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79화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삶.
성훈이 형이 실종된 뒤, 형의 일을 안타까워하며 어떻게든 나를 도우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윤주승…….’
그만큼이나 나에게 형의 유산을 포기하게 만든 사람들도 있었다.
성훈이 형이 던전 탐사를 위해 자신들에게 돈을 많이 빌렸다면서, 내게 형이 모든 재산을 쏟아 넣은 길드를 조건 없이 위임하겠다는 불공정한 위임장에 사인을 시켰었다.
당시, 뭣 모르던 시절임에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대형 로펌을 앞세운 데다가 능력으로 억압하는 그들에게 나는 위협을 느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장지로 이동하던 중에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와, 흙발로 형의 방을 온통 헤집던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도 있었다.
윤주승은 개중에서 제일 지독하게 굴었던 인간이었다. 형과 정말 친하게 지내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윤주승의 이름이 나오면 전부 치를 떨 만큼 말이다.
나는 잊고 있던 원한이 떠올라, 이 남자를 향해서 만큼은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형이 남들 몰래 나에게 따로 남긴 유산이 있을 거라며 사람까지 보내 미행했었잖아. 저 개새끼…….’
내가 사납게 노려보자, 윤주승 역시 눈썹을 치켜세웠다. 내가 금방이라도 죄송하다고 빌빌 길 거라 여긴 듯 말이다.
하지만 놈이 원하는 대로 사과할 생각이 없기에, 나는 윤주승과 오래 대치했다. 윤주승은 노려보는 나를 보곤 이를 뿌득 갈더니 차갑게 말했다.
“이번 던전이 그렇게 위험하다고 A등급 팀원들도 몇 명 못 오게 하더니, 그보다 훨씬 떨어지는 제 동생은 또 데리고 왔네?”
윤주승은 그렇게 비아냥거리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형의 다른 파티원이 화들짝 놀라선 그를 만류하려고 들었다.
“야야, 성훈이가 데리고 온 게 아니라…….”
“주승아.”
“하이고, 너는 꼭 말을 해도…….”
하지만 윤주승은 태연히 그들의 말을 전부 씹었다.
놈은 여전히 나를 노려보면서 빈정댔다.
“뭐, 어쨌든 나는 보상 나눌 생각 없어. 성훈이도 꼼수 쓸 생각이 아니고서야 제 동생 몫의 배분 얘기는 안 하겠지만.”
“거참…….”
윤주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인상을 찡그렸지만, 놈의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소수의 사람도 있긴 했다.
“뭐…… 던전 보상은 중요한 문제잖아.”
“그래. 우리도 땅 파서 레이드 하는 게 아닌데.”
“크흠흠……. 에이, 설마. 성훈이가 배분 먹으려고 동생 데려오진 않았겠지.”
주로 윤주승의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놈과 함께 나를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기억하기로는 형이…… 초창기에는 다른 길드를 흡수하는 형태로 커 왔었지.’
윤주승도 아마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러니 제 세력을 고스란히 보존해서 성훈이 형의 위명 아래 꿀이란 꿀은 다 빨고 살았겠지.
그러면서도 형에게 협력하지 않는 점이 괘씸했다. 나는 놈 주변에 모여서 위화감을 만들어 내는 무리를 훑어봤다.
‘성훈이 형 성격상 자기하고 좀 안 맞는다고 억압하거나 내쫓지도 않았을 거고.’
형은 내부 정치질에 관심이 없었다.
나로서는 기실 형이 그럴 정도의 앞가림만 할 줄 알았어도 구태여 이곳에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형이 자기 몸을 돌볼 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형이 원한 건 오로지 이 세계의 평화야. 진짜 말도 안 되는 이상이긴 하지만…….’
그런 부분에 감화된 사람들도 있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형과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형은 강해. 하지만…… 역시 형한테는 내가 필요해. 특히나 지금은.’
눈앞에서 나대는 윤주승을 보니 더 그런 확신이 들었다.
성훈이 형은 형의 목표를 위해 싸우고, 나는 그런 형을 뒷받침해야 한다. 저런 새끼가 형의 곁을 얼쩡거린다는 걸 알고 있으니 더더욱 포기할 수 없어졌다.
나는 윤주승이 죽어라 노려보든 말든 완전히 무시하며, 그와 떨어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 내 뒤를 희도와 유세림이 따라왔다.
“일단 밥부터 먹어요. 많이 배고팠죠?”
그때, 정원 님이 미묘해진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며 우리에게 따끈한 밥을 내주셨다.
“주인은 증오하는 마음마저 달콤하구나.”
“…….”
마검이 곁에서 노래하듯 재잘거렸지만 무시했다. 하도 헛소리를 많이 들어서인지, 이젠 어지간한 말에는 무뎌지고 있었다.
“반갑다. 나는 강필구라고 한다.”
‘필구 형이네…….’
