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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60/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9화

“헉, 헉…….”

지금 달리는 이곳은 마치 미로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로는 감옥이 보였고 뻥 뚫린 공간이 있었는데, 도망치면서 아무 곳에나 뛰어든 게 화근이 된 듯했다.

설상가상으로 길은 점점 좁아지고, 빛이 점점 줄어들어 주위가 캄캄해졌다.

그나마 어딘가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이 들어오고는 있어서 바닥의 굴곡은 알아차릴 수 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넘어져서 저 마검에게 목이 뜯겼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그 빛조차 희미해지고 있기에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하아, 하아…….”

나는 뒤에서 쫓아오는 괴물을 어떻게 떼어 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내 눈앞에는 커다란 동굴 두 개가 나타났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으로는 갈 수 없는 구조인 듯했다.

‘막다른 길이 나오면 어쩌지?’

그럼, 결국 비참하게 죽는 건가?

착잡한 생각이 들었으나 쿵쿵거리며 지축을 울리는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오른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물……?”

다행히도 오른쪽 동굴로 뛰어들어 가자 길은 점차 완만해지고 넓어졌다. 게다가 빛까지 들이치는지 시야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끝에는 거대한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뽀얗고 푸르스름한 물은 수심이 아주 깊어 보였는데, 문제는 여길 건너지 않으면 반대편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이라니…….

“…….”

평범한 바다나 강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차례, 천장이 막힌 답답한 던전에서 차오르는 물속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었다. 그러니까, 이 거대한 동굴의 호수가 하필이면 그때의 기억을 불러온 것이다. 

물을 마주한 순간부터 굳어 버린 다리가 어리석게 느껴졌지만, 애석하게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코끝까지 숨이 막히는 기분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눈 딱 감고 건너는 거야. 할 수 있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돌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뭐?”

쐐애액―!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는데, 간발의 차이로 내 팔을 스치고 지나간 화살촉이 바닥에 꽂혔다.

나는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나를 공격한 사람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이런 미친! ……이봐!”

아엔 무리였다. 

왜인지 아엔은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에 붕대를 두른 인간이 어느새 세 명이나 내 뒤를 쫓아와선 화살을 쏜 것이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그들에겐 무기가 있는 반면 나는 맨몸이었다. 더구나 이 양심 없는 새끼들은 나와 대화를 나누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잠깐……!”

다가가서 말을 붙여 보려고 해도 말없이 등 뒤에서 화살을 꺼내, 내게 겨누는 것이다.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오면 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눈빛을 하고는 말이다.

“이런, 씨……. 젠장.”

심지어 그들은 슬금슬금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나와의 대화는 일절 거부한 채, 무기를 앞세워 나를 동굴의 호수로 몰아세웠다. 즉, 내가 저 물속으로 뛰어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함정임이 명백해 보였으나 별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신발을 신고 호수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그리고 이 호수는…… 빌어먹을! 정말로 뭔가가 있었다.

호수는 내가 발을 들이밀자마자 은은하게 빛이 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제야 이 동굴에 따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게 아니라, 호수의 바닥에 있는 뭔가가 빛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불길했다. 나는 재빨리 호수에서 거리를 벌리려고 했으나, 그러자마자 다시 화살이 내 신발 앞에 꽂혔다.

“잠수해서 보주를 가지고 올라와라. 그럼 살려 주도록 하지.”

그리고 무리 중 가장 앞서 있던 한 명이 내게 허스키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보주?”

“호수 밑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구슬이야. 보면 바로 알 거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까마득한 호수의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물속에서 보주가 아닌, 징그러운 크기의 물뱀을 발견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것이 정상적인 물뱀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크기가 몬스터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빛이 나는 구슬은 물뱀의 주둥이 바로 옆에 있었다. 저게 보주겠지?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물건은 저것뿐이니까. 

‘이 새끼들…… 또라인가?’

하지만 말이 안 됐다. 설령 내가 어찌어찌 잠수해서 저 구슬을 건드린다고 쳐……. 그럼 접근할 때까지 물뱀이 지금처럼 자고 있을까? 물뱀은 현재 미동이 없지만, 놈이 살아 있다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나는 황당해하며 놈들에게 소리쳤다.

