]

여왕은 마치 꽃이라도 고르듯이 느긋하게 말하고는 뒤에 늘어선 별 중 하나를 골라, 투명한 활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그것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피슝―!

이어 공기를 찢는 위협적인 소리가 났다. 번개가 내리치는 굉음과 비슷했다.

이내, 여왕의 시선이 머문 자리부터 천천히 바닥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해일을 실제로 본 적이 없으나, 쓰나미가 인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라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싸늘했던 바닥은 삽시간에 지글지글한 염화 지옥으로 변했고, 실드나 음유 시인의 가호가 미치지 못한 곳에 있던 각성자들은 모두 비참하게 불타올라 죽어 버렸다.

사람이, 순식간에 기화되어 죽어 버리다니.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부릅떴다. 나를 끌어안고 있던 정원 님의 팔도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끄아아악……!”

“사, 살려 줘! 살려 줘!”

“다리가 타고 있어! 타고 있다고!”

아비규환이라는 말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오직 성훈이 형만이 침착하게 양팔을 내민 채 눈을 감고 버티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형은 두 팔에 이어, 어느새 턱 끝까지 검게 물든 채였다.

“형, 안 돼! 도망치란 말이야!”

나는 애타게 불렀지만, 성훈이 형은 물러서지 않았다. 

형이 그의 강대한 힘으로 그나마 버티고 있기 때문에 여왕의 강력한 능력에서 도망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여왕이 형을 눈여겨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기특해라. 꼭 너와 같은 인간들이 있지. 다정하고, 뜨거운 것들…….]

여왕은 기쁜 듯 후후, 웃고는 섬뜩하게 조소했다.

[너라면, 나를 녹여 줄 수 있을까?]

여왕은 양팔을 벌렸고, 그녀의 전차에 달라붙어 있던 설녀들의 머리가 일제히 안광을 내뿜었다.

나는 이번 한 번이 거대한 전체 공격의 전조라는 것을 느꼈다. 

‘이건, 절대 안 돼……. 형이 맞섰다간 죽을 거야.’

죽는다.

이번에도, 형을 잃는다.

그것도 전처럼 혹시나 살아 있을지도 모른단 희망을 품을 수조차 없이, 바로 눈앞에서―.

‘어째서지?’

원래라면 형이 이곳에서 죽을 일은 없어야 했다. 형이 실종되는 던전은 ‘예지의 성곽’이니까.

하지만, 더 생각을 이어 갈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잠자코 있을 것처럼 웅크렸다가 정원 님이 일순 방심한 틈을 타 그의 품을 벗어났다. 그건 정원 님과 나의 격차를 생각하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정원 님은 곧장 내 옷깃을 붙잡았으나, 너덜거리던 옷은 다행히 버티지 않고 주욱 찢어져 버렸다.

“한솔―!”

“주인!”

정원 님의 목소리와 마검의 만류가 뒤에서 들렸으나,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때마침 2차 전체 공격의 전조라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충격파(웨이브)가 터져 나왔다.

[고귀한 피, 가장 차가운 악의 속에서 태어나신 우리의 군주.]

[냉혹한 여왕. 계속되는 겨울, 혹한의 지옥, 왕좌에 앉을 단 한 명의 왕이시여.]

[우리는 지배할 왕을 고를 수 있나니.]

[가혹한 채찍을―!]

[시체처럼 차가운 이 땅에 영원히 군림하시기를―!]

너덜거리던 돌들이 설녀들의 저주파에 둥그렇게 밀려났고, 나는 그 틈을 타 더 빠르게 성훈이 형에게 다가갔다. 

여왕은 형을 향해 달려오는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저 몬스터에게 나 따위는 당연히 조금의 방해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저 제가 노리는 목표물에게 달라붙는 먼지 같은 존재나 다름없겠지.

하지만, 하지만……!

“한솔……!”

성훈이 형은 뒤늦게 내가 접근하는 것을 깨닫고는 무어라 외쳤으나, 나는 이미 형을 향해 몸을 날리는 중이었다. 

나는 뒤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버티고 선 형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이 멍청이가!”

형은 화내는 건지, 아니면 울먹이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리고, 여왕은 큭큭 웃으면서 채찍을 휘둘렸다.

[크로니클.]

그녀의 입술에서 스킬명이 나오는 순간, 바닥의 모든 것이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발밑이 꺼진 듯 한없이 추락하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겁먹지 않았다. 

성훈이 형이 어느새 몸을 돌려 나를 강하게 끌어안아 주었기 때문이다. 형은 결국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버티지 않고, 도망쳐 뒤로 물러섰다.

서걱.