윤주승과 다르게 필구 형은 끝까지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성훈이 형하고도 말이 잘 통했고 말이다.
나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머리를 바짝 깎은 필구 형을 쳐다보다가,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죽지만 않았어도…….’
필구 형은 성훈이 형의 죽음 이후에도 나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형의 유지를 이어받은 새 길드를 만들고, 나름대로 운영도 잘했고 말이다.
하지만…… 길드를 만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에서 사망했다. 뒤에 남겨진 부상자를 구하려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부상을 입은 팀원도 끝내 구하지 못했고 말이다.
그렇게 길드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필구 형의 장례식에서 본 두 살짜리 딸 아이가 꼭 내 처지 같아서…….
“반갑습니다. 한솔이라고 합니다.”
나는 조금 고개를 숙여, 달아오르려는 눈가를 숨겼다. 다행히 필구 형은 내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시원스레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성훈이가 네 얘기를 어찌나 하던지.”
“……네?”
그리고 처음 듣는 얘기를 꺼냈다. 나는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필구 형을 쳐다봤다.
“맨날 한솔이가 어쩌고 하면서 던전 들어와서 내내 네 걱정을 하더라고. 던전 마치고 나면 부리나케 달려가고. 그때는 무슨 남동생을 뭘 그렇게까지 걱정하나 했는데……. 오늘 사고 치는 거 보니까 그럴 만하네. 하하하.”
“아…….”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팡팡 내리치는 형 때문에 휘청거렸다. 웃어야 할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따라 웃기만 했다.
필구 형은 나를 질책하려는 것 같진 않았다. 그는 깨작깨작 젓가락질하는 나에게 많이 먹으라면서 본인 몫으로 나온 고기를 몇 점 덜어 주기까지 했다.
“괘, 괜찮은데요…….”
“성훈이 보다가 너를 보니까 반쪽 같다, 야. 많이 먹어.”
“……감사합니다.”
성훈이 형에 비해 내 체구가 좀 작은 편이긴 했다.
애써 챙겨 줬는데 먹지 않을 순 없어서 나는 열심히 젓가락질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스윽, 자기 몫의 반찬을 또 내밀었다.
“……뭐야?”
“좋아하는 거 아닌가요?”
유세림이었다.
‘부쩍 친한 척이야, 짜증 나게.’
놈이 했던 괴상한 고백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뭘 하든 곱게 보이진 않았다.
‘너랑은 절대 친해질 일 없다고, 귓구멍에 박아 넣어야 하나.’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유세림은 반찬을 준 뒤에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나마 놈의 습한 시선이 가시니 먹다 체할 것 같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유세림이 준 반찬은 한 점도 손대지 않고, 빠르게 밥을 해치웠다.
‘희도는 벌써 다 먹은 건가?’
그러다 반대편을 봤는데, 예상대로 희도는 이미 자기 몫의 밥을 말끔히 비우고는 이쪽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다 먹었어?”
괜히 급해지는 마음에 물었는데, 희도는 턱을 괸 채 나를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천천히 먹어라.”
“어? 으응…….”
뭔가 마음이 읽힌 것 같아서 조금 머쓱했다.
* * *
이후 식사 시간이 끝나고, 나는 정원 님과 함께 빈 접시들을 한곳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먹은 자리를 치우고 있는데, 성훈이 형이 드디어 텐트에서 나왔다.
“……회의할 거니까, 한솔이 빼고 다 모여.”
그리고 형은 내 근처에 모여 있던 세 명에게 딱 한 마디 하고는 뒤돌아서 가 버렸다.
“…….”
그 차가운 태도에 기운이 쏙 빠졌지만, 그래도 이해되는 상황인지라 꾹 참았다.
정원 님이 위로하듯 내 어깨를 한번 꼭 쥐시곤 말씀했다.
“다녀올게요.”
유세림은 별다른 말 없이 나를 지나쳐 갔고, 희도는 묘한 표정으로 쓱 쳐다보더니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야, 초콜릿 줄까.”
“어?”
뜬금없는 말에 놀라 되물은 것뿐인데, 희도는 곧장 내가 작아졌을 때 먹다 남긴 초콜릿을 꺼내선 내 손에 떨궜다.
“고, 고마워…….”
얼떨떨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서 중얼거리자, 희도는 빨개지는 내 뺨을 보더니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오해하지는 말고. 버리기 귀찮아서 주는 거니까.”
희도는 새침하게 쏘아붙인 후, 단발머리를 펄럭거리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역시 기쁘다.
나는 헤헤 웃으면서 남은 초콜릿을 입안에 털어넣었다. 마검이 그런 나를 보면서 내 옆구리 살을 꼬집었다.
“주는 대로 다 먹다간 돼지가 될 거야, 주인님.”
“……죽을래?”
그러나, 행복한 기분도 잠시뿐이었다.
“난 그렇게 못해!”
갑자기 모여 있는 사람들 틈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윤주승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