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82화
[눈의 여왕]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오만한 미소를 띠었다.
“물러서세요!”
정원 님이 달려드는 윤주승 무리를 향해 뒤늦게 외쳤다.
하지만, 윤주승네는 분명 정원 님의 목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그 지시를 따르기는커녕, 좀 더 속도를 높여 [눈의 여왕]을 향해 다가갔다.
“속도 늦추지 마! 저들끼리 다 해 먹으려는 속셈이야!”
“저 멍청한…….”
유니콘 위에 서 있던 희도가 달려오는 무리를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채찍으로 유니콘의 목을 휘감고 있던 유세림은 말없이 말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설득될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 신변의 안전을 위해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말려들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유세림은 냉정하게 말한 뒤에 성훈이 형의 뒤로 물러났고, 희도는 선두로 달려드는 윤주승을 보며 혀를 찼다.
“쯧…….”
희도 역시 무모한 짓을 하진 않았다. 유니콘의 눈꺼풀에 처박았던 검을 회수한 뒤, 날렵하게 아래로 뛰어내렸다.
[히이이잉!]
두 마리의 유니콘은 자신을 공격하던 사람들이 사라지자, 자유를 되찾았다는 걸 깨달은 듯 마구 날뛰었다.
앞발을 크게 치켜들고 이리저리 발을 구르는 모습이 어찌나 흉흉하던지, 달려오던 윤주승은 말굽에 차이지 않기 위해 제자리에서 멈춰 서야 했다.
‘저러다 진짜 밟히기라도 하면…….’
하지만, 윤주승은 그 위험한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판단을 과신했다.
“이제 곧 넘어질 거야! 다들 준비해!”
“……저게 무슨 개소리야?”
나는 윤주승이 뭘 노리는지를 생각하다가 휘청거리는 전차를 쳐다봤다.
‘설마…….’
유니콘이 계속 날뛰어서 전차가 전복되기를 기다리는 건가?
“여왕은 채찍을 가지고 있다고요!”
당연히 저 채찍으로 유니콘을 다스릴 거 아냐!
보다 못한 내가 소리를 쳤지만, 거리가 멀어서인지 아니면 내 말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것인지 윤주승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앞발을 구르는 유니콘에게 과감하게 다가가, 쥐고 있던 창을 내질렀다.
푹!
[캬아아악―!]
유니콘은 뼈를 관통하는 고통에 머리를 크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차가 더욱 들썩이기 시작했다.
“오! 된다!”
“넘어간다! 넘어간다고!”
“좋아! 지금이야!”
“다들 달라붙어!”
반신반의하며 윤주승의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제야 유니콘에게 바짝 다가가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캬아악! 카악―!]
제아무리 늠름한 몬스터라 할지라도 상처를 입은 부위만 집중적으로 노려지는 것에는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유니콘은 현재 성훈이 형의 능력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결국 유니콘의 발목이 부러졌고, 기우뚱― 한쪽으로 쏠린 채 무릎을 꿇었다.
쿵―!
“우와와!”
“이겼어!”
“다 끝났다고!”
유니콘 한 마리가 쓰러지자, 비교적 멀쩡하던 다른 유니콘이 펄쩍 놀라 뒤로 물러났다.
윤주승 무리는 환호하며 승리감에 취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었다.
“안 됩니다. 더는 스킬을 쓰지 말고, 뒤로 물러서십시오.”
바로 나의 형, 한성훈이었다.
“무시해. 저 새끼는 우리가 던전에서 활약하면 할수록 제 입지가 좁아질까 봐 방해하려는 것뿐이니까.”
당연히 윤주승은 성훈이 형의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윤주승처럼 노골적으로 형을 적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뒤바뀐 선두 쪽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훈이 형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쓰러진 유니콘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 나갔다.
유니콘은 버둥버둥했지만, 결국 눈을 하얗게 뒤집은 채 거대한 몸을 축 늘어뜨렸다.
[히이잉! 히히힝!]
그러자 남은 유니콘 한 마리가 더더욱 흥분해서 투레질했으나, 놈 역시 붙잡혀 있는지라 해치우는 것은 시간문제나 마찬가지였다.
분명, 모두의 눈에 그렇게 보이겠지만…….
‘이상해…….’
나는 왜인지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전차에 타고 있는 준보스, [눈의 여왕]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일지, 어떤 표정으로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제가 부리던 사역마가 이렇게 처참히 죽임을 당했는데도 조금의 움직임도 없는 모습에 위화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
마침내, 고개를 꺾어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이건.”
나는 잠시 숨을 멈춰야 했다.
[눈의 여왕]은 즐거운 미소를 숨기지 않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등줄기를 달리는 소름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고함을 쳤다.
“다들 위를 봐! 위를 보라고! 도망치란 말이야!”
하지만, 내 외침은 너무 늦어 버렸다.
[꽤 재미있었단다.]
키득거리던 [눈의 여왕]이 채찍을 쥔 손을 높게 치켜들었고, 그 순간 번개가 치는 것처럼 번쩍이는 빛이 시야를 가렸다.
