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73화
“…….”
“아무런 대비 없이 그 인간을 대하는 건 위험해. 어디서 자극을 받아, 미쳐 버릴지 모르거든.”
마검의 말은 타당했다. 한차례 갑자기 돌아 버린 유세림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그래서…… 원을 가장 먼저 만들고 칭찬 받았을 때, 그리고 이 힘을 깨우쳐 나갔을 때 기뻤어. 유세림보다 잘하는 게 있어서 조금 안심했거든.”
“그건 힘이라고 하기엔 좀 애매해. 거의 방어에 치중해 있기도 하고…….”
“…….”
나는 마검의 말을 들으며, 등급이 밝혀지지 않은 던전 탐사를 거절했던 형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내가 약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걸…….
나는 조금 울적해져선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등급이 전부인 건가.”
“나랑 계약하면 된다니까?”
마검은 다시 내 손을 붙잡고 졸랐지만, 나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영혼을 대가로 얻는 힘이라니. 따로 들은 바는 없지만, 그런 수상한 걸 해야 할 만큼 코너에 몰려 있는 건 아니었다.
“죽기 직전이면 한번 고민해 볼게.”
“그럴래? 근데, 난 좀 불안한걸. 주인은 순두부…… 아니, 병아리처럼 연약하니까.”
“단어만 바꾸면 되는 줄 아냐, 요 녀석아?”
마검은 다시 나에게 꿀밤을 맞고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때, 복도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마검이 내게 말했다.
“괴물이 오고 있어.”
“형?”
마검이 말한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방문을 정중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나는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서운한 마음만을 앞세워 형을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들어와.”
성훈 형은 천천히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형은 나만큼이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솔아. 아까 형이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기분 나빴지? 미안해.”
그러나 형이 사과하는 부분은 딱 거기까지였다. 형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끝내 같이 가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형은 내가 여기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네, 아직도.”
“맞아. 내 말을 번복할 생각은 없어.”
형은 그렇게 말하곤 침대 맞은편에 있는 책상 의자에 털썩 앉았다.
“마검의 봉인 같은 황당한 일이 일어나고 나서, 정말 많이 후회했어.”
성훈 형은 그렇게 말하며 드물게 피곤한 낯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쩌면 네가 영영 못 깨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견디기 힘들더라.”
나는 성훈 형이 드물게 강경히 나왔던 원인이 무엇인지 깨닫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야. 무사히 돌아왔잖아.”
“하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우린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을 출입하고 있으니까.”
성훈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펼쳤다. 마검은 그런 형의 앞에 서서 나와 형 사이를 재빨리 가로막았다. 마치, 형에게서 나를 지키려는 것처럼 말이다.
“무슨…….”
그리고 순간, 형에게서 강렬한 힘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떠한 적의를 띄지 않았음에도, 형의 손안에서 오금이 저리는 힘이 느껴졌다.
“……정말 인간 맞아? 비탄의 천사도 이 인간에겐 못 당할 거 같은데…….”
마검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성훈 형을 노려봤다.
성훈 형이 느릿하게 입을 뗐다.
“지금, 느끼고 있지? 나는 미공개 던전을 탐사하다가 이 정도의 기운을 느끼고 일단 철수했었어. 왜냐면, 던전을 절반 정도 탐사하기도 전에 이런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야.”
“……!”
“물론 혼자였다면 좀 더 조사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이후에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다는 게 컸지.”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펼쳤던 기운을 서서히 거두었다. 나는 그제야 숨을 조금 내쉴 수 있었다.
“그래. 지금 가는 곳이, 나조차도 두려움을 느낄 만한 장소라는 거야.”
“…….”
“솔직히 말해서 내가 널 지킬 여력이 되었다면 함께 갔을 거야. 하지만 이번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솔아. 내 목숨도 장담하기 힘든 곳인데, 너를 어떻게 사지로 데려갈 수 있겠어.”
성훈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뒤돌아 나가려는 형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럼 형……. 형은, 꼭 가야 해?”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걸 알지만,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은 그런 나를 나무라는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해야지.”
“꼭 형이 아니어도 되잖아.”
방금 형이 보여 준 힘을 몸으로 느껴 본 직후, 나는 어떤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형이 사라지게 된 원인은, 물론 ‘표면적으로는’ 예지의 성곽에서의 실패였으나…….
