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70/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69화

“마검!?”

너무 놀라서 목소리가 약간 삐끗할 정도였다.

그러나 내 말에 반응한 사람은 마검이 아니라, 나를 토닥거리고 계시던 정원 님이었다.

“이제 마검은 사라졌습니다. 안심하세요.”

“……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여전히 침대 옆에 걸터앉아 이쪽을 쳐다보는 마검과 눈이 마주치고 있는 상태인데…….

“여, 옆에 마검이…….”

“괜찮습니다. 이제 불길한 기운을 모두 없앴으니까요. 봉인은 성공했어요. 지금은 그냥 녹슨 검일 뿐이죠.”

“……?”

나는 여전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고, 정원 님은 보란 듯이 내 침대 옆에 두었던 마검…… 그러니까, 소년 모습을 한 마검을 ‘통과’하여 녹슨 검을 들어 보이셨다.

나는 녹슨 철검이 마검 녀석 아래에 있는지도 몰랐지만, 정원 님의 손이 마검 녀석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하는 것 그리고 녀석이 정원 님의 손길을 피하지도 않는 것을 보고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정원 님……. 아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 마검이 보이지 않는 거야.’

마검이 내가 생각한 게 맞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혼란스러웠지만, 정원 님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아니면 모르는 척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주인의 애인한테 말하지 않는 게 좋을걸?”

마검은 마치 내 고뇌를 읽은 것처럼 얄밉게 대꾸했다. 나는 녀석을 힐끗 쳐다봤다.

“주인의 애인은 저주와 마기를 혐오하니까. 내가 저 검이 아니라, 주인에게 종속되었다는 걸 깨달으면 아마 주인을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

“…….”

“나는 저주와 마기의 ‘원천’이거든.”

문득 본격적으로 마검을 만나기 전, 정원 님이 마검을 두고 하셨던 말이 생각났다.

‘……혹시, 저 검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많은 사람이 죽었죠.’

‘아…….’

‘개중엔 제 여자 친구도 있었고요.’

그때, 정원 님의 눈 속에서 순간 드러났던 감정은 선명한 증오와 고통이었다. 

나는 결국 마검의 말대로 정원 님 앞에서 만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을 하기로 결심했다.

“…….”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정원 님은 그저 기쁜 듯 내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시다가, 긴장하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고개를 숙이셨다.

“미안합니다.”

“어…… 네?”

“제가 경솔했어요. 한솔 군의 재능을 믿고, 처음부터 무리한 사건을 맡게 했네요.”

“아…….”

“하마터면 의식을 더 오래 잃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역시, 제 불찰입니다.”

나는 잠시 고개를 숙인 정원 님의 하얀 목덜미를 쳐다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괜, 찮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으니까요…….”

과연 진정으로 무사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곁눈질로 마검을 힐끔 쳐다보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원 님이 없을 때 확인해 봐야 할 성싶었다.

그래서 나는 뭔가 더 말하려는 그를 막기 위해 서둘러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괜찮아요. 지금 딱히 몸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치만.”

“아니에요! 저, 그리고 호,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할까…….”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정원 님은 결국은 물러서 주셨다.

“아아……. 알겠습니다. 역시 의식을 차리자마자 여럿이 있는 건 좀 신경 쓰이겠죠.”

“네에…… 뭐.”

“그럼,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한솔 군의 훈련은 당분간 보류하도록 할게요. 푹 쉬세요.”

“넵.”

그렇게 말하면서 정원 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는 뒤에 있던 둘도 당연히 따라 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원 님이 문고리를 잡을 때까지 둘 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 분은 나가지 않으시나요?”

다행히 내가 묻고 싶은 말을 정원 님이 먼저 해 주셨다. 한데, 내 예상과 달리 희도와 유세림은 재촉을 받았음에도 요지부동이었다.

“할 말이 있습니다.”

“…….”

유세림이 먼저 말을 꺼냈다. 희도는 대꾸도 하지 않고 빤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결국, 둘의 기세에 정원 님이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흠…… 알겠습니다. 대신, 한솔 군을 너무 오래 괴롭히진 말아 주세요.”

