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8화
“……!”
순간 흠칫 놀라서 뒤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안심하는 순간…….
“왕!”
“으아아악!”
“우아아앙!”
갑자기 내 코앞에서 나타난 마검이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나는 너무 놀라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데 더 열 받는 건, 이 마검 새끼는 저가 나를 놀려 놓고선 내 비명에 저도 깜짝 놀랐는지 마주 고함을 질렀다는 것이다.
“미, 미친놈아!”
“우웅?”
그래 놓곤 펄쩍 뛰더니 나와 거리를 벌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워낙 빠르게 움직여서 손목에 팔찌고 뭐고 채울 시간이 없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놈에게 화를 낼 뻔했지만, 곧장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곤 진정했다.
“후우…….”
“응? 응?”
그러는 동안, 마검은 갈라진 가슴팍의 흉터를 긁으며 계속 나를 관찰했다.
놈은 내가 밖에 나와 있는 게 신기한 건지 계속 내 주변을 원을 그리면서 부산히 움직였다. 다행히 접근하자마자 나를 해치려 들진 않았으나, 손목에 봉인구를 채우려 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기습을 안 한단 말이야?’
문득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아엔 무리는 대체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사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흠, 크흠……. 이봐. 아니, 저기…….”
“……!”
그러다 말을 걸어 보았을 때, 마검은 빙빙 돌던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처음엔 좀 놀란 듯 보였는데, 그런 표정도 잠시였다.
씨익―.
마검은 헤죽거리면서 내게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
나로서는 그게 썩 달갑진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아엔 무리에게는 좋은 신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자, 잠깐. 잠깐!”
그러나 마검이 한 발짝, 두 발짝, 계속 내게 다가와도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그뿐이었다면 그래도 버텼겠는데, 다가오는 괴물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빛도 아까보다 좀 맛이 간 것 같았고 말이다.
나는 슬슬 불안해져 갔다.
‘……대체 언제 나타날 생각이지? 코앞까지 다가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초조해지는 내 마음과는 별개로 마검은 이제 고작 한 걸음 거리만 남기고 서 있었다.
‘아니, 설마…… 저 새끼들…… 내가 손목에 봉인구를 채우기를 기다리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마검이 불쑥 제 머리를 내게 들이밀었다.
“흐힉!”
나는 그 돌발적인 행동에 놀라, 손바닥으로 놈을 밀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은 내 손바닥에 코를 박고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여전히 입에선 침을 질질 흘리며 말이다.
“헥헥…….”
그리고 가쁜 숨소리를 내는데, 영문을 알 수는 없었으나 질끈 감았던 눈을 뜨는 덴 충분한 시간이었다.
“……너 뭐야, 대체…….”
“아우으…….”
놈은 내가 말하자마자 다리를 비비 꼬면서 끝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곤 여전히 뻣뻣하게 굳은 내 손바닥에 얼굴을 비볐다.
‘이거 진짜…… 개 아니야?’
나는 그런 놈의 모습을 보면서 전에도 한번 스치듯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뻣뻣하게 굳은 손을 간신히 들어, 놈의 머리카락에 올려 봤다.
‘……윽. 갑자기 냄새가 훅 풍기네.’
기름기가 잔뜩 낀 머리카락을 만지는 건 제법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으나…… 마검은 내가 제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하자 눈빛부터가 변했다.
마치 땡볕 밑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해진 놈은 내 손에 제 머리를 더 가열 차게 들이대기 시작했으며, 계속 목으로 끙끙거리는 신음을 냈다.
어떤 이상한 소리가 아니라, 말 그대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뭔데, 대체?”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마검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이나 위협은커녕 이리저리 움직이는 내 손과 닿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이 상태라면 놈의 손목에 봉인구를 채우는 건 어렵지 않을 듯했다.
나는 떡이 진 놈의 머리카락을 몇 번 더 만져 준 뒤에 뒷주머니에 숨겨 둔 봉인구를 슬그머니 꺼냈다.
“가만히, 그래…… 이대로만…… 자, 잠깐. 미, 미쳤어!? 왜 핥는 건데!”
할짝.
