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5/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74화

희도는 간혹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손을 내민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잠시 1회차 때의 희도를 떠올리면서 눈을 감았다 떴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랐는데, 조금 흔들리고 말았다.

“나…… 데려가 줄 수 있어?”

“방법이 없진 않지.”

희도는 간단하게 말한 뒤, 인벤토리를 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태도에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그가 꺼낸 병을 얌전히 응시했다.

“이게 뭐야?”

“떠나기 전에 마시고 누워 있어. 몸을 약 하루 동안 작아지게 만드는 약이야.”

“무…… 뭐?”

효능에 깜짝 놀라서 쳐다봤는데, 희도는 내가 그 물약을 수상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페어리 랜드라는 던전에서 얻은 거야.”

“페어리 랜드?”

“그 던전은 모든 몬스터가 손가락만 해.”

그러면서 또 인벤토리를 살피더니, 아주 자그마한 장난감 비행선을 꺼내어 내게 보여 주었다.

“이건 거기서 얻은 아이템. 내부에서 작동시킬 수만 있으면 진짜 떠다니던데.”

“…….”

“아무튼, 여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아지면 몰래 데리고 갈 수 있다고. 그리고, 물약 효과는 걱정하지 마. 하루 뒤엔 원래대로 돌아와. 내가 직접 먹어 봐서 알아.”

나는 잠시 손가락만큼 작아진 희도를 떠올려 봤고…… 이내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아주 아쉬워졌다. 

희도는 내 뺨이 살짝 붉어진 것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야, 알아들었어? 왜 대답을 안 해?”

“으, 으응…….”

나는 행여나 순간 떠올린 생각을 읽힐까, 희도의 손에서 물약을 허둥지둥 받아 냈다.

희도는 여전히 못 미더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데리고 가겠다고 했던 제 말을 철회하진 않았다.

“고, 고마워, 희도야.”

“…….”

나는 뒤돌기 전, 그래도 한마디나마 더 말을 걸어 보고 싶어서 용기를 내 인사를 했다. 

하지만 희도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까닥이고는 찬바람이 부는 태도로 뒤돌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주인, 엄청 행복해하네?”

얌전히 붙어 있던 마검이 또 끼어든 것은 그때부터였다.

“…….”

하지만 마검의 말대로 나는 현재 행복한 상태라 녀석을 구박하지 않았다. 희도가 베푸는 뜻밖의 호의라니! 전혀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역시, 너무 다정해…….”

“누가?”

“희도.”

“…….”

마검은 내 표정을 보곤 뭔가 말하려는 듯 달싹이던 입을 다물었다. 나로서는 굳이 놈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 * *

“미안해요. 그래도,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

던전에 출발하는 날.

정원 님이 나를 붙들고 하는 말에 굳이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뒤따라갈 예정이라 굳이 거짓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원 님은 그 태도를 내 기분이 크게 상했다고 여기신 건지, 쓴웃음을 지으며 붙잡았던 손을 어루만졌다. 그러곤 내게 종이쪽지를 쥐여 주셨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하세요. 미리 말해 두었으니까.”

“알겠어요.”

나는 입을 열지 않으면 영영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정원 님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정원 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가셨다.

“휴…….”

숨기는 게 있는지라 내심 긴장하고 있었던 나는, 정원 님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마자 인벤토리에서 물약을 꺼냈다.

[페어리 랜드 전용 물약

스킬1: 페어리 랜드의 여왕성 입장 버프 획득

(24시간 동안 여왕성에 출입 가능한 크기인 15cm 미만으로 작아집니다.)]

이어 희도가 준 물약을 확인한 뒤, 조금 남아 있는 액체를 단번에 마셨다.

꿀꺽.

맛은…… 꼭 솜사탕을 물에 푼 것 같았다. 미미한 단맛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이거, 언제쯤 작아지…… 으, 으아악!”

그리고 물약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순간 심한 어지럼증을 느끼며 눈을 떴는데, 엄청나게 거대한 방 안 풍경이 보였다.

“……대, 대박이네.”

“주인…….”

또 놀라운 것은 마검 또한 내 크기에 맞게 작아졌다는 것이다. 나는 마검이 습관적으로 내 허리춤에 들러붙는 것을 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뭐야! 내 옷!?”

망측하게도 내가 알몸이었기 때문이다.

“옷은 여기 그대로 있잖아.”

마검은 조금 한심하다는 듯 허물처럼 벗어 둔 내 옷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황망한 심정으로 아래를 양손으로 가렸다. 그러다 잠시 후, 방에 들어올 희도를 떠올리자 절망스러워졌다.

