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2/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71화

“성훈이 형!”

나는 한쪽 팔을 번쩍 흔들면서 때마침 대문을 통과하는 형을 향해 뛰어갔다. 형은 달려오는 나를 향해 양팔을 벌려 주었다. 

나는 꼭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처럼 폴짝 뛰어서 형에게 안겼다. 형의 품에서는 어디서도 맡아 본 적 없는, 특유의 그리운 냄새가 났다.

“한솔아.”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형의 태도가 좀 이상했다. 형은 나를 꽉 끌어안아 든 채로 성큼성큼 이동했다.

얼결에 안겨 있게 된 나는 이 상황이 좀 묘하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말을 꺼낼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저기. 형, 왠지 기분 좀 별로인 것 같은데…….”

그래도 신발을 신은 채 남의 집 안에 들어가려는 모습을 보니 말려야겠다 싶어서 어렵게 말을 꺼내 봤다.

성훈 형은 내 말을 듣고 나서 잠시 걸음을 멈췄으나, 곧 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때문은 아니야.”

‘그럼, 기분 더러운 건 사실인 거야?’

그렇게 묻기 전, 정원 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다.

드르륵―.

대문과 연결된 사랑채 문이었는데, 정원 님은 미닫이문을 여시면서 나와 형을 쳐다보더니, 곤란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셨다.

“에고. 누가 이렇게 요란하게 오나 했더니…….”

‘요란이라고?’

형이 딱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오진 않았는데…….

하지만 형은 대답하는 대신, 나를 부드럽게 내려놓고는 정원 님에겐 아주 싸늘하게 말했다.

“동생을 잘 돌봐 달라고 했지, 사지로 몰라고는 안 했어.”

처음 보는 형의 차가운 태도에 놀란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정원 님은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해. 내 불찰이야.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제야 나는 형이 이토록 화가 난 게 마검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는 성훈 형의 손을 붙잡았다.

“나, 괜찮은데…….”

하지만 성훈 형은 힐끔 나를 훑어볼 뿐, 정원 님을 향한 사나운 눈초리를 거두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괜찮다는 말에도 화가 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주인……. 이 괴물이랑 아는 사이였어?”

어느새 슬그머니 내 곁에 다가온 마검이 형을 보면서 쫑알거렸다. 나는 형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마검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게 누굴 보고 감히 괴물이라는 거야!’

마검은 내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형을 중심으로 몇 바퀴를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곤 계속 의미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흐으음…….”

‘너, 뭐 하냐.’

“진짜 무섭다……. 이상해.”

겁에 질린 것과는 거리가 먼 태도였으나, 마검이 형을 두려워하는 게 썩 나쁘지는 않았다. 왠지 마검 따위보다 형이 훨씬 강하다는 느낌이라, 괜히 내가 뿌듯해진다고 할까.

“일단, 안으로 들어와. 한솔 군 몸 상태는 확인했을 거 아냐.”

“…….”

그러는 동안에도 정원 님과 형의 대치는 계속됐는데, 정원 님이 부드럽게 말하자 성훈 형은 그제야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별생각 없이 형을 따라 쫄래쫄래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내 뒤를 마검이 소리 없이 따랐다.

* * *

“배는 안 고프니?”

“한솔아, 밥은 먹었어?”

정원 님은 성훈이 형에게 물었고, 형은 정원 님의 말을 씹고 내게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난처한 표정을 짓자, 정원 님이 먼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셨다. 마치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좀 이르지만, 다 같이 밥부터 먹을까? 잠깐만 기다려. 다른 두 사람도 불러올게. 어차피 걔들도 있어야 하잖아.”

“…….”

“그, 그래요! 다 같이 먹어요.”

내가 얼른 거들자, 성훈이 형은 그제야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정원 님이 희도와 유세림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뒤에야 형의 옷소매를 붙들고 흔들 수 있었다.

“형! 정원 님한테 왜 그래!”

따져 묻는 건 아니고, 그저 낯선 형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형은 남에게 날카롭게 군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성훈 형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더니, 결국 철벽처럼 두르고 있던 팔짱을 풀고는 입술을 삐죽이면서 대답했다.

“너, 의식 잃은 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알아?”