‘여기도, 뭔가 있을지 몰라…….’
왠지 그 모든 사건의 시작이 바로 이 던전이 아닐까, 하는 가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서면 더 수월하니까. 걱정하는 거 알아. 미안해.”
하지만 성훈이 형은 끝내 제게 주어진 책임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내게는 몸을 사리라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형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을 지은 나를 보면서 쓰게 웃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나갔다.
‘……나더러는 죽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면서, 형은 사지일지도 모르는 곳엘 가겠다고?’
예전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두 번의 과거를 건너온 내게 형의 말은 가당치도 않았다.
‘형도 내 말 안 들어줬으니까, 나도 형 말 안 들을 거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마검은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이글이글하네, 주인님.”
* * *
형은 내게 짧은 인사를 건넨 채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인원들, 정원 님과 백희도 그리고 유세림은 형을 따라나서기 위해 짐을 챙겼다.
정원 님은 내게 이튿날 출발하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안 됩니다.”
“마지막 소원이에요.”
“미안해요. 그리고 한솔 군을 데리고 간다고 해도, 성훈이가 파티에 넣어 주지 않을 거예요.”
나는 정원 님에게 부탁했지만, 예상한 대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정원 님도 성훈이 형이 조사한 던전의 난도를 어느 정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그 단호한 눈빛을 보고, 나는 더 조르는 대신 뒤뜰로 나갔다. 하지만 이는 악물고 있었다.
“몰래 따라가게 해 줄까?”
한편, 마검은 내 곁에서 알짱거리며 연신 유혹적인 미끼를 흔들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주인. 그냥 내 이름만 지어 주면 돼.”
“…….”
마검은 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더욱 간지럽게 말했다.
“그 괴…… 아니, 인간을 구하고 싶은 거잖아. 또다시 잃지 않게.”
“……너한테 괜히 지껄였단 생각이 드네.”
나는 한차례 노려보며 말했지만, 마검은 닥치라는 내 시선에도 굴하지 않았다.
“아니야. 난 주인이 해 준 얘기를 듣고 나서야, 주인이 왜 이렇게 맛있게 생겼는지 이해했는걸.”
“칭찬 고맙다. 넌 칭찬이라고 한 말일 테니까.”
“칭찬 맞아. 주인처럼 매혹적인 영혼은 본 적이 없어.”
눈치 없는 놈은 묻지도 않은 내 영혼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진짜 푸르고 아름다워. 멍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보석 같기도 하고…….”
“하아…….”
이제 나는 마검이 건넨 제안에 흔들렸다는 것이 수치스러울 지경이었다.
‘이런 나사 빠진 새끼의 뭘 믿고…….’
그런데 그때, 뜰에서 뭔가를 보고 있는 희도와 눈이 마주쳤다. 희도는 나와 마주친 것이 의외였는지, 눈썹을 한쪽만 쓱 올렸다.
나는 혼자 있는 그의 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주춤, 제자리에 멈춰 섰다. 뒤돌아 가야 하나 싶어 고민하는데, 의외로 희도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정원한테 까였냐?”
“……!”
내가 무슨 부탁을 하고 왔는지 익히 짐작한 것 같았다. 나는 입을 열지 않았고, 희도는 그런 나를 보면서 덤덤히 말했다.
“성훈……. 네 형 때문에 아마 들어주지 않을걸. 몇 번이나 신신당부하던데.”
나는 그 말에 문득 슬퍼졌다.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전부 내 도움을 필요치 않아 하니까.
그래서, 희도에게 물었다.
“……너도, 나보고 포기하라는 거야?”
“아니?”
“……뭐?”
나는 예상과 다른 대답에 눈을 크게 떴다.
“가고 싶으면 가야지. 형이 네 인생 대신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
“솔직히 다 큰 동생한테 너무 집착하는 거 좀 보기 그래. 브라콤인가…….”
물론 뒤엔 거의 막말에 가까웠지만, 나는 희도가 해 준 말이 꼭 위로처럼 들렸다. 아니, 위로가 맞을 것이다.
내게 그렇게 말한 뒤, 희도는 마치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내게 이렇게 물었으니까.
“몰래 데려가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