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64화
“끄으윽…….”
아엔은 부러진 손목이 아픈 듯, 계속 신음을 냈다.
물론, 나와 마검은 놈이 그러든지 말든지 아무도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구에 각종 가구를 출입구에 두었다.
우리는 호수가 있던 동굴에서 아엔을 인질로 잡아 다른 놈들을 전부 따돌리고, 동굴에서 가장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어 왔다.
물론, 놈들은 이곳 지리에 빠삭하니 어설픈 방편이 오래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돌로 조각해 만든 엄청난 무게의 책상까지 쌓고 나자, 그제야 한숨 돌리게 되었다.
나는 아엔의 상태를 눈으로 한번 확인한 뒤, 마검을 향해 말했다.
“깨워 봐.”
“웅!”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마검은 이젠 내 말을 얼추 알아듣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엔의 멱살을 잡고 놈의 뺨을 마구 내리쳤다.
짝, 짝! 소리가 다섯 번쯤 들렸을 때, 아엔은 정신을 차렸다. 그러자마자 놈은 곧 증오스럽다는 시선을 쏘아 보냈다.
‘그래 봤자 독 안에 든 쥐 신세지만 말이지.’
나는 아엔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놈의 정강이를 발로 툭 건드렸다.
“으읍!”
붕대로 아엔의 입에 재갈을 물린 건 내 아이디어였다. 놈의 목엔 잘 잘리는 붕대들이 칭칭 감겨 있었으니 말이다.
그 탓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엔은 막힌 소리만 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부러진 손목째로 팔을 뒤로 묶어 버렸기 때문이다. 놈이 스킬을 사용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아엔, 넌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지? 그리고 어떻게 이곳을 나가야 하는지도 말이야.”
“…….”
“알고 있는 걸 다 털어놓거나, 아니면 여기서 우리랑 계속 이러고 있거나. 그건 네 마음이야. 하지만 오래 고민할 시간을 줄 생각은 없어. 한 시간 안에 정하라고.”
“…….”
아엔은 내 말을 듣고 미간을 찡그렸다. 별 반응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재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나는 놈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서 고민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건데……. 절대로 그럴 순 없어.’
내게는 형도 그리고, 희도도 있으니까.
두 사람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욱신욱신했다. 대체 이곳에서 며칠이나 허비했단 말인가.
“흠, 킁킁…….”
또, 한쪽에서 개처럼 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 마검 녀석도 마음에 걸렸다.
사람이 아닌 건 알겠는데, 대체 왜 저러는 건지도 모르겠고……. 뭣보다 놈이 내게 보이는 맹목적인 애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경 쓰였다.
‘가능하면 저 녀석도 풀어 주고 싶은데.’
이 공간에서 말이다. 녀석이 편안하게 살아갈 만한 환경은 아니니까.
아엔이나 놈을 따르는 무리는 마검에게 적대심을 보였으니, 녀석을 이 무리에서부터 떨어뜨리고 싶었다.
‘그냥 내가 데려갈까……. 방법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데.’
한참 고민하는 동안, 아엔도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놈은 제 입을 막은 천을 뱉어 내려다 실패한 듯, 끙끙거리다가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읍읍!”
“풀어 주면, 이제는 제대로 말할 생각인 거야?”
아엔은 눈을 가늘게 떴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입에 물려 둔 붕대를 잡아서 풀어 주었다.
“헉, 헉…….”
한참을 컥컥거리던 아엔은 머리를 흔들고는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지만, 아엔은 아픈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알고 싶은 게 뭐지?”
심지어 손이 뒤로 묶인 자세에서도 최대한 꼿꼿하게 허리를 펴려고 했다.
‘이런 정신력이 있어서 무리의 리더가 된 걸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대신 아엔에게서 좀 떨어진 앞에 털썩 주저앉아 가만히 바라봤다.
“우선, 네놈들의 정체부터 말해 줘야겠어.”
“이미 전에 말했을 텐데. 우리는 마검을 봉인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그 말을 믿으라고? 그럼, 왜 나를 죽이려고 했지?”
“네가 마검과 이런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지.”
아엔은 보란 듯이 마검을 쳐다봤다.
