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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81/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80화

“역시 너, 더러운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 갑자기 동생을 데리고 왔을 때부터…….”

윤주승이 막말하며 형을 향해 삿대질했다. 성훈이 형은 조금 피로한 표정이었으나, 놈과의 의견 차이에서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팽팽히 맞서는 두 사람 사이로 은근히 파가 나뉘어서, 성훈이 형을 지지하는 듯한 사람들은 형의 뒤편으로 나머지는 윤주승의 뒤에 서 있었다.

나는 황급히 두 사람이 대립하고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무슨 일이야?”

내 질문에 먼저 와 있던 유세림이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윤주승 씨가 성훈 님의 지휘권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아이템 배분 문제로 의견 차가 있는 거 같더군요.”

주변에 듣는 귀가 많은지라, 딱히 유세림이 개인적인 사감을 넣은 것 같진 않았지만…… 묘하게 냉정한 표정이 윤주승을 향해 있었다.

원래 유세림은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표정으로 남한테 의견을 내는 기질이 있어서……. 아마 내 추측이 맞다면, 유세림도 윤주승을 좋게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나오는 아이템의 절반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선두에 선 사람들끼리 S등급 이상 아이템 절반만 우선 배분하자는 건데, 뭐가 그렇게 아니꼬워?”

윤주승은 성훈이 형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듯이 떠들었다. 웅변하는 모양이라고 할까.

가만히 들어 보니 아무래도 선두에 서는 사람들이 좀 더 위험하기 때문에, 상위 등급 아이템을 그들이 먼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얼핏 들으면 치사하긴 하지만, ‘공평성’에서는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선두에 선 사람이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되니까.

하지만, 성훈이 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모집할 때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배분 방식을 바꾸자니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형의 말도 맞다. 아무래도 목숨을 걸고 들어오는 곳이니만큼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조율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즉, 계약 위반이니 뭐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윤주승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추가 보상안에 대한 건 세세하게 협의하지 않았잖아.”

윤주승의 말을, 성훈이 형은 단호히 끊었다.

“무엇보다 선두에 서는 사람들과 후방 지원자들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처음부터 로테이션을 염두에 두고 온 인원이에요.”

“그건……!”

윤주승은 곧장 반박하려다가, 차마 파티원 앞에서 반발을 살 만한 얘기를 할 용기는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곧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를 빌미로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성훈이 형이 먼저 윤주승의 시선을 읽은 모양이다. 형은 차가운 눈빛으로 윤주승을 쳐다보더니, 처음 듣는 오만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윤주승 씨 말대로 실력만큼 배분하자면 이번 던전의 아이템의 절반은 제가 가져가야 한다는 건데, 거기에도 동의하시는 겁니까?”

“우와, 재수 없어라.”

마검은 재밌다는 듯 킥킥거렸지만, 나는 놈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성훈이 형 성격상 일부러 저렇게 말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마, 나 때문이겠지…….’

“이익…….”

아무리 윤주승이라 할지라도 실력으로 깔아뭉개는 말을 듣고 나니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도 성훈이 형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놈을 깔아뭉갤 줄은 몰랐다는 듯한 눈치였다.

“샌님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희도가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참나, 저 동생한테 뭐라도 하나 주려고 작정을 했군.”

물론, 윤주승은 곱게 물러나지 않았다. 놈이 제 뒤에 선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공평한 척은 다 하면서, 급도 안 되는 제 동생은 대체 왜 데려온 거야?”

“형이 절 데려온 게 아니에요!”

이젠 듣고만 있을 순 없어서 화를 냈다. 형이 나 때문에 곤란에 처한 상황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참에 아예 아이템일랑 하나도 안 먹겠다고 해야……!

“그리고 전, 아이템 같은 거 필요 없―.”

그때, 나를 보며 형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정원 님이 돌연 내 어깨를 붙잡으셨다.

“조금만 참아요. 주승 씨도 열 받은 게 가라앉으면, 사과하실 테니까.”

“하지만…….”

절대 그럴 일 없다고 생각했으나, 정원 님은 눈웃음을 치면서 내 귓가에 속삭이셨다.

“그리고, 아이템 배분도 받아야죠. 어쨌든 한솔 군도 같이 고생할 텐데.”

“그건…….”

“괜찮다니까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형과 정원 님이 뭔가 따로 얘기를 주고받은 건가 싶어서 더는 나설 수 없었다. 

윤주승은 그런 우리를 아니꼽게 쳐다보다가, 제 추종자들과 함께 휑하니 자리를 떠나 버렸다.

‘……저래도 괜찮은 건가?’

나는 떠나는 윤주승을 보면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성훈이 형이 우선이었다.

짝―.

그때, 형이 손바닥을 쳐서 가볍게 모두의 이목을 끈 뒤 태연히 말했다.

“윤주승 씨네 파티에 먼저 이야기하긴 했는데, 아마 저쪽은 선두에서 빠질 것 같습니다.”