그런데 한 손으로 손목을 끌어당겨 보려고 하자, 이 마검 새끼가 갑자기 내 손바닥을 혀로 핥는 것이다!
나는 그 징그러운 감촉에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게 진짜 저가 개인 줄 아나…… 쓰읍! 가만히 있어!”
“응! 응!”
하지만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도 내 손가락을 보면 입이 자동으로 벌어지는 터라, 나는 하는 수 없이 발로 놈을 톡톡 건드렸다.
놈이 거기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나는 봉인구의 걸쇠를 풀었고, 놈의 비쩍 마른 손목에 봉인구를 채울 수 있었다.
철컥!
“……!”
봉인구가 걸리자마자 마검은 흠칫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그 뒤에 제 손목에 걸린 봉인구를 발견했지만…… 다행히 내게 덤벼들지는 않았다.
그 대신 놈은 마치 덫에 걸린 사슴처럼 제자리서 펄쩍펄쩍 뛰며 이를 세워서 봉인구를 뜯어내려고 했다.
“크르르르…….”
손톱으로 뜯으려다가 상처가 나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놈은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아엔 무리가 나타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위는 고요했다.
“뭔데……. 하아, 이 사람들은 대체 무슨 짓을…….”
나는 불안감을 느끼며 일단 아엔을 기다리는 걸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자력으로라도 마검의 곁에서 벗어나는 게 목숨을 부지할 방법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뒤로 물러났으나 몇 걸음 채 물러서기도 전에 시뻘게진 눈동자를 한 마검이 나를 쏘아봤다.
“캬아아…….”
“……개 같네, 진짜.”
아까는 주인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강아지였다면, 지금은 광견병에 걸린 미친개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나는 그제야 아엔이 나를 ‘살아 있는’ 미끼로 썼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봉인구’가 일종의 방아쇠였던 것이다. 아엔, 이 씨발 새끼들은 그걸 알면서도 나를 여기에 혼자 둔 것이고 말이다.
“이런 씨발…… 아엔! 당장 나와!”
나는 고함을 질렀지만, 고함에 자극 받은 것은 아엔이 아닌, 마검이었다.
“크르르르…….”
마검은 천천히 제 육체를 변화시켰다.
비쩍 마른 소년의 육체가 아니라 스치기만 해도 중상을 입을 것 같은 거대한 근육이 불룩불룩 솟아났다. 특히나 위협적이었던 것은 몸을 가로지른 긴 흉터가 갈라지며 그 속에서…… 눈알이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얼굴에 붙어 있는 눈깔보다 더 징그러운 것이 불룩 튀어나와선 숨 가쁜 속도로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 대는데…….
“이게…… 돌았냐고…….”
그 눈알이 나를 발견하고는 딱, 제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건 아주 안 좋은 신호였다. 나는 전생을 통틀어 수없이 많은 몬스터와 전투를 해 봤고, 몬스터들은 타깃을 정하면 일단 그 목표물에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시선을 고정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건 조금 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분명 ‘몬스터’였다. 그것도 내가 잡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미지의 몬스터. 상황이 아주 좋지 않았다.
쾅―!
그것은 내가 잠시 눈을 깜빡였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나는 바닥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오른쪽 아래를 향해 몸을 굴렸다.
“크아아아악!”
놈은 괴성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는 내게 다시 덤벼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침을 질질 흘리며 바보처럼 굴긴 했으나 뭉뚝했던 이는 온데간데없고 변화한 마검의 벌어진 입안에는 물리는 순간, 살점이 뜯어져 나갈 톱니 같은 이빨들이 솟아나 있었다. 그런 주둥이를 가지고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피부 위로 미지의 존재가 내뿜는 살의가 너무나도 강력하게 느껴져 온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여전히 좆같은 바로 그 감각. 살기였다.
“……씨발!”
나는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날렸다. 다행히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쾅! 하고 내 머리 바로 옆 바닥이 움푹 패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이딴 데서 이렇게 죽으라고?”
나는 이를 악물며 거의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그아아아아!”
그리고 내 뒷덜미엔 괴물의 고함이 바짝 달라붙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