‘아니, 당신이 저 둘도 데리고 나가야지!’

마검에 관한 일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로서는 속으로만 비명을 질렀으나, 결국 정원 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뒤 나와 둘을 내버려 둔 채 방을 나섰다.

딸칵.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백희도가 성큼 내게 다가왔다.

“희, 희도야?”

“너…….”

백희도는 뭔가 화난 것 같은 표정이었는데, 막상 무섭게 다가오고 나서는 왜인지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뭔가 억누르는 듯한 태도여서 선뜻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주인을 엄청 싫어하나 봐. 화났어.”

게다가 얄밉게 곁에서 깐죽거리는 마검 때문에 더 정신이 없었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읽어 낼 수 있거든.”

마검은 내 심정도 모르고 눈치 없이 제 능력을 뽐내듯 말했다. 나는 닥치라는 의미를 담아 녀석을 쳐다봤다. 마검은 곁눈질하는 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도가 나를 싫어하는 건, 네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 알거든!’

당장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비참한 기분이 들어서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백희도는…….

“무, 슨…….”

돌연 손을 내밀어 내 턱을 들어 올렸다. 희도가 화를 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리깔고 있던 시선이 억지로 맞춰졌다.

“마검인지 뭔지를 봉인하려고 했다며?”

희도가 나직하게 물었다. 그저 차갑게 추궁하는 말투였음에도 나는 저절로 달아오르는 얼굴을 가릴 수 없어서 점점 더 빨개지고 있었다. 

“으응…….”

나와 다르게 희도는 내 대답을 듣고 뭔가 더 기분이 뒤틀린 것 같았다. 내 턱을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넌 저새끼가 시키는 건 그냥 무지성으로 다 하냐? 생각이라는 게 없어?”

누가 들어도 멍청하다는 식의 비난이었기 때문에, 간만에 접촉으로 들떴던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

“하.”

결국, 눈만 굴리는 나를 지켜보던 희도는 내 얼굴을 쥐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손을 털어 버렸다. 그러곤 몸을 휙 돌려서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희도가 열고 나간 문을 쳐다봤다.

“……넌 왜 남아 있는 건데?”

그제야 여전히 마지막까지 남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유세림을 의식했다. 

유세림은 퉁명스러운 내 말을 듣고도 차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 유리구슬 같은 눈빛은 언제 봐도 소름이 끼쳤다. 

나는 결국 이불을 끌어다 쓰고, 등을 돌려 누우면서 유세림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피곤하니까 나가 줘.”

“…….”

“아니면, 할 말 있어?”

“…….”

유세림은 별말이 없었지만, 머지않아 아주 희미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탁.

이로서 세 명의 남자 모두 내 방에서 사라졌다.

“주인, 피곤해?”

하지만 가장 문제이자 눈치가 없는 마검 녀석이 남아 있었다. 

마검은 내 옆구리에 고개를 기대며 나를 흔들었다. 나는 마검의 말을 듣자마자 녀석을 밀어내면서 이마까지 뒤집어썼던 이불을 거칠게 집어 던졌다. 어차피 지금은 지켜보는 사람들도 없으니까.

“야, 너!”

“응?”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왜 널 못 보는 건데?”

“주인이 내 계약자잖아. 그리고, 원하면 내 모습을 드러내게 할 수 있는걸.”

“뭐, 뭐라고?”

나는 마검의 말을 듣다가 방 한편에 있는 거울에 시선이 미쳤다. 나는 마검의 팔을 잡아끌어서 녀석을 그 앞에 세웠다.

“……!”

혹시나 싶었던 예상대로 거울 속에는 나 혼자 덩그러니 비춰지고 있었다. 마검은 충격 받은 내 표정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리고, 이게 싫으면 나를 불러내면 돼.”

“무슨…… 소린데?”

“주인이 나한테 이름을 지어 주면, 나는 이곳에 ‘현신’할 수 있어.”

마검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척 고대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린아이처럼 새까만 눈과 조금 붉어진 뺨을 긁적이며, 마검은 수줍게 부탁했다. 

“주인아. 나에게 이름을 붙여 주지 않을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