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7/104)
  •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66화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어느 순간, 아엔이 발걸음을 멈췄다. 이어 내 눈에도 낯익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이쪽으로.”

    아엔은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앞서 걸었다. 

    그를 따라 코너를 돌자, 이전에 봤던 반 토막 난 검이 사슬에 매여 있었다.

    우웅―.

    그런데 검은 전과 달리, 은은한 붉은빛이 감돌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뭔가 느낌이 심상찮았는데, 아엔은 그 검 앞에서 나를 막아서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여기서 멈춰.”

    나는 그런 아엔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마검이 저 검에 닿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아엔은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는 표정이었지만, 결국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당연히 마검에게 걸려 있는 봉인 주문이 깨진다.”

    “봉인 주문이 깨지면 어떻게 되는 건데? 마검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 보란 말이야.”

    아엔은 뭐 이런 걸 묻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별수 없었다. 놈은 한숨을 깊게 내쉬곤 대답했다.

    “마검이 왜 마검이겠나. 당연히 우리를 전부 죽이고 다음 희생양을 찾겠지. 다시 봉인될 때까지 말이야.”

    말하는 아엔의 모습을 가만히 살펴봤는데, 놈은 정말로 마검이 사람들을 해칠 거라 믿고 있었다.

    그 확고한 표정을 보자,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그럼, 너는 마검을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놈을 파괴하고 여기 있는 남은 반쪽 역시 파괴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나누어져 있어서 내 공격이 먹히지만, 둘이 합쳐지면 내 힘으로는 마검을 파괴할 수 없으니까.”

    나와 아엔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검은 내 뒤에서 손가락을 빨며 얌전히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아엔은 그런 무해한 모습을 보면서도 나 보라는 듯 마검을 턱짓했다.

    “너도 저것의 본모습을 본 적이 있을 텐데?”

    가슴이 갈라지고 눈알이 튀어나왔던 괴물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때는 정말로 ‘마검’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징그러운 모습이었지.

    하지만…….

    “그건 네가 만든 모습이잖아.”

    “아니, 그게 마검의 본모습이야. 그리고 그 모습일 때, 너는 저놈을 통제하지 못했지.”

    “…….”

    “제발, 내 말을 한 번만 믿어 봐라. 나는 너보다 저 마검을 더 오래 알았고, 놈이 가증스럽게 너를 속이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어.”

    “쟤가 나를 왜 속이겠어.”

    “네가 마검의 봉인을 풀어 줄 열쇠니까.”

    아엔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검을 쏘아봤다.

    “우리는 놈에게 협조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인인 너를 속여서 마검의 봉인을 깨고자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야.”

    그 순간, 마치 아엔의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벽에 묶여 있는 검이 더욱 강렬한 붉은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검은 별다른 미동이 없었으나, 붉은빛에 물든 그의 얼굴은 어딘가 음산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윽…….”

    그런데 나를 설득하려고 열변을 토하던 아엔이 돌연 몸을 숙이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놈이 손목의 통증을 오래 참다가 결국 견디지 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그래서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갔는데, 곧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어?”

    누군가 뒤에서 내 몸을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마검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왜 그래?”

    나는 당황했지만, 어째서인지 마검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녀석은 송곳니를 다 드러낸 표정을 지으면서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크르릉…….”

    그리고 불빛에 흔들리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나는 점점 커지는 검은 그림자를 보면서 마검에게서 떨어지려 했으나…….

    ‘아니. 이건, 마검의 것이 아니야.’

    나는 아엔을 돌아봤다.

    “그으윽…….”

    그리고 시뻘게진 눈을 한 아엔과 눈이 마주쳤다.

    “가아악!”

    아엔이 갑자기 눈을 뒤집고 달려드는 그때, 마검이 나를 뒤로 잡아끌었다. 나는 간발의 차이로 아엔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미, 미친……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소름이 쫙 끼쳐서 아엔을 다그쳤지만, 놈은 대꾸하는 대신, 나를 휙 돌아볼 뿐이었다.

    이어 나는 괴물처럼 일그러진 놈의 표정과 붕대 틈 사이로 빛나는 마법진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아엔의 그림자 역시 말이다.

