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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73/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72화

마검은 꼭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또 노쇠한 늙은이 같기도 했다. 계약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녀석이 묘하게 생기를 띠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내 방으로 일단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마검에게 말했다.

“너, 무슨 수작이야?”

“수작?”

“너랑 계약하면 내 몸을 빼앗거나, 그런 거 아니냐고.”

“주인처럼 순두부 같은 몸을……?”

의아한 듯 동그랗게 뜬 눈이, 마치 준다고 한들 사양이라는 표정이라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빨개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순두부라고 하지 말랬다?”

“그래, 그래……. 근데, 주인이 정말 오해하고 있는 게 있어. 나는 이미 몸이 있는걸? 나는 검이야.”

마검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무릎을 콕 찔렀다.

“주인한테 지금의 나는 주인의 무의식을 반영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뿐이거든. 내게 이름을 붙여 주면, 나를 검의 모습으로도 인식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신경 쓰이는 단어를 말했다.

“내 무의식?”

“주인이 가장 친근하게 느낀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지금 내 모습은 주인이 가장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라는 거야.”

그러면서 마검은 고개를 계속 갸웃갸웃했다.

나는 마검의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그간 계속 신경 쓰였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너……! 너! 그러고 보니 성훈 형 어렸을 때랑 닮았잖아!?”

“그래? 그 이상한…… 괴물 인간 말이지?”

“괴물이라니? 말조심해! 물론, 그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자이긴 하지만…….”

“…….”

마검은 오묘한 표정을 짓다가 입을 다물었다. 마치 조금 전에 형과 싸우지 않았냐, 라고 묻는 것 같았다.

괜히 민망해져서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너랑 계약하면 뭐가 달라지는 건데?”

“죽을 때까지 주인 곁에서 떠나지 않고, 주인이 베려고 하는 걸 벨 거야.”

“그것뿐이야?”

“응. 그리고 주인이 죽으면, 주인의 영혼은 내가 먹는 거야.”

“역시 사악하잖아!”

나는 동화책이라도 읽는 듯한 말투로 골 때리는 소리를 하는 마검을 노려봤다. 내 반응에도 마검은 양심도 없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내가 주인의 영혼을 먹는다고 해서 막 고통스럽거나 그렇진 않아. 나는 주인이 좋은걸.”

마검은 유리알처럼 까만 눈동자를 내게 고정하면서 말했다.

“그냥 계속 주인이랑 같이 있고 싶다는 건데.”

퍽이나 로맨틱하네.

나는 속으로 빈정거리면서도 마검의 내력이 궁금하기는 했다. 

그래서 물었다.

“다른……. 그러니까, 네 전 주인들도 설마 먹었냐?”

“응! 근데, 그때는 주인들이 살아 있을 때 야금야금 먹었었어.”

“…….”

“그래서 그런지 좀 잘 미치고…… 잠도 못 자고? 예민해지더라고. 그래서 그냥 나중에 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 시행착오를 겪은 거지!”

‘이 자식은 글렀어…….’

나는 그 말에 질려서 한숨을 내쉬었다. 마검은 당연히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옆에서 계속 알짱거리다가 결국 나에게 꿀밤을 먹었다. 

마검은 조금도 아프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꼭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아야…….”

“하나도 안 아픈 거 알거든?”

“맞아. 그치만, 주인은 약하다고 하면 삐져 버리니까.”

“너 그 말투, 진짜 열 받아…….”

전 주인들하고는 대체 어떻게 지낸 거지?

하지만 마검은 이제 됐다는 표정의 내게, 지치지 않고 대화를 시도했다.

“주인, 나도 주인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주인은 엄청 약하고, 또 약한 거 본인도 잘 알잖아. 그런데, 왜 열등감이 없어?”

“……시비 거냐?”

“아니, 비틀리지 않고 순수하게 힘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 그래.”

“…….”

나는 뜻밖의 말에 마검과 눈을 마주쳤다. 마검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절박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강한 힘을 원하잖아. 주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의지가 느껴지는걸.”

“그건…….”

당연히 성훈 형과 희도 때문이다.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성훈 형의 실종을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희도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 않았을 거고, 유세림이 나에게 집착하든 말든 무시할 수 있었겠지.

나는 누군가를 뛰어넘기 위해서 타인과 비교하면서 힘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힘……. 그치. 다 잃어 보니까…… 필요하긴 하더라.”

