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67화
쩡―!
그러자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뒤로 물러설 뻔했지만, 검을 쥔 손을 놓지는 않았다. 검은 마치 반항하는 것처럼 손아귀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캬아아악!”
“그그극…….”
그러나 검보단 뒤에서 몰려오는 아엔 무리가 더 문제였다. 아엔은 내가 검을 잡자마자 눈을 희번덕 뜨고는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역시, 저 녀석들을 조종하는 건…….’
나는 벽에서 웅웅 진동하는 마검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해야……!’
그런데 그때였다.
“죽어어어엇!”
아엔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 없어서 구석에 몰려 있던 마검이 갑자기 원을 이용해, 아엔의 몸통을 뚫고 돌진해 온 것이다.
마검은 최선을 다해서 나를 구하기 위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버텨야 해! 그리고, 이 마검을…….’
나는 벽에 붙어 있는 사슬을 유심히 살펴봤다.
쾅―!
그러고는 헐거워진 연결 고리를 향해 발길질했다. 일단, 마검의 반쪽을 온전히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가아아악!”
그러자 마검의 조종을 받고 있던 아엔 무리의 행동이 더 격해졌다.
아마도 이 반쪽짜리 마검의 발악이 더 거세졌기 때문이리라. 그 말인즉, 내가 하는 행동이 마검에게 위협이 된다는 의미였다.
나는 다시 한번 발로 걸쇠를 걷어찼다. 그 찰나, 등 뒤에서 오싹한 느낌이 밀려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검에서 손을 떼고 바닥을 굴렀다.
“캬아아아악!”
아엔이었다.
아엔은 거대해진 몸뚱어리로 직접 마검이 있는 곳을 향해 부딪쳐 왔다.
원을 그렸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르나,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했다면 분명 뼈가 산산이 조각났을 것이다.
“하아, 하아…….”
그러는 동안, 내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던 사람들을 해치운 마검이 내 옆으로 날듯이 달려왔다.
마검은 내 몸이 멀쩡한지를 가만히 살펴보더니, 곧 반쪽짜리 마검의 곁을 지키고 선 아엔을 노려보았다.
마검은 한참을 신중하게 아엔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도아줘.”
“뭐?”
“도아줘…….”
나는 또박또박 말하려고 애쓰는 마검의 모습을 보며 녀석의 손이 향하는 곳을 쳐다봤다. 아엔의 심장부. 그 위로 여전히 선명한 마법진이 떠올라 있었다.
“저걸…… 나보고 맡으라고?”
“웅!”
불가능한 소리를 하는 마검의 눈동자는 어째서인지 나를 향한 신뢰를 가득 품은 채 반짝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거!”
마검은 그렇게 말하면서 아직 내 양손에 둘려 있는 푸른 원을 손가락으로 덧그렸다.
“쾅쾅해! 쾅쾅!”
그러곤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애썼다. 결국, 나는 떠밀리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 알았어…….”
“응! 간다앗!”
마검은 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힘차게 기합을 넣고는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일순 허벅지가 팽팽해진다 싶더니…….
“하아압!”
반쪽짜리 마검을 향해 직선으로 뛰어나갔다. 그 속도가 가히 총알 같았다.
“크와아아아아!”
물론,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아엔이 아니었다. 아엔은 쿵쿵, 육중한 몸을 이끌고 마검을 향해 돌진했다.
나는 그제야 마검이 뭘 원하는지를 깨달았다. 하여, 재빨리 손을 뻗었다.
쾅―!
아슬아슬하게 내가 펼친 원이 마검의 옆구리를 막아 냈다. 아엔은 원의 테두리를 붙잡으려고 했으나, 그보다 마검이 더 빨랐다.
“어!?”
나는 마검이 펼친 원을 보면서 눈을 부릅떴다. 원은 그저 단순한 모양으로 만든 일종의 에너지로, 그 효능은 오직 밀려오는 공격을 막는 방패에 국한된다고 생각했는데…….
푸욱.
마검이 어느새 자신의 원을 좁게 접어 하나의 긴 선으로 만들더니, 아엔의 심장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정말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내가 본 것이 맞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
아엔은 심장이 꿰뚫린 이후부터 건전지가 다 된 로봇처럼 우뚝 선 채로 움직이지 못했다. 마검은 처음으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닦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마검이 아엔을 완전히 이긴 게 아니라 원을 통해 그를 제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체, 이 힘은…….’
