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68화
얼결에 내민 손을 붙잡자, 마검은 혹여 내 손을 놓칠세라 꽉 붙들었다.
“아……! 프다고, 이 자식아.”
“헤에.”
그런데 마검은 내 정당한 항의를 마치 신기한 일이라는 양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주인은…… 역시 약하구나.”
“내가 왜 약……! 아니, 그보다 내가 왜 네 주인이야!”
당장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마검이 그보다 빠르게 내 손에 깍지를 꼈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런 나와는 달리, 마검은 기쁜 듯이 눈웃음을 쳤다.
“응, 괜찮아. 이제 내가 주인을 지켜 주면 되니까.”
“돼, 됐으니까, 이 손 좀…….”
어이가 없는 게, 말은 주인이라고 하면서 녀석은 내가 하는 말은 당최 들어 먹질 않았다.
놈은 갑자기 들어온 입구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동굴로 앞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손을 붙든 채였기에 나는 녀석의 힘에 끌려 나가야 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나는 놈의 손목을 흔들며 물었다. 그런데 되돌아온 답이 놀라웠다.
“나가야지. 나가고 싶어 했잖아.”
“……뭐? 너, 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알아?”
“응.”
되돌아보며 끄덕이는 고개가 너무나도 확고했기에, 별다른 수가 없던 나로선 마검의 안내를 따라야 했다.
“……그런데. 너, 정체가 뭐야? 진짜 마검이야?”
그렇게 약 5분쯤 걸었을까. 나는 한없이 이어진 좁은 통로를 따라 걸으며 녀석에게 질문을 던졌다.
마검은 여전히 앞서 걸으면서 내게 대답했다.
“응.”
“……정말로, 사람을 홀려서 죽였어?”
“주인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덤덤히 내뱉는 말에 조금 움찔했지만, 마검은 개의치 않았다.
“나는 주인이 아니면 아무도 다룰 수 없는걸. 도전자들은 다 알고 있었어.”
냉담하기까지 한 말투라, 나는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주인이 되는 기준이 뭔데?”
뭔가 대단한 기준이라도 있는 걸까?
그러나, 두근거림도 잠시였다.
“느낌이지. 주인도 나랑 잘 맞지 않아?”
“전혀 모르겠거든.”
어처구니없는 답에 투덜거린 한편으로는 약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주인인지 뭔지, 기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놈의 호의적인 태도를 보아 적어도 공격당할 일은 없다는 거니까.
‘그럼, 아엔은…….’
나는 때마침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에 주저하다가 물었다.
“아엔…… 말인데. 그 사람은 정말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었어?”
“아니. 아엔은 예전에 실패한 도전자야.”
“실패한 도전자?”
“응. 나는 주인을 정하는 검이고, 아엔은 주인이 되지 못했어.”
나는 간단한 설명임에도 납득이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그럼, 아엔이 예전에 네 주인…… 이 되고 싶어 했다는 말이야?”
“응. 하지만 실패했고, 마기에 침식당했지.”
“마기에 침식당했다는 건 무슨 뜻이야?”
“주인도 봤잖아. 아엔의 마지막 모습.”
나는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던 아엔의 눈빛을 떠올렸다.
확실히 평범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엔이 마지막에 한 말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찝찝해졌다.
“하지만…… 아엔은 널 없앤다고 했어. 본인이 마검의 주인이 되려고 했다면, 왜 나한테는 마검을 없애겠다는 소리를 했지?”
“글쎄. 하지만, 아엔은 언제나 나를 욕망해 왔는 걸 나는 알 수 있어.”
“…….”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까 되레 할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오기가 생긴 나는, 마검에게 도전적으로 물었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거야?”
“아니. 나를 향한 욕망만 읽을 수 있어.”
마검은 간단하게 대답한 뒤에 나를 쳐다보며 해맑게 웃었다.
“주인은 나를 전혀 원하지 않잖아. 안 그래?”
정곡이 찔려서 약간 주춤했는데, 마검은 여전히 앞을 본 채로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래서 좋아. 주인은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헤헤.”
결국, 나는 마검의 말을 이해하는 걸 포기하고 잠자코 녀석의 뒤를 따라 걸었다.
* * *
얼마나 더 걸었을까.