마검은 때마침 내 곁에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허락하기만 한다면 금방이라도 품에 뛰어들 것 같은, 열렬한 시선을 보내면서 말이다.
아엔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마검을 꾀어내기에 너만큼 적합한 미끼는 없었어. 우리는 이미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허비했기 때문에, 마검을 잡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예정이었지.”
“그래서, 아무런 죄도 없는 나를 미끼로 썼다?”
“죄가 없는 건 확실한가? 마검을 쥔 자만이 이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어. 너는 모르겠지만, 이미 마검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거지.”
나는 아엔의 말에 잠시 고민했으나, 내가 마검을 쥐어서 의식을 잃고 누군가를 해코지한다면…… 곁에 있는 정원 님부터 노렸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마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든, 정원 님을 간단하게 제압하진 못했을 거야.’
내가 미쳐서 칼부림했다고 하더라도 정원 님이 나를 제압했을 거라는 게 좀 더 현실성이 있었다.
“아니. 나는 정말로 죄가 없어. 그리고 내가 마검에 휘말렸을 땐, 이미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곁을 지키고 있었거든.”
아엔은 내 말에 대답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와 마검을 빤히 쳐다보다가 제법 그럴듯한 목소리를 꾸며 냈다.
“……그래. 내가 성급하게 널 미끼로 썼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도 마검을 잡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사과를 하면, 받아 줄 건가?”
나는 아엔이 아직도 내게 거짓말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의 사과도 일절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저 이 상황이 제게 불리하니까 꺼낸 말일 뿐이겠지.
‘설령, 놈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있다고 해도…… 이 말만으로는 모르는 일이야.’
나는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아엔이 알고 있는 지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놈의 사과를 믿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놈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아엔의 사과를 무시하고 재차 질문했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마검을 파괴하는 것뿐이다.”
아엔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했다. 마검은 놈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한 듯, 으르렁거리면서 매섭게 노려봤다.
“그럼, 어떻게 해야 파괴할 수 있는데?”
“…….”
아엔은 동요하지 않는 내 태도에 잠시 놀란 것 같았으나, 곧 순순히 털어놨다.
“예전에 네게 보여 줬던 반토막 난 검, 기억하나?”
예전, 아엔이 나를 범상치 않은 곳으로 데려갔던 때가 떠올랐다. 이상한 부적들과…… 그리고, 녹슨 검.
“기억해.”
“그걸 저 마검의 심장에 꽂으면 된다. 그럼 이 공간을 빠져나갈 길이 열릴 거야.”
“그 말은 누가 보증하지?”
“믿지 못하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녀석들을 데려와도 똑같은 대답만 들려줄 거다.”
아엔은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마검의 심장에 검을 꽂아 파괴하고 나서, 설령 놈이 말한 대로 길이 열린다고 한들…….’
그게 외부로 연결된 건지도 확실치는 않았다.
하지만 아엔은 너무 자신만만했고, 내게는 놈을 압박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아엔을 노려보는 마검을 가만히 쳐다봤다.
‘이 녀석이 의사소통만 제대로 되었어도 아엔의 말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텐데.’
“주거!”
마검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엔을 가리키면서 놈의 가슴을 툭툭 건드렸다. 아엔은 뒤로 물러서다가 손목을 건드린 건지 얕은 신음을 흘렸다.
“윽…….”
그리고, 나는 살짝 상체를 구부린 아엔의 목 틈새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저건 뭐지?’
나는 그의 몸에 여전히 달라붙어 있는 붕대를 끌렀다.
아엔은 이에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섰다.
“……무, 무슨 짓이냐.”
“잠깐 가만히 좀 있지?”
누군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아나?
하지만 내 생각보다 아엔의 반응이 훨씬 격했다. 놈은 발작하듯 몸을 흔들면서 나와 마검을 징그럽다는 듯이 쳐다봤다.
“꺼지지 못해? 차라리 죽여라!”
“뭔 개소리야! 내가 무슨 변태인 줄 알아?”
하지만 마검은 그 소리를 듣고 새로운 걸 배웠다는 양 콧김을 훅 내뿜으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변태!”
“아니라고! 너도 가만히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