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3/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62화

‘……스킬이라고?’

나는 날아오는 불꽃의 화살들을 보면서 아연해졌다. 지금 내게는 방어할 수 있는 스킬이나 아이템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마검이 내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하아아압!”

그러고는 엄청난 기합을 질렀는데, 동시에 놈의 몸 앞에 동그란 원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밝게 빛나는 점이 정면에 반듯하게 원을 그렸다.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다.

‘저건…….’

마치 정원 님과 했던 훈련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원 안으로 날아들자마자 화살이 급격히 힘을 잃고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는 것이다.

‘방어가 됐잖아?’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깨를 움찔 떨었다. 

‘설마…… 나도?’

정원 님에게 배운 것과 같은 종류라면 나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호승심으로 나서기에는 목숨이 간당간당한 처지였다. 우선,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마검의 뒤에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지긋지긋하군.”

한편, 아엔은 마검이 만든 원을 보곤 미간을 찡그렸다. 이미 여러 번 이것의 위력을 체험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이번에야말로…….”

놈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바닥에 발을 굴렀다.

쾅―!

있는 힘껏 바닥을 내리친 것도 아닌데, 놈이 바닥에 발을 구르자마자 먼지가 위로 솟을 만큼 커다란 울림이 생겼다.

떠오른 먼지들은 마치 구름처럼 넓게 퍼졌다. 꼭 발밑에서부터 원형으로 무언가가 퍼져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

그리고 나는 이런 기묘한 울림을 몇 번이나 겪어 본 적이 있었다.

‘꼭 무슨…… 던전에서 보스 몬스터가 전체 공격을 하기 전 패턴 같은데?’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마검에게 소리쳤다.

“피해!”

하지만, 내 외침은 한발 늦었다.

“헬 파이어.”

아엔이 스킬을 발동하자, 곧 놈의 발밑에서 복잡한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어 마법진의 중앙에서는 새까만 불의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아엔은 새카만 불꽃이 타오르는 기둥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다가, 씩 웃으면서 마검을 향해 손짓했다.

“드디어 네놈을 죽일 수 있게 되었군.”

화아악―!

검은 불기둥은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더 까맣게 타오르면서 몸집을 구부렸다. 나는 마검의 뒤에서 피부를 태울 듯 불어오는 열풍에 밀려 뒤로 주춤주춤 밀려났다.

“한술 군도 타 죽기 싫으면 도망치는 게 좋을 겁니다. 십 초를 주죠.”

‘……미친 새끼.’

그 와중에도 아엔이 빈정거리는 소리만큼은 똑똑히 들려왔다.

“하아, 하아…….”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조차 마검은 내 앞을 굳건히 지키면서 다시금 푸른 원을 한 바퀴 그렸다. 이 자리에 있으면 분명 대미지를 입을 게 확실한데도 말이다. 

“야, 도망치라니까?!”

나는 녀석의 어깨를 건드렸다. 

왜냐면 마검이 그린 원이 마치 전력이 끊기는 것처럼 한두 번씩 찌그러지는 것도 그렇고, 아엔이 불러낸 불기둥을 막을 순 없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놈과 함께 튀는 게 낫다고 여겼지만, 마검은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녀석이 나를 쳐다볼 때의 표정을 보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이 녀석, 도망치지 않는 이유가…….’

……설마, 나 때문인가?

어째서지? 왜 이렇게까지 나한테 호의적인 거냐고. 저가 죽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 아엔은 보다 확실하게 불 기둥에게 명령을 내렸다.

“뼛조각도 남기지 말고 태워 죽여라!”

“크아아아아!”

마검은 밀려오는 화기에 맞서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어차피 여기서 밀리면 나도 죽어.’

헬 파이어를 내가 있는 방향으로 보낸 건 마검이 사라지고 난 뒤, 내 목숨마저 거두겠다는 의미겠지.

‘집중해, 집중…….’

나는 마검이 만들어 낸 원에 집중했다. 저것과 같은 성질의 원을 만들 수 있다면, 여기서 벗어날 기회가 찾아올 테니까.

‘방패를 만들어야 해. 단단하고, 불에 녹지 않는……!’

곧, 내 머릿속에선 얼음으로 만들어진 방패가 떠올랐다.

화아악―.