“미쳤어? 그냥 가서 저 뱀한테 잡아먹히라는 거야?”

“우리는 널 쏘아 죽인 다음, 피 냄새로 저것을 유인하는 미끼로 쓸 수도 있었어. 기회를 줄 때 감사히 여기지 그래?”

하지만 아엔 패거리는 저들이 잠수하는 게 아니어서인지 태연히 지껄였다.

나는 여전히 내게 겨눠진 화살과 호수 밑바닥에 있는 물뱀, 그리고 구슬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가 너무 자세히 쳐다본 탓인지 구슬 주변에 있는 뼈들도 발견하고 말았다.

‘이 새끼들, 분명 이번이 처음이 아니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엔은 정말 계획적으로 사람을 속인 것이다. 그리고 몇 번이나 실패하면서도 호수 아래로 사람을 보낸 이유가 있겠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뒤돌아 호수 속을 향해 잠수했다.

풍덩―!

물속에서 눈을 뜨자 물뱀의 크기가 더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아직 물뱀은 미동도 없지만, 다가갈수록 보주에서 내뿜어지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당연히 저걸 쥐고 올라가는 순간 뱀이 잠에서 깨어나 따라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게는 스킬이 있었다.

‘뒤집어쓴 가죽.’

스킬이 제대로 먹혔다는 의미로 뱀의 전신에 붉은빛이 짧게 돌았다. 

이어 보주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뱀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하지만 놈은 나를 곧장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몇 번 눈을 깜빡였을 뿐이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나는 손끝으로 보주를 굴리며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문제는 점점 숨이 딸려 왔다. 그러는 동안 물뱀은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호수 바닥의 모래에 파묻힌 부분까지 일어나기 시작하자 정말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젠장, 쫓아오잖아…….’

나는 파닥거리면서 수면을 향해 올라갔다. 그런 내 뒤에는 아직 공격하지는 않으나, 본능적으로 보주를 쫓아오기 시작한 물뱀의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

수면에서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웅웅거리는 소리라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물 밖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은 확실했다.

슈우웅―!

게다가 아직 물속에 있는 내 옆에 뭔가가 날아와 처박혔는데, 그건 부러진 화살촉이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수면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후아, 하아, 하아……!”

“끄르륵…….”

물밖에 고개를 내밀자마자 익숙하지만, 여전히 거부감이 드는 비린내가 콧속을 가득 채웠다. 

바로, 피 냄새였다.

“아아악!”

조금 전까지 내게 화살을 겨누며 의기양양하게 굴던 아엔 패거리가 모두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놈들은 피투성이였는데, 그들의 뒤로는…… 마검이 보였다. 미치광이가 된 마검이 기어이 내 뒤를 따라와서 아엔 패거리와 마주친 것이다. 

아엔 패거리는 나를 위협할 때와는 천차만별인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는데, 솔직히 통쾌함보다 공포심이 앞섰다. 마검의 다음 희생양이 누가 될지는 뻔했기 때문이다.

“크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마검은 피가 잔뜩 묻은 주둥이를 쩍 벌리고는 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잠시 눈을 깜빡하는 사이, 놈은 엄청난 스피드로 점프해서 호수를 향해 도약했다. 나는 경악했으나 이미 놈은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슈우욱―!

내 뒤에서 엄청난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하더니 물뱀이 그 거대한 몸통을 수면으로 솟구쳐 올라왔다.

이어 물뱀은 입을 쩍 벌려서 마검을 덥석 깨물려고 들었다. 마검은 물뱀의 머리를 피하려다가 그만 물속으로 떨어졌다. 

이후, 둘은 물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주를 쥐고 둥둥 떠 있다가, 주춤거리며 일단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끄르륵, 끄르륵…….”

그리고 둘의 싸움은 싱거울 정도로 금방 결판이 났다. 물뱀이 마검의 허리를 꼬리로 죄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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