결국, 나는 가슴에 구멍이 난 아엔과 그 앞에 서 있는 마검을 지나쳐서 홀로 반쪽짜리 마검이 벽에 박혀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마검 위에 떠올라 있는 마법진은 여전히 벌 떼처럼 웅웅거렸으나, 반쯤 부서진 잠금장치를 떼어 낼 때까지도 내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했다.
덜그럭.
곧, 작은 먼지와 함께 벽에 붙어 있던 반쪽짜리 마검은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콜록, 콜록.”
나는 잔기침하면서 내가 뽑아 든 검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람은커녕 종이 한 장도 베지 못할 것 같은 무딘 검날 위로 붉은 선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었다. 툭 치면 깨질 것처럼 말이다.
통통.
나는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럽게 건드려 봤으나, 검은 부서지지도 혹은 내 손가락을 찌르지도 않았다.
다만,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을 땐 미약한 거부 반응이 느껴졌다. 꼭 같은 극의 자석을 억지로 붙이려는 것처럼 밀어내는 힘이 무시무시했다.
“커어억…….”
그렇게 마검을 손에 넣자, 조종당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그런데 단순히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이 점점 가루로 변해 흩날리기 시작했다. 붕대 사이를 뚫고 공중에 흩어지는 잿가루 때문에 동굴이 뿌옇게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아엔이 천천히 무릎을 꿇고 작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녀석의 곁으로 갔다.
“……아엔, 네 정체는 대체 뭐야?”
“…….”
아엔은 멍한 표정으로 쓰러지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는 나를 잠시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나와 같은 의문, 그리고 선연한 공포였다.
“나도…… 모르겠…….”
아엔은 그렇게 말한 뒤,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마검은 아엔이 완전히 흩날리고 난 뒤에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악, 하악…….”
“괜찮아?”
“으응…….”
마검은 고개를 흔들며 앉은 자세에서 다리를 쭉 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지켜보다가, 들고 있던 검을 조심스레 보여 줬다.
“이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너 뭔가 알고 있어?”
“…….”
마검은 대답하는 대신, 내 눈을 잠시 쳐다봤다.
까만 머루처럼 생긴 눈동자는 꼭 내 속내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무엇을 망설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어깨를 쭉 펴고 마검을 쳐다봤다.
그렇게 몇 분 동안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을까. 마검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
나는 솔직히 말하자면…… 갈등했다.
만약 검을 건네주었다가 녀석이 전처럼 가슴 속에서 눈알을 꺼내는 괴물이 되어 버리면 암담해지니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런 단서가 없었고, 마검은 폭주하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민 손에 검을 건네주었다.
검은 내 손에 붙잡힐 때와는 정반대로 마검의 손에 착, 끌려들어 갔다. 마치, 퍼즐의 알맞은 조각을 끼워 넣는 것처럼 말이다.
우우웅―.
곧, 검이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녹는 게 아니라 반쪽짜리 검이 마검의 손 위에서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내 곁에 있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인지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하…….”
마검은 눈을 감고, 마치 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얼굴을 씰룩거렸다.
“……드디어.”
그리고 마검은 다시 눈을 떴다. 나는 녀석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다가, 그의 목 위로 아엔과 같은 문양이 나타난 것을 보고 경계했다.
“괜찮아.”
“……어?”
“이제 다 완성됐다고.”
슬금슬금 경계하는 내게 마검이 안심하라는 듯 말을 건넸다. 놀라운 점은, 이전과는 다르게 매끄러운 발음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너, 말을…….”
“이제 완전해졌으니까.”
마검은 싱긋 웃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녀석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키는 그대로인데 그 존재감은 이전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완전해졌다는 게 무슨 뜻이지?”
“이제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야. 아, 그래도 걱정하지 마. 너는 내 진정한 주인이 되었으니까, 나한테 죽을 일은 없을 거야.”
나는 방금 들은 말에 당황해서 얼빠진 소리를 냈다.
“무…… 뭐?”
하지만, 마검은 설명을 요구하는 나를 무시한 채 씩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가자, 주인님. 여기서 나가고 싶어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