“아, 안 돼……. 이 상태로는…… 조금 있으면 희도가 날 데리러 올 텐데!”

“너무 쪼그매서 별생각 없을걸?”

“누, 누가 조그맣다는 거야!”

나는 길길이 날뛰면서 일단 널브러진 옷 틈으로 파고 들어갔다. 최대한 몸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자세를 채 잡기도 전에 쿵쿵 지축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강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우아아악!”

나는 쓰러져서 구르다가 간신히 내 옷 끝자락을 잡고 버텼다. 이어, 내 머리 위에서 엄청 큰 목소리가 들렸다.

“뭐 하냐?”

“희, 희도?”

나는 위를 올려다보다가, 거대한 희도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을 마주했다.

희도는 필사적으로 몸을 가리고 있는 나를 보면서 오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우, 우악! 잠깐만! 잠깐……!”

“가만히 있어라.”

아무렇지도 않게 내 몸통을 붙잡아 옷자락에서 떼어 냈다. 마치 벌레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보, 보지 마…….”

“뭐라는 거야?”

나는 어떻게든 몸을 가리려고 애썼지만, 희도는 가차 없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고, 수치심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 그때, 희도가 내게 헐렁한 포대 자루 같은 것을 뒤집어씌웠다.

“어……?”

킁킁, 익숙한 냄새를 맡고 있자니 희도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야. 네 옷, 인벤토리에 넣어서 가져간다?”

“어? 어, 어…….”

나는 그제야 희도가 내게 준 것이 자신의 손수건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희도는 침대 위에 널브러진 내 옷을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고는, 나를 그대로 제 옷 품에 집어넣었다.

소매에 교묘하게 달린 작은 주머니였다. 나는 안으로 더 들어갈까 했지만, 뭉뚝한 무언가에 엉덩이가 닿고 나서 흠칫 놀랐다.

“너무 기어들어 가지 마라. 안에 무기 넣어 놨어.”

이런 내 행동을 읽은 듯, 희도가 주의를 주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소매 끝에 매달린 채 대롱대롱하게 되었다.

‘……누가 보면 어쩌지?’

하지만, 다행히 정원 님과 유세림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위험을 가증시키는 대신, 희도가 준 손수건으로 몸을 꼼꼼히 감싸고 어정쩡하게 소매를 붙들었다. 

마검은 그런 내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주인, 이렇게까지 해서 같이 가야겠어?”

“그럼 뭐 어쩌라고…….”

“그냥 나랑 계약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언제까지 그 소리 할래? 조용히 좀 해.”

그렇게 말하는 동안, 뭔가가 천 밖에서 나를 지탱하듯 감싸드는 감각을 느꼈다. 게다가 자꾸 움직여댔는데, 내 생각에 희도가 내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더듬거리는 것 같았다.

문제는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쿡쿡 찔러 보는 손가락 때문에, 당하는 내 입장에선 살짝 난처하다는 점이었다.

“웃…….”

게다가 자세를 바꾸자, 이번엔 손가락이 배를 꾹 누르곤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누르는 감각은 계속 이어졌다.

‘희도야 제발…….’

나는 눈치 없는 희도 때문에 점차 곤란해졌다.

자구책으로 엉덩이를 이리저리 들었다 놨다 해 보기도 했으나, 결국은 그냥 손가락이 만지작거리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최대한 예민한 부위만 바짝 감춘 채 말이다.

“주인, 표정이 좀 이상한걸?”

“다, 닥쳐…….”

그렇게 새빨간 홍당무가 된 채로 이동이 시작됐다.

* * *

“……토, 토할 거 같아.”

이후, 본격적으로 이동하자마자 희도가 왜 손가락으로 나를 눌렀는지를 깨달았다. 너무 심하게 흔들려서, 뭔가가 지탱해 주지 않았다면 굴러떨어지고도 남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넌 왜 멀쩡한 거야…….”

“멀미하는 마검은 좀 그렇잖아.”

마검은 얄미울 정도로 멀쩡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서 내 얼굴을 쓸어 주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싸늘해진 손가락이 닿자 약간은 울렁거리던 속이 나아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혹시, 소매에 뭐 가져왔습니까?”

“뭐가?”

“거기서 손을 안 빼고 있던데요.”

유세림이 희도에게 말했다.

나는 등줄기를 바짝 굳힌 채 굳고 말았다. 하지만 희도는 태연하게, 놀라서 굳어 버린 내 등을 손가락으로 쓰윽 쓸며 물었다.

“왜? 너도 만져 볼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