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1/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70화

“싫어!”

내 대답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튀어나왔다. 마검, 이 녀석은 존재 자체가 수상하기도 하고 나에게 썩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거울에도 안 보이는 상대가 계속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생각해 보자.

‘이건 정신병으로 의심 받아도 할 말이 없어.’

게다가 녀석이 말한 대로 이름을 지어 줘서 마검이 다른 사람 눈에 보이게 되는 것도 문제였다. 

나는 지금 정원 님의 집에서 훈련을 받고 있으며, 정원 님은 마검 스스로가 말했다시피 저주와 마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마검의 ‘진정한 주인’이 되라는 거야?

“너한테 이름 지어 주고 평생 정원 님한테 쫓기면서 살라는 거야, 뭐야!”

마검은 극렬한 내 반응에 삐진 듯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다가, 곧 항변했다.

“주인은 내 합당한 주인이니까, 내가 가진 마기에 휘둘리지는 않을 텐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특히, 정원 님 말이야.”

내 말에 마검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녀석의 눈높이에 맞춰서 다시 설명했다.

“맨 처음에 나하고 말했던 사람 말이야!”

“주인의 애인?”

“애인 아니야! 그냥 내 스승이라고.”

나는 우물거리며 덧붙였다.

“내 애인은 따로 있다고! 그러니까…… 너도 봤지? 검은 머리카락에 예쁘게 생긴애. 걔가 희도인데…….”

말하면서도 괜히 위축되어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하지만, 마검은 내 태도에 딱히 개의치 않았다.

“으응 그래……? 어쨌든, 주인의 스승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달가워하진 않겠지. 게다가 내가 이때까지 본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한 편이었고……. 근데, 그런 상대가 혹시나 적이 된다면 주인도 힘들지 않을까?”

“…….”

나는 마검의 냉정한 평가에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럼 역시 어쩔 수 없네. 너한테 이름을 지어 주게 되면 스승님하고 척을 지게 될 거 아니야.”

마검은 내 말을 듣고는 바로 고개를 치켜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주인. 나에게 이름을 주면 스승도 이길 수 있어! 바로 죽일 수 있다구!”

나는 싱글거리는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응?”

마검은 아픈 것 같지는 않았으나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붙잡고 험악하게 흔들었다.

“미쳤냐! 내 스승이라고 몇 번을 말해! 그리고, 정원 님은 형의 친구이기도 하다고!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죽여!”

마검은 내게 얌전히 멱살이 잡힌 상태에서도 꼬박꼬박 말대답을 했다.

“그래도…… 누가 죽이려고 들면 방어는 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애초에 누굴 죽이고 싶지 않다고!”

씩씩거리는 내 말을 들은 마검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 그럼 힘줄만 끊어 놓는 것도 가능해. 내 첫 번째 주인도 주인의 애인에게 그렇게 했었어! 본래 주인보다 애인이 원래 훨씬 강한 검사였지만, 내가 도와주니까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거든. 그렇게 감금해 놓고는 매일매일 내키는 대로…….”

“미친놈아!”

나는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놈을 보면서 아연해졌다. 

마검은 씨근덕거리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진절머리 난다는 태도에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너한테 절대로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을 거야.”

나는 녀석에게 화풀이하듯이 말했다. 마검은 조금 시무룩해진 낯빛으로 변했지만, 채근하지는 않았다.

“주인은 야망이 없구나……. 뭐, 그런 점이 나쁘지는 않지만…….”

물론, 여전히 속이 뒤집히는 소리를 중얼거리긴 했으나 무시했다.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나는 마검을 찬찬히 살펴봤다. 

놈은 여전히 귀여운 소년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색소 옅은 눈동자는 얼핏 순진해 보이기도 하고……. 여하튼, 무시무시한 마검의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뼈대도 얇고, 손가락도 가느다래서 전투 병기라는 속내를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외향이었다. 마검이라고 부르고는 있지만, 전혀 마검이랑 상관없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너, 나 말고 다른 주인을 찾거나 얌전히 봉인당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러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물어봤는데, 마검은 내 앞에서 처음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봉인은 싫어……. 너무 아프단 말이야. 말도 못 하고.”