‘역시, 마검 일로 정원 님한테 화가 났구만…….’

솔직히 나로선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충분히 사과도 받았기 때문에 너무 과보호한다는 생각을 조금 했다.

하지만 생각한 그대로 말했다가는 형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그래서 뺨을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자세히는 몰라. 그치만…… 어디 다친 곳도 없고.”

“다친 곳이 없다니.”

그런데 내가 정원 님을 감싼 태도가 형의 신경을 건든 것 같았다. 성훈 형이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황당한 일로 널 잃을 뻔했어. 소식 듣고 무슨 기분이었는지 알아?”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뺨을 꽉 꼬집었다. 나는 아프기보다는 말하면서 형이 목소리를 살짝 떨었기 때문에 그에 놀라 가만히 있었다.

성훈 형은 그대로 내 볼을 괴롭히다가 손을 뗐다.

“이제 누가 뭘 시키든, 앞으론 형한테 먼저 물어보고 해. 알았어?”

“……알았어.”

나는 순순히 대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형은 고개를 끄덕이는 내 머리 위에 손을 턱 얹고는 몇 번 쓰다듬었다. 나는 이제야 좀 형의 기분이 풀렸을까 싶어 얌전히 있었다.

“한성훈……?”

몇 분 지나지 않아, 정원 님을 따라 두 사람이 방에 들어왔다. 

유세림과 희도였다. 

희도는 성훈 형을 보고 놀란 듯 보였다. 유세림은 냉랭한 얼굴로 나를 쓱 쳐다보고는 별다른 말 없이 건너편에 앉았다.

“아, 얘 때문에 왔나 보네.”

희도의 중얼거림에 대답한 건 성훈 형이었다.

“그것도 있고. 또 너희에게 해야 할 말도 있어.”

나는 뜻밖의 말에 형을 쳐다봤다. 유세림도 희도도 그런 형의 입을 가만히 쳐다봤다.

“너희가 모두 원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고 받았거든.”

성훈이 형은 그렇게 말한 뒤, 정원 님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다시피 원은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스킬과는 상관없는 독특한 힘이야. 이걸 깨닫고 제대로 운용하는 능력자는 극히 드물지.”

‘그런 거였나?’

나는 세 명 중 가장 먼저 원을 만들어 냈고, 또 다른 두 명도 금방 내가 하는 걸 따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배우면 누구나 가능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재능이 있다니.’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생겼다는 걸 깨닫고는 약간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닌, 형이 내 재능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기분이 확 좋아졌다. 정원 님이 내가 제일 먼저 능력을 각성했다는 것도 전해 주셨을 것 아닌가.

“그래서 너희에게 중요한 의뢰를 하나 맡길까 해. 정원이 하고도 얘기가 끝난 일이니까, 설명을 듣고 수락할지 안 할지 결정해 줬으면 좋겠어.”

“할래!”

나는 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했다. 설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한데, 형의 표정이 이상했다. 형은 신난 나를 보고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한솔이 네가 아니라, 저 둘한테 한 말이야.”

“뭐라고!?”

나는 형의 냉정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나도 원 만들 수 있어!”

“알아.”

“내가 쟤들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서 운용했다고!”

“그것도 알아.”

하지만 형은 야속하게도 고개를 흔들었다.

“원을 다루는 능력만 필요한 일이 아니야. 등급 미공개 던전을 클리어해야 해. 의외로 시시한 경우도 있지만, 이번 던전의 경우엔 조짐이 좋지 않아. 나도 같이 가야 할 정도로 난도가 높고 위험해.”

나는 단호한 형의 말에 넋을 잃어버렸다. 결국, 또다시 등급이 내 발목을 잡았다는 소리니까 말이다. 그것도 형에 의해서 가로막혔다는 게 참담했다.

“하지만……!”

억울하여 항변했으나, 형은 내 말을 끊고 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희도는 잠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갈 거야.”

유세림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

“가겠습니다.”

“…….”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이 그런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우울한 탓에 손을 뿌리치자 더는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벗어났다. 

“주인, 기분 안 좋아?”

그때, 마검이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채 물었다. 아래를 쳐다보자, 녀석은 내 허리에 얼굴을 비비면서 생긋 웃었다.

“내가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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