그때, 형이 본래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기면서 하얀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피하지 않았다면 죽진 않았더라도 분명 커다란 출혈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형태였다.

탁.

형은 뒤로 물러서면서 미리 도망쳐 온 사람들이 있는 자리로 안전하게 착지했다.

하지만 놓칠 수 없다는 듯 소중히 감싸안은 손길과는 달리, 입에서 나온 말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한솔, 너 이 새끼야! 미쳤어? 왜 뛰어들어!”

“형이었어도 그랬을 거잖아…….”

내 한숨 같은 속삭임에 성훈이 형은 몸을 굳혔다. 그리고 형과 내 사이에 폭 들어와 있던 마검은 드물게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인, 너무 무모했어.”

“…….”

나는 마검의 말을 무시하고 아직도 떨리고 있는 형의 손을 꽉 잡았다. 

성훈이 형은 나를 놓아주지도, 그렇다고 화를 풀지도 않은 얼굴로 노려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넌, 대체…….”

“한솔 씨!”

“야.”

그리고 형이 뭔가 말하기도 전에, 뒤에서 내 어깨를 난폭하게 붙잡는 사람들이 있었다.

희도와 유세림이었다. 

둘은 내가 형에게 뛰어들 때부터 봤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희도를 볼 때는 조금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고, 유세림은…….

‘뭐 어쩌라고.’

나는 조금 뚱한 기분이 되어, 유세림이 쥔 어깨를 떨쳐 내려 했다. 하지만, 유세림은 거머리처럼 손길을 거두지 않고 더욱 들러붙었다.

“무슨 미친 짓을 하려고 한 겁니까?”

희도 역시 이번만큼은 유세림과 합세하여 내 멱살을 붙잡았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멱살은 왜 잡아?”

형이 발끈해서 나서지 않았다면 목이 졸렸을 것처럼 매서운 기세였다.

나는 희도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진 않았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다. 희도에게는 약간 미안하기도 했고, 유세림에게도…… 조금은 뻘쭘함을 느꼈다.

“우, 움직인다!”

하지만 한가롭게 있을 여유는 오래 주어지지 않았다. 여왕이 다시금 이쪽을 향해 시선을 주었기 때문이다.

형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더니, 나를 유세림과 희도 쪽으로 툭 밀어 버렸다.

“일단……. 거기 둘, 한솔이 단단히 붙잡고 있어.”

“형!”

“조용히 해. 끝나면 넌 진짜 혼날 줄 알아.”

“형, 가지 마! 혼자 무슨 수로 상대하려고 그래!”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양팔을 각각 희도와 유세림이 꽉 쥐고 있는 터라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형은 몸부림치는 나를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그렇게 쳐다보지마. ……다치지 않고 돌아올 테니까.”

“그, 그런 의미심장한 소리를 하면서 가면 안 된다니까! 형! 제발 혼자 가지 말라고!”

하지만 성훈이 형은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혼자 뛰어나갔다. 그러자 여왕은 기다렸다는 듯, 형이 달려드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쾅―!

둘이 격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발을 동동 굴렸다.

양팔을 어떻게든 빼내 보려 애썼으나, 둘은 요지부동이었다. 심지어 이 자리에서 더 먼 곳으로 나를 질질 끌고 가기까지 했다.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자, 잠깐만! 희도야! 유세림!”

탁.

그제야 둘은 말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둘 다, 일단 이 팔 좀 놔 봐. 그리고, 형을 도와줘. 형 혼자서는 안 된다고. 저 보스는 위험해. 너희도 잘 알 거 아니야!”

내 필사적인 말에 희도는 한 대 쥐어박을 것처럼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하. 너만 튀어나오지 않았으면, 당연히 우리도 가서 도왔어.”

“윽, 그…… 그건!”

희도의 냉정한 말에 풀이 죽은 찰나, 유세림까지 한마디 더했다.

“수갑 아이템이라도 채워 놔야 마음이 놓일 것 같네요.”

“……미쳤어?”

“혹시나 도망치지 못해서 위험할 가능성만 없었어도 진작에 했을 겁니다.”

심지어 저 정신 나간 말에 믿었던 희도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강경한 두 사람을 향해, 거의 빌듯이 호소했다.

“……나한텐 가족이라곤 형밖에 없어. 눈앞에서 형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그러나 유세림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기질이 십 대 때부터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그 순간 뛰어들어 봤자 개죽음입니다. 한 명 죽을 거 두 명 죽는 거죠.”

“어떻게 그런 말을…….”

“당신은 도움이 안 된단 소립니다. 제가 여기서 더 설명해야 합니까?”

나는 결국 입을 다물고 유세림을 노려봤다. 희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으로써 유세림의 말에 동의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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