그렇게 말하면서 마검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렀으나, 마검이 더 빨랐다. 가늘고 여리게만 보였던 손가락에 손목이 잡히자 도저히 풀어낼 수 없었다.

‘이 녀석……! 역시, 보이는 건 전부…….’

“귀찮게 굴지 않을게. 나, 할 줄 아는 것도 많은데……. 그냥 주인 옆에 있는 것도 안 돼?”

나는 위기감을 느껴, 녀석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윽! 야! 너, 이 손 안 풀어?”

다행히 마검은 내 말을 듣자마자 움츠러들면서 손을 놓아주었다.

“아팠어? 미안……. 주인이 순두부처럼 물렁물렁하다는 걸 잠시 잊어버렸어…….”

“진짜 나랑 싸우자는 거지!?”

나는 다시 화를 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놈이 내 말을 순순히 듣는다는 데 안심이 되었다. 

마검은 그 뒤로 내게 함부로 손을 뻗지 않았다. 물론, 나도 놈에게 다시 봉인되라거나 다른 사람을 찾으라거나 하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뭔가 방법이 필요해…….’

녀석에게 경계를 사면 나만 피곤해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 * *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 내 품에 안겨 있는 마검 녀석과 눈이 마주쳐야 했다. 나는 하품하다가 너무 놀라서 혀를 깨물 뻔했다.

“너, 너…… 뭐야!”

“잘 잤어?”

“뭐가 잘 잤어, 야! 당장 안 비켜?”

마검은 버럭 화를 내는 내게 변명하듯이 말했다.

“어제 주인이 날 껴안았어. 인간들은 끌어안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거절하지 않았던 것뿐이야.”

“내, 내가 언제 널 끌어안았다는 거야?!”

나는 마검의 말에 약간 쪽팔린 기분이 들었으나, 극렬히 부정하면서 애써 녀석의 말을 무시했다. 

물론, 마검은 내게 더 토를 달지 않았다. 녀석은 나와 의미없는 말싸움을 하는 걸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왜 따라오는데?”

“주인이니까.”

하지만 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면전에서 문을 닫았음에도 그대로 유령처럼 통과해 들어온 마검 때문에 몹시 신경이 쓰였다. 

나는 녀석을 다시 화장실 문밖에 두고, 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절대로 안에 들어오지 마!”

“수치심? 주인, 수치심 느끼는 거야?”

“조용히하랬다!”

“…….”

다행히 마검이 내 말을 따랐기 때문에 나는 무사히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다시금 방에 들어가자, 마검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발을 까딱거리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표정하면서 묘하게 지루해 보이던 얼굴이 나를 보자 순간적으로 반짝 빛났다. 

마검은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서는 나에게 종종걸음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주인, 따끈따끈해졌네.”

“뭐래냐.”

나는 달라붙는 마검을 적당히 쳐 내면서 드라이어로 머리카락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서 얌전히 내가 머리칼 말리는 모습을 구경하던 마검 녀석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었다.

“왜 그래?”

워낙 극적인 변화라 당황해서 물었더니, 마검이 내 방에 있는 창문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주 신중한 표정이었기 때문에 덩달아 나도 긴장이 되었다.

“엄청…… 이상한 게 여기로 오고 있어.”

“이상한 거?”

“장난 아닌데……. 주인,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 이름을 지어 줘.”

“뭐라고?”

나는 경계심이 가득한 마검의 얼굴을 보면서, 녀석이 지켜보고 있는 쪽을 향해 집중했다. 

그리고 몇 분 뒤, 희미한 점 같은 것이 천천히 가까워져 오는 게 보였다. 정말로 누군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나랑 정 계약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도망치자. 어때?”

마검은 내 손을 흔들면서 졸랐다. 차분한 말투였으나 신경이 온통 창밖에서 오고 있는 자에게 쏠려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나도 덩달아 불안해졌으나…….

“어?”

점점 상대의 실루엣이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잠시 가졌던 불안감은 순식간에 옅어지기 시작했다.

“주인, 진짜 위험해……. 주인의 스승보다 훨씬 강해. 주인을 지켜 줄 수 없단 말야.”

“형?”

“……형이라고?”

나는 마검의 말을 무시하고 당장 입을 수 있는 겉옷을 대충 걸친 뒤, 현관을 향해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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