조금 전 설전을 모두가 봤기 때문에 되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새로 빈 선두 자리에 사람을 충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면서 성훈이 형이 내 쪽을 쳐다봤기에 나는 조금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 내 양옆에…….’

희도와 유세림이 서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희도와 유세림은 거의 후미에 있었지만, 기실 둘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선두에 설 만했다.

두 사람도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당황하는 기색은 없었다.

“백희도, 유세림. 너희가 선두를 채워 줬으면 좋겠는데.”

“좋아.”

“알겠습니다.”

성훈이 형은 그렇게 말한 뒤,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정원 님에게 나를 부탁했다.

“그리고 한솔, 너는……. 정원이랑 같이 붙어 다녀.”

“……알았어.”

정원 님은 대답 없이 싱글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 어깨를 감싼 손은 따뜻했다.

이후, 형은 남은 사람들에게 무어라 브리핑을 했다. 나 역시 남아서 듣고 싶었으나, 정원 님이 내 어깨를 감싼 채 걸음을 뗐기에 자리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정원 님은 식수로 쓰는 정수기 옆에서 따뜻한 물을 컵에 따르더니 커피를 타서 나에게 주셨다. 나는 얼결에 커피를 들고 서 있게 됐다.

정원 님은 그런 나를 보면서 달래듯이 말씀하셨다.

“너무 기죽지 마세요, 성훈이 진짜 화낼 때, 어떤지 알잖아요.”

“……이렇게 혼나는 거, 처음인데요.”

“그래요?”

정원 님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곧 알겠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셨다.

“성훈이가 한솔 군을 많이 예뻐하긴 하죠.”

“……그런가요?”

“그럼요. 나한테 굳이 한솔 군을 부탁하는 거만 봐도 뻔하잖아요.”

이 훈훈한 대화에 마검이 불쑥 끼어들었다.

“맞아, 주인님. 저 인간은 주인한테 엄청 집착하고 있어. 지금도 주인 입술을 보면서 무슨 말이 나오고 있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걸.”

“엑…….”

나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다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정원 님을 의식하며 입을 다물었다.

‘뭔 개소리야…….’

나는 힐끔, 시선을 돌려 형을 쳐다봤다.

성훈이 형은 당연히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와중에도 쓸데없이 장난을 치는 마검의 팔을 있는 힘껏 꼬집었다.

* * *

“출발하겠습니다.”

“인원 체크 다 했습니다.”

“빠트린 아이템 없는지 확인하고, 메모라이즈 해야 하는 스킬은 미리 준비해 주세요.”

“넵!”

다음 포인트로 이동하기 전에 파티원은 각자 맡은 역할대로 점검을 마쳤고, 몇 명의 조장이 그것을 확인했다. 

곧, 선두부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요.”

그리고 정원 님도 나를 재촉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인트를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두운 동굴이 나타났다. 파티원들은 능숙하게 [라이트] 스킬이 있는 아이템을 전면에 내세웠다.

힐끗 희도를 봤는데, 희도는 딱히 불빛이 필요치 않은지 아이템을 꺼내지 않았고 그 곁에 서 있는 유세림은 횃불 같은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기름 냄새가 풍기지 않는 걸 보아하니 막대에 따로 [라이트] 마법이 인첸트 된 것 같았다.

“온다.”

그러던 중 선두가 걸음을 멈추었고, 정원 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춤에 찬 검을 꺼내 드셨다.

자르랑―.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느낌과 함께 정원 님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검은 눈치 없이 정원 님 곁으로 폴짝 뛰어가서는 검신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우와, 파마의 검이네.”

‘……파마?’

소리 내 물을 수 없는지라 속으로만 궁금해했는데, 마검이 그런 내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혼자 잘도 떠들어 댔다.

“마기를 가진 것을 베는 데 특화된 대마족용 검이야. 검이 이 지경이 될 만큼 사냥에 몰두했다면……. 역시 이 인간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 주인아.”

“…….”

제일 비정상적인 마검이 할 소린 아니었다.

나는 이후, 마검이 떠들어 대는 말일랑 무시하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몬스터에 집중했다.

[하아아…….]

어디선가 한숨을 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아름다운 설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들은 온통 꽁꽁 언 것처럼 은빛의 육체를 가졌는데, 한숨을 내 쉴 때마다 공기가 얼어서 반짝반짝 빛났다.

정원 님이 그 모습을 보시곤 나에게 경고하셨다.

“절대 가까이 가지 마세요. 근처에 가기만 해도 동상에 걸릴 테니까.”

“넵.”

나는 마검을 슬쩍 끌어 뒤로 왔고, 선두는 이미 설녀들을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크아아앗!”

필구 형이 먼저 전방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공격력 자체는 높지 않으나, 범위가 넓기 때문인지 설녀들은 도끼를 피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설녀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우그러트린 캔처럼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우둑, 으드득.

퍽―!

설녀들의 몸이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났고, 성훈이 형은 천천히 쥐었던 주먹을 다시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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