어느새 우리는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 나와 있었다. 공터는 아주 깨끗했는데, 바닥에는 알 수 없는 기호가 새겨져 있어서 어쩐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머뭇거리는 내게 마검이 쾌활하게 말했다.
“자, 이제 주인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거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지만, 지금까지 겪은 상황이 상황이라 보니 쉽게 믿을 순 없었다.
“어떻게?”
“원을 만들어 봐.”
“원?”
“응. 주인도 할 수 있잖아. 이거.”
마검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바닥에 보라색의 원을 만들어 보였다.
나는 마검이 시키는 대로 원을 만들었다. 내 것은 마검의 것과 다르게 깨끗한 파란색이었다.
우우웅―.
놀랍게도 원을 만들자마자 내 발밑에서 이상한 모양의 마법진이 빛을 내뿜으면서 떠올랐다. 마검은 그런 나를 보면서 원을 만든 손을 앞으로 내밀라고 지시했다.
“내 원에 닿게끔 밀어내 봐.”
마검이 만든 원에 닿게 밀어내자 기분이 좀 이상했다. 마치 같은 극의 자석을 억지로 붙이려는 듯한 저항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을 엇나가자 점차 초조해졌다. 마검은 그런 나를 달래듯 말했다.
“주인, 긴장하지 마. 부드럽게 닿게 하면 돼.”
“후우…….”
녀석의 말을 들으며 다시 한번 집중해 보았다. 그러자 아까보다 원이 훨씬 부드럽게 맞닿는 것이 느껴졌다.
‘뜨거워…….’
더불어 마검이 만든 원에서 열기가 느껴져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 것은 시원한 느낌이었다는 걸, 녀석의 원과 접촉하면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 힘은 뭐지…….’
그런데, 그 순간.
파앗―!
갑자기 눈부신 빛이 공간을 잠식해 왔다.
[……그래? 그럼. 여기에 ……두지.]
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뭐?”
[후회하고 있어.]
나는 이 목소리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눈이 타들어 갈 것 같았지만 억지로 눈을 뜨고자 애썼다.
“형! 형이지? 지금 여기 있어?”
하지만 애써 눈을 떠도 시큰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뭔가 거대한 덩어리가 코앞에서 움직이는 듯싶기도 했으나, 손을 뻗어 봐도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글쎄. 이런다고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성훈 형의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소리를 높여 다시 형을 불렀다.
“형, 나야! 한솔이! 지금 여기 온 거야? 형?”
그런데, 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내가 죽더라도.]
“……뭐?”
[난 각오했어. 내 동생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되돌려 놓겠다고.]
“무, 슨…….”
[그래. 책임지겠어.]
그 순간, 아마도 형으로 보이는 덩어리진 그림자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눈앞에서 녹아내리듯 말이다.
“이게, 대체…….”
나는 혼란스러웠으나, 곧 더는 가늘게라도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빛이 내 눈을 찔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눈꺼풀마저 뚫고 들어오는 밝은 빛 속에서 눈이 시린 건지, 안타까운 건지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 * *
“……까지, 이렇게 있는 겁니까.”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옆에서는 조곤조곤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체온이 돌아오기 시작했으니 곧 눈을 뜰 겁니다. 세림 군도 희도 군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걱정을……!”
“그렇게 말한 지 벌써 사흘입니다.”
‘여기는…….’
나는 익숙하면서도 뭔가 바뀐 것 같은 정원 님 집, 내 방 천장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둘은 내게서 등을 돌린 채였고, 정원 님은 그런 그들 앞에서 뭔가 설명을 하시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한솔 씨!”
나는 정원 님이 그토록 기뻐하면서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멀뚱멀뚱 지켜봤다. 아직도 머릿속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고 뒤죽박죽인 채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원 님이 내 이름을 외치자마자 뒤돌아 있던 두 사람이 황급히 나를 쳐다봤다.
희도와 유세림이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무사히 돌아왔군요!”
정원 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누워 있는 나를 꽉 끌어안아 주셨다.
나는 얼결에 정원 님과 포옹하다가, 이쪽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두 사람의 표정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말았다.
“……왜?”
그때, 내 침대 옆에서 괴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이 인간은…… 주인의 애인? 인 거야?”
“무, 뭐……?”
깜짝 놀라 옆을 쳐다보니, 마검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내 침대에 걸터앉아 발을 까닥까닥 흔들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