    ‘뭐야……. 갑자기 왜 저렇게 된 거지?’

    이해를 아득히 벗어난 상황에 머리가 굳어 버렸을 때였다.

    “하악, 하악…….”

    마검이 흥분에 찬 숨을 내뱉고는 아엔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르륵―!

    그러나 아엔이 손을 뻗자, 놈의 손 위로 붉은 화염이 나타났다. 나는 아엔이 몰래 마법을 준비했고, 이 순간을 위해 힘을 비축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역시, 다른 놈들을 물린 이유가 있었어……!’

    우리가 안심하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뭔가 타이밍이 이상했다.

    ‘일단 아엔 놈의 상태부터가…….’

    기습이라 생각하기에는 어떤 침착함이나 날카로운 느낌은커녕, 놈은 마치 몬스터가 된 것처럼 입을 벌리고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게다가 희게 뒤집힌 눈동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으로 보긴 힘들었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설마.’

    나는 반사적으로 벽에 걸려 있는 마검을 바라봤고, 이어서 어느새 마검의 위로 붉은 마법진이 떠오른 것을 발견했다.

    “마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거라고?”

    내 외마디 외침을 시작으로 아엔이 마검을 향해 달려들었다.

    화아악―!

    또한, 벽에 걸린 마검에게 가까이 갈 수 없도록 내 발밑에서부터 불꽃으로 된 선이 그어졌다. 화염은 어느새 내 키만큼 치솟아, 선 너머 벽에 걸린 마검이 반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젠장. 이거, 함정이었어!”

    나는 이를 갈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원을 그렸다. 

    불길은 나를 따라오지 않았지만, 소매를 태우던 작은 불은 원을 그리자마자 사그라들었다. 원을 그리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타올랐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 소동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그극…….”

    “으어어…….”

    갑자기 우리가 있는 방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 그림자가 천장까지 불쑥 치솟아 오른 것이다.

    바로, 아엔을 몰래 따라오던 놈들의 것이었다. 

    ‘저놈들까지 이성을 잃었다고?’

    끔찍하게도 불길한 예상은 꼭 적중한다. 우리를 향해 밀고 들어오는 무리의 면면은 아엔보다 더 처참했다.

    “으어억…….”

    눈을 희게 뒤집기만 한 아엔과는 다르게, 놈들은 마치 좀비처럼 몸을 이리저리 꺾으면서 기어 오고 있었다. 꼭, 몸에 줄이 달린 인형들이 서로 얽힌 바람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

    쉬이익―!

    쾅!

    하나, 놈들의 공격력은 강력했다. 나는 손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화살을 튕겨 내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완전히…… 달라.’

    놈들에게 포위당해 원을 꺼내 들었을 때와는 파워가 전혀 다르다. 그 전이 이쑤시개였다면, 지금은 창을 내리꽂는 것 같았다.

    나는 눈으로 마검을 좇았다.

    “캬아아악!”

    애석하게도 마검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아엔은 이제 온몸이 화염에 완전히 뒤덮여서 마치 산 채로 타오르는 것 같았는데, 마검이 덤벼들어 쓰러트리려고 해도 화염 때문에 접근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어어억!”

    아엔은 시커먼 연기를 입 밖으로 뿜으면서 마검을 뒤쫓았다. 놈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연기에 질식해서라도 죽을 거야.’

    나는 소매로 코와 입을 막으면서 주변을 훑어봤다. 벽에 고정되어 있는 마검은, 마치 이 상황을 비웃듯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분명, 저게 문제야.’

    이전과는 다른 빛 그리고 설명하던 아엔이 돌연 달려들게 된 것, 아엔의 몸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

    나는 단서를 머릿속에 욱여넣으면서 다른 한 손을 펼쳤다.

    우웅―!

    푸르게 빛나는 두 개의 원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또, 뒤에서 화살을 날리던 놈들이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꺼져!”

    나는 그런 놈들을 뒤로하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화염의 선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불꽃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활활 타올랐으나, 내가 만든 원을 거스르진 못했다. 나는 화염 안쪽으로 무사히 굴러들어 왔다. 그러자마자 벽에 박혀 있던 마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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