그간 내 등급이 낮은 걸 탓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빼앗기고 나니까, 소중한 사람을 지킬 만한 힘이 없다는 게 너무 통탄스러웠다.

“엇. 슬퍼졌어…….”

“…….”

마검은 침묵하는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러곤 다시 반짝반짝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니까, 내게 이름을 지어 주면 돼. 금방 해결할 수 있어.”

나는 마검의 동그란 눈을 보면서 붙잡은 손을 떼어 냈다.

“영혼을 바치라며, 이 악마야.”

“죽으면 말이야. 살아 있을 땐 잘 참아 볼게.”

“퍽이나 고맙다.”

나는 마검의 호의(?)를 무시한 채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마검은 금방 침대 위로 올라와선 내 배에 손을 얹고는 꽉 껴안았다. 

처음엔 이렇게 달라붙는 게 좀 징그러웠는데……. 내 무의식을 반영한 모습이기 때문인지 뭔지, 이젠 이런 행동도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뭐. 마검이니 영혼을 먹느니 마느니 해도, 어쨌든 지금은 그냥 날 따라다니는 어린애…… 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좀 무해한 느낌이니까.

“하……. 나도 알아. 지금 상태로는 짐밖에 안 되는 거. 근데…… 형이 어느 날 갑자기 또 사라져 버릴까 봐 그래.”

나는 푸념하듯이 중얼거렸다. 

마검은 잠자코 듣고 있다가 물었다.

“또?”

“…….”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검에게 물었다.

“너 혹시…… 회귀라는 거, 알아?”

“회귀?”

“그러니까……. 과거로 돌아간다는 거 말이야.”

마검은 간단히 답했다.

“아니, 몰라.”

“…….”

나는 약간 실망했다. 몇 대에 걸쳐 수많은 주인을 거쳐 온 마검이라면, 이런 특이한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왜? 주인, 회귀했어?”

그러다 곧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말을 들으며, 나는 역시 이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무심한 태도가 지금은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져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검은 두 번 묻지 않고 순순히 납득했다.

“진짜구나. 그런 게 가능한 줄은 몰랐어.”

“……넌 내 말을 믿냐?”

“나는 주인의 진심을 들을 수 있으니까.”

“내가 하는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고?”

“응. 주인이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면, 나에게도 ‘진실’로 느껴져.”

즉 사실 여부를 떠나서 내가 진짜라고 생각하면, 마검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마검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가능해?”

“아니. 주인하고 나만 가능해. 우린 특별히 연결되어 있으니까.”

마검은 뭔가 뿌듯해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영 별로였다.

“계약 안 했잖아!?”

“아직 안 했지만……. 내가 주인에게 붙어 있으니까…… 지금은. 음, 인간들의 표현대로라면 구애라고 해야 할까.”

“전혀 다르거든?”

나는 마검을 구박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내 말을 전적으로 믿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약간 위안을 받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사실 말이야……. 나, 두 번 되돌아왔어.”

나는 마검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를 마치고 마검을 쳐다봤다. 마검은 예상대로 그 어떤 동정심도 부정도 없이 고요히 듣고만 있었다. 그 태도가 편안했다.

“그래서 주인이 힘을 가지고 싶은 거구나. 근데, 특이하네. 보통 그런 경우에 복수심 같은 걸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아?”

“물론, 그렇긴 해. 유세림을 증오하는 마음은 아직도 남아 있어.”

하지만 되돌아와서 만난 어린 유세림, 그리고 그의 낯선 고백은 증오뿐이었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으켰다.

“뭔가 그때의 유세림이랑 지금의 유세림은 좀 다른 사람 같다고 할까.”

“그렇구나. 그럼, 주인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냥, 날 건드리지만 않았음 좋겠어.”

그게 정말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미 충분히 복잡해진 내 삶을 조금이라도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 지금도 그 인간은 주인을 좋아하잖아.”

그러나 마검은 내 비위를 맞춰 주진 않았다. 녀석은 오래 산 것들 특유의 말투로 단언했다.

“그런 타입의 인간들은 마음을 쉽게 꺾지 않아. 그리고,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미쳐 버리더라구.”

“…….”

“게다가 주인은 건드리기 쉽잖아. 유세림이라는 인간이 그 밝은 머리랬지? 그 인간은 강해. 주인을 강제로 억압할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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