[파파박―!]
이어 공기를 찢는 스산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
단검으로 미친 듯이 유니콘을 공격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제자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퍽―!
그 남자의 상체가 사라졌다. 그의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히, 히이이익!”
“으아악!”
“뭐, 뭐야? 이게 대체 뭔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갑자기 뒤집어쓴 동료의 피로 피범벅이 된 채 패닉에 빠졌다.
물론, 그들은 모두 베테랑에 높은 등급을 가진 강자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몬스터가 압도적으로 강한 경우는 처음인 것이다.
전혀 읽지 못한 공격의 궤적. 무엇보다 자신이 살아남은 건 오직 ‘운’이었다는 것에 이성을 잃고 만 것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자들이 별다른 저항 한번 못한 채 눈앞에서 죽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나는 몇 번이고 이런 상황을 겪어 봤기 때문에 저들의 마음속을 훤히 읽을 수 있었다. 나처럼 강하고 뛰어난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리가 없다고…….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다르다.
‘좋지 않아…….’
나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이번 레이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팀에는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굳건히 버텨 주는 리더가 있었다.
성훈이 형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도망쳐! 지금이라도 흩어져서 도망가!”
성훈이 형이 거대한 장막을 만들어 [눈의 여왕]을 조금씩 밀어내면서 자신을 따르는 선두 쪽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잠시 물러났던 사람들은 성훈이 형의 명령에 따라 피범벅이 되거나,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들춘 채 하나둘 도망치기 시작했다.
“비, 비켜!”
그러는 와중에도 윤주승은 끝까지 역겨운 짓을 했다.
저들을 구하러 와 준 사람들이 자기보다 앞선 다른 사람을 부축하자, 부축 받는 사람을 밀어내고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들을 구해 주던 사람은 필구 형이었는데, 형은 윤주승을 밀어내려 했지만, 윤주승이 목을 손톱으로 죄다 긁어낼 정도로 필사적으로 매달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먼저 구조해야 했다.
그러나 윤주승은 그런 꼴사나운 짓을 벌이고도 반성은 일체 없이, 성훈이 형을 향한 원망을 내뱉었다.
“씨발, 씨발……. 이, 이딴 델 오는 게 아니었어! 이딴 곳에 괜히 들어와 가지고……! 하, 한성훈! 여기서 나가면, 너 고소할 거야. 이 씨발 새끼야!”
“아오, 이제 좀 떨어지라고!”
참다 참다 못한 필구 형이 윤주승을 발로 차서 바닥에 던져 버렸다.
윤주승은 바닥에 엎어진 채로 있다가 몇 초 지나지 않아 “우웨웨액!” 하고 토를 했다. 나는 시큼한 냄새를 맡곤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성가시구나.]
그리고 [눈의 여왕]은 본격적으로 성훈이 형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여왕은 채찍을 휘둘러 나머지 한 필의 유니콘을 움직였고, 유니콘은 허공에 발을 구르더니 기어코 전차를 허공에 띄웠다. 한 마리만으로도 충분히 비행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비행 능력이라니……. 이게 고작 준 보스라고?’
나는 그런 [눈의 여왕]의 모습을 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여왕은 경악하는 우리를 보면서, 마치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공포심을 즐기듯이 우아하게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전차에 붙은 설녀들의 얼굴이 노래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영원한 영광, 승리의 신!]
[영원한 영광, 승리의 신!]
[영원한 영광, 승리의 신!]
[영원한 영광, 승리의 신!]
합창을 듣는 듯 고아한 음색이었지만, 웅장한 무대는 아니었다.
노래를 듣는 순간, 그 노래 속에 우리의 사기를 꺾고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효과가 붙어 있다는 걸 예민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귀를 틀어막으면서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믿어요― 이― 밤에도― 영원히― 빛날― 별].”
다행히 파티원 중에 음유시인이 있던 모양이다. 그녀는 노래를 불러서 설녀들의 정신 공격을 막아 냈다.
결국 설녀들은 노래를 멈추고, 다시 이전처럼 [후우우…….] 눈가루를 날려 대기만 했다.
설녀들의 노랫소리가 멎자, 허공에서 전차를 멈춘 [눈의 여왕]은 그런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재미있구나. 오랜만이라, 나도 모르게 장난을 질질 끌었어.]
불길한 선언이었다.
게다가 [눈의 여왕]이 느릿느릿한 말을 끝낸 후에 마지막으로 쳐다보고 있는 상대는 성훈이 형이었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인간을 좋아해. 특히, 팔딱팔딱 뛰는 심장이 아주 별미지.]
[눈의 여왕]은 재미없는 농담을 하면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곤 허공에 활을 쏘는 듯한 동작을 해 보였는데, 놀랍게도 그러자마자 그녀의 뒤로 별자리 같은 것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곧, 별자리들이 유성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안 돼!”
나는 그 중심에 선 성훈이 형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