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1/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60화

우드득―!

“끄으으윽…….”

마검은 물뱀의 꼬리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발버둥 칠수록 물뱀은 더 강하게 비틀어 짜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는 거대한 비늘들을 보니 아연해져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정도의 몬스터라면, 최소 S급은 되지 않을까…….’

내가 쓴 스킬이 먹힌 게 기적인 지경이었다.

어쩌면 마검 대신 저기에 붙들려 허리가 끊어지는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주춤주춤 물러나게 됐다.

그리고 저 거대한 물뱀이 마검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나는 여기서 무사히 도망칠 방법을 강구했다.

‘다행히 아엔 무리도 죽었고…….’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직 아엔 무리가 전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나 리더로 보였던 아엔의 시체가 없었으므로, 놈은 어디선가 나타나 다시 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컸다.

“끼이잉…….”

그런데 그때, 갑자기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마검을 발견했다. 

놈은 발버둥 치다가 힘이 다한 건지 거대해졌던 주둥이도 닫혔고, 가슴에 드러난 눈알도 다시 상처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처음 만났던 소년의 얼굴로 돌아온 마검은 창백하게 질려서 물뱀의 비늘을 아득바득 긁어내렸다.

‘……어?’

동시에 나는 마검의 손목에 채웠던 봉인구가 부서진 것을 발견했다. 형태가 마치 종이가 물에 불어서 뭉개진 것 같았는데…….

‘설마, 물에 따라 들어와서 봉인구가 손상된 건가?’

아니면, 물뱀의 공격 때문이었을지도?

어쨌든, 마검이 정신을 차린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얼마 못 버티겠군…….’

그래서 나는 마검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기 전에 보주를 가지고 튀고자 마음먹었다. 마검을 미끼로 여기서 나가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도망…… 쳐…….”

등 뒤에서 마검이 하는 말이 들려왔다. 

물론, 마검이 제대로 말하는 모습은 본 적 없다. 여러 가지 어설프게 들은 말을 지껄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다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마검은 분명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도 저를 살려 달라는 게 아니라, 마치…….

“…….”

나는 잠시 망설였으나, 다시 등을 돌리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움직였다. 

까드드득―!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결국 또 한 번 뒤를 돌아봤다.

마검이 온몸에 금이 간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물뱀은 늘어진 마검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이대로 두면 마검은 완전히 박살 날 것이다. 그것에 대해 딱히 다른 감정은 없다.

하지만.

‘아엔은, 이 보주를 가지고 뭘 하려고 했던 거지?’

이걸 가지고 간들, 과연 이 보주가 내게 필요할까? 그리고 여기서 무사히 나간다 쳐도, 아엔을 물리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보주를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어이!”

물뱀은 막 마검을 삼키려다가 고개를 쓱 돌려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물뱀의 자연스러운 주시를 지켜보면서 보주를 천천히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물뱀은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주를 향해 다가왔다.

풍덩―!

또한 일직선으로 내게 다가오면서 삼키려던 마검은 안중에도 없어진 건지 금세 풀어주었다.

마검이 호수에 가라앉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보주에게서 재빨리 멀어지려고 했다. 운이 나쁘면 이번엔 내가 마검 꼴이 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쉐애액―!

놀랍게도 뱀은 보주가 아닌,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보주는 뱀의 비늘에 밀려 데굴데굴 굴러가다 호수에 빠졌고, 수면에 둥실 떠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러는 동안 물뱀은 보주에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나를 향해 똑바로 다가왔다. 즉, 물뱀은 처음부터 보주를 따라서 올라온 게 아니라 제게 접근한 나를 따라온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안색이 하얗게 질려 뛰기 시작했으나, 이미 물뱀은 내 지척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씨발, 내가 왜 그랬지?’

나는 후회하면서도 다리에 힘을 줬다.

“우아악!”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물뱀의 꼬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딱딱한 돌바닥에 한차례 구른 뒤, 뒤를 돌아보자마자 내 뒤에는 물뱀이 그 커다란 머리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대로 저 거대한 입에 잡아먹히는 건가? 생각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을 때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끔찍한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어……?”

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는데, 물뱀은 가만히 혀만 날름거리고 있었다. 마검을 쥐어짰을 때처럼 내 몸을 죄어 오지도 않았다.

“뭐…… 뭔데?”

위로 올렸던 팔을 주춤주춤 내리자, 뱀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두 개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면서 내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탐색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신기해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돌연 공격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계속 뱀의 탐색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했다.

‘죽이지 않는 건가?’

그러다 조금 용기가 생겨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뱀의 비늘을 손끝으로 조심스레 건드려 보았는데, 다행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가만 보니 눈이 동그란 게 착해 보이기도 하고…… 아니, 나는 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지만 뱀은 이후에도 나를 전혀 건들지 않았다. 꿀렁꿀렁하는 몸짓으로 내 주변을 둥그렇게 맴돌 뿐, 마검을 상대할 때와는 판이한 태도였다.

뱀은 나를 제 몸 중앙에 두고 똬리를 틀듯 둥그렇게 몸을 쌓은 뒤, 머리를 비스듬한 각도로 몸 위에 포개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위협이랄 게 없는 태도였다.

이쯤 되니 여기서 나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는 아엔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너 혹시 내 말 알아들어?”

솔직히 별다른 기대 없이 물은 건데, 뱀은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잠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내가 입을 다물고 대답을 기다렸더니, 다시금 아무런 반응 없이 고개를 제 몸 위에 내려 두었다. 오직 내가 소리를 낸 사실에만 반응한 것 같았다. 

‘어째 마검이랑 하는 짓이 비슷한데……?’

말 안 통하고, 아엔 무리와 적대적이며, 나에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그러면서도 마검하고는 사이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지?’

나는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너흰 뭐냐?”

뱀은 내 질문에도 가만히 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생각을 정리했다.

처음엔 아엔이 내게 보주를 가져오라고 한 이유가 탐이 나서이거나 나를 죽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놈이 나를 시험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엔 놈은 내가 뱀에게 공격당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내 생각이 맞다면, 놈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동굴의 구조에 익숙해 보였으니까.

‘마검에 대한 얘기는…… 전부 거짓 같진 않았어. 어느 정도는 거짓이고 어느 정도는 밝히지 않았겠지. 그럼, 뭐가 진짜고 가짜일까?’

사람을 해치고 정신을 미혹시킨다는 마검이, 왜 내게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걸 넘어서서 마검은 분명 내게 호의적이었다. 심지어 내가 아엔에게 속아 봉인구를 채운 뒤에도 나를 공격하지 않으려고 애썼으니까.

나는 뱀의 몸통 너머로 호수를 바라보면서 인상을 찌푸렸으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 뱀까지……. 뭔가 여기에 있는 몬스터라고 부를 만한 것들은 나한테 큰 위협이 되진 않는 것 같아. 내게는 오히려 아엔 무리가 위협적이지.’

또한 아엔 무리는 마검과 확실히 사이가 나빴다. 마검은 그들을 공격했으며, 그리고 지금 이 상황만 봐도 뱀 역시 그들과는 좋지 않은 사이일 것 같았다.

‘뱀 옆에 보주를 가지러 갔을 때, 해골들이 있었잖아. 어쩌면…… 아엔 무리 중 하나일 수도?’

그렇다면 아엔 놈들은 여기에 있는 마검이나 뱀 같은 놈들하고 계속 싸워 왔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보글보글―.

갑자기 호수의 수면 위로 이상한 물방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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