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8/104)
  •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7화

    “그럼, 저 소…… 아니, 검은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거죠?”

    아마도 나는 마검 때문에 이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들어온 것일 터. 그래서 묻자, 아엔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겁니다.”

    “네?”

    “지금까지 마검은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면 계속 도망치거나 공격적으로 나왔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이전, 아엔의 무리와 소년이 싸우던 장면을 떠올렸다.

    “화…… 살을 쏘시던데?”

    “물론,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죠. 하지만 우호적으로 접근하려 해도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아마도 저 소년은 자신의 본체가 우리에게 붙잡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듯하거든요.”

    그렇게 추측한 이유는 마검이 소년의 모습을 하고, 종종 무리에서 떨어져 개별 활동하는 사람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여, 그룹 내에서도 피해가 누적되어서 이제는 소년이 보이면 무력으로 진압하는 방법뿐이었다고.

    “하지만 마검의 힘은 날이 갈수록 점점 강해지고 있는 데다, 저희가 정비하고 있는 봉인 도구마저 낡아져서 버거워지고 있습니다. 벌써 마검이 여기에 봉인된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거든요.”

    이러다 마검이 완전히 복구된다면 이번엔 다시 막아 낼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 도중, 한솔 씨가 저희가 있는 곳으로 이동되어 온 것이죠.”

    “……제가 여기로 오게 된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

    “아마 마검의 예전 자아와 접촉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엔은 그렇게 말하며 감옥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언젠가부터 마검의 힘에 홀린 사람들이 여기로 오게 되었고, 그 사람들은 마검만 보면 미쳐서 날뛰었습니다. 본래 이곳은 오래된 감옥을 개조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격리해 둘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감옥 안에 있던 해골을 떠올렸다. 

    그럼, 그 사람들은 전부……. 

    “다들…… 죽이신 건가요?”

    내 겁먹은 표정을 본 건지 아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부분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요.”

    “……!”

    “마검에 이미 자아를 빼앗긴 탓이겠죠. 일단, 여기에 갇히고 나면 틈이 보이지 않으니 마검이 희생시킨 겁니다. 숙주가 죽어야 다른 숙주로 이동할 수 있으니까요.”

    아엔의 말에서는 거짓의 기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가 나를 속이려고 했다면 마검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있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엔은 내가 마음을 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는 마검에 홀리지 않았습니다.”

    “네, 압니다. 처음에는 한솔 씨도 마검에 자아를 빼앗긴 사람인 줄 알았지만…… 아니더군요.”

    처음엔 당연히 마검에게 혼을 빼앗긴 사람이 온 줄 알았으나, 가만히 지켜보니 이전에 온 사람들과는 행동 양상이 크게 달랐다고 한다.

    “보통은 어떤 식으로 구는데요?”

    “눈을 뜨자마자 창살이나 벽을 미친 듯이 긁거나 기이한 쇳소리를 내면서 저희에게 저주와 욕설을 내뱉곤 합니다.”

    “네?”

    “뿐만 아니라 밤에 잠들지도 않고 서서 충혈된 눈으로 저희를 쏘아보는 등…… 정상적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죠. 마치, 금단 증상에 빠진 마약 중독자 같다고 할까요?”

    격리해 두지 않았을 때는 이보다 더 끔찍해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봉인 도구를 부수려 들었다고 한다. 결국, 감금은 이들에게 있어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솔 씨는 완전히…… 음, 정상적으로 굴었죠. 그래도 혹시나 마검이 전략을 바꿔 연기하는 걸지도 모르기에 한솔 씨를 지켜보면서도 곧장 풀어 줄 수 없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아엔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 어느 정도 상황이 이해되었기 때문에 더는 화를 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죠, 뭐.”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사과하는 아엔을 보면서도 속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그냥 내 정상적인 반응만 보고 풀어 준 건가? 마검이 연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건 계속 감시해 왔다는 건데…… 나를 진짜로 풀어 주게 된 이유가 뭐지?’

    결정적인 사건이 있을 거라 생각하던 찰나, 아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마검이 한솔 씨를 대하는 모습을 보니, 어쩌면 한솔 씨가 마검의 봉인에 도움을 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제가요?”

    “네. 마검은 저희가 접근하면,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심하게 경계하고 저희에게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아…….”

    나는 그제야 아엔 무리가 나를 풀어 주고 잘 대해 주려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를 미끼로 쓰려고 하는군?’

    예상대로 아엔은 나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권유하듯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가 마검의 제2 자아를 파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

    물론, 미끼라는 노골적인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나…… 나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내 입장을 말하자면 차마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아니, 거절한다고 하면 나를…….

    ‘감금하거나…… 하여튼, 무슨 수를 써서든 마검을 유인하는 재료로 쓰겠지. 사실, 거절하나 안 하나 마찬가지야.’

    이 정도는 나도 예측할 수 있었다. 일단 머릿수부터 압도적이니 말이다. 

    당연히 도망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여기서 10년이나 지내 왔으니, 구조도 훤히 알고 있겠지. 

    사실상 이는 부탁을 가장한 명령이었으며 그 사실은 나도 그리고 아엔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나갈 방법은 이들에게 협조하는 것밖엔 없어.’

    그래서 나는 뭔가 떨떠름한 기분이 들긴 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솔 씨에게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아엔은 어렵지 않다고 했지, 위험하지 않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걸 정직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하아…….’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고, 나는 그에게 최대한 협조적인 표정을 가장하며 물었다.

    “……네. 그럼, 뭐부터 하면 될까요?”

    아엔은 미소를 지었다.

    * * *

    “이게 봉인구입니다.”

    아엔이 건넨 것은 꼭 팔찌처럼 보였는데, 안쪽을 보니 내부가 종이로 되어 있었다. 나는 단단한 내부를 만지작거리다가 종이로 된 끈 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부적 같은 봉인지를 여러 겹 겹쳐서 만든 건가?’

    그래서인지 마감이 허술해 보였으나, 아까도 검에 봉인지가 붙어 있는 걸 보면 마검에게는 치명적인 구속구일 듯했다.

    아엔은 떨떠름하게 팔찌를 들고 선 나를 훑어봤다.

    “좋군요.”

    “그…… 런가요?”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아엔은 퍽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박수를 한 번 짝, 쳤다. 집중하라는 뜻이었다.

    “네. 그럼, 다시 한번 설명드리겠습니다.”

    “네…….”

    “아까 말씀드린대로 팔찌를 잘 가지고 계시다가 놈이 접근하면 팔에 채워 주시면 됩니다. 팔찌를 채우기 전까지는 구속구인 줄 모를 겁니다. 하지만 냄새를 맡으면 눈치챌 수 있기 때문에, 꼭 손을 붙잡고 팔찌를 채워 주세요.”

    “…….”

    “만약 실패하시더라도 괜찮습니다. 놈이 우선 한솔 군에게 가까이 오기만 해도 저희가 2차로 포위해 한솔 군을 격리하고, 마검을 제거할 겁니다.”

    물론, 나는 이 작전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았다. 

    일단 마검이 접근했을 때 내가 정말로 안전할지 확신할 수 없다. 아엔 말로는 그렇게 친근감(?)을 표했으니 섣불리 공격하지는 않을 거라지만, 다르게 말하면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으니 접근하자마자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저들만 잃을 게 없는 싸움이군.’

    나는 이를 갈았으나 곧 체념했다. 그리고 아엔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일단은, 놈 말대로 대기하겠지만…….’

    여차하면 마검의 봉인이고 뭐고 튀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하아, 하아…….”

    등 뒤에서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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