이어 내 손끝에서 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내 원은 마검의 것과 성질이 달랐다. 비슷한 푸른색이긴 하나, 내 것이 더 옅고 투명했다.

나는 불안하고 절망스러워졌다.

‘이대로는……!’

하지만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나는 곧 닥칠 상황에 눈을 질끈 감았다.

쾅!

‘……어?’

그런데, 놀랍게도 돌격해 오던 불꽃의 기둥은 내가 만든 원 앞에서 가로막혔다. 나는 투명한 원 밖에서 입을 쩍 벌린 불꽃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심지어 이토록 가까이에서 불꽃을 지켜보는데도 화염이 느껴지기는커녕 시원한 바람이 밀려들어 왔다. 내가 그린 방어막에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이었다.

“이게…… 가능하다고?”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아엔 역시 눈을 부릅뜨면서 나를 노려봤다.

“우―아.”

마검 또한 얼떨떨한지 내가 만든 방어막을 보고는 다시 내 얼굴을 쳐다봤다. 

“하하!”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검은 크게 웃더니 갑자기 제자리에서 높게 점프를 했다. 그리고 불기둥을 피해, 아엔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막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엔이 마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이제 불기둥은 나를 내버려 둔 채 마검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마검은 재빨리, 불꽃의 이동 방향보다 한발 앞서 뛰기 시작했다.

‘확실히 저 마법, 강력하지만 느려.’

물론, 마검보다는 느리다는 뜻이다. 만약 나였으면 저토록 민첩하게는 움직이지 못할 테니 말이다.

쉬이익―!

“잡아!”

“아엔 님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그 대신, 아엔의 다른 부하들이 최선을 다해 마검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불화살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통에 그것을 피하다 보면, 등 뒤에 불기둥이 이글이글 타올랐으니 말이다. 저들이 발목을 잡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마검도 아엔에게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쾅! 쾅!

불기둥은 집요하게 마검을 따라다니면서 동굴 이곳저곳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나는 마검의 발목에 화살이 스치는 것을 목격했다. 기우뚱하고 잠시 흔들렸던 마검은 다시 중심을 잡고 동굴 벽을 따라 뛰었으나, 아까보다 미묘하게 속도가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라면 잡힐 거야.’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적의 숫자는 약 오십여 명……. 어떻게든 내가 이목을 끌어와야 해. 그래야 마검의 운신 폭이 넓어질 테니까.’

아까 같았으면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벅찼겠지만, 지금은 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용기가 생겨났다.

“이봐!”

그래서 나는 놈들을 향해 큰소리를 치면서 달려갔다. 오직 마검만 쳐다보고 있던 아엔의 부하들은 그제야 나를 발견하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죠?”

“일단, 저 녀석도 붙잡아!”

내 생각대로 지척에 있던 네 명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놈들은 내게 화살을 몇 발 날렸으나, 당연히 원을 통과하진 못했다. 

‘화살이 튕겨져 나가잖아?’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방패에 맞은 것처럼 튕겨 나가는 화살을 보니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방패를 들었다고 상상하면서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되레 돌진했다.

“뭐, 뭐야?”

그러자 놈들은 허둥지둥 활대를 내리고 검을 치켜들었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챙강―!

역시나 휘둘러진 검은 내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오히려 놈들은 단단한 것을 내리친 듯, 짜르르 울리는 반동에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다, 닿지도 않았는데?”

“……뭐야?”

“실드인가?”

‘이거, 통하는구나!’

하긴, 강력한 마법도 튕겨 냈는데 고작 조무래기들의 칼 정도야 막고도 남았다. 의기양양해진 나는, 놈들을 향해 다시 한번 달려 나갔다.

“뭣들 하는 거야! 당장 저 새끼부터 잡아!”

“이 자식, 이상한 걸 쓴다고!”

“칼이 통하지 않아. 화살도 튕겨 낸 걸 무슨 수로……!”

“저런 능력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나는 놈들이 당황하는 틈을 타서 원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엔 역시 뒤늦게서야 내가 밀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는지 미간을 사정없이 찡그렸다.

그러나, 아엔은 곧 명령을 내렸다.

“놈을 포위해! 뒤는 막지 못할 거다.”

휘이익―!

게다가 때마침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윽…….”

나는 당황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